Two heirs RAW novel - Chapter 73
77
레이안의 질문에 하운은 당연한 일을 왜 물어보냐는 듯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합니까. 당장 정정 기사 내라고 명령한 다음 돌아갈 때까지 마주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건 좋지 않은 것 같군요, 하운 대공.”
하운의 말에 대답한 것은 뒤에서 나타난 레티시아였다. 그녀의 손에는 카르디아의 유명 신문들이 가득 들려 있었다.
‘모든 기사들을 싹 훑어보셨군.’
레티시아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사들을 쓴 자들을 감시하며 샤를로테 공주 측에서 어떤 식으로 돈을 건네받았는지 알아낼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이미 다 알아냈을 수도 있고.
하운은 레티시아가 들고 있는 신문을 보자 공작저에서의 모습이 생각났다. 다들 놀란 얼굴로 자신에게 뭐라 축하의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모습들이. 어째서 다들 이게 정말이냐 묻지도 않는 것인지.
하지만 직접 신문을 보고 나니 왜 다들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쓸데없이 상세했지.’
샤를로테 공주 측에서 나온 말이라고 적힌 것들은 누가 봐도 하운과 그녀가 밀접한 관계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다. 군사 기밀 같은 것은 없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사소한 습관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적힌 기사는 사람들이 더욱 믿기 쉽게 만들었다.
하운이 이를 갈고 있자 레티시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까지 대공은 어떤 소문에도 무대응으로 일관된 자세를 취했습니다. 받아치지도 말아야 더 빨리 조용해진다는 것은 대공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번 일에 대해서는 대응을 하려 합니까?”
“그건…!”
왜더라?
예전에 이런 소문이 돌면 조금 짜증이 날 뿐 별다른 감정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속에서 볼이 치솟아 오르는 기분인가. 하운은 저를 바라보던 시선들이 생각났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리엘라의 시선이.
아마도 그 자리에 제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리엘라에게서 ‘결혼식 부케는 제가 해도 될까요?’ 같은 소리 정도는 나왔을 것이다. 모두가 축하하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싫었다. 그들이 건네는 축하가. 적어도 한 명 정도는 그게 정말이냐 되물어 볼 법도 한데.
‘공작저를 말없이 비웠다고 화를 냈으니 이런 일에도 왜 말이 없었냐 화를 내는 게 맞잖아?’
속으로 화를 삼키던 하운은 제 원망이 리엘라를 향한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 고개를 흔들었다. 리엘라는 이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왜 제가 그녀를 원망하고 있단 말인가.
하운은 제 감정의 방향을 바꾸었다. 팔짱을 낀 채로 세상 더 없이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고 있던 네아가 생각났다. 그녀는 이를 갈며 ‘공작님에게 거짓말을 했겠다’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거짓말이라니? 자신이 뭘 말했다고?
어쨌거나 대응을 하려는 이유는 그런 반응들을 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운이 마음속으로 샤를로테라는 이름을 줄로 수백 번 긋는 사이 레티시아는 소파에 앉아 들고 있던 신문을 펼쳤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대응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대응을 하면 평소와 다른 반응에 소문이 진실이라는 말이 커지겠지요. 일단은 가만히 샤를로테 공주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건지.”
간만에 레티시아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레이안과 하운은 마른 침을 삼켰다. 레티시아는 웃을 때 위험한 사람이다. 샤를로테 공주가 한 짓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타국의 사람이 카르디아 안의 언론에 이렇게까지 손을 뻗쳤다니.
“사실 방문한다는 친서를 받고 뭔가 꿍꿍이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이런 짓이라니. 오기 전부터 이리 카르디아를 들쑤셔 놨으니 이쪽도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드리는 것이 좋겠어요. 그러니 샤를로테 공주의 마중과 동행을 부탁합니다, 대공.”
“제가 어째서…!”
“원하는 것을 빨리 물려 줘야 배를 드러내고 꼬리를 흔들 것 아닙니까. 그리고 보석술사인 그녀를 옆에서 감시, 견제하기에 대공이 적임자이기도 하지요.”
신랄한 레티시아의 말에 하운은 한숨을 삼켰다. 레티시아의 태도를 보니 조금 전 말을 물릴 생각은 조금도 없는 듯했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두 번째 문을 여는 일에 겨우 진척이 보인다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여자 때문에 시간을 빼앗겨야 하다니. 머리가 아파 왔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레티시아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때까지 샤를로테 공주와 있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헛된 소문이 만들어질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샤를로테 공주가 와 있는 동안에는 계속 왕궁에 머물러야 한다는 소리고.
레티시아의 권유인 척하는 명령을 거부하려던 하운은 생각을 바꿨다. 상대는 준비를 끝낸 채 덤비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레티시아의 말대로 최대한 빨리 상대해서 뭔지 모를 그 꿍꿍이를 알아내 박살 내는 게 낫겠지.
“…말씀하신 대로 따르겠지만 공식 일정은 최소로 부탁드립니다. 그렇잖아도 두 번째 문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여자 때문에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하운의 말에 레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샤를로테 공주의 체류 기간은 어떻게 됩니까?”
“저번에 도착한 편지에 따르면 대략 한 달 정도 머물 예정이라고 합니다. 카르디아의 꽃 축제를 보고 가고 싶다 적혀 있더군요.”
레티시아의 대답에 하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나 머물 줄 알았는데 한 달? 게다가 꽃 축제를 보고 가겠다고?
하운은 이마를 짚었다. 그 축제에는 리엘라도 참가한다. 지금 공작저 안이 온통 꽃 장식으로 가득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가. 벌써부터 리엘라는 네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축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표정만 봐도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주일간 이어지는 꽃 축제를 매일 보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당연히 그 기간 동안 리엘라의 옆은 제가 지킬 예정이었다. 그런데 샤를로테 공주가 그 행사를 보러 가겠다니.
‘그때는 다른 자에게 동행을 넘기겠지만….’
그래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샤를로테 역시 강한 보석술사다. 그런 그녀가 리엘라와 마주쳐서 좋을 것이 없었다. 물론 빛나는 꽃이야 공작저 안에 둘 터이니 그녀가 볼 일은 없다지만 리엘라 자체도 문제다. 만약 제가 추측하는 대로 그녀 자체가 강한 보석술사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샤를로테도 리엘라에게 끌릴 가능성이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하운은 결정을 내렸다.
‘꽃 축제 전에 돌아가도록 만들어야겠군.’
그렇다면 레티시아의 말대로 원하는 먹이를 그녀의 입에 들이미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빨리 속내를 드러낼 것이니까.
‘그런데 정말 무슨 생각인 거지?’
하운은 북부 전선에서 만났던 샤를로테를 떠올렸다. 사실 만났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관계였다. 그녀와 만난 것은 강을 사이에 둔 상태였으며 강물에 몬스터들의 사체가 쉴 새 없이 흘러 내려가는 난리 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강이 국경선이었기에 서로 건너가지도 않고 그저 멀리서 슬쩍 눈인사를 하며 마주 본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세 번. 그사이 한 번도 말을 섞어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얼굴은 마주쳤기에 기억하고 있다. 전쟁터 속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여자였다.
무척이나 풍성한 프릴과 레이스, 거기에 흰 양산까지. 하운은 물론이고 카르디아의 보석술사들조차 잠시 그녀의 차림새에 말을 잃었었다. 꾸엑, 하는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몬스터들이 아니었다면 잠시 이곳이 북부 전선이 아닌 수도의 거리라고 생각할만한 차림새였으니까.
그녀는 시선이 마주치자 하운에게 치마를 살짝 잡아 들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때 하운은 저를 살피는 샤를로테의 시선을 확실하게 느꼈었다. 그때는 그저 타 국가의 보석술사를 살피는 눈빛이라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이런 결혼 이야기라니.
무척이나 불쾌하고 짜증 났다.
“……!”
그러다 하운은 깨달았다. 설마 제가 갑자기 결혼해 달라는 소리를 했을 때 리엘라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
하운이 급격하게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의 시종이 레티시아에게 알현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 말했다. 그 말에 레티시아는 잠시 밖으로 나갔다 오더니 굳은 얼굴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하운이 묻자 그녀는 손으로 턱을 괸 다음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샤를로테 공주가 한 달 전, 소르디아에서 극비리에 사들인 보석들이 있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안의 경매장이 아닌 바깥의 경매장에서 구매한 것 같군요.”
소르디아. 바깥의 경매장. 그 말에 하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소르디아는 대륙의 보석들 대부분이 유통되는 도시의 이름이었다. 일반 보석은 물론 힘을 가진 보석들도 당연히 거래가 되었다. 호슨 공작은 소르디아의 큰 손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제 마음에 드는. 혹은 찾던 보석이 나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손에 넣으려 하는 사람이었다.
호슨 공작뿐만이 아니다. 대륙의 모든 보석술사들이 몰리는 곳이 소르디아였다. 그도 오래전 레이안의 명령에 따라 필요한 보석을 구입하기 위해 그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하운 역시 바깥의 경매장을 이용했다.
바깥의 경매장이란 무엇을 사고파는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이루어진 거래를 뜻하는 말이었다. 제가 무엇을 손에 넣는지 알리고 싶지 않은 보석술사들이 하는 거래.
“넘어간 보석의 정보는….”
“아직 어떤 힘을 가진 보석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해 볼 테니….”
레티시아의 눈이 하운을 향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샤를로테 공주를 만나도록 하세요, 하운 대공.”
무거운 긴장감이 레이안의 집무실에 흘렀다.
***
아침에 하운이 미친 듯이 왕궁으로 뛰어가고 나서 공작저는 소란스러웠다. 여기서 수군수군. 저기서 수군수군. 온통 하운의 이야기뿐이었다. 평소라면 일찌감치 연습을 하고 있을 리엘라도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샤를로테 엘 프리아니….”
몇 번 이름을 본 적이 있었다. 옆 나라의 아름다운 공주님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존재였으니까. 신문에는 그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살짝 곱슬거리는 밝은 금발. 반짝이는 짙은 푸른 눈동자. 섬세한 레이스가 가득한 아름다운 옷에 살짝 웃는 채로 앞을 바라보는 얼굴은 모두가 생각하는 ‘공주님’이라는 단어를 완벽하게 표현해 낸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런 분과 혼담이 오간다니….’
새삼 하운이 ‘왕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공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한 탓에 그 호칭으로 불러 본 적이 없었다.
“공주님과 왕자님이네.”
갑자기 머릿속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 결혼하시나?’
축하의 말이 순간 생각나지 않아 친구들에게 했던 것처럼 예쁜 사랑 하라는 말을 해 버렸더니 얼굴이 새빨갛게 되더니 미친 듯이 뛰쳐나가던 하운의 모습이 생각났다. 결혼한다 아니다 정도는 좀 말해 주고 가지.
입술을 삐죽 내밀던 리엘라는 신문의 초상화를 한참이나 바라본 다음 고개를 돌렸다. 벽에 걸려있는 거울에 제 모습이 보였다. 밝은 금발도 아니고 짙은 푸른 눈동자도 아닌 제 모습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던 리엘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왜 지금….’
졌다고 생각한 거지? 누구에게?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