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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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질 무렵 테티아의 문장을 붙인 마차가 별궁의 앞에 도착했다. 마차가 멈추자 주변을 호위하던 테티아의 기사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지친 표정의 샤를로테가 내렸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시녀가 재빨리 샤를로테의 옆에 붙어 그녀가 들고 있던 문서들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바로 씻으실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좀 피곤하군. 와인도 같이 준비해 줘.”
“네.”
시녀가 물러서자 샤를로테는 걸음을 옮겼다.
‘피곤해.’
벌써 며칠째 소모적인 회담이 계속되고 있었다. 국경선을 두고 하는 회의인 데다가 플레노트의 레어에서 가끔씩 나올 몬스터의 퇴치 문제까지 겹쳐지자 회의에는 군인들은 물론 보석술사들까지 참석해야 했다.
외교관들끼리만 해도 복잡할 문제에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끼어드니 회담은 더욱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이러는 거야.’
카르디아 측의 사람들은 느긋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그들의 왕궁이 아닌가. 손님은 그들의 집 안에서 낯섦과 거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대로 계속되면 결국 먼저 지치는 것은 테티아 쪽이다.
샤를로테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숄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별궁의 옆문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입은 옷을 보니 왕궁 안에서 일을 하는 자들이었다. 시종의 차림새는 아니었기에 무엇 때문에 저리 많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인가 궁금해하며 바라보자 따라오던 시녀가 말했다.
“새로운 꽃 장식을 가져온 자들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그 말에 샤를로테는 싸늘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어제 장미가 보기 싫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꽃들을 치우라 명령했다. 그랬더니 왕궁 정원사들이 놀라 새로 만들어 온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치우라 명령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지금은 잘 웃고 상냥한 이웃 나라의 공주님을 연기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고 놔둘 수밖에 없다.
‘쓸데없이 꽃은 많이도 보내는군.’
꽃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건만 지금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치우지 못하면 방에 있는 것들이라도 밖에 두라 명령해야겠다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숄을 시녀에게 건네며 소파에 앉으려는 순간,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꽃병 속의 꽃이 보였다.
“헉!”
샤를로테는 방 안에 시녀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놀라 제 입을 틀어막았다.
“왜 이게 여기에…!”
샤를로테가 놀라 뒷걸음질 치자 옆에 있던 시녀들 역시 놀라 그녀에게 다가왔다.
“공주님?”
“무슨 일이세요?”
갑자기 기겁하는 샤를로테의 모습에 시녀들은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하지만 시녀들에겐 탐스럽게 핀 꽃이 꽂혀 있는 꽃병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 다른 꽃들보다 훨씬 더 크게 피어 예쁘기는 했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큰 장미꽃일 뿐인데 왜 공주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저건….”
뭔가 말하려던 샤를로테는 잠시 숨을 삼키더니 명령했다.
“미안하군. 내가 피곤해서 잠시 헛것을 봤나 봐. 조용히 쉬고 싶으니 다들 나가 주었으면 해.”
“알겠습니다. 그럼 목욕물이 준비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래.”
샤를로테는 답지 않게 어서 나가 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자신들을 급히 쫓아내는 그녀의 모습에 시녀들은 문을 닫으며 흘긋 샤를로테를 살폈다. 그녀는 마치 못에 박힌 것처럼 여전히 꽃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나자 샤를로테는 주먹을 꽉 쥔 채 눈을 깜박였다.
“맙소사….”
샤를로테는 제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빛나는 꽃….”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살면서 단 한 번, 빛나는 꽃을 보았다. 테티아의 왕궁을 벗어나 근처의 도시에 다녀오는 길에 보았던 언덕 위에 핀 빛나는 꽃. 일부러 신하들을 시켜 가져오게 한 다음 왕궁으로 가져가자 그녀의 스승이었던 유명한 보석술사는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 되더니 이것을 어디에서 구했냐 물어보았다.
그렇게 이성을 잃고 흥분한 스승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 물었더니 스승은 말을 얼버무리며 그냥 희귀한 것이라 둘러대었다. 그의 태도가 의심스러워 일부러 꽃을 찾기 쉬운 곳에 두고 살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가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를 살피며 그 꽃을 꺾어 가려 했다.
분명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해 그를 포박한 다음 빛나는 꽃을 어디에 쓰려 했었는지를 말하게 했다. 결국 그는 이런 꽃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를 알려 주었다.
‘믿을 수가 없었지.’
빛나는 꽃이 보석들의 힘을 회복시킨다니? 허튼소리냐, 아니냐 따질 필요도 없었다. 시험해 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날, 샤를로테는 오래전 힘을 잃고 잠들어 있던 보석이 순식간에 깨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빛나는 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아무리 찾으러 돌아다녀도 다시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런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한정되어 있었고, 그들은 전부 이런 꽃을 손에 넣기를 원했기에 모두가 경쟁자였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기억 속에서 잊혔던 꽃인데 그게 지금 제 방에 있다니?
샤를로테는 천천히 꽃병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도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닿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손끝에 조금 서늘한 듯한 꽃잎이 만져졌다. 만져도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샤를로테는 꽃병에서 빛나는 꽃을 꺼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건가?’
샤를로테는 꽃을 품 안에 안았다. 믿을 수 없는 행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카르디아의 왕궁 안에서 외국인인 자신이 이 꽃을 얻다니!
피곤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샤를로테는 꽃을 들고 재빨리 자신의 보석들이 있는 상자로 다가갔다.
“뭐가, 뭐가 있었지?”
카르디아의 왕궁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데다가 회담을 위해 온 입장이었기에 강한 보석은 가져온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잠든 보석들도 없었다. 테티아에 있는 제 보석을 떠올리며 샤를로테는 입술을 물었다.
귀한 꽃이다. 시험해 본다며 그저 그런 보석에 쓸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 꽃을 들고 나가 카르디아 안에서라도 강한 보석을 구입해 써야 할 판이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여 제 보석 상자를 뒤지던 샤를로테는 작은 상자에 따로 담은 가넷들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주우려 하다 손에 든 빛나는 꽃을 놓치고 말았다.
“안 돼!”
놀라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손에 들려 있던 꽃이 바닥에 흩뿌려진 가넷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붉은색의 빛이 방 안에 퍼졌다.
“큿!”
눈을 뜰 수 없는 강한 빛에 샤를로테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강한 빛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에 남은 붉은빛의 잔상이 아니었다면 샤를로테조차 빛이 퍼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공주님!”
“괜찮으세요?”
그녀의 외침이 들린 모양인지 밖에서 시녀들이 문을 두드렸다. 샤를로테는 꽃이 떨어졌던 곳을 보았다. 분명 바닥에 뿌려진 가넷 위에 떨어졌다. 그러니 아직 바닥에는 그 가넷들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오직 한 개의 가넷만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소르디아의 최고 세공사가 잘게 쪼갠 가넷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 눈앞의 가넷은 크기는 조금 작아졌지만 자신이 처음 얻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공주님! 실례지만 들어가겠습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던 시녀들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는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있는 샤를로테를 보고서 급히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니야. 괜찮아.”
“큰 소리가 들렸는데.”
“나가 보라 하지 않았나!”
샤를로테는 저를 부축하려는 시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놀란 그녀들이 움찔거리며 물러서자 샤를로테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말했다.
“미안하네. 예민해져서 큰 소리를 냈군. 그런데 혹시 밖에서 붉은빛을 보았나?”
“붉은빛이요?”
시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말하자 샤를로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되었어. 나가 보도록.”
“네.”
시녀들이 물러가고 나자 샤를로테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제일 가까이에 있던 시녀들도 눈치채지 못했다면 다행히 조금 전에 보았던 빛은 카르디아의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그녀는 제 손에 들린 가넷을 보았다.
‘일부러 여러 번 쓰기 위해 쪼갰던 것인데….’
이곳에서 다시 가넷을 쪼갤 수는 없다. 게다가 뭉쳐져 힘이 강해졌으니 여러 번 쓰게 된다면 분명 꼬리가 잡힌다. 그렇다면 이제 이것을 꼭 필요한 때에 맞춰 한 번밖에 쓸 수 없다는 소리다.
***
“안녕하십니까, 하운 대공님.”
본궁의 복도에서 대신들은 생각에 잠긴 하운에게 인사했다. 하운은 그들을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느 때처럼 과묵한 인사였기에 대신들은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하운이 그들을 불렀다.
“잠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갑작스러운 말에 대신들은 긴장한 채로 멈춰 섰다.
“무, 무슨 일이신지….”
“연회에 처음 참석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같은 게 있나?”
하운의 말에 대신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지금 대공의 질문을 제대로 들은 것 맞나?
‘당연히 샤를로테 공주와의 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줄 알았는데.’
평소 말을 별로 안 하는 데다가 어쩌다 말을 붙인다 해도 전부 공무에 관한 것뿐이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못 견뎌 사담을 조금이라도 하려 하면 그 즉시 하운은 싸늘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기에 그 누구도 감히 일 이외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운이 먼저 이런 말을 하다니?
사실은 회담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인가 싶어 대신들은 서로를 바라보다 급히 말했다.
“당장 자료를 전부 정리해서 대공님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원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 그 정도로 대단하게 보고받을 건 아니야.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말할 필요도 없어.”
기합이 들어간 대신들의 모습에 하운은 고개를 저었다.
“다만… 연회에 처음 참석하는 여성이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게 있다면 알고 싶은데.”
“여성 쪽이요? 일단 흰 드레스를 입는 것과 흰색의 꽃을 다는 것이 첫 참석자들이 하는 것이고, 여성 쪽에서 따로 준비하는 것이라면….”
대신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기억났다는 듯이 대답했다.
“장신구가 있네요. 새것이 아닌 물려받은 오래된 것을 착용합니다. 너무 새것만을 걸치면 좋지 않은 것이 달라붙는다는 미신도 있고, 가문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참석하는 연회에서 지켜 준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래된 것이라 해도 다들 최대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하고 오지요. 자신이 직접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파트너 쪽에서 마련하는 것이 관례이긴 합니다.”
“…그렇군.”
자신이 몰랐던 사실에 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 줘서 고맙네.”
“별말씀을요. 그런데… 혹시 회담과 관련 있는 사항입니까? 역시 좀 더 자세히 정리 할까요?”
“아니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그럼 이만.”
대신들의 말에 하운은 황급히 몸을 돌려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한참을 걸어 아무도 없는 복도로 온 하운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요즘 계속 이런 상태였다. 정확히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리엘라의 연회에 대해서 생각하는 상태.
‘파트너 쪽에서 준비하는 오래된 장신구라…. 그것도 되도록 화려한 것으로 준비한다고.’
그렇다면 이쪽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 무엇일까.
순간, 하운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에르첼라의 목걸이.’
왕국의 가장 귀중한 보석이자 보물인 그것. 그것이 리엘라의 목에 걸리면 어떤 모습일까.
하운은 그 모습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