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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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첫 연회
“좋은 차군. 과자도 아주 맛있어. 주방장의 솜씨가 이렇게나 훌륭하다니 할 수만 있다면 테티아로 데려가고 싶은걸?”
샤를로테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척이나 다정한 목소리와 태도였지만 리엘라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모든 정신을 끌어모아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찻잔을 쥔 손이 떨리지 않게 하는 것 정도였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일까. 목과 어깨가 뻣뻣해지며 입 안이 바싹바싹 말라 왔다.
‘안 들키겠지?’
빛나는 꽃이 쉽게 피어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꽃병의 꽃에도 긴장하게 되고 만다. 제 손이 닿는 순간 꽃이 갑자기 확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까지 하게 될 정도로.
계속해서 머릿속에는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리엘라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근에도 계속 연습을 한 탓에 이 방 안에만 해도 꽃병이 다섯 개나 있었다. 당연히 모두 가득 꽃이 꽂혀 있는 상태였다. 리엘라는 살면서 처음으로 꽃을 제 앞에서 치우고 싶어졌다.
“대, 대공님의 마음에 들었다니 영광입니다…. 저택의 멜다 부인이 무척이나 솜씨가 좋아서….”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턱이 덜덜 떨리는지. 자꾸만 이가 찻잔에 부딪혀 소리를 내었다.
‘공주라고 부를 뻔했어.’
하운이 스치듯 설명한 일 중의 하나가 샤를로테의 정식 지위는 테티아의 대공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약에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공주라 부르는 것보다 대공이라 부르는 것이 예법에 맞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리엘라가 잔뜩 긴장한 것을 본 샤를로테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되네.”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테의 태도는 마치 그녀가 이 저택의 주인인 것처럼 당당하고 여유로웠다. 그 모습을 보자 리엘라는 하운이 생각났다.
그 역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샤를로테 공주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몇 달을 계속 이곳에서 지냈던 자신보다 더욱 편하게 변호사들과 이야기하고 지시를 내리던 모습에서 그가 역시 이곳의 주인이 되는 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 화려한 공작저의 방에서 제일 이질적인 존재는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자 리엘라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샤를로테의 뒤에 서 있는 호위 기사들의 따가운 시선이 리엘라의 위로 쏟아졌다. 누가 보아도 그들은 리엘라를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리엘라는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꼴이 이러니 당연하지.’
리엘라는 고개를 숙여 제 옷을 보았다. 누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자신의 차림이 다른 나라의 공주님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무척이나 부적합한 차림새인 것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리엘라가 계속 제 옷을 보는 것을 알아차린 샤를로테는 미안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게 되어 미안하네. 사실 그 전부터 한번 방문하고 싶었지만 계속 사정이 있다고 해서 오지 못한 게 아쉬웠어. 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김에 무례인 것을 알면서 인사라도 하고 싶어 들른 것뿐이니까.”
거짓과 진실이 섞여 있는 말이었다.
지나가다 들렀다는 말은 거짓이리라. 그렇다고 생각하기에 샤를로테의 차림새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으니까. 분명 왕궁을 나와서 곧바로 이곳으로 왔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스스로 먼저 자세를 낮추어 무례를 저질렀다며 미안하다 하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샤를로테는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테티아에 있을 때부터 리엘라에 대한 정보는 많이 들었다. 그 정보들을 취합하여 리엘라를 상상했을 때는 약삭빠르고 눈치 있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은 여러 번 입었음이 분명한 낡은 작업복을 입은 채 갑작스러운 손님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였다.
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제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샤를로테는 리엘라가 꽤 마음에 들었다. 지금 저를 보고 이렇게 경계하는 게 서운할 정도로. 그렇기에 샤를로테는 다른 이들을 대할 때보다 더 상냥하게 리엘라를 대했다.
“호슨 공작과는 소르디아 경매장에서 만난 것이 전부인 인연이지만 나 역시 보석술사이기에 그녀의 소식에 가슴이 아팠다네. 대륙 전체가 우리 시대 가장 반짝이던 별을 잃었어.”
샤를로테의 말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아쉬운 말에 리엘라가 살짝 긴장을 푸는 것이 보였다.
‘호슨 공작을 정말 좋아하긴 했던 모양이군.’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자 등껍질 속에 숨었던 거북이가 쏙 얼굴을 내밀 듯 어깨를 펴고 다른 이야기가 더 없나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단지 돈을 위해 호슨 공작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그대를 만나길 원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 내가 내 지위를 이용해 막무가내로 쳐들어왔다는 것도 인정하지. 그리고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호슨 공작의 보석에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네. 그렇지만 오늘은 보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군.”
샤를로테의 말에 리엘라는 당황했다. 그럼 이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런 리엘라의 의문을 알아차린 듯 샤를로테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호슨 공작님의 이야기도 좋고 아니면… 자네의 이야기도 좋아. 밖에서는 그대가 호슨 공작의 보석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졌지. 하지만 난 믿지 않아. 공작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그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 어떻게 호슨 공작과 만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거기까지 말한 샤를로테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을 보았다.
“이제 그만 나가 있도록.”
“하지만….”
“설마 지금 이 자리가 위험하다는 말을 하려 하는 건 아니겠지?”
차가운 샤를로테의 목소리에 호위 기사들은 고개를 숙였다. 샤를로테는 강한 보석술사이다. 사실 그들의 호위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음에도 함께하는 것은 그녀가 테티아를 대표해서 왔기 때문에 최소한의 의전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곳은 호슨 공작의 저택이 아닌가. 이곳이 지금도 많은 문스톤으로 둘러싸여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머뭇거리다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둘만 남게 되자 샤를로테는 리엘라에게 말했다.
“이제 좀 편히 있을 수 있겠는걸?”
조금 전까지 왕녀로서의 위엄이 실려 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조금은 장난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바뀐 목소리와 말투에 리엘라는 어리둥절해하며 샤를로테를 바라보았다.
“이해해 주길 바라. 기사들 앞에서는 나름대로 위엄이라는 걸 지켜야 하는 입장이니까. 음… 내가 그냥 리엘라라고 불러도 될까?”
“네? 아, 물론입니다.”
“그렇게 굳어 있지 않아도 돼. 보석 빼앗으러 온 것도 아니고 오늘은 정말 이야기를 하러 온 거니까. 물론 보석을 판매할 생각이 있느냐 물어볼 생각이긴 했지만 그건 뭐 천천히 해도 상관없겠지.”
거기까지 말한 샤를로테는 답답했다는 듯 기지개를 쭉 폈다. 말투도, 행동도 조금 전까지 보여 주었던 왕녀의 것이 아니었다. 무례하다고 볼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그런 샤를로테의 모습에 리엘라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행동하는 그녀가 자신의 차림이나 태도로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스물두 살이라고 들었어. 나도 같은 나이야.”
“대공님도요?”
점잖은 행동에서 자신보다 몇 살은 더 위지 않을까 했었는데 갑자기 동갑이라고 하니 조금 친근함이 들었다. 그래도 리엘라는 좀처럼 그녀를 향한 경계를 누그러트릴 수 없었다. 빛나는 꽃에 대한 것이 첫 번째 이유였으나 사실 다른 문제가 더 리엘라의 신경을 쓰이게 했다.
조금 전보다 더 편하게 앉아 과자 중에 어떤 것을 먹을까 고민하는 샤를로테의 모습을 보며 리엘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듣던 것보다 더 예뻐.’
사실 신문에서 초상화를 보고 그녀에 대해 칭송하는 기사들을 봤을 때 어느 정도는 과장이 섞여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보니 그 기사들은 샤를로테의 매력을 절반도 설명하지 못했다.
샤를로테는 왕녀로 있을 때는 위엄이 있었고 지금처럼 편하게 있을 때의 친근함과 발랄함이 있었다.
‘이런 분이 하운 대공님과 계속 함께 있었다고….’
리엘라는 계속해서 그 사실이 신경 쓰였다.
***
거북한 것과는 다르게 대화는 즐겁게 이어졌다.
호슨 공작과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고 상대가 그것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 더욱더 신나곤 했다. 샤를로테는 호슨 공작과의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에 완벽한 상대였다. 호슨 공작을 알고 있으나 잘 알지는 못하며 관심은 많았기에 그녀는 리엘라의 입에서 나오는 과거의 일 하나하나에 눈을 빛냈다.
그러다 보니 리엘라도 어느새 말하자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물론 빛나는 꽃에 대한 이야기는 필사적으로 머릿속에서 스스로 점검하며 조금이라도 입 밖에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꽃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이번 연회에 정말 참석하지 않는 거야? 꽤 희귀한 식물들이 전부 다 나온다고 하던데. 그래서 나도 기대 중이고.”
처음보다 더욱 편해진 말투로 샤를로테가 묻자 리엘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거기에 사실 당신을 비롯해 참가할 다른 보석술사들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샤를로테가 계속해서 연회에 대해 말하면 곤란해질 것 같아 리엘라는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하운 대공님께서는 잘 계시나요? 저번에 갑자기 왕궁으로 귀환하신 후에 잘 지내고 계시는지 걱정이 되어서….”
연락은 왔다. 하지만 그것은 하운의 글씨가 아닌 왕실 서기관의 편지로 당분간 하운이 왕실의 일정에 따라 공작저에 갈 수 없다 전하는 내용이었다. 레티시아 왕비가 직접 불렀다는 것과 그 후로 하운에게서의 직접 오는 연락이 없다는 점이 리엘라를 걱정스럽게 했다.
“하운 대공? 그는 별일 없어. 아, 임무 태만을 지적받아 근신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은….”
하운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샤를로테는 리엘라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췄다. 리엘라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을 본 사람과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 표정에 샤를로테는 한 번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리엘라가 하운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