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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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은 왕궁의 회의실에서 인상을 찌푸린 채 제 앞에 쌓여 있는 서류를 보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러도 하운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 하늘의 색이 바뀌고 나서야 하운은 자신이 보고서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한숨을 쉬며 얼굴을 끌어내린 하운은 시계를 보았다. 오늘은 저녁에 다시 회의가 이어질 것이다. 그 사실에 그는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제가 일정 하나를 빼 먹은 탓에 그것을 트집 잡아 테티아의 대신들이 강하게 불만을 드러내며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생겨난 일정이니까.
실수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공작저에 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하운의 후회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일을 맡지 않을 것을.’
레티시아가 강권했다 하더라도 거절하고 보석의 방에 매달리겠다 주장했으면 지금쯤 자신은 왕궁이 아니라 공작저에 있을 것이다. 샤를로테를 확실하게 감시하고 그녀의 요구에 중간 단계를 거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즉결할 수 있기에 자신이 배정된 것이지만 보석술사들을 늘리고 일을 맡는 대신에게 임시 지위를 부여하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렇게 했어야 했어.’
그렇다면 샤를로테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리엘라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로 벽에 머리를 쿵쿵 박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공작저로 가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자꾸만 제가 왕궁으로 올 때 저를 보고 있던 리엘라의 표정이 생각났다. 이렇게 길게 근신을 명령받을 줄 알았으면 저녁까지 머물다 왔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리엘라와 함께 들어오든가. 왕궁에 들어오고 나서 레티시아는 하운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강력한 근신을 명령했다. 평소라면 그 정도까지 강하게 나오지 않았겠지만 그동안 몇 번이나 더 마음대로 일정을 미루고 공작저에 간 것까지 전부 보고가 된 탓에 레티시아가 강하게 나오는 것이다.
‘몰래 연락을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레티시아의 눈을 피하기는 어렵다 해도 완전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한 하운은 곧바로 펜을 들고 편지용 종이를 꺼냈다. 그러나 펜이 종이에 닿는 순간 그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뭐라고 적어야 하지? 그렇게 갑자기 돌아와서 미안하다? 별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 펜이 닿은 곳에 잉크가 퍼져 종이 위에 큰 점을 그렸다. 그런데도 하운은 여전히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얼굴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왜 이렇게 편지로 쓰려 하니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하운은 펜을 떼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어차피 무엇을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회담에 대한 보고서를 보는 것은 포기했다. 사실 봐도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하운은 다른 관심사로 제 생각을 돌렸다.
‘아예 리엘라만을 위한 연회를 준비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연회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자신은 대공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그 권력을 사용해 본 적이 없어 나중에야 알아차렸지만 연회 하나 정도는 그저 ‘하고 싶다’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열 수 있는 위치였다.
‘큰 연회가 좋겠지.’
잘 모르는 하운도 처음 참석하는 연회가 클수록 더욱 영광스러워한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신년 연회에 데려가고 싶다지만 아무리 공작이라 해도 한여름에 신년 연회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신년 연회에는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탓에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소란스러운 것도 얼핏 들었었다.
‘장신구도 아직 적당한 걸 찾지 못했는데….’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어른거리고 있었지만 그걸 가져올 수는 없다. 가져오는 것 자체는 쉽다. 에르첼라의 보석들이라고 해도 하운의 접근 자체가 막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것을 들고 나왔음이 알려지는 순간 벌어지는 일들이 문제였지.
하운은 고개를 저었다. 가지고 나올 수 없는 물건이다. 그것에 손대는 순간 자신이 왕권에 손을 대려 한다 생각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지금까지 하운이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레이안과 레티시아다. 에르첼라의 보석에 손을 대는 것은 그들에게 칼을 겨누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러니 자신이 결코 그럴 일은 없었다.
생각에 잠겼던 하운의 눈이 방 안에 있는 꽃병에 닿았다.
‘그냥 꽃 축제 연회에 참석하는 게 제일 좋을 텐데.’
리엘라가 제일 즐거워할 연회다. 얼마 남지 않았기에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고.
문제라면 이미 자신이 샤를로테의 파트너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하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오기 전에 신문에 거짓 기사를 일부러 뿌렸던 테티아였다. 샤를로테는 그것이 테티아 국왕이 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알려진 것보다 능력이 좋아.’
모두들 샤를로테는 이름만 올려두고 회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회담을 시작하고 보니 테티아의 대신들을 이끄는 것은 샤를로테였다.
하운은 생각을 다르게 해 보았다. 샤를로테가 직접 이 회담에 온 이유가 그저 꽃 축제의 방문이 아닌 처음부터 그 국경선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면? 그 다음 양 국의 합의를 이끌어 두 나라 사이에 애매한 지역을 공국으로 만들자 주장한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러면 샤를로테는 가장 먼저 무엇을 원할 것인가.
답은 뻔했다. 자신이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을 것도 짐작했을 텐데….’
자신과 샤를로테가 엮이는 소문 따위는 귀찮을 뿐, 그것이 그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그런 공국 같은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샤를로테는 무엇을 믿고 이런 같잖은 시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누가 보면 마치 자기가 공국을 원하기라도 했다고 말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왕실의 보석술사가 찾아왔습니다.”
“누구지? 들어오라고 해.”
그들을 부른 적이 없었다. 두 번째 문에 대한 일은 끝났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곧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두 번째 문을 열며 낯이 익은 멀리 발령을 받았다가 잠시 돌아왔던 어린 보석술사였다. 하운은 그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콜린스?”
하운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조금 감격한 듯이 말했다.
“제 이름 기억하고 계시다니,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귀찮은 부탁이었는데 마다하지 않고 와 준 사람의 이름을 기억 못 할 정도로 못되어 먹지는 않았네. 그런데 무슨 일인가?”
하운의 말에 콜린스는 머뭇거렸다.
“저기… 말도 안 된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보석술사들이 헛소리라고 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여서… 하지만 역시 별일 아닐 수도 있고…. 건방지다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는 연신 하운의 눈치를 살피며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예전이라면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제대로 정리해 오라 말하며 그대로 내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하운은 그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먼 곳에서 와 주었는지를 알고 있었고 저택에서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도와주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편하게 말하도록 해. 어떤 말을 하든 그대를 탓하거나 우습게 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저를 신경 써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콜린스는 용기를 내었다.
“저, 저기 저는 서쪽 산맥 지역의 광산에 발령을 받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다른 보석술사들보다 보석의 유무를 알아차리는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들은 적 있는 힘이었다. 보석술사들 중에서 유독 보석의 존재 자체에 예민한 자들이 있었다. 탐색자라고도 불리는 자들은 아직도 땅 밑에 있는 보석을 캐낼 때 가장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왕궁으로 돌아와서 저는… 이상함을 몇 번 느꼈습니다.”
“이상함?”
“왕궁 안은 기본적으로 허가받지 않는 한 보석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용되는 힘도 대부분 고정된 것들이고….”
“그렇지.”
“그런데 자꾸 움직이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운은 콜린스가 말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일단 왕궁 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것 같은 힘을 느꼈다는 것 맞나?”
“그렇습니다.”
콜린스는 재빨리 이어 대답했다.
“저 역시 왕실의 보석술사입니다. 어떤 힘이 허가되고 아니고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궁 안에서 보석의 힘을 사용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까다로우며 불법적으로 사용될 경우 관리 부서에서 곧바로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저만 눈치챈 것 같아서….”
하운은 왜 그가 말하기 어려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는 자들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는 왕궁 안에서 이상한 게 느껴진다고 하면 헛소리 말라는 타박이나 들었을 것이다. 자칫하면 네가 뭔데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느냐는 말을 들을 것이고.
“왕궁 밑에 움직이는 광산이 있을 리는 없으니… 그래, 어디서 그 힘을 느꼈나.”
하운의 질문에 콜린스는 침을 삼켰다.
“하나는 샤를로테 공주님께서 머물고 계신 별궁이었고… 다른 한 곳은….”
콜린스가 하운을 보며 말했다.
“바로 공작님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지고 있습니다.”
***
‘이런.’
리엘라의 표정을 본 순간 샤를로테는 제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녀의 안에서 리엘라 테니어는 엄청난 기회를 붙잡은 약삭빠른 자였기에 그녀가 하운을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리엘라 테니어에게 있어서 하운 대공은 제 손에 들어온 금덩이를 빼앗아 가려는 자로 보일 것이기에 설마하니 그녀 쪽에서 하운에게 호감을 품을 것이라는 생각을 아예 배제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리엘라 테니어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 말은 리엘라와 하운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만약 리엘라 테니어가 하운 대공을 원한다면.’
쉬운 일일 것이다. 하운 대공은 그녀가 갖고 있는 보석을 원한다. 게다가 왕실은 하운이 리엘라와 혼인함으로써 호슨 공작의 보석들이 좀 더 확실하게 카르디아 안에 머물 수 있기를 원할 것이다.
물론 하운이 호슨 공작의 보석을 손에 넣은 다음 왕실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럴 마음을 먹었다면 굳이 호슨 공작의 보석까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건 곤란해.’
샤를로테는 리엘라에게 품었던 제 호의를 빠르게 갈무리해 가슴속 저 깊은 곳에 묻었다.
하운도, 리엘라도 둘 다 자신의 사냥감이었다. 하지만 이제 둘 다 물어 갈 수 없음을 확인했으니 자신이 무엇을 물고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