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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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지? 아, 하운 대공은 임무 태만을 지적받긴 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다시 대답한 샤를로테는 힘을 주어 말 했다.
“그와 내 관계를 생각한다면 카르디아 황실에서 그에게 큰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테니까. 신문에 자꾸만 이름이 오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고.”
누가 들어도 지금 샤를로테가 ‘관계’라는 말을 의미심장하게 언급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물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리엘라는 그 말이 자꾸 거슬렸다. 샤를로테와 하운의 관계라니? 양측 회담의 대표자 정도의 관계가 아닌가.
하운은 신문에 가득 뿌려졌던 샤를로테와의 열애설을 들을 가치가 조금도 없는 헛소리라고 확실하게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 샤를로테가 마치 뭔가 있다는 듯 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리엘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리엘라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샤를로테가 먼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하운 대공이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는데, 더 이상 올 수 없게 되면 그대가 꽤 섭섭하겠어. 하지만 그대가 공국으로 오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운의 친구라면, 나의 친구나 다름없지. 우리는 언제나 환영이야.”
샤를로테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리엘라는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과 하운이 혼인하여 두 나라의 국경지역에 새로운 공국이 생기는 것을 마치 결정된 일인 것처럼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정말로 하나 보다 싶을 정도로. 게다가 어느새 자연스레 하운과 자신을 ‘우리’라 말하고 있었다.
속된 말이나 거친 단어는 하나도 없고 부드럽고 다정한 어조였지만 보이지 않는 가시가 리엘라의 가슴 속을 툭툭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리엘라는 알게 되었다.
난 이 사람이 싫어.
***
“아오, 저걸 그냥.”
옆방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네아는 제 가슴을 쿵쿵 쳤다.
샤를로테가 공주만 아니었어도, 아니 보석술사만 아니었어도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슬프게도 그녀는 타국의 중요 인물에 능력 있는 보석술사였다.
자신이 보석의 힘을 쓰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외교 문제로 만들고도 남을 사람이었기에 네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지금 방 안에도 못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샤를로테는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아니, 제일 대하기 까다로운 종류의 사람이었다.
‘이미 눈치챘겠지.’
리엘라가 근신이라는 말에 놀라 하운의 상황을 물었을 때 이미 리엘라가 하운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네아는 더욱더 벽에 달라붙어 옆방의 대화를 훔쳐들었다. 두꺼운 벽이었지만 네아의 귀는 그 너머를 들을 수 있었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아마도 샤를로테는 마음 놓고 떠들고 있으리라.
계속해서 귀를 기울이자 아니나 다를까, 리엘라가 하운의 안부를 물어본 그 순간부터 샤를로테는 자신과 하운을 묶어서 은근 슬쩍 리엘라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우리 아가씨 어떡해!’
리엘라는 분명 평소처럼 그냥 웃으며 저 말을 다 들어주고 있을 것이다. 네아는 황궁 쪽을 향해 잠시 눈을 흘겼다.
‘멍청한 하운 자식! 왜 일찍 고백을 안 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물론 레티시아 왕비가 급하게 부르긴 했지만 그래도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른 일들은 망설임 없이 잘도 처리하던 놈이 리엘라의 앞에만 서면 어버버 하며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래도 그것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제대로 말을 못하는 건 리엘라도 마찬가지이니까.
‘그래도 샤를로테가 오지 못 하게 막는 건 그놈의 일이잖아!’
근신을 받든 말든 이 여자가 리엘라에게 접근하는 건 막았어야지. 도대체 왕궁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네아는 다시 들려오는 대화에 집중했다.
샤를로테가 계속해서 리엘라의 신경을 건드리면 간식을 핑계로라도 뛰어들어 대화를 끊어 놓을 생각이었으니까. 동시에 평소 리엘라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뭔지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뛰어들 타이밍을 놓친다면 나중에라도 맛있는 걸 준비해 리엘라의 기분을 풀어 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우리 아가씨. 샤를로테가 돌아갈 때까지 계속 당할 텐데.’
리엘라는 지금껏 누군가와 날을 세워서 대화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꽃 가게에서 이상한 진상 손님이 이제 부자가 되었으니 하나 값으로 ‘두 개를 달라.’, ‘아니다, 그냥 달라.’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고집을 부렸을 때도 웃으면서 돌려보낸 사람이었다.
“별로 오래 신경 쓰고 싶은 문제가 아니니까요. 짜증이 나긴 하지만 계속 상대하면 더 큰 짜증을 불러오기도 하고….”
도대체 왜 그렇게 대하는 거냐고 네아가 답답해 하면서 물어봤을 때 리엘라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었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 했었다.
“저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꽤 강하게 말 하는 편이거든요?”
그때 리엘라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네아는 속으로 울었다. 샤를로테 공주가 돌아가기 전에 그 마차에, 아니 말에게라도 무슨 짓을 하고야 말리라. 우리 아가씨 같이 마음 약한 사람에게….
“흐음, 제가 들은 거랑은 많이 다르네요.”
“……?”
네아는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잠시 당황했다. 분명 리엘라의 목소리가 맞는데 평소랑은 달리 누가 들어도 상대를 안쓰러워하며 비웃는 것 같은 어조였다. 처음 듣는 리엘라의 목소리에 네아는 다시 귀를 바싹 붙였다. 그러자 다시 리엘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운 대공님께서 제게 계속 하신 말씀이 있으셨어요. 신문 같은 건 믿지 말고 제발 자신의 말을 믿어 달라고 하셨지요.”
***
황궁으로 돌아오는 내내 샤를로테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말을 뱅뱅 돌려가며 공격을 했건만 대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사근사근 웃는 낯이었던 리엘라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인가. 제가 무어라 말해도 ‘그런가요? 처음 듣네요?’라며 나중에 제가 직접 하운에게 물어보겠다 대답했다.
‘주제를 파악하고 머리를 숙일 줄 알았는데.’
그러라고 일부러 하운과 자신은 애초부터 리엘라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걸 열심히 설명하지 않았던가. 그와 나는 대공이고 너는 호슨 공작의 재산은 상속받았을 뿐, 애초에 이런 일에 끼어 들 수도 없는 위치라고. 그러자 리엘라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래서 언제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답니다.’라고 뻔뻔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 웃는 낯에 휘말려서는… 내 마음대로 하운 대공과 이미 국혼의 이야기가 끝나간다고 말해 버렸어….’
욱, 해서 사실이 아닌 것까지 말해 버린 샤를로테는 입술을 씹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한다?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그녀가 내리는 것을 돕기 위해 테티아의 호위 기사가 손을 내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 앞에 내밀어진 손은 평소 보던 것보다 더 크고 굵은 손이었다. 그것을 인지하고 고개를 든 샤를로테는 놀라고 말았다.
“하운 대공!”
그곳에는 하운이 서 있었다. 샤를로테는 그 모습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알고…!”
그녀의 말에 하운이 물끄러미 샤를로테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다니? 무엇을 말입니까?”
의아해하는 그의 시선에 샤를로테는 급히 정신을 차렸다.
벌써 알고 찾아올 리 없었다. 그녀도 이제 막 공작저에서 황궁으로 돌아온 참이다. 방 안에는 자신과 리엘라밖에 없었으며 그 말을 들었을 사람은 없다. 일부러 제 시종들도 멀리 물러나 있게 하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자신과 리엘라의 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없게 하기 위해서 했던 일인데 결과적으로 자신의 허풍을 듣는 사람이 없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닙니다. 평소 에스코트를 해 주던 기사가 아니라서 제가 잠시 놀라고 말았군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샤를로테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웃으며 하운이 내민 손을 잡았다. 하운은 정중하게 샤를로테를 황궁 안으로 이끌었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을까요? 이렇게 저를 기다리기까지 하시며 에스코트를 해 주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조금은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왜 그가 갑자기 이러나 떠 보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하운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제는 조금 진심이 되어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진심이라니….”
생각하지 못했던 하운의 대답에 샤를로테가 바라보자 그는 주변을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 했다.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군요. 괜찮으시다면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샤를로테는 그녀를 맞이하게 나온 시녀들에게 하운과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준비해 달라는 말을 했다. 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방을 준비하라는 소리였다.
아무리 하운이 카르디아를 대표해 그녀를 상대하고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별궁의 깊숙이 들어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샤를로테가 사용하고 있는 동안은 황궁의 별궁이라 하더라도 테티아의 영토로 인정받는다. 그렇다 보니 카르디아 쪽의 사람들이 찾아와도 그들은 별궁의 현관에 서 있거나 현관 가까이에 있는 손님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하운이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 방보다 더욱 은밀함을 요구하고 싶다는 소리였다.
잠시 후 샤를로테의 시녀가 두 사람을 안내했다. 하운이 원하는 대로 별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안락한 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을 위한 간단한 차와 과자가 놓여 있었고 시녀가 문 옆에 섰다. 하운은 시녀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고 샤를로테는 시녀에게 나가 있으라 말했다.
“하지만….”
“괜찮으니, 어서.”
시녀는 머뭇거리다 날카로워지는 샤를로테의 눈매를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방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일단 좀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하운 대공께서 이렇게까지 따로 자리를 준비해 달라 하시는 것을 보면 쉽게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으니 말입니다.”
샤를로테의 말에 긍정하듯 하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샤를로테의 맞은편에 앉았다. 샤를로테 역시 착석하고는 고개를 든 순간 살짝 표정이 굳었다.
‘내 침실의 옆방이잖아.’
자신의 방 안에 있는 제 보석들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이제는 한 개가 되어 버린 가넷이.
보통 외국을 방문할 때 보석술사들은 자신들이 가져올 보석이 무엇인지 미리 적어 보낸다. 그러면 상대 쪽에서는 그 목록에 적힌 보석들의 힘을 살펴 본 다음, 소지하는 것을 허가하거나 거부한다.
당연하게도 샤를로테의 가넷은 그 목록에 없는 보석이었다. 사전에 제출했던 목록에 없는 보석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 곤란하다. 하운이 일정을 잊고 불참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공격당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침략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 몰아갈 수도 있고.
샤를로테는 소매 아래 떨리는 손을 숨겼다. 하운이 이곳까지 들어올 거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예민하게 보석의 힘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목록에 없던 이상한 힘 하나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샤를로테는 슬쩍 하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이상함을 눈치챘다면 하운이 분명 반응을 보였을 텐데 다행히도 그런 기색은 없었다. 샤를로테는 조금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제 대공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기대하면서 들어봐도 될까요?”
그러자 하운이 말했다.
“신문사를 통해 화젯거리를 흘린 게 당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전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
부정하려고 했던 샤를로테는 뜻밖의 말에 눈이 커졌다.
“조금 전에도 왕비 전하께 한 소리를 듣고 나오는 길입니다. 저의 무례를 계속해서 질책하고 계시지요.”
“그건….”
“물론 테티아에 그 탓을 돌리려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하운이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생각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