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88
92
하운의 말에 샤를로테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카르디아로 온 이래 하운을 계속해서 마주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지금까지 일과 관계된 것 이외의 것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제 생각을 말하는 하운의 모습은 샤를로테에게 무척이나 낯설었다.
‘드디어 가넷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작게 조각을 내었었다. 그렇기에 가넷의 힘은 천천히 하운을 물들였다. 샤를로테는 인내심을 갖고 한 방울씩 떨어트린 물방울이 언젠가 넘쳐흐르기를 기다렸다. 가넷을 사용할 때마다 공작저로 가는 하운의 모습에 그가 호슨 공작의 보석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곧 넘쳐흐를 것 같으면서도 하운의 행동은 여전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가넷을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빛나는 꽃이 남아 있던 가넷을 모두 모아 한 개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하운 앞에서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하운은 이미 가넷의 힘에 흔들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랐다. 샤를로테는 그가 어느 정도 흔들렸는지는 가늠하지 못했다.
샤를로테는 그의 안색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대공이 어떤 마음인지 저는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나름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재능을 갖고 태어났으나 조금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다.
“테티아 쪽을 탓하지 않는다라…. 그럼 제 뜻에 함께 하실 생각이 있다고 받아들여도 될까요?”
샤를로테의 말에 하운은 말없이 웃었다.
“……!”
그런 그의 모습에 샤를로테는 저도 모르게 잠시 멍하니 그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처음 국경쪽에서 하운을 보았을 때, 다른 보석술사들이 알려주지 않았어도 그가 말로만 듣던 하운 대공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정도 더 높은 키, 기사들에 뒤지지 않은 몸.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생긴 외모.
하지만 언제나 무표정하거나 찌푸리고 있는 탓에 그의 외모는 조금 묻히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이번에 샤를로테가 카르디아에 온 이래 하운은 웃기는커녕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언제나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과 태도가 엿보였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는 없었던 일처럼 웃는 얼굴로 다가오자 테티아 왕국의 내로라하는 얼굴에도 나름 익숙해져 있던 샤를로테도 잠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새삼 다시 하운의 외모를 보며 그녀는 만족했다.
제 옆에 있기 모자람이 없는, 아니 무척이나 완벽한 자가 아닌가.
말없이 웃고 있는 하운을 보던 샤를로테는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당장 확답을 하려는 생각은 없나 보군.’
갑자기 안으로 들어오겠다 했을 때 혹시나 가넷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 아닌가 했지만 이런 말을 하려고 온 것일 줄이야. 확답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운은 이렇게 자신과 단 둘이서 따로 만나는 행동으로 대답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어차피 문서로 받아내는 것이 아닌 이상, 겉치레로 하는 대답이야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마침 잘 되었어.’
샤를로테는 공작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안도했다.
리엘라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웃으면서 하운에게 직접 물어보겠다는 말하며 차분하게 받아 칠 뿐이었다. 그렇기에 먼저 흔들린 것은 샤를로테였다. 그녀는 어떻게든 대화의 주도권을 다시 거머쥐고 리엘라를 누르고 싶었다.
‘이대로 물러날 순 없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대화에서 꽃 축제 연회 이야기가 나왔을 때 결국 샤를로테는 선을 넘고 말았다. 그 연회에서 하운과 자신의 국혼이 발표될 것이라 말해 버린 것이다. 순간 굳는 리엘라의 표정에 아주 잠시 승리자의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직접 보니 연회에 못 올 만큼 몸이 안 좋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며 리엘라에게 다시 초대장을 보내겠다, 말했다.
그 탓에 샤를로테는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계속해서 입술을 씹어야 했다.
‘그것을 어떻게 수습해야 했는데….’
하운이 이렇게 스스로 와서 제 걱정을 지워 줄 줄이야.
“일단 대공의 뜻을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확실하게 알았으면 좋겠군요. 어차피 신문의 기사로 다들 어느 정도 상상은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샤를로테의 입가에 승리자의 웃음이 떠올랐다.
“이번 연회에서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샤를로테는 한 개가 된 가넷을 떠올렸다. 그 날 많은 보석술사들이 참석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그렇다면 가넷 하나를 그 보석들의 힘 사이에 숨기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리라. 그리고 사용하는 순간 하운은 확실하게 권력의 욕망을 깨닫고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 샤를로테는 확신했다.
***
하운은 샤를로테의 배웅을 받으며 별궁을 나왔다. 그녀의 곁에 있는 시녀들과 테티아의 기사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허리를 숙였다. 그들은 어쩌면 앞으로 하운이 자신들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대화 시간이 그리 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야심한 시각에 샤를로테와 단둘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들어왔을 때와 달라진 시선을 받으며 하운은 본궁으로 향했다. 그는 곧바로 왕실 보석술사들의 회의실로 향했다. 그가 들어가자 몇몇의 보석술사가 일어나 그에게 인사했다.
“잘 끝나셨습니까?”
“그럭저럭. 특별히 눈치를 챈 것 같진 않았어.”
하운의 말에 보석술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모두 비밀리에 하운이 불러 온 자들이었다. 왕궁의 일지에는 각자 다들 다른 연구를 위해 모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그들은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이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다른 보석술사가 들어왔다.
“헉… 헉…. 다녀왔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들어 온 사람은 콜린스였다. 그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긴장 돼서 죽을 뻔했네요. 대공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뭐가?”
“샤를로테 공주의 눈을 피해서 설치하신 것 말입니다.”
콜린스가 말하는 설치라는 것은 보석진을 뜻했다. 보석진은 보석의 힘을 이용한 일종의 마법진이었다.
샤를로테가 수상하다는 것을 콜린스가 말한 다음 하운은 곧바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알아낸 것은 콜린스의 심증뿐, 증거로 내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좀 더 정확히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 하운은 별궁 안에 샤를로테를 감시할 것을 설치하기로 했다.
원래 왕궁에는 수백 년 전, 이 왕궁을 지었던 에르첼라 왕이 설치했던 보석진이 있다. 감시와 추적의 힘을 가진 보석들을 왕궁 곳곳에 배치해서 증폭의 힘까지 같이 걸었기에 왕궁 안은 수백 년간 안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카르디아가 더욱 부강해지면서 왕궁 역시 증축을 하게 되었다.
문제라면 에르첼라가 그 당시에 워낙 강한 보석을 죄다 쓸어 모아 왕궁에 보석진을 설치해 둔 탓에 증축을 위해 준비한 새로운 보석들은 그 당시의 보석에 비해 힘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별궁은 에르첼라의 보석진 밖에 있는 곳이니….’
샤를로테가 머물고 있는 별궁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곳이라 에르첼라의 보석진 바깥에 위치했다. 그래도 왕궁은 왕궁인지라 감시의 힘 아래 있긴 하지만 본궁만큼이나 정교한 보석진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샤를로테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머물고 있는 별궁 안에 새로이 보석진을 설치해야만 했다. 당장 그것을 만들기 위해 왕실 보석술사 중 보석진에 가장 능통한 자를 불렀다. 그는 하운이 내민 비밀 유지 계약서에 서명을 한 다음, 상황을 듣더니 말했다.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라면 그걸 별궁 안에 직접 설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되도록 감시하고 싶은 대상에서 가까운 쪽이 좋겠지요.”
샤를로테의 보석은 전부 그녀의 방 안에 보관되고 있다. 그렇다면 별궁 안에서도 최대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샤를로테가 없는 틈을 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테티아의 시종들은 그녀가 없을 때 풀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경비를 강화했다. 제출한 보석 목록에도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는데, 수상하리만큼 삼엄한 경비였다,
‘샤를로테가 지시해 둔 것이겠지만.’
자리를 비웠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알 수 없을 터이니 신신당부를 해 둔 게 틀림없었다.
‘도대체 공작저에는 뭘 하러 간 거고?’
샤를로테가 갑자기 별궁을 나선 순간부터 카르디아 왕실의 직원들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렇기에 하운에게도 곧 그녀가 공작저로 찾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순간 하운은 근신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공작저로 쫓아갈 뻔했다. 샤를로테가 리엘라를 만났다고 생각하니 더욱 더 속이 뒤집어졌다.
하운은 겨우 정신을 붙잡고 시종으로 위장한 보석술사들을 별궁으로 보냈다. 왕궁의 청소를 해야 한다며 들어가려 했지만 별궁에 남아 있는 테티아의 시종들은 샤를로테의 명령이라며 어느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단호한 그들의 태도에 하운은 생각을 바꾸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샤를로테가 돌아와 있는 동안에 시종들의 긴장은 느슨해진다는 소리지.’
그렇다면 샤를로테의 신경만 다른 곳으로 돌린다면 그녀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 훨씬 더 작업이 편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하운은 일부러 샤를로테를 찾아갔다. 원하는 먹이를 입에 물려주면 그 동안에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 할 테니까.
다행히 샤를로테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랐는지 평소에 비해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하운은 더욱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일부러 에둘러 말하며 샤를로테의 계획에 함께하겠다는 뜻을 넌지시 비치자마자 샤를로테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하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하운은 그녀가 방심했을 때 슬쩍 보석진을 발동시켜 설치했다.
보석진의 범위와 힘을 확인한 콜린스가 무사히 돌아온 것으로 보아 샤를로테는 아직도 제 바로 옆방에 보석진이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일단 이걸로 샤를로테가 갖고 있는 보석들을 추적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목록과 다른 보석이 감지되기만 해도 전부 증거가 될 것입니다.”
“알겠네. 이제 좀 가서 쉬도록 해. 나도 이만 가 보겠네.”
하운은 그들에게 인사한 다음 왕궁 안,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밤이 깊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샤를로테가 계속해서 연회에서 자신들이 손을 잡았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자 몇 번이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아….”
그는 목 가까이 있는 단추를 풀었다. 연회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작 가고 싶어 하던 리엘라는 연회에 참석하지 못할 텐데 자신은 샤를로테와 함께 웃으며 서 있어야 하다니.
‘하지만 해야 해.’
몇 번이고 연회 참석을 강조한 것을 보면 샤를로테가 단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행동 그 이상의 것을 할 확률이 높았다. 당연히 콜린스가 알아챘던 알 수 없는 보석의 힘을 쓸 것이고. 그러니 확실히 증거를 잡기 전까지는 샤를로테의 장단에 맞춰 놀아나야 할 것이었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던 하운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번 일만 끝나면.’
샤를로테의 일만 처리하면 당장 공작저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리엘라에게 말해야지.’
하운은 짜증나는 일들을 머릿속에서 미뤄둔 채, 제가 리엘라를 다시 만나면 할 말을 생각했다. 리엘라의 얼굴을 떠올리자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진짜 웃음이 그의 입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