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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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저녁 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언제나 아름다운 카르디아의 왕궁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했다.
왕궁의 입구부터 연회장에 이르는 길에는 낮부터 보석술사들이 준비해 둔 램프가 걸려 참석자들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램프 하나에 빛을 내는 보석들이 하나씩 들어가 있었다. 빛은 모든 보석이 갖고 있는 힘이었기에 대단히 귀한 것들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수천 개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나라도 이런 식으로 램프를 만들긴 하지만 이 정도의 수를 준비하기란 어려웠다. 그렇기에 보석을 이용한 램프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카르디아의 국력을 보여 주는 소소한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특히나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램프가 준비되었다.
이제 슬슬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정원을 위한 램프도 추가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곱절은 될 램프는 연회장뿐만 아니라 여름 정원 위에도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며 천천히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처음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수십 년을 참석한 사람들도 조금은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아름다움이었다.
몇몇 연인은 벌써 정원 근처로 가서는 장미 아치 아래의 벤치에 앉아 웃음을 터트리며 초여름 밤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하운은 그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운의 곁을 지나가는 귀족들이 처음에는 허겁지겁 인사를 하다가 멀찍이 떨어진 다음 계속해서 그를 흘긋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를 향한 시선이 수십이었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하운은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이는 제 모습을 살펴보았다.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흐트러지게 놔두던 머리카락이 단정히 정리되어 있었다. 옷은 직계 왕족들만 입을 수 있는 흰색과 금색이 섞인 예복으로 지난 몇 년간 하운은 거의 입지 않았던 예복이기도 했다.
하운도 눈이 있기에 제 모습을 보고 평소보다 나아 보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뜨거운 시선을 받을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냥 오려고 했었는데….’
그에게 있어 연회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만 차려입으려 했었다. 완벽하게 차려 입으면 불편하기도 했고. 그 뜻을 말하자 왕궁의 의상 담당이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한번 제대로 차려 입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옷은 입어야 익숙해지는 법입니다. 지금은 좀 불편하실지 몰라도 한두 번 더 입으시면 훨씬 더 움직임도 자연스워러지고 옷과 어울리게 됩니다. 지금도 충분하시긴 합니다만 훨씬 더 멋져 보이실 것 같은데요.”
평소라면 여덟 살 어린 아이도 아니고 이렇게 입으면 더 잘생겨 보인다는 말에 그렇구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운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근시일 내에 리엘라와 함께 연회에 갈 것이다. 당연히 그때는 완벽하게 차려입을 생각이었고. 그런데 만약 그 때 평소에 잘 입지 않았던 예복 때문에 어색하게 행동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런 모습에 리엘라가 실망이라도 한다면?
결국 하운은 완벽한 미래를 위해서 의상 담당에게 오늘 완벽하게 예복을 준비해 달라 일렀다. 오늘은 리엘라가 함께 참석할 첫 연회를 위한 연습이니까.
“옷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준비하고 싶은데.”
“어떤 것을 준비하라 이를까요.”
“머리카락도 좀 단정히 하고 싶고 그 외에 연회용 액세서리나 신발도 완벽하게 준비하기를 원해.”
하운의 말에 의상담당자는 말이 끝나자마자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다면서 서둘러 나갔다. 아마도 왕실에 제 담당은 없을 것이다. 전쟁터로만 돌아 왕궁의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지 몇 년이 흘렀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바쁠 텐데 제 요구 때문에 억지로 담당자들이 오게 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고 있을 때, 복도에서 우르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발소리의 주인들이 하운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대공님! 저희를 찾으셨다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다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외치며 들어왔다.
“자네들은 누구지?”
“대공님의 담당입니다!”
“내 담당은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럴 뻔했었지요. 첫 연회에 잠깐 참석하시고 그 이후로 몇 번 더 잠시 참석하시고는 더 이상 오지 않으셨으니까요. 저희들 모두 다른 왕족 분들 쪽으로 배치될 뻔 했었는데 왕비님께서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힘써 주셨습니다.”
“…….”
레티시아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쓰고 있을 줄 몰랐던 하운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이럴 때 레티시아의 원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대신들 앞에서는 따뜻한 말 따위 건네지 않는다. 사람들 눈에는 레티시아가 그와 대립하며 경계하는 것으로 보이겠지.
‘정작 가장 세심하게 챙겨 주는 분인데.’
하운은 가슴 한 구석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 잘 부탁하네.”
“네!”
그들은 몇 년만에 자신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음에 감격하며 하운에게 매달렸다. 심지어 하운이 그건 좀 과하니 하지 않겠다 말해도 안 되다며 꼭 이걸 해야 된다며 싫으면 자신을 밟고 가라는 식으로 나왔다.
덕분에 하운은 그들의 기백에 밀려 그들이 꾸며 주었던 모습 그대로 연회장으로 와야 했다.
유리창에 계속 제 모습을 보던 하운은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샤를로테가 계속해서 들어오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드디어 테티아의 장미를 뵙게 되는군요. 정말 영광입니다.”
이곳에 온 이래로 샤를로테는 회담에 매달렸다. 그렇기에 카르디아의 귀족들이라고 해서 그녀를 만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닿자, 모두들 꽃 연회에 참석한 타국의 아름다운 공주를 웃으며 인사했다. 샤를로테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한 모습 하나도 없이, 마치 제가 이곳의 공주인 것처럼 귀족들을 대했다.
그런 샤를로테의 모습을 보면서 카르디아의 귀족들이 소근거렸다.
“역시 샤를로테 공주님은 다르시군요. 몇 번이고 연회에 참석한 영애들도 긴장감에 떨기 마련인데 무척이나 편해 보이세요.”
“그만큼 이곳이 편하게 느껴지시기도 한 모양이겠지요. 그리고 오늘 파트너가 하운 대공님이시잖아요.”
소곤거리던 시선은 하운을 훑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신문의 기사들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그러게요. 하운 대공께서 이렇게 연회에 참석하신 것이 얼마 만이죠? 5년?”
“그보다 더 되었을걸요. 스무 살 때 첫 연회 참석하시고는 잠깐 더 얼굴을 비추셨다가 애매한 소문이 돈 이후로는 더 참석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런 분이 오늘 샤를로테 공주와 같이 참석하셨고… 완벽하게 예복을 입으셨다는 것은….”
“어쩌면 오늘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의 추측이 입에서 입을 건너가며 연회장 안을 돌았다. 하운은 그 모습을 보다 발코니로 나가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경비처럼 보이던 자가 고개를 들어 하운과 시선이 마주치더니 손가락으로 ‘0’ 표시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준비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분명 이 연회에서 사용하려는 게 틀림없어.’
지난 며칠간 하운과 몇몇의 보석술사들이 새로 만들어낸 보석진으로 샤를로테가 머무는 별궁을 감시했다. 몇 번 보석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지만 그 힘은 전부 그녀가 사전에 등록했던 보석들의 힘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콜린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잘못 느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가 말하자 하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능력은 몇 번이나 시험해 보았다. 콜린스는 카르디아 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보석의 기척에 예민한 자였고 그가 망설임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와서 말할 정도로 느낀 것이라면 단순히 착각일 리가 없다.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
하운은 콜린스와 다른 보석술사들을 독려하면서 계속해서 샤를로테를 감시했다. 그리고 드디어 조금 전, 연회가 열리기 전에 콜린스가 달려와 그에게 보고했다.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누가 가지고 있던가?”
“공주 일행 같습니다!”
“알겠네. 수고했어.”
하운이 어깨를 툭툭 치자 콜린스는 당장에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었다. 허튼 소리를 한 게 아니냐며 저를 질책해도 할 말이 없었는데 하운이 끝까지 자신을 믿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샤를로테가 등록하지 않은 보석을 들고 움직이는 것을 알았으니 그 증거를 확실하게 남겨야 했다.
‘연회에서 뭔가를 할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하운 역시 며칠 전부터 연회장을 중심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누구든지 보석을 사용하게 되면 그 기록이 확실하게 남게 돼.’
만드는 것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져서 잘 쓰이지 않는 보석진이었다. 보석술사들의 연구실에서나 혹시나 실험을 하다 기록을 놓치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설치해 두거나 그 외에는 중요 인물의 방에서 만약의 일이 일어났을 경우 추적을 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 대부분인 보석진.
하운은 지난 며칠간 그것을 연회장 전체에 설치했다.
기껏해야 방 하나 정도 크기의 보석진을 만드는 것이 보석술사들의 최선이었건만, 그가 건물 전체에 보석진을 설치하는 모습에 왕궁의 보석술사들은 제 눈을 비벼야 했다.
“호슨 공작에 이어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난 건 알았지만….”
그래도 능력이 전쟁터에서나 유용한 파괴적인 물리력을 사용하는 보석들에 특화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섬세한 운용까지 가능하다니. 이쯤 되면 감탄하는 것을 넘어 소름이 끼치는 재능이었다.
하운은 몸을 돌려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샤를로테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었다. 그 순간 연회장 여기저기에서 헛기침 소리와 급히 부채를 펼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회장 안에 아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하운과 샤를로테에게 쏟아졌다. 그녀는 그 시선이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
하운은 그녀가 잡은 제 팔을 보았다. 저를 붙잡은 손이 왜 이렇게 거슬리고 불쾌한지. 리엘라가 붙잡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아니, 즐거웠다. 계속 잡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쯤 공작저에 있겠지?’
하운은 그녀가 이 연회에 참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계획 때문에 움직이고 있다고 한들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때 입구가 잠시 술렁이며 시종이 입장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카르디아 원탁 회의 의장이신 루시안 모리스님과 레이디 리엘라 테니어 양께서 오셨습니다.”
“……!”
순간 하운은 샤를로테가 저를 붙잡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놀라 몸을 돌렸다.
연회장의 입구에 리엘라가 들어오고 있었다.
새하얀 첫 연회의 드레스를 입은 채로. 루시안의 손을 잡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