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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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운과 눈이 마주친 순간 리엘라는 잠시 숨을 삼켜야 했다.
‘각오는 했었지만.’
많은 수의 시선에도 움츠러들지 않았는데. 리엘라는 그녀를 노려보는 하운의 시선에는 주춤거렸다. 그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무시무시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이 무서워 리엘라는 저도 모르게 살짝 루시안의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하운의 얼굴은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지만 리엘라는 그를 흘끔거리며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라.’
연회장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운을 바로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하운의 모습을 보면서 리엘라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저렇게 노려보고 있지 않았어도 자신은 곧바로 하운을 찾아냈을 것을.
하운은 공작저에 있을 때는 비교적 편하게 입고 다녔었다. 예법에 문제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도 별다른 장식이 없는 실용적인 옷을 입고 다닌 그였기에 그를 처음 보는 몇몇은 그를 공작저에서 고용한 기사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얼굴을 보고 하운이 말을 꺼내는 순간 그의 분위기에 눌려 상대가 범상치 않은 자임을 금세 깨달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리엘라는 하운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평범하게 입고 있어도 남다른 외모와 몸이다. 분위기 또한 그러하고. 그렇다면 하운이 완벽하게 예복을 차려입고 단장을 하면 어떤 모습일까?
‘지금도 충분히 잘생기셨는데 엄청나겠지.’
그가 저택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아웅다웅하며 지내는 바람에 잊고 있었지만 원래 그는 카르디아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히는 남자였다.
리나와 다른 친구들이 주말에 제 집에서 모여 놀 때마다 하운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나왔었다. 처음에는 그를 두고 움직이는 왕궁의 세력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술이 들어가다 보면 리나가 먼저 ‘하운 대공, 나와 결혼해 다오’라며 장난을 치던 것도 생각이 났다.
하운 말고도 지위와 재력을 가진 미혼의 귀족은 여럿이 있으나 언제나 하운만이 신랑감으로 꼽히는 이유는 그의 외모 덕분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리엘라는 몇 번이고 하운이 완벽하게 성장을 한 모습을 상상해 보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 리엘라의 앞에 언제나 그녀가 생각해 왔던 하운이 서 있었다. 왕족들만이 입을 수 있는 우아한 예복을 입은 채 환한 빛 속에 서 있는 하운은 가끔 남몰래 리엘라가 생각했던 왕자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요란한 치장은 없이 머리카락과 얼굴을 단정하게 한 채 예복을 입었을 뿐임에도 하운은 이곳에서 홀로 빛났다. 하지만 단 하나 리엘라의 상상과 다른 것이 있었다.
왕자님의 옆에는 공주님이 서 있다는 것.
하운을 바라보던 리엘라의 시선이 샤를로테를 향했다.
두 사람이 서로 맞추기라도 한 것일까. 하운과 샤를로테의 의상은 색도 장식도 비슷해 누가 보면 처음부터 한 쌍의 연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옷 같았다. 두 사람을 보던 리엘라의 시선은 두 사람이 팔에 머물렀다. 두 사람은 다른 연인들처럼 팔짱을 끼고 있었다.
리엘라는 하운이 다른 사람들과 닿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제가 붙잡을 때 뿌리친 적은 없었지만 언젠가 저택의 하인이 실수로 그에게 닿았을 때 순식간에 얼굴이 굳으며 퍽 소리가 날 정도로 하인의 손을 쳐 낸 적이 있었다.
바로 당황해 하며 사과하긴 했지만 그 일로 다들 하운의 곁에 갈 때는 실수로라도 그와 닿지 않게 조심했다. 그 이후에도 하운이 다른 누군가와 접촉하고 있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같이 있어.’
하운이 샤를로테와 있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에 리엘라는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냥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다니. 그 모습을 본 순간 리엘라의 마음 속에 의심이 떠올랐다.
‘이래서 오지 말라고 했던 건가?’
샤를로테를 말하며 그녀가 갈 때 까지 왕궁 근처에도 오지 말라며 단단히 일렀던 하운이었다. 그게 자신을 걱정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면?
리엘라가 생각에 잠긴 사이 그녀를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호슨 공작의 상속자이다. 처음에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을지 몰라도 이제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상속인임을 인정하고 있다. 왕국급의 재산과 보석을 소유한 사람과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사람들이 어서 자신에게 소개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을 던지는 것을 알고 루시안은 속삭였다.
“리엘라, 이곳에 있기 싫으면 곧바로 후원으로 가도 됩니다.”
사람들도 사람들이지만 리엘라와 하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 말에 리엘라는 잠시 하운과 샤를로테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렇게 준비해서 온 연회인데 즐기지 않으면 아쉽잖아요.”
리엘라는 루시안의 팔을 잡아당긴 다음 단단하게 팔짱을 끼었다.
“그러니 여기에 있을 거예요.”
하운을 노려보며 리엘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
하운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리엘라를 본 순간부터 머릿속이 멍해졌다.
왕궁의 회의실에 처박혀 보석술사들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샤를로테의 감시를 이어나가다 보면 가끔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하운은 리엘라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어서 빨리 귀찮은 자를 치워 버리고 안전하게 리엘라와 함께 있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참고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 상황에 위로가 되지 않기에 하운의 상상은 리엘라의 첫 연회로 넘어갔다.
네아가 드레스는 많이 준비해 뒀다고 하는데 정말로 충분할까? 수십 벌로는 모자라니 역시 백 벌 정도는 준비하는 게 좋겠지? 뭘 입어도 어울릴 것 같긴 하지만 기왕이면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리고 아예 그 디자인을 사들여 두 번 다시 다른 사람들이 리엘라와 비슷한 옷을 입이 못하도록 하는 것도 좋겠지.
그의 형이 부인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하운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옷에 대한 상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신구에 대한 것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대신들에게 파트너가 준비한다는 오래된 장신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운은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떠올렸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목걸이였기에 그가 갖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된 것일수록 첫 연회의 참석자를 지켜준다는 미신이 하운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왕실 보석의 방에 있는 것들 중에 장신구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가장 오래된 것은 에르첼라의 목걸이다. 천 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것은 여전히 영롱한 광택을 뽐내며 제 안에 품고 있는 강대한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을 겪어야만 가질 수 있는 기품도 품고 있는 목걸이였다. 하운은 에르첼라의 목걸이의 가운데 있는 녹색의 보석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페르도트. 포용의 페리도트라고 불리는 그 보석은 소유자를 향한 상대의 적의를 소멸시키고 다른 보석들을 끌어들이는 특이한 힘을 가진 보석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성질 급하고 독단적인 에르첼라 여왕에게 대신들이 순종했다는 기록을 보면서 이게 다 포용의 페리도트가 가진 힘 때문이라 혀를 찼다. 에르첼라가 가장 많은 드래곤을 쓰러트렸던 것도 그 페리도트 덕분이라고 했었고.
하지만 하운에게 중요한 것은 그 힘이 아니었다. 포용의 페리도트가 가진 녹색은….
‘리엘라의 눈 색과 같은데.’
리엘라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하운은 때때로 리엘라의 눈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맑고 짙은 녹색은 보는 순간 햇살이 가득한 한여름의 숲을 떠올리게 했었다.
보석술사이면서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보석을 어떻게 장신구로 쓰는지는 잘 모르는 하운이었지만 적어도 눈이나 머리카락 색과 같은 색의 보석을 선호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운은 에르첼라의 목걸이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대공님?”
샤를로테가 부르는 소리에 하운은 정신을 차렸다. 맞은편에서는 여전히 루시안과 함께 서 있는 리엘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꿈틀거렸다. 루시안이 왜 저기 있지? 저기는 자신의 자리인데.
“대공님, 리엘라 양이 왔는데 인사하러 가시겠어요?”
샤를로테의 목소리에 하운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는 순간 멀리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던 콜린스가 하운을 향해 눈짓했다. 오른쪽 눈을 두 번 깜빡이는 콜린스의 몸짓에 하운은 이를 악물었다.
등록되지 않은 보석을 누가 갖고 있는지는 샤를로테의 일행이 연회장 안에 들어와서 흩어져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당연히 샤를로테가 갖고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지만 오히려 그 생각의 허점을 노리고 다른 자에게 보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들켰을 때 샤를로테의 책임이 아닌 것으로 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그러니 확실하게 확인해야 했다.
콜린스는 연회에 참석한 귀족으로 위장하여 샤를로테 일행의 주변을 맴돌았다. 직접 와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보석의 힘을 찾으면 누가 갖고 있는지 알려주는 신호를 정했었다.
오른쪽 눈 두 번은 샤를로테를 뜻하는 신호였다.
‘예상대로야.’
모든 것은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연회장 전체에 설치된 보석진. 알 수 없는 보석들 들고 나타난 샤를로테. 거짓으로 샤를로테와 손을 잡은 척하며 그녀의 제 생각대로 되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있으니 이제 이대로 웃으며 연회에 참석하기만 하면 된다.
이 일은 지금까지 하운이 해 왔던 일들 중에 가장 쉬운 편에 속했다.
목숨을 걸고 산을 넘어 다니고 몬스터들을 상태하며 플레노트와 대적하는 일에 비하면 연회장에 서서 웃고 있는 것은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하운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그의 가슴 위 예복을 붙잡았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생경한 감정이 그의 가슴에 퍼졌다. 숨이 거칠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고 몸이 떨린다. 몸에는 상처 하나 없건만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이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헤집는 것 같았다.
‘싫어.’
이 모든 것이 끔찍하고 지겨웠다.
카르디아를 위해, 레이안과 레티시아를 위해, 그리고 호슨 공작의 보석을 얻기 위해 살아왔다. 그래서 매번 참아야 했다. 지금도 그렇다. 샤를로테가 무엇을 노리는지, 도대체 보석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 모든 짜증나는 상황을 참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렇게 참아서 나는 무엇을 얻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 거칠게 하운의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분노라 생각되었던 것은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 하운은 자신이 원하는 유일한 것을 보았다.
자신에게 멀리 떨어져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는 리엘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