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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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에게서 시선을 거둔 다음 하운은 다시 그녀가 있는 쪽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지금까지의 인내가 전부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의 태도를 오해한 것인지 샤를로테는 더욱 밝은 얼굴이 되어 그에게 재잘거렸다.
하운은 그녀의 말들을 전부 흘러 넘겼다. 제대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듣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리엘라 양에게 미안하네요.”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리엘라의 이름이 나온 순간에는 저절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말았다.
“저렇게까지 속상해 할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상처를 크게 준 것 같아요.”
상처?
하운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루시안의 손을 놓고 뒤돌아 나가 버리는 리엘라의 모습이 보였다. 하운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가 말해 준 것도 아닌데 알 수 있었다. 지금 리엘라를 붙잡지 않으면 아마도 그녀를 잃으리라는 것을.
하운이 리엘라를 향해 가려는 순간 샤를로테가 그를 붙잡았다.
“어딜 가려 하시는 건가요.”
“…….”
“대공 흔들리지 말아요.”
샤를로테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더 큰 것을 원하세요. 당신이 마땅히 가졌어야 할 것들을요.”
샤를로테는 소맷단 아래에 숨겨 온 가넷을 붙잡았다.
이제 카르디아 왕궁 안에서 이것을 쓸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다. 이 정도로 큰 보석이 힘을 쓰게 되면 왕실에서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신중해야 했다. 만약 이것을 쓰게 되면 분명 누군가는 보석이 사용되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추적을 하겠지.
‘그걸 하운 대공이 막아 줘야 해.’
가넷에 의해 완벽하게 욕망을 깨닫는다면 하운은 이제 계속 자신과 함께할 것이다. 그 첫걸음이 지금 이곳에서 모두에게 자신과의 혼인을 발표하는 것이다. 어제도 몇 번이고 이야기했으니 다른 말을 할 리는 없었다.
자신이 대공의 혼약자가 된다면 허가받지 않은 보석을 썼다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책임도 물을 수 없고. 그래 봤자 추문이 될 뿐이니까.
샤를로테는 웃으며 하운의 손을 잡았다. 동시에 가넷의 힘을 개방했다.
큰 힘의 흐름이 그녀의 손끝을 타고 퍼졌다. 그러고는 손을 붙잡고 있던 하운을 향해 곧바로 흘러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힘의 흐름이 느껴졌는지 연회장 안 몇몇 사람이 놀란 얼굴이 되는 것을 보았지만 샤를로테는 신경 쓰지 않았다.
‘드디어!’
귀하고 어렵게 얻은 보석이다. 그것이 그녀의 곁에서 평생 자신의 야망을 도와줄 상대를 각성시키는데 쓰인다면 값어치의 역할은 충분히 한 것이다.
몸을 타고 흘렀던 가넷의 힘이 가라앉았다. 샤를로테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하운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가 모두에게 발표하기만 하면….
탁!
큰 소리와 함께 하운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잠시 비틀거리는 듯하더니 밖으로 향하는 문을 보고는 곧바로 그곳으로 달렸다. 맹렬한 하운의 기세에 서 있던 사람들이 놀라 옆으로 물러서며 길을 비켜 주었다. 이내, 시야에서 하운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
샤를로테는 얼빠진 얼굴로 하운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
갑작스러운 일에 레이안도 레티시아도 놀란 얼굴로 연회장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레이안은 턱을 쓸며 어이없단 얼굴로 홀로 연회장에 서 있는 샤를로테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레티시아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변을 감지한 것이다. 레티시아가 움직이자 연회장 안에 있던 몇몇의 사람들 역시 슬그머니 앞으로 나섰다. 모두 만일의 사태에 경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레티시아 휘하의 특수 부서에 소속된 인물들이었다.
레이안은 저를 감싸는 레티시아의 어깨를 붙잡고 속삭였다.
“괜찮아. 큰 위험은 느껴지지 않았어.”
“하지만….”
레티시아가 망설이자 레이안은 더욱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레이안에게 보석술사로서의 재능은 조금도 없다고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레티시아는 조용히 다시 레이안의 옆 자리에 섰다. 참석자들은 하운이 나가 버린 문과 믿을 수 없다는 듯 서 있는 샤를로테를 번갈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일단 지금은 이 소란스러움을 진정시켜야 할 때였다.
이렇게 큰 연회에서, 그것도 모두의 앞에서 카르디아의 대공이 타국의 대공에게 보란 듯이 무례를 저질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다르게 레티시아는 싸늘한 눈으로 샤를로테를 노려 볼 뿐이었다.
‘감히.’
이 카르디아의 왕궁에 몰래 보석을 숨겨 들어와? 그리고 그것을 왕족에게 사용해? 레티시아는 테티아가 요구하고 있는 조건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번 회담에서 테티아는 그 무엇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레티시아는 레이안의 등을 떠밀었다.
“왜?”
“왜긴요?”
레티시아의 뜻을 알아차린 레이안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하네. 오늘이 얼마 만에 당신과 함께 참석한 연회인 줄 알아? 춤출 생각에 하루 종일 고대하고 있었는데.”
“시끄러워요. 어서 가서 당신의 동생이 벌인 일 수습이나 하고 오세요.”
쌀쌀맞은 목소리에 레이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망연자실한 샤를로테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동생의 무례를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군, 샤를로테 대공. 하운은 예전부터 일이 생기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 버렸거든. 연락을 받은 모양이야.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연락을 받을 수 있는 보석이 있거든.”
레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귀를 톡톡 쳤다. 레이안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런 거였군.”
“어쩐지, 너무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나가 버리시더니.”
“예전부터 하운 대공께서 일에 몰두하시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일이죠.”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 가벼운 웃음과 함께 떠드는 소리들이 들렸다. 아마도 몇몇은 레티시아가 언제나 배치해 두는 특수 부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볍게 말하며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고 이에 옆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가?’ 하는 표정이 되더니 금세 납득했다. 그들은 무슨 일이냐고 묻는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 조금 전 레이안이 말했던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굳어 있던 사람들이 표정을 풀고 떠들기 시작하면서 연회장의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일 때문이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사죄를 하기 위해 국왕이 직접 내려와 춤을 청하고 있고.
눈치 빠른 누군가가 지시를 내린 덕분에 악단은 재빨리 음악을 바꾸었다. 춤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빠르게 조금 전의 일을 잊고 파트너의 손을 잡은 채 상대에게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레티시아는 굳어있는 샤를로테를 반쯤 억지로 리드하며 웃고 있는 레이안을 보았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척하며 귓가를 매만졌다. 레이안이 말한 보석은 그녀의 귀에 있었다. 전음의 서길라이트라고 불리는 보석은 꽤 귀한 대접을 받는 보석이었다. 그녀처럼 보석술사의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보석이었으니까.
귀걸이의 다른 한 쪽은 특수 부서의 담당자가 갖고 있다. 지금 그녀는 바쁘게 하운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추적하고 있었다.
– 왕비 전하. 들리십니까?
“그래, 하운은 어떻게 되었어?”
레티시아는 하운이 걱정되었다. 워낙에 강한 재능을 갖고 있는 탓에 어지간한 보석은 그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차라리 하운이 누군가를 공격 했다거나 하면 이렇게까지 걱정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하는 보석을 쓴 거야?’
왜 하운은 샤를로테를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간 걸까. 도대체 무슨 힘을 가진 보석이기에?
하운이 기록을 위한 보석진을 설치한 것은 잘 알고 있다. 연회가 끝나는 순간 샤를로테는 별궁에 구금될 것이며 비공식적인 회담을 통해 카르디아는 테티아에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고….
레티시아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레이안과 춤을 추고 있는 샤를로테를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하운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이곳에서 처리해 버릴까.’
누가 알면 기겁을 할 생각을 하며 레티시아는 짜증을 담아 귀걸이를 두드렸다. 빨리 대답하라는 신호였다.
– 왕비 전하, 대공님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잠시 후, 레티시아는 귀걸이 건너편에서 한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중얼거렸다.
“…미쳤어?”
***
여기가 어디지.
리엘라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원 관리부에 있을 때 왕궁의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이 연회장 주변으로는 온 적이 없었다. 그래도 보석들이 들어가 있는 램프가 떠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오늘 연회의 참석자들이 돌아다니는 곳이고 위험한 곳은 아니리라.
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멀리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흘러나오는 연회장이 보였다.
연회의 꽃은 춤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연회장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렇게 멀리까지 오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연회장에서 멀어지고 싶어서 한참을 달렸더니 숨이 턱까지 찼다. 하지만 달리지만 않을 뿐 리엘라의 걸음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였다.
보석의 램프를 따라 걸으니 그 끝에 유리 온실이 보였다.
“아….”
그제야 리엘라는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여름 정원의 끝에 있던 온실이 분명했다. 귀한 식물이 있는 곳인지라 허가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 모리스 경이 저기는 나중에 보여주겠다며 지나쳐 버린 탓에 일이 끝날 때까지 들어가 보지 못했던 곳이기도 했다.
리엘라는 온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 창문이 열려 있는 온실 안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풀벌레들만 이곳저곳에서 서로를 부르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힘없이 터벅이며 온실 안을 걷던 리엘라는 구석에 있는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에 앉았다. 잠시 끊어진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고 리엘라는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안 울어.”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그녀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앉아있으니 머릿속에 조금 전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웃는 샤를로테, 그녀의 손을 잡고 중앙에 서 있던 하운 그러고선 시작된 음악.
‘두 사람은 춤추고 있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자 앙다문 입술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안 춘다고 했으면서. 거짓말만 하고.
‘이러려고 오지 말라고 했나봐.’
아무래도 거짓말을 들키는 것이 곤란했겠지. 그것에 대해 따지면 하운이 뭐라 할까 생각하던 리엘라의 어깨가 더욱 축 내려갔다.
생각해 보면 하운은 한 번도 좋아한다 말한 적이 없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고. 예전부터 지금까지 하운과 자신의 관계는 공작이 남긴 보석의 방을 열기 위한 협력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서로 인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나도 말 안 하길 잘했지.’
그러니까 억울할 것도 없다. 아무 상관도 없는 관계니까. 만약 자신이 먼저 좋다고 말했으면 지금 느끼는 이 비참함은 몇 배나 더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리엘라는 손등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잘된 일이다. 불쌍해지기 전에 끝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다행이라 생각하며 좋아해야 한다. 그런데 왜….
“…….”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시야가 일렁였다. 리엘라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안 울어. 안 울 거야. 잘 된 일인데 내가 왜 울어? 리엘라는 필사적으로 다른 일들을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뭐가 있지? 리나랑 항상 즐겁게 떠들었고, 그러다 호슨 공작님을 만났고, 네아를 만났고….
투둑.
고개를 숙인 리엘라의 아래에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상하다. 왜 이제 기억에 자꾸만 하운이 끼어있는 것일까. 첫 번째 방이 열렸을 때 그가 끌어안았던 모습과 경매장에서 엘피안을 사서 안겨 주던 모습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말이다.
대단한 기억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리나가 몸에 좋다고 가져온 쓴맛 나는 주스를 슬그머니 테이블 구석으로 치워 두던 모습이라거나 두 번째 방을 열지 못해 고민하다 의자에 앉아 햇살을 받은 채 그대로 잠들었던 모습이라거나….
리엘라는 자신의 안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운의 모든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야?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있었지?
일부러 장난스럽게 생각해 보려 했지만 바닥에는 더 큰 물방울 자국이 생겨났다.
그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뚜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는 입구에서부터 리엘라가 있는 곳을 향해 곧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루시안 님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멋대로 뛰어나왔으니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리엘라는 서둘러 눈가를 훔쳤다. 이런 꼴로 있으면 루시안이 도대체 뭐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무 일도 없었어.’
자신은 하운을 좋아한 적이 없고 하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오늘 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운이 샤를로테와 결혼해서 공국을 만들면 그곳에는 절대 한 걸음도 들이지 않을 거지만!
서둘러 눈물을 정리한 리엘라는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표정을 관리했다. 램프가 있긴 하지만 밤의 온실이다. 연회장까지 돌아가는 중에 표정은 다시 감출 수 있겠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리엘라는 일부러 높은 목소리로 상대를 불렀다.
“루시안 님, 저 여기 있어요!”
리엘라의 말에 걸음 소리가 잠시 멈췄다. 하지만 곧 거칠게 나뭇잎을 쳐내며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대공 님…?”
하지만 나타난 것은 루시안이 아닌 하운이었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단정하게 입고 있던 예복은 무엇엔가 걸린 것처럼 소매가 찢어져 있었고 단추 역시 사라져 앞섶이 풀어헤쳐져 있었다. 머리카락 역시 마찬가지로 조금 전과 달리 엉망이 되었다.
“왜 그런 모습이….”
뛴 것 정도로는 이렇게 되지 않는다. 하운의 모습은 지금 전쟁이라도 치르고 온 사람 같았다.
하운이 나타난 것에 놀라고, 그의 모습에 놀란 리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다 하운의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는 것을 알았다.
‘목걸이?’
램프의 빛 아래 반짝이고 있는 것은 분명 목걸이가 확실했다. 그래서 리엘라는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놀란 탓에 눈물도 쏙 들어간 채 하운을 바라보았다. 그는 거친 숨을 고르더니 곧바로 리엘라에게 다가왔다. 하운의 시선이 리엘라의 목덜미를 향했다. 그는 팔을 들어 올려 리엘라의 목을 감싸안았다.
“뭐, 뭘!”
갑자기 끌어안는듯한 하운의 행동에 놀라 리엘라가 펄쩍 뛰어오르려 하자 하운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쉿, 가만히.”
무엇인가를 눌러 참는 듯한 지독하게 낮고 갈라진 목소리에 리엘라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하운의 숨결이 뜨거웠다.
리엘라는 잠시 후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운이 제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풀어낸 것이다. 조심스럽게 풀어낸 것과 달리 하운은 제가 풀어낸 목걸이를 한 손에 쥐고 그대로 집어던졌다.
그것이 루시안이 가져왔던 것임을 떠올린 리엘라가 놀라 달려가려 한 순간, 다시 하운의 팔이 그녀를 붙들고는 뒤로 돌려세웠다.
“……?”
당황해하는 리엘라의 눈앞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꽤 큼지막한 보석이 붙어 있는 목걸이의 장식이었다. 그것은 조심스럽게 내려와 그녀의 가슴 위에 얹혀졌다. 뒤에서 하운의 손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고 곧 채워진 목걸이가 리엘라의 목 위에서 빛났다.
“첫 연회라고 한 순간부터 그대 목에 이게 걸리는 상상을 했어. 가장 오래된 것.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서.”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그대로 드러난 목덜미에 하운의 숨결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느낌에 리엘라는 놀라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바로 그녀의 얼굴 바로 앞에 고개를 숙여 가까이 다가온 하운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리엘라가 뒷걸음치지 못하게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말했다.
“정말 잘 어울려.”
그렇게 말하며 웃는 하운의 얼굴에 리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곳에는 애원하고 갈망하며 탐욕스러운 남자가 있었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온실 안에서 하운이 조용히 말했다.
“좋아해, 리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