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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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리엘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부끄럽고 어색해 언제나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말이었다. 사실 생각만으로도 민망해 상상에서조차 쉽지 않았던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만약 언젠가 이 말을 하게 되면 무척 한심해 보일 정도로 더듬으며 떨지 않을까 했는데 고백의 말은 하운의 생각보다 더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상상 속의 연습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처럼.
보석으로 만들어진 램프가 뿌리는 은은한 빛 아래에서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건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엘라의 모습은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만큼 아름다웠다. 그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풀벌레조차 침묵을 지키는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것은 쿵쿵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뿐이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긴장한 적이 있었던가. 처음 드래곤과 마주했을 때도 이 정도로 떨리진 않았다.
차라리 마주한 것이 드래곤이면 이해라도 하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는 리엘라다. 드래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약한.
하지만 하운은 두려움과 긴장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고백한 이후 리엘라가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목에 걸린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가만히 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운은 저것을 가져오던 순간을 떠올렸다.
샤를로테가 말했다. 더 큰 것을 원하라고. 마땅히 가졌어야 할 것을.
그녀의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지 않았다. 테티아의 두 번째로 태어나 무능한 오라비가 왕관을 쓴 것을 억울해 하고 있는 그녀다. 그렇기에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자신의 손을 잡으려 했던 것이겠지.
샤를로테는 자신이 카르디아의 왕관을 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가 그 말을 한 순간 그녀가 붙잡고 있는 팔 쪽에 보석의 힘이 느껴졌다. 드디어 정체불명의 보석을 사용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하운은 긴장했다. 분명 물리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보석은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왕궁의 보석진이 먼저 감지해 냈을 것이니까.
잔뜩 경계를 하며 샤를로테를 본 순간, 하운은 갑자기 밀려 오는 감정에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누군가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같았다.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하운은 제가 내놓은 대답이 오직 하나임을 알았다.
리엘라.
하운의 머릿속이 오직 한 명으로 가득 찼다. 연회의 이야기를 하던 리엘라, 루시안과 함께 들어오던 리엘라 그리고 등을 돌린 채 나가 버리던 리엘라.
하운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리엘라에게 자신이 가져온 것을 걸어 준 다음, 함께 있고 싶었다.
그 다음 순간 그는 샤를로테를 뿌리쳤다. 이제 하운의 머릿속에 자신의 위치와 해야 할 일 따위는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던 것들은 리엘라라는 밝은 빛 아래에서 더 이상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운은 곧바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엘라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다.
처음으로 연회에 참석하는 상대를 위한 물건.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중에 가장 훌륭한 것.
‘에르첼라의 목걸이.’
하운은 연회장 밖에 서 있는 주인 모를 말에 올라타 왕실 보석의 방으로 내달렸다. 거칠게 달리는 그를 막아서야 하나 고민하는 경비병들을 지나치고 그는 재빨리 그곳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보석의 방 입구에 다다르자 그 앞을 지키는 보석술사들과 경비병이 놀라 하운을 맞이했다.
“대공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들은 의아해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정신없이 달려온 탓에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상태는 누가 보기에도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운은 그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에르첼라의 목걸이는 어디 있나.”
“네? 그거야 가장 안쪽 에르첼라의 컬렉션이 있는 곳에….”
“알겠다.”
하운이 그를 지나쳐 보석의 방을 열자 보석술사들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대공님! 서류를 작성하셔야지요!”
아무리 하운이라고 해도 왕실 보석의 방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는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을 열기 위해 임시지만 상시 허가를 받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들어가기 전에는 출입 등록을 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도 하운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지?’
보석술사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하운을 보았다. 그를 막아서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 누가 하운 대공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허겁지겁 하운을 따라 들어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보석술사들이 따라오건 말건 하운은 보석의 방 가장 깊은 곳을 향했다. 곧 다른 보석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 보다 훨씬 더 화려한 방이 나타났다. 에르첼라의 컬렉션이라 불리는 과거 에르첼라 왕이 쓰던 보석들이 모여 있는 방이었다.
얼핏 보면 마치 박물관처럼 보일 것이다. 투명한 유리 전시 케이스 안, 보석이 내는 은은한 빛 아래에 에르첼라의 컬렉션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강력한 목걸이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하운은 망설임 없이 유리의 윗부분을 두드렸다. 그러자 목걸이 위를 덮고 있던 유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리 역시 보석의 힘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환상이었고 아무나 소멸시킬 수 없었다. 이것을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은 카르디아 안에서도 하운과 루시안을 제외하면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 만약 이것이 사라진다고 하면 범인을 찾기란 너무도 쉬웠다. 그 덕분에 이 방은 의외로 적은 숫자의 경비병들이 지키는 곳이기도 했다.
하운은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집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뒤따라온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눈이 튀어나올 듯 경악하며 외쳤다.
“대, 대공님! 무슨 짓입니까!”
카르디아의 역사상 가장 강했던 왕이 사용했던 보석은 카르디아의 왕권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다른 보석술사들은 사용해도 하운은 에르첼라의 보석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가 이 보석을 사용하며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순간, 사람들은 전설의 왕을 떠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레티시아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운은 에르첼라의 보석을 사용할 수 없도록 명령해 두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운은 단 한 번도 그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에르첼라의 보석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들어와서 저것을 가져가다니.
보석술사들의 생각이 ‘반역인가?’까지 미친 순간 그들은 곧바로 허가받은 공격형의 보석들을 꺼내들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같이 인사를 나누었던 하운이었다. 게다가 이 나라의 하나뿐인 대공이며 자신들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천재적인 보석술사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보석을 사용하기 전 외쳤다.
“대공님, 왜 이러십니까! 제발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제 자리에 돌려 두십시오!”
“…….”
하운은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갖고 있던 보석의 힘을 발동시켰을 뿐이다. 하운이 보석의 힘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챈 그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보석을 사용했다. 공격성을 지닌 보석의 힘이 하운을 붙잡았다. 그의 옷이 엉망으로 흐트러지는 것이 보였다.
어지간한 보석술사라도 그대로 움직일 수 없는 힘이었는데 하운은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그 힘들을 모두 소멸시켰다. 다음은 하운의 차례였다.
허공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끈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보석술사들과 경비병들을 하나로 묶었다.
놀란 보석술사들이 급히 보석의 힘을 사용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이 갖고 있던 보석은 바닥에 떨어졌으며 그들의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맙소사….’
보석이 꼭 몸에 붙어있어야만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보석은 자신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 친화력이 생기기에 제 주인 외에는 잘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가진 보석들은 오랜 시간 함께 한 주인보다 낯선 하운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보석술사들은 소름이 돋았다. 하운이 강한 보석술사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숨기고 계셨어.’
강제적인 지배력을 가진 보석술사는 그들이 아는 한 한 명이었다.
‘에르첼라.’
보석술사들은 차마 그 이름을 내뱉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하운이 호슨 공작의 제자였기에 모두가 하운은 호슨 공작과 비슷한, 아니면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 힘을 가진 것이 아닐까 짐작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지 모두들 알게 되었다. 하운은 이미 호슨 공작을 넘어서 에르첼라 왕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에르첼라보다 더 강해질지도….
보석술사들이 경악하는 사이 하운은 몸을 돌렸다.
“대공님! 어딜 가시는 겁니까!”
정신을 차린 보석술사 한 명이 그를 불렀지만 하운은 그대로 보석의 방을 빠져나갔다.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가득한 이곳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없다는 듯이.
***
하운은 스스로가 반역에 가까운 짓을 하고 목걸이를 가져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뭐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귀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목에 걸렸다. 그러니까 나머지는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만족스러워하던 하운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
리엘라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리엘라?”
조금 전까지 빛으로 가득 찬 것 같았던 세상이 갑자기 암흑에 뒤덮였다. 좋아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도 뭐라고 말해 줄 줄 알았는데….
아주 작게 리엘라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따라 고개를 숙이던 하운은 훅 밀려오는 향기에 놀라 잠시 몸을 물렸다. 언제나 리엘라에게 나던 향기였다. 수많은 꽃향기 사이에 섞인 풀냄새. 어느새 하운이 가장 좋아는 향기가 되어 버린 그녀의 향.
투두둑.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에 하운은 놀라 바닥을 보았다. 땅 위에 물 자국이 생겨났다. 리엘라의 어깨도 더욱 들썩였다.
“리엘라!”
그는 놀라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리엘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물 가득한 리엘라의 얼굴이 보였다.
“리엘라? 왜….”
우는 거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잔뜩 눌린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안 한다고… 했으면서….”
“응?”
“춤…안 춘다고 했으면서….”
춤?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하던 하운은 곧 그것이 연회의 춤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안 췄어.”
“거짓말… 손잡고 가는 거 다 봤어요!”
리엘라는 고개를 들고 하운을 노려보았다. 글썽거리는 눈물이 볼을 타고 턱에 맺히더니 툭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하운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리엘라가 우는 모습을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잠시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리엘라는 보던 하운이 힘겹게 말했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