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beknownst to Me, I am Secretly Dating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4)
황제와 비밀 연애 중인데 나는 그걸 몰라 160화(144/144)
처음 들어와 본 에드의 집무실은 주인의 실용적인 성격이 반영된 듯 꼭 필요한 물건만 놓여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집무실답게 놓여있는 물건들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 고급품이었고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에드의 책상에서 바로 보이는 창밖의 정원마저도 아름다웠다.
완벽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집무실의 유일한 옥에 티는 어두운 색상의 고풍스러운 가구들 사이에 다소 뜬금없이 놓인 헤이먼 밀러의 최신상 책상이었다.
원래는 다른 무거운 무언가가 있던 자리였는지 카펫 눌린 자국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없었을 거라는 내 추측이 확신으로 변했다.
“여기라고요?”
말도 안 되는 자리 배치에 나는 내가 본 광경을 의심하며 카일에게 물었다.
“네.”
카일이 눈을 피하며 답했다.
“혹시 에드, 아니 폐하께서 억지, 아니 명령하신 거면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까 제발 다른 곳으로 옮겨주시겠어요?”
내 부탁에 카일이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멋쩍게 변명했다.
“폐하께서 시키신 게 아닙니다. 제가 집무실에 리나가 쓸 책상을 놓아도 되냐고 여쭸을 때 흔쾌히 허락하시기는 했지만요. 그리고 보좌관실에 남는 자리가 없어서 다시 옮기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보좌관실에서 두 명이 차출되었다면 두 자리가 비어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차출된 보좌관들이 돌아올 때까지 파견 형태로 일을 돕기로 했으니 비어있는 두 자리 가운데 하나를 쓰면 될 일이었다.
“그걸 믿으라고 하신 말은 아니죠?”
의심의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묻자 카일은 그저 ‘아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보좌관실로 연결된 문을 열어 보였다.
“아…….”
나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처참한 광경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말 그대로 서류의 산이 그곳에 있었다.
충혈된 눈으로 일을 하고 있는 보좌관들의 모습이 서류의 산 사이로 얼핏 보였다.
그나마 자리를 비운 보좌관들의 책상은 각종 서류들에 파묻혀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황제 궁에 있는 카일의 사무실도 너저분한 편이긴 했다.
그러나 보좌관실에 비하면 그곳은 정리 정돈이 아주 잘되어 있는 편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 하나가 빠듯하게 지나다닐 동선에만 겨우 길이 나있었는데 그마저도 그 부분에는 먼지 뭉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내가 에드의 집무실에서 일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낸 광경이 아니었다.
이건 진짜였다.
“어쩌다 이런 꼴이.”
내가 탄식하자 카일이 민망하다는 듯 변명했다.
“폐하께서 귀환하시면서 점점 보좌관실의 일이 늘어나서요. 서류를 정리할 시간이 없다 보니…….”
보좌관실에도 감찰단처럼 청소 담당 하인이 배치되어 있기는 할 거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일하는 중에는 사무실로 들어오지 못한다.
책상에 있는 서류 하나하나가 기밀이다 보니 생긴 규칙이었다.
이렇게까지 청소 상태가 엉망이라면 의미는 하나였다.
청소 담당 하인이 들어와 청소할 틈이 없게 누구라도 한 명쯤은 보좌관실에 남아 일을 계속했다는 의미일 터.
“보좌관이 되면 보좌관실에서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설마요.”
카일이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것처럼 웃었다.
“다들 주기적으로 집에 다녀오기는 해요.”
“아, 집에 다녀오시는구나.”
나는 허탈한 얼굴로 카일의 말을 따라 했다.
짙은 한숨을 쉬며 내 처지를 받아들였다.
“자리가 없기는 하네요.”
기밀 서류는 담당 보좌관들이 직접 정리를 해야 한다.
내가 에드와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기 불편하다고 가뜩이나 바쁜 사람들에게 사무실 청소를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먼지 구덩이에서 일하기도 싫으니까.’
내가 에드의 집무실에서 일하는 쪽으로 체념하고 있는 걸 느꼈는지 카일이 촉촉한 눈으로 덧붙였다.
“리나, 제가 리나에게 영입 제안을 할 때, 너무 바빠서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때보다 정확히 두 배쯤은 일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고?’
내가 본능적으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본 카일이 황급히 보좌관실과 연결된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물론 리나의 정시 퇴근은 보장해 드릴 거예요.”
카일이 이미 서명했던 파견 동의서를 펼쳐, 아주 모범적인 근로조건 조항을 콕 짚어가며 보여줬다.
그러나 종이 한 장으로는 과로사에 대한 내 공포를 막을 수 없었다.
“파견 취소 안 되나요?”
진심을 듬뿍 담아 묻는데 카일이 못 들은 척하며 파견 직원 교육을 시작했다.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주로 각 부서에서 올리는 보고서들을 취합하는 일이니까요. 리나라면 사나흘 안에 익숙해질 겁니다.”
카일이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가볍게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그러나 정말 별거 아니라면 저 서류의 산은 말이 되지 않았다.
내가 미심쩍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알아챈 카일이 억울하다는 듯 덧붙였다.
“정말입니다. 저는 리나가 저희들의 구원자가 되리라고 믿고 있어요.”
나는 쏟아지는 아부성 칭찬을 대충 흘려들으며 계속 카일을 경계했다.
내가 카일이 나를 부른 진짜 이유를 안 것은 잠시 뒤였다.
책상을 정리하다 잠깐 보좌관실에 물어볼 것이 있어 갔는데 내가 보좌관실에 들어서자마자 벌컥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정무 회의에 갔던 에드와 보좌관들이 들어왔다.
정무 회의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에드의 기분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보좌관들은 눈치를 살피며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에드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에드는 그런 보좌관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댔다.
“황실 소유의 땅 중 구빈원을 새로 세울 후보지를 조사해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직인가?”
두꺼운 안경을 쓴 보좌관이 더듬거리며 답했다.
“이번 주 내로 끝마치겠습니다.”
“이번 주?”
집무실의 입구 근처에 우뚝 멈춰 선 에드가 보좌관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싸늘한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한 보좌관은 흠칫 놀라며 서둘러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모레까지 끝내겠습니다!”
그제야 에드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곱슬머리를 가진 보좌관을 향해서.
“루퍼스.”
“예, 폐하.”
에드에게 이름이 불린 곱슬머리의 보좌관이 잔뜩 기합이 들어 답했다.
“동부 국경에서 올린 전후 복구에 관한 보고서, 다시 정리해서 올려.”
“예, 폐하.”
이번의 “예, 폐하.”는 힘 빠진 목소리였다.
에드가 일하는 모습을 본 감상은 ‘이래서 폭군 소리가 사그라지지 않는구나.’였다.
나는 들으라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에 보좌관실에 있는 내 존재를 알아챈 에드가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리나?”
벌써 온 거냐는 듯 놀랍고 반가운 기색으로 이름을 부르는 에드는 조금 전의 싸늘함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흐물흐물한 얼굴이었다.
맨 앞에 있는 에드의 얼굴을 보좌관들은 보지 못한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체통은 어디 두고 온 듯한 상사 겸 연인에게 정중하게 예를 취했다.
“오늘부터 보좌관실에 임시 배속된 캐롤리나 디아즈입니다.”
사무적인 말투로 에드에게 눈짓을 보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나를 끌어안고 입부터 맞췄을 에드였지만 눈짓의 효과가 있었는지 그저 입을 닫고 가만히 서있었다.
에드의 뒤에 얼어붙어 있는 보좌관들에게도 살갑게 인사한 뒤 나는 루퍼스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동부 국경에서 올린 전후 복구에 관한 보고서 정리,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에드는 루퍼스에게 다시 해 오라고 하면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이러면 얼마나 난감하다고.’
에드에게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대신 물어볼 생각이었다.
막 자리를 옮긴 내가 하기 벅찬 일이라 다시 루퍼스의 손이 가더라도 상사가 왜 반려를 했는지 알면 일이 수월해지니까.
내 의도를 대강 알아챘는지 루퍼스가 환한 얼굴로 정중하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디아즈 양.”
나는 바로 끌어안지 못해 안달 난 얼굴로 서있는 에드에게 다시 한번 눈치를 줬다.
보좌관실에서 루퍼스에게 관련 자료를 받아 다시 집무실로 돌아오는데 에드가 문 바로 앞에 서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급하게 문부터 닫았다.
그와 동시에 에드가 나를 끌어안았다.
조금 전 딱딱하게 굴어 서운했다는 것처럼 평소보다 강한 포옹에 들고 있던 서류가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어정쩡하게 팔을 허공에 띄운 채 아연한 눈으로 서류가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