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31
4화
운암정 주방에 서둘러 들어온 배용수는 청소를 하고 있는 후배들을 보고는 급히 말했다.
“오늘 대구 생물 들어왔어?”
“오늘은 없을 텐데요?”
후배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하긴, 대구 생물 주문 안 했으니…….’
생물은 말 그대로 냉동을 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냉동을 하지 않은 대구는 유통 기간이 짧으니 예약 주문이 들어올 때나 특별 메뉴로 할 때 빼고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
“근데 갑자기 생물 대구는 왜…….”
말을 하던 후배가 놀란 눈으로 배용수를 보았다.
“선배 혹시?”
후배의 물음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다.”
“축하드려요.”
무슨 말인지 안 후배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하다가 시계를 보았다.
지금 시간에 생물 대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마 생물 대구가 없는 걸 아시고 오늘로 정했을 거야.’
배용수는 김봉남이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았다.
김봉남은 대구 생물이 안 들어온 날인 것을 알고 오늘 시험을 정했을 것이다.
주방에서 일을 하다 보면 주문 실수나 음식이 실패해서 사용해야 하는 식재가 줄어들 수 있었다. 그때 주방에서 얼마나 빠르게 대체 식재를 구하느냐도 정말 중요했다.
즉, 임기응변 실력을 보려는 것이다. 필요한 식재를 얼마나 빠르게 구하느냐로 말이다.
배용수는 핸드폰을 빠르게 두들겼다.
투투툭! 툭!
상대가 전화를 받자 배용수가 빠르게 말했다.
“사장님, 저 용수입니다.”
[아이고! 우리 배 숙수 아닌가.]상대가 너스레를 떠는 것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제가 정말 숙수가 될지 안 될지가 사장님 손에 달렸습니다.”
[내 손에? 그게 무슨 소리야?]“질 좋은 생대구가 필요합니다.”
[대구라…… 난 또 뭐라고. 알았어. 내일 아침에 보내 줄게. 몇 박스나 필요해?]“내일 아침에 필요하면 제가 사장님에게 이렇게 전화를 했겠어요?”
[그럼 설마 지금 생물이 필요하다는 거야?]“있죠? 있어야 합니다.”
배용수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상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생물이야 있지. 근데…… 운암정에서 쓸 만큼 좋은 건 없어.]상대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최상이 안 되면 최선의 식재를 구할 뿐입니다.”
[최선의 식재?]“늘 최고의 식재를 쓰면 요리사로서 그만한 행복이 없겠지만, 늘 최상의 식재를 쓰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러니…….”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대구를 구해다 주세요.”
“제가 아는 사장님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식재를 구해다 주실 거예요.”
[나야 늘 좋은 물건을 다루기는 하지만…… 괜찮겠어? 운암정에 들어갈 급은 아닌데.]“저는 사장님의 안목을 믿습니다.”
단호한 배용수의 말에 상대방이 잠시 있다가 웃었다.
[그렇게 말하니 더는 할 말이 없고만. 알았어,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대구를 구해다 주지.]“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배용수가 급히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일곱 시까지는 가져다주셔야 합니다.”
[일곱 시? 지금 세 시인데?]“저는…… 사장님을 믿습니다.”
배용수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상대방이 한숨을 쉬었다.
[일곱 시. 조금 늦을 수 있지만 최대한 그 시간 맞춰 볼게.]“감사합니다.”
그걸로 전화를 끊는 배용수를 보며 후배가 말했다.
“생대구가 없대요?”
“있기는 한데, 운암정에 어울리는 생대구는 없대.”
“하긴, 저희 운암정에 들어오는 생대구는 정말 좋은 것만 들어오니까요.”
후배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지?”
“그럼요. 우리 용수 형이 국 파트를 간다는데 제가 당연히 도와야죠.”
“그럼 일단 대구 맑은탕을 할 재료부터 챙겨 놓자.”
“네.”
배용수는 식재 창고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암정의 식재 창고는 냉장고, 냉동고, 그리고 실외 창고 이렇게 세 개가 존재했다.
실외 창고는 옛날 식재 창고처럼 바람이 잘 통하는 형태로 지어져 있었다.
황토와 나무로 만들어져서 습기가 많은 날에는 나무와 황토가 습기를 흡수하고, 건조한 날에는 반대로 황토와 나무가 습기를 방출해 보관된 야채들이 쉽게 상하지 않게 해 주었다.
물론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냉장창고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졌다.
여기 창고는 일종의 보여주기 식이었다. 전통 있는 식당에 있는 전통적인 식재 창고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짧고, 질이 좋고, 그날 쓸 식재들은 이곳에서 보관을 해서 바로바로 사용을 했다.
황토 창고에 들어간 배용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구 맑은탕…….’
탕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떠올리며 배용수가 식재 창고를 살필 때, 후배가 말했다.
“형.”
“응?”
“대구 맑은탕에 뭐 넣으실 거예요?”
“당연히 대구 맑은탕에 들어가는 재료를 넣어야지.”
“에이! 그런 거 말고 비장의 비법 같은 거 있을 거 아니에요.”
“비장의 비법?”
“숙수의 한 수요.”
후배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다가 그 머리를 툭 쳤다.
“어디서 이상한 것만 배워서는. 음식은 기본으로 하는 거야.”
“기본요?”
“모든 건 다 기본에서 시작하는 거니, 음식도 기본이 가장 중요한 거야.”
말을 하며 배용수가 식재 창고 한쪽에 걸려 있는 마늘을 꺼내 바구니에 담았다.
“내 비법은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거지. 그리고 간을 잘 하고…… 그게 내 비법이다.”
“그럼 뭐 다른 거 안 넣어요? 전에 인철 숙수님 하시는 거 보니 마른 버섯을 여러 개 섞어서 만든 조미료 넣으시던데.”
“그렇게 하면 더 깊은 맛도 나고 좋겠지. 난 기본에 충실하면서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처럼 만들 거야.”
“어머니가 만든 음식…… 음…….”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후배가 말끝을 흐렸다.
“오늘 저녁 잘 해야 국으로 올라가는데 너무 평범하지 않아요?”
후배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어머니가 해 주신 평범한 음식을 잊지 못하는 법이다. 평생 그걸 먹고 자랐으니까.”
배용수는 고개를 돌려 후배를 보았다.
“그리고 요리사가 아무리 음식 솜씨가 뛰어나도 어머니 음식 솜씨는 못 따라가는 거야. 명심해. 세상에서 아무리 귀한 식재, 요리 실력을 가지고 와도 언제나 최고는 어머니의 손맛이다.”
이야기를 마친 배용수가 파와 무를 바구니에 담자 후배가 그것을 보다가 식재를 같이 고르기 시작했다.
배용수가 말했던 것처럼 좋은 식재 속에 숨어 있는 더 좋은 식재를 찾으려고 말이다.
***
“으아! 피곤하다.”
저녁 장사를 마친 운암정 식구들이 직원 식당에 하나둘씩 들어와 앉았다.
운암정이 식당이지만, 손님을 위한 식당과 직원들이 먹는 식당이 구분되어 있었다.
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직원들이 지친 얼굴로 어깨나 다리를 주물렀다.
“대범 씨, 오늘 저녁은 뭐예요?”
홀 여직원의 말에 배용수를 도와 식재들을 모았던 후배, 이대범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맑은 대구탕입니다.”
“맑은 대구탕?”
“오늘 용수 형이 할 거예요.”
“용수 씨 며칠 전에 해서 순번 아니지…….”
말을 하던 직원은 순간 이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는 놀라 말했다.
“설마 오늘 용수 씨 국 시험 보는 거예요?”
“네!”
이대범이 웃으며 하는 말에 여직원도 웃었다.
“오늘 저녁 정말 기대가 되네요.”
“아싸! 오늘 저녁 대박.”
직원들이 신이 나서 하는 말에 이대범이 웃었다.
운암정은 음식 파트가 나누어져 있다. 국, 조림, 반찬, 튀김 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파트가 올라갈 때는 배용수처럼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재주들과 비장의 팁들을 사용하다 보니 그날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 밥상에 오른다.
그래서 직원들이 신나 하는 것이다. 운암정에서 일하면서 맛있는 부식들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늘 행복한 일이었다.
직원들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한쪽을 볼 때, 배용수가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드르륵! 드르륵!
배용수가 끌고 오는 카트에는 커다란 국통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음식이 담긴 카트를 끌고 주방 막내들이 따라왔다.
배식을 하는 곳에 음식들을 놓은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자, 배식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직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는 카트 앞에 서서 식판을 들었다.
그에 배용수가 음식을 가리켰다.
“오늘 저녁은 대구 맑은탕입니다. 음식들은 알아서 뜨시고 탕만 제가 드릴게요.”
직원들이 밥과 반찬들을 뜨고는 그의 앞으로 오자, 배용수가 웃으며 카트를 덮고 있는 보자기를 들었다.
화아악!
그러자 보자기 밑에서 하얀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처럼 하얀 국그릇에 대구와 알, 그리고 통통한 하얀색 고니가 담겨 있었다.
“우리 미정 씨는 여기…….”
배용수가 국그릇 중 하나를 집어 그 위에 뜨거운 국물을 조심히 담았다.
안에 담겨 있는 대구와 알의 모양들이 흩어지지 않게 국물을 담은 배용수가 오미정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뜨거워요.”
“고마워요.”
오미정이 식판을 들고 자리로 가서 앉자, 배용수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릇에 국물을 담아 내밀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직원들이 자리로 가자, 자신의 차례가 된 이대범이 식판을 들고 배용수의 앞에 섰다.
“우리 대범이 거.”
배용수가 대구가 담겨 있는 그릇 하나를 집어 국물을 담아 주자, 이대범이 그것을 식판에 담다가 배용수를 보았다.
그러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형.’
자기가 대구 알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배용수라서 그런지 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들어 있었다.
역시 자신을 생각하는 건 용수 형이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돌린 이대범이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만든 대구 맑은탕이 무슨 맛일지 무척 궁금했고, 걱정도 되었다.
만드는 것을 옆에서 직접 봤지만, 딱히 비법이라고 할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용수 형이 만든 거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이대범이 국물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후루룩!
한 모금 맛을 본 이대범이 미소를 지었다.
‘맛있다. 맛있어.’
입에 넣는 순간 조금은 칼칼한 맛이 목을 강하게 강타했다. 그 칼칼한 맛에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으! 좋다.’
입맛을 다신 이대범이 다시 국물을 떠서 먹고는 이번에는 알을 수저로 떠서 입에 넣었다.
이대범은 역시 맛있다는 듯 배용수를 보다가 앞에 있는 임유정을 보았다.
“유정 씨가 먹기에는 좀 맵겠네요.”
라면도 순한 맛으로 먹는 그녀에게는 좀 매울 거란 생각이 들어 한 말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임유정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게 왜 매워요? 이게 매워요?”
“이렇게 칼칼한데…… 안 매워요?”
“전혀요. 담백하고 개운하고 아주 좋은데요.”
싱긋 웃는 임유정의 말에 이대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암정에서 일한 지 일 년밖에 안 됐지만, 그동안 홀 직원들과 식사를 자주 했기에 이대범은 그녀의 식성을 알았다.
그런데 자신도 살짝 맵다 생각되는 국물이 안 맵다니?
‘매울 텐데?’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