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35
8화
“알츠하이머입니다.”
의사의 말에 황민성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후우!”
깊게 숨을 토하는 황민성의 모습에 의사가 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조순례가 한 중년 여인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수술을 해야 합니까?”
황민성의 물음에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현재 의학으로는 알츠하이머 완치는 어렵습니다. 약물 치료로 진행 속도를 늦추는 방법뿐입니다.”
“늦춘다…….”
의사의 말에 작게 중얼거린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진행 속도를 멈추는 것도 아니고, 고작 늦추는 것뿐입니까?”
“죄송합니다.”
의사의 사과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약물 치료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의사를 노려보았다. 앞말은 이해가 됐지만, 뒷말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마음…… 편하게?’
의사라는 자가 하는 말이 치료 방법이 아닌 고작 마음 편하게라니.
황민성이 노려보자, 의사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황민성이 어떠한 사람인지 의사도 알고 있었다. 진단이라는 것이 당일 와서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진료를 받으러 오는 동안 황민성이 어떤 사람인지 안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의사가 급히 고개를 숙이는 것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그게…… 최선인 겁니까?”
“네? 아…… 네.”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습니까?”
“그야 마음 편하게…….”
“어떻게 마음 편하게 있으라는 겁니까?”
황민성의 말에 의사가 슬며시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에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안 황민성이 애써 표정을 바꾸고는 말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다시 한번 황민성이 말을 하자, 의사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마음 편하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후우! 의사 선생님.”
황민성의 말에 의사가 그를 보았다.
“네.”
“그러니 그 방법을 말해 달라는 겁니다.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식으로요.”
“저라면…….”
의사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요양 시설에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요양 시설?”
황민성이 눈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안 좋게 보일 수도 있지만, 치매 어르신 같은 경우는 24시간 옆에서 사람이 관리를 해 줘야 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렇게 심하지 않습니다.”
24시간 관리를 받을 만큼 조순례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가 차려 준 밥을 먹었고 청소도 직접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앞으로 어머니를 직접 살피실 생각이십니까?”
“도와주실 분도 구했고…….”
황민성은 조순례 옆에서 담소를 나누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 모습에 의사가 아주머니를 보고는 말했다.
“어머니를 도와주실 분을 구하신 건 잘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분도 퇴근을 하고 집에는 가셔야겠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면, 갓난아기를 한두 시간 혼자 두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지금은 평소와 같아 보이지만, 언제 어느 때 증상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는 갓난아기처럼 상시 보살펴 줘야 합니다.”
의사는 황민성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치매 환자들은 배고픔을 많이 느낍니다. 그럼 뭐를 드시려 할 텐데, 사소한 거로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통을 꺼내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건 위험이라고 하기는…….”
“유리 케이스 같은 경우 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컵도 깨질 수 있고 그릇도 깨질 수 있습니다. 모든 물건이 다 깨질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뭔가를 해 드시려고 불을 쓰실 경우는 화재의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옆에서 잘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요양원이 좋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고 어머니도 서운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
황민성이 입술을 깨물자 의사가 그를 보았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을 망설이는 황민성을 보고 있으니 무서웠던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다.
‘이분도 그냥 마음 아픈 어머니를 둔 자식일 뿐이구나.’
잠시 황민성을 보던 의사가 말했다.
“지금 결정하지 마시고 잠시 지켜보시다가 결정하셔도 됩니다. 어머님이 아직 초기이시라 옆에서 잘 지켜보시면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시간요?”
“지금부터 어머니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아드님에게는 선물이 되고 앞으로의 시간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내일 어머니가 오늘 웃으며 이야기한 어머니가 아닐 수 있습니다. 선생님을 못 알아볼 수도 있고 선생님에게 안 웃어 줄 수도 있습니다.”
“아…….”
황민성이 한숨을 쉴 때, 의사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 사진도 많이 찍고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세요. 그게 나중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의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황민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의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선생님 잘못이 아닙니다.”
의사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그런 황민성을 보며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순간, 황민성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뚝뚝뚝!
배에 칼이 박혀도 눈물은커녕 담배 한 대를 물며 웃음을 흘릴 황민성이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에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잠시 고개를 숙였던 황민성이 몸을 돌렸다.
“어머니, 가요.”
황민성의 말에 한쪽에서 이번에 친해진 장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조순례가 말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셔?”
“그…… 건망증이 조금 있대.”
“그래?”
“나이 먹으면 그런 거라니까 약 먹고 하면 좋아질 거야.”
“요즘 들어 자꾸 잊어먹는 것이 생겨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그럼 가요.”
아직 자신이 치매라는 것을 모르는 조순례가 웃으며 의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세요.”
의사의 인사에 조순례가 진료실을 나섰다.
황민성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진료실을 나서자, 의사가 닫히는 문을 보았다.
처음에는 살짝 떨리고 무서웠지만 지금은 무섭지 않았다.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무서운 건달도 아픈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이고 보호자인 것이다.
의사가 닫힌 문을 볼 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한숨을 쉬었다.
“아, 무서워라.”
“무서웠어요?”
“네. 말 들어보니까 서울에서 유명한 조직의 행동대장이래요.”
몸을 부르르 떨던 간호사가 문득 의사를 보았다.
“그런데 앞으로 저희 병원에 계속 올 텐데 어떻게 해요?”
간호사의 말에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하기는요. 의사 대 보호자로서 이야기를 하고 환자를 잘 살펴야죠.”
의사의 말에 간호사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아까 왜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고 하신 거예요?”
간호사의 물음에 의사가 잠시 있다가 말했다.
“보호자들은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더군요. 내가 부모님을 잘못 살펴서 이런 병에 걸렸다고…… 그래서 말한 겁니다. 이건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고. 앞으로 잘 하시라고.”
의사의 말에 간호사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좋은 분이세요.”
“좋은 분은요. 이런 병 하나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치매는 치료제가 없잖아요.”
간호사의 말에 의사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다음 환자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간호사가 진료실을 나서자,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 있는 조순례의 진료 내력을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치매라는 악마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슬픈 사람들이 또 생긴 것이다.
***
말 그대로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날, 황민성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후드득! 후드득!
얼굴을 강타하는 빗방울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던 황민성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르륵! 주르륵!
흐르는 피가 빗줄기에 씻겨 내려갔다. 그리고 그런 황민성을 주위에 선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황민성을 이렇게 두들겨 팬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제발 그만 누워 계십시오.’
‘그만 하셨으면 됐습니다. 형님 제발.’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들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황민성의 모습에 주춤거리며 한쪽에 있는 사람을 보았다.
지시가 있어서 황민성에게 손을 대기는 했지만…… 때리면서 자기들 마음이 더 아팠다.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고 등을 보고 싸우던 사람이니 말이다. 싸움에서 등을 본다는 건 그가 앞에서 적과 싸우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십 대 중반의 남자는 우산을 쓴 채 황민성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황민성을 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찰칵! 화아악!
담배를 한 모금 빨은 남자가 황민성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생각은 안 변했냐?”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신세는 무슨. 내가 네 신세를 많이 졌지.”
남자는 황민성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쪽은 뒤끝이 안 좋아.”
“…….”
황민성이 말을 하지 않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서 살아도 말년에는 운 좋으면 감옥 가는 거고…… 운 나쁘면 이인자나 삼인자가 내 뒤통수를 치거나 내 배에 칼 넣는 거고. 대부분 선배들 보면 이 둘 중 하나이더라고.”
말을 하지 않는 황민성을 보며 남자가 담배를 한 모금 더 빨고는 길게 뱉었다.
“후우! 그래서 참 믿을 놈이 필요해. 내가 감옥에 가면 뒷바라지해 주면서 조직 이끌고 나 나오면 조용히 고개 숙일 놈 말이다. 물론 내 배에 칼을 안 꽂기도 해야 하고.”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황민성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네가 있어 늘 든든했다. 네가 나 은퇴는 시킬지 몰라도 먹고살 거리는 만들어 줄 테고 내 배에 칼은 안 꽂을 거라 생각을 했거든.”
“죄송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남자가 자신의 입에 물려 있던 담배를 그의 입에 가져다 댔다.
황민성이 담배를 물자 남자가 말했다.
“다시 생각해 봐라. 나도 나이가 있으니 오래 해야 삼사 년이고 그 후에는 네가 이 조직 이끌면 된다. 그때 이 조직 양지로 네가 데리고 가서 사업을 하든 뭐를 해도 되지 않겠냐?”
“어머니가 아프십니다.”
황민성의 말에 남자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하니 형이 더는 말을 할 수가 없구나.”
남자는 황민성을 보다가 말했다.
“형이 너무 심하게 때렸다고 원망하지 말아라.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이 바닥을 떠날 수는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남자가 그를 보다가 우산을 그 머리 위로 씌워주었다.
“비 때문에 담뱃불이 꺼졌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황민성의 손을 잡아 우산 손잡이를 잡게 했다.
“앞으로 다시 보지 말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황민성이 고개를 숙이자, 비를 맞으며 남자가 손을 가볍게 들었다.
“감사는 무슨…….”
남자가 걸음을 옮기자, 주위에 있던 이들이 황민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남자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