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47
20화
흰둥이를 생각하던 강진은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흰둥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강진에게 최문우가 말했다.
“그래서 개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런 녀석들을 아는데 싫어할 수가 없죠. 그리고 제가 원체 동물들을 좋아합니다.”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건우를 보니 문우 씨가 남처럼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 아니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건우 덕에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네요.”
“그런 셈이죠. 아, 강원도에 제가 좋아하는 멧돼지 가족도 있습니다.”
“멧돼지 가족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묻는 최문우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저희 집 김치가 강원도에서 김장해서 산속 동굴에서 보관을 하거든요.”
“그래요? 산속 동굴에다 김치를 보관하는 가게들을 TV에서 보기는 했는데 여기도 그렇게 하는군요.”
“동굴에다 보관을 해서인지 맛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멧돼지 가족은 그 동굴이 있는 산에 살아요.”
“그럼 위험하지 않습니까?”
“전혀 안 위험해요. 저 가면 멧돼지 가족들이 달려와서 인사하고 갑니다.”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웃었다.
“멧돼지 가족이 인사를요?”
“진짜예요.”
웃으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제가 그 녀석들 겨울마다 사료를 챙겨 주거든요. 제가 밥을 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제 차 소리만 들리면 달려와서 반겨줍니다. 아! 그리고 저 그 녀석들 타고 산을 뛰어다니기도 해요.”
“멧돼지를 타요?”
“아주 스릴 넘쳐요.”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최문우가 피식 웃었다. 진짜인지 농담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만으로도 유쾌한 것이다.
“재밌는 곳이네요.”
“다음에 한번 같이 가요. 건우도 거기 가면 돼랑이 식구들하고 잘 놀 겁니다.”
“돼랑이?”
“거기 아빠 멧돼지 이름이 돼랑이예요.”
말을 한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좋아하는 형이 이름을 지었죠.”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한번 갔으면 좋겠네요.”
“제가 다음에 갈 때 초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으며 답한 최문우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동굴에서 숙성한 김치라니…… 맛이 아주 좋을 것 같네요.”
“정말 맛이 좋습니다.”
입맛이 도는 듯 최문우가 침을 삼키다가 말했다.
“제 아내도 김치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러세요?”
“음식점에서 정말 맛있는 김치를 먹으면 파냐고 물어서 사 올 정도였죠. 제 아내가 김치 넣고 만든 비빔국수를 참 잘 했습니다.”
최문우는 잠시 허공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집에 있는 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등등 자잘하게 썰어 넣고 고추장, 설탕, 참기름 넣고 비비면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간단하지만 정말 맛있었어요.”
“말만 들어도 입에서 침이 고이네요.”
강진의 말에 최문우도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먹으면 정말 맛이…….”
말을 하던 최문우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렸다.
“정말 맛이 좋았는데.”
그런 최문우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최문우는 그 비빔국수를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같은 재료로, 같은 방법으로 한 비빔국수를 같은 곳에서 먹어도…… 같이 먹었던 그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강진아, 음식 다 됐다!”
그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몸을 일으켰다.
“음식이 다 된 것 같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은 주방으로 가다가 주방 입구에 서 있는 임수정을 보았다.
그녀는 아련한 눈으로 최문우를 보고 있었다. 그런 임수정을 보며 주방에 들어간 강진이 작게 말했다.
“이야기 다 들으셨어요?”
강진의 말에 임수정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홀을 보았다.
“우리 둘이 비빔국수를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았는데…….”
최문우가 자신이 해 준 비빔국수를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그녀였다.
그래서 더더욱 미안했다. 자신이 너무 일찍 죽은 것이 말이다.
슬픈 눈으로 최문우를 보던 임수정에게 강진이 말했다.
“죽은 것을 미안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수정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임수정이 홀을 보다가 말했다.
“아! 국수 불겠어요.”
그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쟁반에 담아 놓은 비빔국수를 보았다.
‘어? 비빔국수에 왜 이리 물이 많아?’
비빔국수는 조금 묽은 소스에 살짝 담가져 있었다. 보통 비빔국수에 들어가는 소스 치고는 너무 묽었고, 양이 많았다.
강진이 비빔국수를 보는 것에 배용수가 말했다.
“수정 씨가 한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비빔국수가 담긴 쟁반을 들고 홀로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든 최문우가 웃으며 말했다.
“비빔국수를 벌써 만드신 겁니까?”
“비빔국수가 쉽고 빠르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일 분 이내에 나오는 건 아니죠.”
웃으며 강진이 음식을 식탁에 올렸다.
“우리 주방장이 김치가 맛있어 보여서 이렇게 비빔국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주방장님하고 제가 마음이 통했나 봅니다.”
말을 하던 최문우는 자신의 옆자리에 놓이는 비빔국수에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이건?”
“모자라시면 더 드시라고요.”
“저 그렇게 양 안 큰데요.”
최문우가 웃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비빔국수를 보았다.
“이것도 다 못 먹을 것 같은데요.”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의 앞에 놓인 국수를 보았다. 확실히 그의 비빔국수도 꽤 많은 양이었다.
곱빼기라고 주문을 하며 나올 정도의 양이었으니 말이다.
“국수라는 게 원래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잖아요. 그리고 식당에서 음식 아끼면 되나요. 많이 드세요.”
최문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젓가락을 드는 사이, 이혜미가 임수정을 데리고 홀로 나왔다.
“수정 씨도 문우 씨 옆에서 드세요. 문우 씨 옆에 놓인 비빔국수, 수정 씨 거예요.”
“아…… 저 생각해서 세 그릇을 만드신 거예요?”
“그럼요.”
이혜미가 알아서 상황을 정리해 주는 것에 강진이 그녀를 보며 작게 웃고는 임수정에게 눈짓을 했다.
빈자리에 앉으라는 강진의 눈짓에 임수정이 환하게 웃으며 최문우의 옆에 앉았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국수 불겠네요. 어서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젓가락으로 비빔국수를 슬쩍 저었다.
스르륵! 스르륵!
이미 비벼진 국수가 젓가락에 다시 한 번 비벼졌다.
‘그런데 이건 육수인가?’
국수를 비비던 최문우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이건 비빔국수라고 하기에는 소스가 많았다.
마치…… 죽은 임수정이 자신에게 해 주던 비빔국수처럼 말이다.
최문우가 국수를 비비자, 임수정도 따라서 국수를 비볐다.
스르륵! 스르륵!
꿀꺽!
국수를 비비던 임수정은 옆에서 들리는 침 삼키는 소리에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최문우는 정말 맛있겠다는 얼굴로 국수를 비비고 있었다.
“내가 한 거야. 정말 맛있어 보이지?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우리 집에서 먹던 김치보다 여기 김치가 훨씬 더 맛있거든.”
싱긋 웃으며 말을 한 임수정이 최문우를 보았다.
“어서 먹어 봐.”
임수정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최문우가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떴다.
주르륵!
묽은 소스가 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입맛이 돈 강진이 비빔국수를 크게 한 젓가락 떴다.
후루룩! 후루룩!
비빔국수를 입에 넣고 씹은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삭! 아삭!
맛있게 익은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아삭하게 씹혔고, 양념의 매콤한 맛이 입안을 화끈하게 만들었다.
‘깍두기를 조금 크게 썰어서 넣어도 좋겠는데.’
다만 깍두기를 너무 작게 썰어서 그런지 식감이 조금 아쉬웠다. 그에 강진은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입 안 가득 느껴지는 깍두기의 식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슬쩍 최문우를 보았다.
최문우는 비빔국수를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다.
‘확실히 국수는 입에 크게 넣어야 맛있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임수정을 보았다. 임수정도 많은 양의 국수를 한 번에 입에 넣으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진의 시선이 닿자, 급히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제가…… 좀, 마이 너었…….”
입안 가득 들어있는 국수 탓에 발음이 뭉개지자 이혜미가 웃으며 말했다.
“국수는 원래 크게 한 입에 넣어서 먹는 거니 괜찮아요. 봐요. 강진 씨도 문우 씨도 그렇게 먹잖아요.”
이혜미의 말에 임수정이 민망한 듯 작게 웃고는 씹던 국수를 삼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맛있어요.”
정말 맛이 너무 좋았다. 아까 밥에 김치 올려서 먹을 때도 맛이 좋았는데, 지금은 자신의 혀가 녹아버릴 듯이 맛있었다.
게다가 매끈한 국수 면발이 입안으로 빨려 들어와서 씹히는 감촉과 깍두기의 아삭함이 너무 좋았다.
국수를 맛있게 먹던 임수정이 최문우를 보았다.
“맛있…….”
‘맛있지?’라는 말을 하려던 임수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최문우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던 탓이었다.
영화처럼 극적으로 오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허공으로 떨어졌다.
뚝뚝뚝!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프고 아련하게 보였다.
그런 최문우의 모습에 임수정이 급히 말했다.
“왜 그래? 왜 울어?”
강진은 슬며시 티슈를 뽑아 내밀었다. 그에 최문우가 급히 티슈로 눈가를 눌렀다.
그러고는 잠시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맛있습니다.”
“…….”
강진이 말없이 보자, 최문우가 말했다.
“우리 수정이가 만든 것하고 비슷합니다.”
말을 하던 최문우가 피식 웃었다.
“사실 맛은 우리 수정이가 한 것보다 이게 더 맛있습니다.”
“이것도 내가 한 거거든?”
퉁명스럽게 말한 임수정은 최문우의 눈가를 손으로 쓸어올렸다.
“그럼 맛있게 먹으면 되지, 울기는 왜 울어. 나 속상하게.”
하지만 그런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최문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 수정이 비빔국수는 조금 소스가 묽은 스타일입니다.”
“그러세요?”
고개를 끄덕인 최문우가 웃으며 소스를 보았다.
“사실 이거 주실 때 살짝 의아했습니다. 비빔국수에 육수를 부으신 건가 해서요.”
최문우는 숟가락으로 양념을 살짝 떠서 맛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양념장에 깍두기 국물을 넣어서 만드신 거죠?”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임수정을 보았다.
“맞아요. 저는 비빔국수 할 때 깍두기 국물을 같이 넣어서 해요.”
임수정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 주방장이 그렇게 만듭니다.”
“저희 집 김치하고 깍두기 넣은 것하고는 맛이 조금 다르지만…… 이상하게 우리 수정이가 한 것 같네요.”
최문우가 웃으며 비빔국수를 보았다. 그 많던 비빔국수는 어느새 몇 젓가락 남아 있지 않았다.
“너무 맛있어서 먹는 것이 아까울 정도예요.”
최문우는 젓가락으로 비빔국수를 삭삭 모아서는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그렇게 남김없이 비빔국수를 먹은 최문우가 미소를 지었다.
“저를 여기로 데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최문우의 말에 임수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강진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임수정은 정말 감사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해 줄 거라 생각을 했던 한 끼 식사…… 하지만 그녀는 얼마 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강진 덕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복했다. 살아 있을 때는 정말 별일 아닌 것 같던 하나의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