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80
53화
“조순례 님, 조순례 님, 조순례 님.”
늦은 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조순례는 눈을 떴다.
“흠…….”
작게 숨을 토한 조순례는 무척이나 정신이 맑다고 느꼈다. 한 십 년 이내로 이렇게 정신이 맑았나 싶었다.
“조순례 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조순례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건장한 체격의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흠칫!
놀란 눈으로 남자를 보던 조순례가 그 옆에 있는 고운 한복을 입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무서운 점이 있다면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입고 있는 한복에도 피가 묻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섭다기보다는 안쓰럽다는 느낌이 더 있었다.
소녀를 본 조순례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제가…… 죽은 것입니까?”
조순례의 말에 남자, 강두치가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놀라지 않으십니까?”
“제가 나이가 있고 지병이 있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그리고는 조순례가 소녀, 김소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 저희 집에서 제 손주들의 옆에 계시던 분입니까?”
조순례의 물음에 김소희가 그녀를 보았다.
“나를 보지 못했을 것인데?”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허나…… 간혹 당신의 존재가 느껴졌습니다. 고귀하고 따스한…… 그런 봄날의 햇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조순례의 말에 김소희가 방 한쪽에 있는 옥난을 보았다. 아마도 옥난의 향을 오래 맡다 보니 기운에 대한 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옥난을 보던 김소희가 시선을 바닥으로 두었다.
그에 조순례가 김소희가 보는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이 살짝 굳어졌다.
바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군요. 제가 죽은 거군요.”
조순례의 말에 강두치가 말했다.
“보통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고객님께서는 빠르게 수긍하시니 이야기가 빠를 것 같습니다. 저는 망자를 모시고 가는 JS금융의 강두치입니다. 고객님의 JS 신규 계좌와 카드 발급을 도와 드리러 왔습니다.”
“저승사자이신가요?”
“예전에는 그렇게도 불렸지만, 지금은 JS 공무원입니다.”
그리고는 강두치가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내밀었다.
“일단 한 번 보시죠.”
강두치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시간을 좀 주게.”
김소희의 말에 강두치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 다 돈입니다.”
“알아서 출금해 가게. 게다가 원래 일정보다 이틀이나 앞당겨진 것이 아닌가.”
“그…… 알겠습니다. 이미 망자가 된 상황이라 시간을 많이는 드리지 못합니다. 길어야 십 분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순례를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조순례의 시신을 보았다.
“보게.”
김소희의 말에 조순례도 자신의 시신을 보았다.
그리고는 조순례가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조순례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조순례의 얼굴은 무척 평온하고 은은하게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좋은 꿈이라도 꾼 것이겠지.”
“그런 듯합니다.”
조순례의 답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내 자네의 아들과는 전생의 연이 깊네.”
“민성이하고요?”
“전생에…… 내 오라비였지.”
“아…… 그럼 혹시 전생에 아가씨와 저는?”
자신의 딸이었나 싶어 보는 조순례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관련이 없네.”
그리고는 김소희가 몸을 돌렸다.
“따르게.”
“네.”
아주 어린 소녀였지만 조순례는 자기도 모르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방을 나선 조순례는 방 밖에 서 있는 강진이를 볼 수 있었다.
“강진이구나.”
“어머님.”
강진이 자신을 부르는 것에 조순례가 잠시 멈칫했다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너는 귀신을 보는구나.”
“아셨어요?”
“그런 느낌이 들었어. 가끔 네가 우리가 못 보는 누군가를 보는 것 같다고.”
말을 하며 고개를 돌린 조순례가 멈칫했다. 강진의 뒤에 뒤돌아 서 있는 남자를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조순례가 미소를 지었다.
“혹시 네가 용수니?”
조순례의 말에 배용수가 잠시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네. 제가 용수에요.”
“후! 그래, 네가 용수구나. 그런데 왜 뒤돌아 서 있어? 얼굴 좀 보여주지.”
“그게…… 제가 죽을 때 좀 심하게 죽어서요. 보시면 무서우실 거예요.”
“나도 죽었는데 뭐가 무섭겠니. 그리고 어떤 어미가 자식을 무서워하겠니.”
어미라는 말에 잠시 있던 배용수가 머리를 긁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제가 좀 그렇죠.”
배용수가 자신의 모습을 조금 좋게 보이고 싶은 듯 웃으며 말을 했지만…… 어떻게 보면 더 무서운 귀신의 형상이었다.
얼굴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피를 흘리면서 웃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배용수의 모습에 조순례가 다가왔다. 그리고…….
스윽!
조순례가 배용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얼마나 아팠누.”
“하아…….”
조순례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깊게 토했다.
그런 배용수를 보던 조순례가 그를 안아 주었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조순례의 말에 배용수가 살며시 그녀를 마주 안았다.
“어머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배용수의 말에 조순례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쪽에 서 있는 이혜미와 강선영을 보았다.
“저희 가게 식구들이에요.”
“아…… 이렇게 처음 보네요.”
조순례가 두 귀신과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던 강진이 강두치에게 살며시 물었다.
“방금 전에 이야기를 들었는데 시간을 주라는 건 무슨 말이에요?”
조순례가 죽기는 했지만 장례식까지 삼 일의 시간이 있다. 그런데 안에서 방금 들린 소리는 바로 승천을 해야 하는데, 김소희가 자신의 돈으로 시간을 늘린 느낌이었다.
“원래 조순례 고객님의 수명은 98일 전에 끝이었습니다.”
“98일 전요?”
“그것을 누님께서 돈으로 백 일을 연장하신 것입니다.”
“백 일?”
사람의 수명도 그렇게 늘릴 수 있냐는 듯 보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JS에서 빌딩 하나는 살 돈을 누님께서 쓰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최대 백 일까지고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그리고 수명을 늘린 대상은 장례 기간에 이승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죽으면 바로 승천입니다.”
강두치가 조순례를 보며 말했다.
“지금 여기에서 숨 쉬는 일 초마다 누님의 계좌에서 돈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럼 돈이 많이 들겠네요.”
“누님이야 뭐…… 돈이 많으시니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100일인데 왜 98일에…….”
강진이 조순례를 보자, 강두치가 고개를 저었다.
“최대 백 일이라는 것입니다. 백 일 사이에 망자에게 심경의 변화나 몸에 문제가 생기면 죽을 수 있습니다.”
“설마 오늘 김장 때문에 피곤해서?”
심장이 덜컥한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태블릿을 꺼내 쭉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냥 자연사입니다.”
“자연사요?”
“흔히 그런 말이 있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마도 오늘 즐겁고 행복하셨나 봅니다.”
“그…… 하아.”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들에게 김장은 무척 힘든 일이다. 하지만…… 어머님들이 즐거워하는 일도 김치를 담그는 것이다.
김치를 담가서 가족들과 나누어 먹고 즐기는 자리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야기를 나눌 때,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으니 봐야 할 사람들을 보게나.”
“알겠습니다.”
조순례가 답을 하자 김소희가 황민성 내외가 자는 방에 다가갔다.
“들어가 보게.”
김소희의 말에 조순례가 살며시 문을 보다가 스르륵 스며들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조순례는 자고 있는 황민성과 김이슬을 보았다.
가만히 황민성에게 다가간 조순례가 그의 이마를 손으로 살며시 쓸었다.
“안쓰러운 내 새끼…….”
조순례가 가만히 황민성의 이마를 쓰다듬다가 가볍게 그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엄마가…… 너무 미안하고…… 너무 사랑해. 엄마가 갔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너무 많이 울지도 말고, 늘 행복하고 늘 건강하고…… 그렇게 오래오래 살다가 나중에 엄마 보러 와.”
작게 속삭인 조순례가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너 오는 날 이쁘게 하고 마중 나갈게.”
그리고 다시 몸을 돌리려던 조순례가 문득 아기 침대에서 자고 있는 황희와 황소희를 보았다.
손주들을 본 조순례가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미안하네. 우리 귀여운 손주들한테 인사하는 것도 잊고 있었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인데…… 막상 이렇게 되니 눈에 보이는 건 아들인 황민성뿐이었다.
황희와 황소희를 보며 조순례가 입을 열었다.
“건강이 가장 좋아. 엄마 아빠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도 공도 차고, 친구들하고 뛰어놀기도 하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커야 해. 할머니가 하늘에서 늘 기도해 줄게.”
아이들의 볼을 한 번씩 쓰다듬은 조순례가 황민성을 한 번 보고는 몸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야 황민성의 얼굴을 계속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스르륵!
조순례가 밖으로 나오자 강두치가 김소희를 보았다.
“이제 가야 합니다.”
강두치의 말에 김소희가 조순례를 보았다.
“저승도 사람 사는 곳이니 두려워할 필요 없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조순례가 강진과 배용수를 보았다.
“앞으로도 우리 민성이하고 친하게 지내줘.”
조순례의 말에 강진과 배용수가 고개를 숙였다.
“네.”
두 사람의 답에 조순례가 미소를 짓고는 김소희를 보았다.
“이제 되었습니다.”
조순례의 말에 강두치가 태블릿을 꺼내려 할 때, 강진이 급히 말했다.
“잠시만요.”
강두치가 돌아보자 강진이 주방 쪽을 보았다.
“어르신.”
강진의 부름에 잠시 후 슬며시 주방에서 정주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험…… 조 여사 오랜만입니다.”
정주현이 웃으며 말을 걸자, 조순례가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말했다.
“정 회장님?”
자신을 알아보는 것에 정주현이 환하게 웃었다.
“나를 기억하나?”
“요양원에서 가끔 뵌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왜 여기에?”
“그게…….”
정주현이 뭐라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강진이 말했다.
“회장님께서 그동안 어머님 수호령으로 있으셨어요.”
“회장님이? 내 수호령?”
수호령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는 조순례가 잠시 있다가 정주현을 보았다.
“왜 저를?”
아무래도 조순례는 정주현이 자신을 좋아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모양이었다.
정주현의 짝사랑이었던 것이다.
“그게…… 하하하! 조 여사가 내 어릴 때 동생 같아서…… 혼자 두고 갈 수가 없더라고.”
“아…… 고맙습니다.”
자신을 지켜줬다니 일단 감사한 마음에 조순례가 고개를 숙이자, 정주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자, 이제 더는 안 됩니다.”
강두치가 태블릿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에 사인을 하시면 됩니다.”
강두치의 말에 조순례가 그가 내민 태블릿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럼 이제 가시죠.”
강두치의 말에 조순례가 황민성이 있는 방을 보았다.
“아들, 건강해야 해.”
화아악!
마지막 말을 남긴 조순례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정주현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그동안 신세 졌네. 그럼 나도 가겠네.”
화아악!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주현 역시 빛이 되어 사라졌다.
***
검은 상복을 입은 강진과 황민성은 산세가 수려한 산에서 산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산밑을 보던 황민성이 한숨을 쉬고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조순례의 묘가 자리해 있었다.
잠시 그것을 보던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잘 도착하셨겠지?”
“어머니 변호사에게 이야기 들었는데 좋은 곳에 가셨대요.”
“환생하시는 건가?”
“형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오실 때 마중 나오신다고 하셨어요. 좋은 곳에서 형 살 집 마련해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황민성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가실 때 형을 깨워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음…….”
황민성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너도 사정이 있었겠지. 너도 이런저런 제약이 있잖아.”
“…….”
강진의 어깨를 손으로 두들긴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너한테는 고마워.”
강진이 보자 황민성이 어머니 묘를 보았다.
“너하고 아가씨 덕에 어머니 생일상도 내가 차려드렸고…… 어머니 가시는 삼 일 동안 음식하고 설거지도 내가 할 수 있었어.”
장례가 치러지는 삼 일 동안 음식들을 황민성이 모두 했다. 새벽에 음식을 하고 중간중간 손님이 없을 때 설거지도 다 황민성이 했다.
강진이나 김이슬이 도우려 했지만, 황민성은 묵묵히 자신이 혼자 모든 것을 했다.
“설거지가 힘들더라……. 음식 하는 것도 힘들고.”
“손님들이 많았으니까요.”
황민성이 한숨을 쉬며 어머니의 묘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런데…… 엄마는 힘들다고 안 하셨지. 그냥…… 늘 하던 설거지였고 밥이었어.”
한 번에 몰아서 하지는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하루에 세 번 설거지를 하고 밥을 차려 주었다.
그것을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자식이 나이를 먹을 때까지 늘 하던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설거지를 했을 것이고, 얼마나 많은 밥을 했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가씨께서 너희 가게에서 주방 일을 배우라 한 것은 어머니가 나에게 해 준 일이 어떠한 것인지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알라고 해 주신 것 같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신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어머니 묘지를 보다가 말했다.
“이만 내려가.”
“형은요?”
“나는…… 어머니하고 잠시 더 있을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잠시 그를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한쪽에 있는 한끼식당 식구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산에서 내려가던 강진은 뒤에서 갑자기 들리는 울음소리에 멈췄다가 한숨을 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