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강진이 후환을 걱정할 때, 황민성이 말했다.
“제가 사람을 좀 볼 줄 아는데, 저런 분은 처음입니다. 마치…… 대기업 회장님 앞에 있는 것 같은 위압감이었습니다.”
“그래요?”
“네. 어쨌든 범상치 않은 분이네요. 옷도 그렇고.”
지금 시대에 저런 한복을 입고 다니는 여인이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궁이나 민속촌 같은 곳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 강남 논현에서는 한복 입은 여성을 보기 어려웠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황민성이 김소희를 볼 때, 강진이 화제를 돌렸다.
“음식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또 김소희의 나이 이야기라도 나오면 그녀가 화를 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김소희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전에 주문한 라면으로 해 주세요.”
“쫄면 좋아하신다고 하던데?”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그걸 어…….”
어떻게, 라고 말을 하려던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조 사장님이 말씀해 주셨습니까?”
“조 사장님이 황민성 씨 오시면 쫄면 해 주라고 오만 원도 주고 가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군요.”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조 사장님하고 처음 먹은 음식이 저는 쫄면, 조 사장님은 김밥을 시키셨죠.”
“황민성 씨 가시고 조 사장님이 김밥을 시키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쫄면에 김밥으로 주십시오.”
“술 드신 것 같은데, 라면도 드릴까요?”
“그렇게 많이 못 먹습니다.”
“조금만 드시면 되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음식을 남기면 지옥에 가서 그 남긴 음식을 다 먹어야 한다 하더군요.”
지옥이라는 말에 강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지옥을 믿으세요?”
“믿는다기보다는 어릴 적 어머니가 그런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음식 남기면 지옥 가서 지금 남긴 것 다 먹어야 한다고요.”
“그렇죠. 다른 건 몰라도 음식은 버리면 벌 받아야죠.”
“강진 씨도 그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지옥 가서 다 먹어야 한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이니까요.”
그러고는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럼 쫄면하고 김밥 해 드리겠습니다.”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이 시간을 보았다.
‘12시 45분…… 59분쯤 되면 처녀귀신들 먼저 내보내야겠다.’
혹시라도 가게 안에서 현신이 풀려 버리고, 그것을 황민성이 보면 문제가 되니 말이다.
생각과 함께 강진이 쫄면 사리를 꺼내고 물을 올렸다. 그리고 김밥과 쫄면, 그리고 라면을 준비했다.
라면을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셔서 국물이 당길 터이니 라면도 끓일 생각이었다.
라면을 반 개만 넣고 다른 메뉴들도 양을 조금씩 하면 성인 혼자 먹기에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남으면 내가 먹으면 되지.’
강진도 이제 조금 출출하기도 하고 말이다.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홀을 보았다.
음식을 남기면 지옥에 가서 다 먹어야 한다는 말이 머리에 남은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는 귀신들 음식도 조금 줄여야겠다.’
귀신들은 보통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한끼식당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먹을 수 있으니, 음식에 대한 소중함을 알았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다 먹고 갔는데 오늘처럼 중간에 나가게 되는 경우는 음식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그 남은 음식들을 지옥에 가서 다 먹어야 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라면 그냥 듣고 넘길 말이지만, 귀신과 저승의 존재를 아는 강진으로서는 그냥 넘기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다시 주방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강진의 손에서 음식들이 빠르게 만들어졌다. 매콤한 쫄면과 라면, 그리고 김밥이었다.
그렇게 5분도 안 돼서 모든 음식을 만든 강진이 힐끗 냄비를 보았다.
냄비에는 계란 열 몇 개가 삶아지고 있었다.
쫄면에는 역시 삶은 계란이 올라가야 제맛이다. 하지만 시간이 5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은 꺼낼 시간이 아니었다.
그에 일단 강진이 음식들을 들고는 홀로 나왔다.
‘최고의 요리를 내지 않았다고 용수가 뭐라고 하겠네.’
쫄면에는 삶은 계란이 올라가야 최고고 완성이 되니 배용수가 보면 한 소리를 했을 것이다.
손님에게 완성된 요리를 내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계란이 삶아지는 사이 라면이 퍼질 것이니 일단 같이 내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시간도 계산해서 해야겠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음식을 들고는 황민성에게 가져다주었다.
라면을 본 황민성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라면도 만드셨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국물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대신 양은 조금 적게 했으니 드실 만할 겁니다. 그리고 먹다 배부르시면 남기세요. 제가 다 먹으면, 황민성 씨가 지옥에 가서 남은 음식 먹을 일은 없을 겁니다.”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황민성도 피식 웃었다.
“그럼 그냥 같이 드시죠.”
“손님하고 같이 먹는 건 아니죠.”
“처음 왔을 때 보니 손님들하고 같이 합석하고 계시던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건 귀신 손님이고.’
“그리고 제가 먹다 남긴 음식을 어떻게 사장님 드시라고 하겠어요.”
“일단 드시죠. 퍼지면 맛이 없습니다.”
“저는 사실 조금 퍼진 라면을 좋아합니다.”
황민성이 라면을 보다가 문득 쫄면을 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삶은 계란은 안 넣으십니까?”
“지금 삶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쫄면에 넣는 삶은 계란도 반숙 좋아하세요?”
“반숙 계란을 좋아합니다.”
“그럼 일단 드시고 계세요.”
말을 하며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지나 지금쯤 계란이 반숙으로 잘 익었을 것이다.
주방에서 계란을 조심스럽게 깐 강진이 그것을 국그릇에 담았다.
강진이 깐 계란은 열네 개였다. 이왕 삶는 것이니 처녀귀신들도 먹게 많이 삶은 것이다.
삶은 계란을 세 그릇에 나눈 강진이 그것을 홀로 가지고 갔다.
“반숙 계란입니다.”
강진이 삶은 계란 두 개가 담긴 그릇을 김소희의 앞에 놓았다.
“노른자가 살짝만 익었으니 부드럽고 고소할 것입니다.”
“고맙네.”
김소희의 말에 고개를 숙인 강진이 이혜선의 앞에도 삶은 계란을 한 무더기 올려놓았다.
“김치 올려서 먹으면 맛있더라.”
“오빠,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
그러고는 계란 두 개를 황민성에게 가져다주었다.
“여기 계란 왔습니다.”
황민성이 수저에 라면을 떠서 먹다가 계란을 쫄면 위에 올렸다.
“같이 드시죠.”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손님하고 같이 앉는 것이 좀 그렇기는 했지만, 황민성의 말대로 자기가 먹던 것을 강진이 먹는다고 하면 그도 불편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출출하기도 하고…….
강진이 작은 그릇을 가져다주자, 황민성이 쫄면을 그릇에 덜다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김밥에 김치만 들어있습니다?”
황민성이 김밥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강진이 말했다.
“전에 조 사장님하고 김밥 드셨다면서요?”
“…….”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김치 김밥을 보았다.
“아! 그래서 김치 김밥이군요.”
황민성도 조원식의 사정을 아는 듯 김치 김밥을 지긋이 보았다.
“그때는 김치 김밥이 아니셨나 보네요?”
“일반 분식점에서 김치만 넣어서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김밥이었습니다.”
“저희 식당이야 손님이 원하는 대로 음식을 해 드리니까요. 속에 들어가는 것 정도는 맞춰 드려야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치 김밥을 입에 넣고 씹었다.
아삭! 아삭!
익은 김치 주제에 아삭함이 살아 있고, 신맛 사이로 고소함과 달콤함이 어울리자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맛있군요.”
“제가 음식 솜씨가 좀 있습니다.”
웃는 강진을 보며 황민성도 웃었다.
“그래서 제가 이 가게를 좋아합니다.”
김치 김밥을 다시 집어 입에 넣은 황민성이 말했다.
“조 사장님이 맛있게 먹었을 것 같군요.”
“맛있게 드시더군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억에 맛까지 있으니…….”
그러고는 황민성이 젓가락을 들었다.
“일단 드시죠. 음식을 앞에 두고 있으니 배가 요동을 치는군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젓가락을 들어서는 쫄면을 앞접시에 덜어 먹었다.
그렇게 음식을 먹던 강진은 시간을 힐끗 보았다. 그러고는 12시 59분이 된 것에 일어나 김소희에게 다가갔다.
“아가씨.”
강진의 부름에 김소희가 마시던 소주잔을 내려놓고는, 힐끗 황민성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강진이 왜 왔는지 눈치를 챈 김소희가 일어나자 처녀귀신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다른 처녀귀신들하고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강진이 문을 열어 주자 처녀귀신들이 밖으로 나갔다.
스스슥! 스스슥!
가게 문을 나서는 것과 함께 처녀귀신들의 현신이 풀리며 원래의 귀신 형상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처녀귀신들을 따라 밖으로 나온 강진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그녀들을 보았다.
현신했을 때야 귀엽고 예쁜 처자들의 모습이지만, 귀신이 된 모습은 무서웠다.
어떻게 보면 남자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여자 귀신들이었다.
“아가씨.”
귀신의 모습으로 검을 늘어뜨리고 있던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
말없이 자신을 보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물었다.
“혹시 저기 안에 있는 손님이 어떻게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지 아십니까?”
“손님이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만, 보통 귀신들이 안에 많으면 사람은 못 들어오는데…… 저 사람은 그냥 들어와서요.”
귀신들이 바글거리는 가게 안으로 황민성이 들어왔을 때, 김소희만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그녀가 그 이유를 아나 싶은 것이다.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가게를 보았다.
“죄인이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의아함이 어린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죄인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잘해 주거라. 불쌍하고 안쓰러운 이이니.”
“그야 손님이니 잘해 주기는 하겠지만…… 왜 죄인이라 하시는지?”
강진의 생각에 죄인이라는 말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로는 들리지 않았다.
죄를 지었다고 귀신이 있는 가게에 들어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말이다.
“그것은 네가 알 필요 없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죄인?”
생각지 못한 답이었다. 그에 잠시 김소희의 뒷모습을 보던 강진이 가게를 보았다.
‘전생이나 저승에서 무슨 죄를 지었나?’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서는 황민성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저렇게 번지르르한데 죄인이라고?’
그가 입고 있는 옷과 시계, 그리고 구두는 누가 봐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죄인이라니?
“손님들 배웅도 해 주십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저희 단골이라서요.”
“그런데 아까 그분은 정말 동안이시네요.”
김소희를 말하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황민성을 보았다.
‘그런데…… 죄인이면 죄인이지, 왜 잘해 주라고 한 거지?’
거기에 ‘불쌍하고 안쓰러운’이라고 했다. 죄인이라면 굳이 잘해 줄 이유도, 불쌍하고 안쓰럽다 생각할 이유도 없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