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자네도 한 잔 받게.”
노인의 말에 중년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술을 마시고 들어가면 제 마누라가 의원님 험담을 하니 아무래도 안 먹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하하! 자네 마누라는 아직도 나를 많이 싫어하나?”
“일 많이 시키시는 상사라고 제일 싫어합니다.”
보통은 상사와 말하기 어려운 화제인 것 같은데도, 두 사람은 전혀 어려워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거 참…… 이번 설에는 내가 갈비 세트라도 하나 보내줘야겠어.”
“갈비 세트는 제가 알아서 보내고 있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보는 노인에게 중년인이 말했다.
“의원님 이름으로 제가 알아서 저희 집에 설과 추석에 갈비 세트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 저희 본가와 장인어른 댁에도 보내고 있습니다. 그거라도 보내지 않았으면 전 벌써 마누라한테 이혼당했을 겁니다.”
“그랬나? 잘했어.”
몰랐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노인을 보며 중년인이 소주를 들어 그의 잔에 따라 주었다.
“소주는 이걸로 막잔 하시지요.”
“찌개가 이렇게나 남았는데?”
아쉽다는 듯 김치찌개를 보는 노인을 보던 중년인이 고개를 저었다.
“오후에 일정이 있으십니다.”
중년인의 말에 노인이 입맛을 다시고는 소주를 마시고는 잔을 뒤집어서 내려놓았다.
“별일 없으면 이번 설에는 집에서 쉬는 걸로 하자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중년인은 이 말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무소속 삼선 의원인 오자명의 보좌관으로 이십 년이다. 그리고 그동안 추석과 설날을 제대로 보낸 것은 다섯 손가락에 겨우 찰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자명이 보좌관, 한명현을 보며 계란 프라이를 가리켰다.
“자네도 먹어 봐.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이 맛있고만.”
“저는 집에서 계란 프라이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으니 의원님 드십시오.”
“아니야. 맛이 좋아, 먹어 봐.”
오자명의 말에 한명현이 접시를 들어서는 입에 대고 계란 프라이를 흡입했다.
후루룩!
마치 라면을 먹는 것처럼 계란 프라이를 빨아들인 한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란이 촉촉한 것이 수란 같습니다.”
“맛있지.”
“맛있네요. 여기가 맛집인 것 같습니다.”
“내가 가게를 잘 정했지?”
사실은 지나가다가 배가 고프니 아무 가게나 들어가자고 해서 눈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온 거지만, 한명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이 시계를 보았다.
“바쁘신가 보네.”
점심에 밥 먹으러 온다고 했던 황민성은 두 시가 가까워 오는데도 오지 않았다.
바빠서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하며 강진이 문 앞에 둔 화이트보드를 안으로 들이고는 뒷문으로 나가 차에 다가갔다.
“들어오세요.”
강진의 말에 선주와 최훈이 스르륵! 차 문을 뚫고 나왔다. 그리고 그 옆에서 배용수도 같이 나왔다.
“차에 있었어?”
“혼자 있으면 뭐해? 심심하기만 하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문을 열자 귀신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귀신들이 TV를 보자 강진이 반찬으로 만들었던 김치전을 들고 나왔다.
“간식 좀 드세요.”
강진의 말에 최훈과 선주가 김치전을 먹으며 TV를 보았다. 귀신이 먹는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에, 강진도 같이 김치전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얼마간 TV를 보던 강진이 문득 입을 열었다.
“허연욱, 허연욱, 허연욱.”
강진이 허연욱을 부르자, 곧 허연욱이 그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어요?”
“밥 주는 사람이 부르는데 와야지요.”
웃으며 농을 하는 허연욱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실은 제가 너무 피곤해서…… 침 좀 놔 주세요.”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어떻게 보면 허연욱을 부려 먹는 것 같지만, 사실 허연욱은 침을 놓는 것을 좋아한다.
귀신이 된 그로서는 강진 외의 사람에게는 침을 놓을 수가 없으니, 강진이 침을 놓아 달라고 하면 오히려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강진에게 침을 맞으면 좋다고 하면서, 일부러라도 침도 놓고 했었다.
그에 강진이 카운터 서랍에서 일회용 침을 꺼내오자, 허연욱이 그의 손을 잡고 맥을 짚었다.
“어제 음주를 많이 하셨군요.”
“오랜만에 많이 마셨네요.”
“주독이 배출되도록 반신욕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많이 쌓였나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상의 좀 벗으시고, 바지 좀 올리시겠습니까.”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상의를 훌러덩 벗다가 문득 선주를 보고는 다시 옷을 입었다.
그 모습에 선주가 웃었다.
“상의 정도인데 뭐 어때요.”
선주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슬쩍 최훈을 보았다. 아무래도 남자 친구의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그에 최훈도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 정도로 막힌 사람은 아닙니다.”
최훈의 허락에 강진이 상의를 마저 벗고는 바지를 무릎 위까지 끌어올렸다.
그에 강진의 손을 잡은 허연욱이 그의 손을 통해 침을 놓기 시작했다.
다리와 어깨, 그리고 손과 팔에 침을 놓은 허연욱이 슬쩍 눈가로 침을 가져갔다.
“어! 눈 주위에도 하시려고요?”
“술은 눈에 영향을 끼칩니다. 화기를 뽑아내면 눈이 개운할 겁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눈 쪽은 아프던데.”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효과는 빠르지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눈 주위에 놓는 침은 무척 아팠다.
하지만 그 말대로 눈 주위에 침을 맞으면 효과는 바로 느껴졌다.
침을 맞고 나면 눈이 시원해지고 시야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강진이 살짝 눈을 감자, 허연욱이 그 손을 움직여 침을 놓기 시작했다.
“끙, 으으윽…….”
침을 놓는 것도 아프지만, 침을 놓고 살살 돌릴 때는 엄청 아팠다.
눈 주위에 침을 놓은 허연욱이 머리 위에도 침을 몇 개 더 놓고는 손을 떼었다.
몸에 침 여러 개를 꽂은 강진이 TV를 보다가 허연욱을 보았다.
“치매에 대해 좀 아세요?”
“치매라…….”
강진의 물음에 허연욱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누구 치매로 편찮으신 분이 계십니까?”
“제 주위는 아니고요. 제가 아는 분이 치매 연구를 하셔서요.”
“흠…….”
강진의 말에 잠시 한숨을 쉰 허연욱이 입을 열었다.
“모든 병이 몸과 마음을 모두 다치게 하지만, 치매는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병이지요. 슬픈 병이라고나 할까요.”
그러고는 허연욱이 말을 이었다.
“양방은 조금 더 말이 복잡해 이해하기 어려우실 테니 한방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방에서는 만병의 근원을 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신장이 나쁘고 피가 탁해지면, 뇌에 어혈이 생기고 기의 흐름이 나빠져 병이 생긴다 봅니다.”
“그뿐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세하게 들어가면 복잡하니 아주 간단하게 큰 틀만 말한 것입니다.”
“그럼 치료 방법은?”
강진의 물음에 허연욱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방과 양방을 모두 공부했으나…… 치매는 현대 의학에서 큰 벽입니다. 치매는 현재 의학으로는 완치를 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그 속도를 늦추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 정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한방에서는 치료를 어떻게 다가가나요?”
“어떻게 발병했는지에 치료 방법을 달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침으로 기력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약으로 기혈을 돌게 하고 보혈을 합니다.”
“효과는 있는 건가요?”
“효과는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완치가 아니라 그 상태를 호전시키는 수준일 뿐이지만요.”
“그럼 양방과 한방 협진을 하면 더 효과가 좋지 않을까요?”
“치매뿐만 아니라 양방과 한방은 협진을 통해 좋은 성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양방과 한방 둘 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죠. 양방은 직접적인 치료를 하지만, 몸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방은 직접적인 치료에는 약하지만, 반대로 환자의 몸을 보하는 것에는 효과가 더 좋습니다.”
“말만 들어도 협진이 참 좋은 치료군요.”
“하지만 양한방 협진이 쉽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데 왜요?”
“양방과 한방은 지향하는 치료 방법이 서로 다르고 쓰는 약 또한 다릅니다. 약이라는 것이 상생하는 것도 있지만, 서로 극성인 것도 있으니 그것을 모두 알지 못하면 약을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양방이나 한방이나 치료할 때 쓰는 기구들이 모두 다르니, 협진을 하려면 그 두 기구들을 모두 들여야 하는데…… 병원 입장에서는 돈이 문제입니다.”
“그것도…… 그렇네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개를 젓는 허연욱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저희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 황민성 씨라고 치매 연구에 투자를 많이 하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런 분이 있습니까?”
허연욱은 그동안 자신이 있던 병원에서 논문이며 환자들을 보느라 자주 오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황민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황민성 씨가 지원하는 연구소에서 치매 치료를 연구하다가 여성 정력제 물질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일리가 있습니다. 남자와 다르게 여성 정력제는 중추신경인 뇌 호르몬에 작용을 해서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해 성욕을 증가시키는 것이니…… 흠…… 그럼 치매 연구는 몰라도 뇌 연구에는 성과가 있었겠습니다.”
“다음에 그 형 오면 제가 부를 테니 와서 이야기 좀 해 보세요.”
물론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와 바둑도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양방이 아닌 한방에서 보는 치매에 대한 관점이 연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가 제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나눠 보고는 싶군요.”
말을 하던 허연욱이 강진의 손과 무릎에 꽂힌 침들을 빼기 시작했다.
“끄응!”
침들이 하나씩 빠질 때마다 강진이 작게 신음을 토했다. 아파서는 아니었다.
침이 빠질 때마다 나쁜 기운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얼굴에 있는 침들을 하나씩 뽑은 허연욱이 침들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스윽!
그리고 허연욱이 강진의 손을 놓았다.
“끄으으! 시원하다.”
강진이 기지개를 켜자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더 없으십니까?”
“선생님한테 침 맞으면 불편한 곳도 다 낫죠.”
“그럼 잘 됐습니다.”
그러고는 허연욱이 김치전을 보고는 말했다.
“저도 김치전 하나 먹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드세요.”
강진이 김치전을 가리키자,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이미 다 먹었군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김치전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김치전이 멀쩡해 보였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신이 먹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음식의 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앞에 보이는 것이 멀쩡해 보이긴 해도, 선주와 최훈 등이 이미 다 혼을 먹어 허연욱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에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이 다시 김치전을 몇 장 더 만들어서는 귀신들과 함께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김치전을 먹던 귀신들이 벌떡 일어났다.
“미친, 이런 대낮부터?”
순간 배용수가 급히 뒷문 쪽으로 가는 것에 강진이 물었다.
“처녀 귀신 와?”
“보스 온다.”
스르륵! 스르륵!
말과 함께 귀신들이 급히 문을 뚫고 사라지는 것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이 시간에?”
이때까지 김소희는 늘 저녁 영업시간에만 왔지, 이렇게 일찍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왜 오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 저 멀리 사람들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스으윽! 스으윽!
사람들이 갈라지며…….
멍!
커다란 울음과 함께 황구가 강진에게 달려왔다. 자신에게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냄새를 맡는 황구의 모습에 강진이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잘 있었어?”
학! 학!
자신의 손을 핥으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혀를 날름거리는 황구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어르신이 돌아가셨니?’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황구의 머리를 쓰다듬던 강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저만치서 김소희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옆에 웬 젊은 남자 귀신이 있었다.
훤칠한 키에 그린 듯이 짙은 눈썹과 날카롭게 솟은 콧대, 거기에 작지만 매력적인 웃음을 담고 있는 눈,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까지…….
귀신인데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배우 박보겸하고 비슷한 이미지의 남자 귀신이었다.
그리고 남자 귀신을 보던 강진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태문 어르신?’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이태문이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