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03
204화
김소희의 분위기가 변한 것에 흰둥이가 두려운 듯 귀를 뒤로 완전히 젖혔다.
그리고는 낑낑거리더니 살며시 김소희의 손가락을 핥았다. 그 모습에 김소희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흰둥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니 무서워하지 말거라.”
김소희의 말에 흰둥이의 귀가 쫑긋 서서는 다시 열심히 그녀의 손을 핥기 시작했다.
그런 흰둥이를 보던 강진이 말했다.
“저도 흰둥이 보면 너무 불편하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검을 손에서 떼어냈다.
스르륵!
검이 또 혼자 떠오르는 것을 보던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흰둥이 주인을 찾을 수 없을까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찾아서 무엇을 하려 하나?”
김소희의 물음에 강진은 할 말이 없었다. 딱히 무엇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낯짝이나 한 번 보고 싶었다. 어떻게 생긴 놈이기에 자신이 기르던 이 예쁜 아기를 놓고 갔는지 말이다.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네요. 그리고 또 아기들 키우는지도 보고 싶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흰둥이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흰둥이도 형 보고 싶니?”
왕! 왕!
김소희의 말을 알아들은 듯 크게 짖는 흰둥이를 보던 강진이 문득 그녀를 보았다.
“흰둥이 주인이 남자입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주인이었다.”
“아가씨께서는 그걸 어떻게 아시는지요?”
“인연의 끈이라는 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지.”
말을 하며 김소희가 흰둥이의 몸 너머 저 어딘가를 보았다. 아마도 그 방향에 흰둥이의 주인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소희 아가씨는 보통 귀신이 아니기는 하구나.’
김소희가 자기 입으로 처녀귀신이면서 무신이라고도 했으니…… 보통 귀신하고는 뭔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게다가 임진왜란 때 죽었으면 거의 500살은 된 귀신이고 말이다.
김소희가 소주를 한 잔 마시는 것을 보던 강진이 살며시 말했다.
“황민성 씨가 아가씨를 한 번 뵙고 싶어 합니다.”
“황민성이라…….”
잠시 말이 없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술을 먹고 괜한 이야기를 하였어.”
그러고는 김소희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술을 줄이던가 해야지.”
사십 대 아저씨들이 할 법한 말을 하며 한숨을 쉰 김소희가 소주잔을 들고는 한 모금 마셨다.
방금 술을 줄여야겠다는 귀신이 소주를 마시는 것에 강진이 작게 웃으며 그녀가 마신 소주를 땅에 뿌렸다.
쪼르륵! 쪼르륵!
그러고 잔에 다시 소주를 따라주었다.
소주잔에 소주가 담겨 있지만, 귀신이 먹었으니 귀신이 또 먹을 수는 없다.
그러니 버리고 새로 따른 것이다. 소주를 따르며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왜 죄인이라 하시는 것입니까?”
“그건 자네가 알 일이 아닐세.”
그러고는 김소희가 흰둥이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나하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
김소희의 말에 흰둥이가 그녀의 손을 혀로 한 번 핥고는 훌쩍 정자 밑으로 뛰어서는 마루 아래로 들어갔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숙여 흰둥이를 보니, 흰둥이는 자신이 있던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혀를 헥헥 내밀고 있었다.
그런 흰둥이를 보던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도 자신처럼 고개를 숙인 채 흰둥이를 보고 있었다.
“흰둥이는 여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흰둥이를 가만히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애들이 원래 이런 아이들이다.”
“네?”
“주인이 버려도 아이들은 주인을 버리지 않지.”
김소희의 씁쓸한 목소리에 강진이 흰둥이를 보다가 말했다.
“저 아이에게는 주인이 가족이니까요.”
“후!”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웃으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가만히 하늘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가족이라…… 누군가에게는 천금과 같은 무게를 가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가 아닌가.”
잠시 하늘을 보던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오늘 잘 먹었네.”
“다음에는 JS에서 닭발을 가져다가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음식이야 식당에 가서 먹어야지. 여기까지 자네가 음식을 들고 오게 하는 수고로움을 끼치기는 싫군.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황가에게 전하게. 3일 후 11시.”
그러고는 김소희가 걸음을 옮기며 공원을 나서자 강진이 그 뒷모습을 보았다.
“아가씨, 같이 가요.”
어차피 공원을 나가려면 김소희가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화아악!
김소희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
갑자기 사라진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주위에는 김소희가 보이지 않았다.
“귀신에게 홀린…… 게 맞기는 하지.”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몸을 숙여 흰둥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쇼핑백을 챙겼다.
“내일 또 올게.”
왕!
꼬리를 흔드는 흰둥이를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여기 혼자 있으면 안 추워?”
귀신이기는 해도 이 추운 겨울에 정자 밑에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것이다.
“형 따라 가면 좋을 텐데…….”
강진의 말에 흰둥이가 다가와 혀로 한 번 손을 핥아주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는 몸을 눕혔다.
그리고 눈을 감는 흰둥이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자라.”
손을 내밀어 흰둥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강진이 쇼핑백을 들고는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끼릭!
강원도 김치 저장소 문을 열고 나온 강진이 소리쳤다.
“돼랑아! 돼랑아!”
큰 소리로 돼랑이를 부른 강진이 주위를 볼 때 옆에서 만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만복의 행동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많이 안 놀라네?”
“놀랐어요.”
“리액션이 너무 약해.”
그래서 되겠냐는 듯 입맛을 다시는 만복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누나는요?”
“달래는 드라마 봐.”
“드라마요?”
“아줌마 한 명이 기억 상실 걸린 남편을 찾아서 해피엔딩 될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 아줌마가 기억 상실 걸리는…… 아주 골 때리는 드라마 있어.”
“내용 특이하네요.”
“특이하지. 그런데 여자들이 좋아해.”
만복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봉지를 내밀었다.
“이거요.”
“많이 사 왔네?”
환하게 웃으며 봉지를 받아 든 만복이 안을 보았다. 안에는 콜라와 초콜릿 그리고 도시락이 담겨 있었다.
“어르신들하고 식사하세요.”
“고맙다.”
만복이 웃으며 봉지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돼랑이 온다.”
만복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숲에서 돼랑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턱! 턱! 턱!
묵직한 걸음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돼랑이의 모습에 강진이 손을 들 때,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돼랑이 뒤로 다른 멧돼지들이 줄줄 따라오는 것이 보인 것이다.
돼랑이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멧돼지와 새끼로 보이는 멧돼지도 다섯 마리가 있었다.
‘돼랑이 마누라인가 본데…… 돼랑이보다 더 크네?’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분은 할 수 없지만, 새끼들과 같이 온 것을 보면 암컷일 것 같았다.
돼랑이 가족들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가족이 같이 왔네.”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다가와 그의 몸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이빨에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강진이 애써 두려움을 누르며 돼랑이의 몸에 손을 댔다.
까칠까칠한 털의 감촉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밥은 잘 먹고 있어?”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네요.”
강진의 말에 만복이 말했다.
“전에도 똑똑했는데 네가 가져다준 사료 먹고 더 똑똑해진 것 같아.”
“그래요?”
만복의 말에 강진이 슬쩍 돼랑이의 눈썹을 보았다. 전에 봤을 때는 은색 펄을 뿌린 것처럼 반짝였는데 이제는 눈썹이 완전히 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JS 애완 짐승들 먹는 것을 먹어서 그런가? 먹어도 몸에 나쁘지는 않다고 했는데…….’
돼랑이 모습이 변한 이유가 짐작은 되었다. 자신이 전에 사다 준 JS 애완동물용 사료를 먹어서일 것이다.
그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 후에는 돼지 사료를 먹였으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돼랑이 가족들을 보았다.
보니 돼랑이 마누라와 새끼들도 눈썹이 은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허 선생님이 멧돼지들 진맥도 할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명의라고 해도 사람과 짐승이 다른데 허연욱에게 돼랑이 식구들 진맥해 달라고 하면 무례해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강진은 저장소 앞에 놓아둔 돼지 사료를 가리켰다.
“밥 가져왔어.”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사료 포대를 보고는 뒤에 있는 멧돼지를 보았다.
그러자 멧돼지가 사료에 다가가서는 냄새를 맡았다. 그런 멧돼지를 보던 강진이 만복을 보았다.
“돼랑이 아내예요?”
“돼순이라고 불러.”
“돼순이?”
“그냥 내가 부르는 거지.”
만복의 말에 강진이 바닥에 놓아둔 봉지에서 커다란 소시지를 꺼냈다.
흔히들 옛날 소시지라고 하는 건데, JS 편의점에서도 있어서 돼랑이 주려고 사 온 것이다.
이 정도 크기는 돼야 간식이 될 테니 말이다.
소시지를 꺼낸 강진이 비닐을 벗겨서는 한 덩이를 돼랑이 입에 넣어주고 돼순이에게도 한 덩이 주었다.
돼순이가 입에 문 소시지를 새끼들에게 가져가 나눠 주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네 아기들도 내가 줄 거야.”
돼순이에게 소시지를 떼어주고는 강진이 새끼들에게 다른 조각들을 주었다.
“나중에 커서 형 들이박고 그러면 안 된다.”
강진의 말을 새끼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그저 소시지를 먹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그런 새끼들의 모습에 강진이 살며시 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멧돼지들의 등을 쓰다듬으며 소시지를 더 잘라 준 강진이 만복을 보았다.
“또 올게요.”
“온 김에 도라지 좀 챙겨가지?”
“도라지요?”
“아니면 석청도 좀 가져가던가. 아! 요즘 날씨 추워져서 지금 석청이 아주 진하고 좋아.”
“겨울 석청이 좋나요?”
“벌들이 겨울나려고 꿀을 막 모아 놓잖아.”
“그렇겠죠.”
“그럼 그 꿀을 겨울 동안 먹으려고 숙성 같은 것을 한대. 그래서 더 좋다고 하더라.”
“더라?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TV 산속에 산다인가? 그 프로에서 봤어.”
“TV에서 들은 거예요?”
“TV만 잘 봐도 모르는 것이 없다. 그래서 캐러 갈래?”
“몸에 좋다는데 그러죠.”
강진의 말에 만복이 돼랑이를 보았다.
“돼랑아, 강진이 좀 태워줘.”
만복의 말에 돼랑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진의 사타구니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 어!”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강진이 놀랄 때, 돼랑이가 머리를 한 번 튕겼다.
부웅!
그러자 강진의 몸이 돼랑이 몸 위로 털썩 앉혀졌다.
“잘 잡아.”
“네? 어디를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만복을 볼 때, 돼랑이가 땅을 박찼다.
파앗!
“으악!”
돼랑이가 땅을 박차는 것과 함께 강진이 급히 몸을 숙이며 목을 끌어안았다.
덥석!
“으아악!”
돼랑이 등에 업혀 앞으로 쏘아져 가는 강진을 보며 만복이 봉지를 들고는 몸을 움직였다.
스윽!
그러자 만복의 형체가 사라졌다.
***
띠링!
풍경 소리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수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귀신 봤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들어오는 강진의 모습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그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손에 들린 봉지를 테이블에 올렸다.
툭!
“나 올라간다.”
“무슨 일 있어?”
“아무 일 없어.”
말을 하며 강진이 걸음을 옮기는 것에 배용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보았다.
강진이 다리를 살짝 벌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음을 옮기고 있던 탓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배용수가 문득 말했다.
“물에 빠졌다 왔어? 왜 바지에 물이 그렇게 묻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술을 깨물고는 말없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강진이 한숨을 토했다.
‘돼랑이한테 미안하네.’
입맛을 다신 강진이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돼랑이 등에다 말 그대로 작은 실수를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