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6
26화
JS 금융의 실버 등급의 VIP 고객이라는 말에 강진이 물었다.
“등급도 있습니까?”
“그럼요.”
“그럼 저는?”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노력하십시오.”
“아…….”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자신은 아직 등급 외인 것이다.
‘백만 원도 입금했는데…… 나는 아직도 VIP가 아니구나.’
하긴 생각을 해 보면 나쁘게는 살지 않았지만 착한 일도 그리 많이 하면서 살지 않았다.
그러니 JS 금융의 VIP급이 되지 못한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채영호가 말했다.
“저는 VIP가 될 일을 하지 않았는데…….”
“생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지 않으셨습니까. 다달이 불우한 아이들에게도 후원을 해 주시고 주말에는 보육원에 봉사 활동도 하시고.”
“하지만 금액이 얼마 안 되는데…….”
채영호의 말에 강두치가 고개를 저었다.
“채영호 씨는 한 달에 삼십만 원을, 열 명의 아이들에게 삼만 원씩 후원을 했습니다.”
“그…… 네.”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긁는 채영호를 보며 강두치가 말했다.
“큰일을 하신 것입니다.”
“큰일이라니요. 고작 삼십만 원밖에 안 되는데요.”
“삼십만 원이 작은 돈 같지만…… 채영호 씨 사정에서는 큰돈입니다. 부자의 삼십만 원과 채영호 씨 같은 분의 삼십만 원은 가치가 다른 것입니다. 즉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중얼거렸다.
“희생하는 마음?”
“착한 일이라는 것 자체가 뭔가를 희생해야 할 수 있는 겁니다.”
“착한 일이 그냥 착한 일이지, 희생까지야…….”
“모든 일은 재물이 아니더라도 시간과 인력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사용한다면 이는 착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희 JS 금융은 그것을 수치화해서 입금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좋은 일도 뭔가 복잡하군요.”
“복잡한 것 없습니다. 그냥 좋은 일을 하시면 좋은 일이 되는 겁니다.”
웃으며 말을 한 강두치가 채영호를 보았다.
“시간이 없으니 채영호 고객님, 이쪽으로 앉으시죠.”
강두치가 비어 있는 자리를 가리키자 채영호와 신수호가 자리에 앉았다.
채영호가 자리에 앉자 강두치가 신수호를 보았다.
“일단 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지.”
친분이 있는 듯 서로 말을 놓은 신수호가 채영호를 보았다.
“채영호 씨는 JS 금융의 VIP로서 저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고용하시겠습니까?”
“누구신데 제가……?”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JS 변호사 협회, 2급 변호사 신수호입니다.”
“변호사?”
“채영호 씨가 원하시는 이승의 법적 대리를 제가 맡게 될 것입니다. 저를 고용하시겠습니까?”
“변호사시면…… 돈이 많이 들지 않습니까?”
“많이 듭니다.”
대놓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에 채영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얼마나 드는지…….”
“이번 건 같은 경우는 이천만 원입니다.”
이천만 원이라는 말에 채영호와 강진의 얼굴에 동시에 놀람이 어렸다.
‘이천만 원?’
생각도 못 해 본 큰 액수다. 백만 원도 엄청 큰돈이라 여기는 강진에게 이천만 원? 생각도 못 한 큰 금액이었다.
그에 놀란 둘을 보며 신수호가 입을 열었다.
“비싸다 여기시겠지만…… 망자가 이승의 일에 관여하는 겁니다.”
신수호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채영호가 말했다.
“제게는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채영호의 말에 강두치가 서류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냈다.
‘귀신도 최첨단이네.’
태블릿을 꺼낸 강두치가 화면을 조작하고는 말했다.
“채영호 씨의 JS 계좌에는 현재 6520만 4234원이 입금되어 있습니다.”
“육천만 원요?”
채영호가 깜짝 놀라 하는 말에 옆에서 애들 밥 먹는 것을 돕고 있던 아내 역시 놀란 듯 남편과 강두치를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 그런 큰돈이?”
“좋은 일을 하면 티가 안 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다 돌려받게 되는 겁니다. 유식한 말로 인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육천만 원이 제 돈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채영호와 아내가 놀라 보는 것을 보며 신수호가 말했다.
“고용하시겠습니까?”
신수호의 말에 채영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내를 보았다. 그 시선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채영호가 말했다.
“고용하겠습니다.”
채영호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 가방에서 종이를 몇 장 꺼냈다.
“이건 고용 계약서입니다.”
신수호가 주는 계약서에 채영호가 사인을 하자, 신수호가 그것을 강두치에게 내밀었다.
그에 강두치가 서류를 보고는 태블릿을 조작했다.
“이천만 원 입금했네.”
강두치의 말에 신수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채영호 씨 이쪽으로 오십시오.”
신수호가 채영호를 데리고 한쪽 구석진 자리로 가서는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종이를 꺼내 뭔가를 쓰게 하고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내 음성도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강두치에게 슬쩍 물었다.
“돈만 있으면 망자도 이승의 일에 관여할 수 있는 겁니까?”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데…… 귀신이라고 사람을 못 부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럼 뭐든 할 수 있는 겁니까?”
“돈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럼 나쁜 귀신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을 죽인다거나……?”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웃었다.
“나쁜 귀신이라…… 그것도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나쁜 자가 그만한 돈을 모을 수 있겠습니까? 나쁜 짓을 잔뜩 해서 돈을 모으기는커녕 통장에 마이너스만 가득할 것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도 사람처럼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하다.
하지만 저승의 돈은 이승의 돈과 다르다. 살아 있을 때 재물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직 살아 있을 때의 선업을 기준으로 돈이 생긴다.
살아 있을 나쁜 자들은 통장에 돈이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 통장일 것이다. 그러니 나쁜 짓을 하고 싶어도, 나쁜 짓을 할 돈이 없는 것이다.
강두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강진이 신수호 쪽을 보았다.
신수호는 일어나서 채영호와 악수를 하고는 강두치를 보았다.
“가세.”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급히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신 변호사님.”
강진의 부름에 신수호가 그를 보았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타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가게를 맡겼으니 살폈을 뿐입니다.”
“말은 맞지만…… 살폈다고 해도 어떻게 바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까?”
“집에서 쉬고 있던 차라 바로 왔습니다.”
“집이 어디신데요?”
“멀지 않습니다. 그럼…….”
신수호가 더는 말하지 않고 가게를 나서자 강두치가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저 친구가 원래 할 말만 하는 그런 성격입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웃으며 강두치도 가게를 나가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이놈의 가게에 얽혔다 하면 사람도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 일을 이승도 하고 저승도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가족과 앉는 채영호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일은 잘 되셨습니까?”
“변호사님이 해결해 주신다 하셨습니다.”
채영호의 얼굴은 밝았다. 아무래도 신수호가 일처리를 잘하겠다고, 이야기가 잘 된 모양이었다.
“잘 됐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일이 잘 돼서 다행입니다.”
웃으며 강진이 탁자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준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배용수는 어느새 주방을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놓은 상태였다.
‘역시 돈을 받고 일하는 놈이 뭐가 다르기는 다르네.’
그런 생각을 할 때 문이 열리며 도망쳤던 귀신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손님들 다시 왔다.”
“알았어!”
말과 함께 배용수가 프라이팬을 올리고는 소리쳤다.
“뭐 먹을 거예요! 시간 없으니 빨리 말해요!”
귀신들이 빨리 자신들이 먹을 것을 주문하자 배용수와 강진이 음식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
아침 일찍 일어난 강진은 평소처럼 빗자루를 들고 가게를 나섰다.
“끄응! 요즘 술을 너무 많이 먹나?”
귀신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난 후 매일 술을 먹는 것 같았다.
특히 배용수가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이후에는, 음식점보다는 술집 주인이 된 것 같았다.
어쨌든 쓰린 속을 잡고 가게 문을 열던 강진이 그대로 굳어졌다.
앞에는 희뿌연 존재들이 서 있었다. 어제 본 채영호 귀신 일가처럼 말이다.
그들이 귀신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리고 놀라지도 않았다. 채영호 가족을 봤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 굳어진 것은 다른 이유였다.
무서웠다.
어떤 자는 눈과 입, 코, 귀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어떤 자는 양쪽 팔이 으깨진 채 몸에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또 어떤 자는 머리를 자신의 손에 들고 서 있었다.
그러니…… 놀래? 안 놀래?
답은 놀람이었다.
잠시 굳은 눈과 몸으로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천천히 손을 들어 문을 닫았다.
덜컥!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진이 풀린 강진이 털썩 주저앉았다.
“어우 씨, 무서라.”
주저앉은 채 문을 보던 강진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지?”
“방금 문 열었을 때 혹시 우리 본 것 아닐까?”
“벌써 우리가 보일까?”
“보일 수도 있죠. 하루 종일 가게에 있고 삼시 세끼도 다 여기서 먹는데…….”
“강진아! 이강진! 나 용수야, 배용수.”
밖에서 들리는 배용수의 목소리에 강진이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용수?”
“응, 나야! 그런데 이제 우리 보여?”
보이냐는 말에 강진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보이냐는 말에 방금 전 봤던 귀신들이 떠오른 것이다.
“괜찮아?”
“응.”
“처음이라 많이 놀랐겠다. 그래도 겉만 다르지, 식당에 오던 우리들이야.”
배용수의 목소리에 강진이 잠시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슬며시 문을 열었다.
덜컥!
문을 연 강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문을 열자 방금 전 본 귀신들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괜찮아. 겉만 이렇지, 안 무서워해도 돼.”
귀와 눈, 그리고 입과 코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용수야?”
“응, 나야.”
배용수의 답에 강진이 다른 귀신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놀라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식당에 오는 귀신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기겁을 하게 만들었던, 양팔이 으깨져 있고 온몸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것은…… 최호철이었다.
‘대체 호철 형은 어떻게 죽었기에 몸이 저렇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귀신 중 한 명이 나왔다. 다른 귀신들에 비해 그나마 흉한 것이 덜했다.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잠시 봅시다.”
귀신이 다가와서는 강진의 가슴에 손가락을 대고는 몇 곳을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누르는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귀신이 손을 대자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 두근거리며 뛰던 가슴이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건?”
“심장을 진정시키는 혈을 몇 곳 눌렀습니다.”
“그런 것도 할 줄 아세요?”
“제가 명의 귀신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귀신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이 사장, 몸이 많이 허합니다.”
“제가요?”
“식사를 제때 잘 못 챙겨 드신 것 같습니다. 위도 안 좋고 간도 안 좋고…… 무릎도 많이 약하군요. 게다가 허리도 안 좋고.”
“제 몸이 그리 안 좋습니까?”
“아침에 일어날 때 허리가 시큰하고, 가끔씩 헛트림도 나오고 하지 않습니까?”
“네.”
강진의 답에 명의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밥값도 할 겸 제가 진료를 좀 해 드리지요.”
명의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제는 귀신한테 치료를 받게 생겼네.’
귀신들한테 음식을 만들어 팔고, 귀신 요리사를 쓰고…… 이제는 귀신한테 진료까지 받게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