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79
280화
소주를 두 병 정도 나눠 마셨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보니 잠바와 청바지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요.”
반갑게 손을 드는 강상식의 모습에 정몽현이 가볍게 손을 들다가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눈을 찡그렸다.
“가볍게 먹자며?”
“가볍게 먹자는 거죠.”
“그런데 기자가 있어?”
홍석과 이몽운을 바로 알아보는 정몽현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일단 여기 앉아요. 여기 음식 맛있어요.”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기자들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강상식이 강진을 보았다.
“사장님, 여기 음식 좀 부탁해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일어나 주방에 들어간 뒤, 준비해 놓은 음식을 그릇에 덜었다.
정몽현이 올 때에 맞춰서 낼 수 있게끔 미리 준비를 해 뒀던 것이다. 김치찌개와 삼겹살 소금구이를 챙기고 오이와 당근 썬 것을 고추장과 함께 챙겨 나왔다.
강진이 음식들을 탁자에 내려놓자 강상식이 웃으며 소주를 들었다. 그에 정몽현이 힐끗 기자들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잔을 들었다.
“무슨 생각이야?”
“좋은 생각입니다.”
“이게 까불어.”
격의 없는 정몽현의 말에 강상식이 소주병을 내밀자, 정몽현이 그에게 소주를 따라주었다.
쪼르륵!
“형도 여기 이 사장님 아시죠?”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힐끗 강진을 보았다.
“황민성 사장하고 친하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었지.”
정몽현의 입에서 황민성의 이름이 나오자 강진은 새삼 그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확실히 민성 형이 대단한 분이기는 하구나.’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강상식이 잔을 들자 정몽현도 잔을 들고는 가볍게 건배를 하고는 마셨다.
“이 사장님도 같이 하시죠.”
“이쪽 손님이 불편해하실 것 같은데…….”
“가볍게 먹는 거니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몽현 형 사람 그렇게 가리는 분 아닙니다.”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입맛을 다시고는 앞자리를 가리켰다.
“같이 한잔하시죠.”
정몽현의 말에 강진이 자리에 앉으며 그를 보았다.
‘사람 상당히 괜찮네.’
사람을 격의 없이 대하는 것이 강진은 마음에 들었다. 축구 협회 회장을 떠나서 현기그룹 사람이면 일반 사람 정도는 눈 아래로 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복장도 수수하고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강상식이 잡다한 이야기를 하며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옛날이야기나 예전 같이 축구 이야기, 혹은 군대 이야기를 나눴다.
“두 분도 군대 다녀오셨어요?”
“그럼요. 저희도 남자인데 당연히 군대 갔다 왔죠.”
“재벌들은 많이들 안 가시던데?”
“안 가는 애들도 많은데 다 안 가는 건 아니죠.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 군대 안 가면 기업 이미지에도 안 좋고. 군대는 당연히 다녀와야죠.”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정몽현이 김치찌개 고기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찌개 맛있네요.”
“고맙습니다.”
“김치찌개 좋아해서 자주 먹었지만 이렇게 맛있는 김치찌개는 오랜만이네요. 소주 안주로 딱이에요.”
웃으며 정몽현이 소주를 마시고는 빈 잔을 내밀었다.
그에 강상식이 잔에 소주를 따라주자, 정몽현이 말했다.
“이제 할 이야기 해 봐.”
정몽현의 말에 강상식이 이제는 분위기가 익었다 생각했는지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종기 나면 짜야겠죠.”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그를 보았다.
“회사에 무슨 문제 있어?”
“제가 형하고 회사 이야기 하는 것 보셨어요?”
“그건 그러네.”
강상식과 정몽현은 개인 친분으로 만날 뿐, 서로 만나면 회사 이야기나 도와달라는 이야기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기업 관계로 알고 지냈고, 다른 재벌가 자제들과 달리 서로 축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친분을 쌓아가기는 했지만 회사 일로는 엮이지 않았다.
게다가 강상식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친분을 과시하지도 않았기에 서로 편하게 만나는 사이였다.
“그럼 뭔데?”
정몽현의 물음에 강상식이 그를 지긋이 보다가 말했다.
“오늘 이 사장님하고 보육원에 음식 봉사하고 왔습니다.”
“봉사? 너 무슨 사고 쳤어?”
대뜸 사고라는 말에 강상식이 눈을 찡그렸다.
“무슨 봉사를 사고 쳤다고 가요?”
강상식이 버럭 하는 것에 정몽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봉사 활동 같은 것 사진 찍으러 갈 때밖에는 안 가잖아?”
“그건…… 어쨌든 이번에는 이 사장님하고 나하고 둘이 가서 장작도 패고 청소도 하고. 언론 모르게 갔어요.”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힐끗 비서와 함께 술을 마시는 기자 둘을 보았다.
기자가 둘이나 여기에 있는데 ‘언론 모르게’가 말이 되냐는 시선이었다.
“그건 다른 문제 때문에 부른 겁니다.”
“그럼 그 다른 문제에 나도 필요하다는 건가?”
잠시 강상식을 보던 정몽현이 입맛을 다시고는 소주를 입에 가져댔다.
꿀꺽!
소주를 마시고 김치찌개를 수저로 떠서 먹은 정몽현이 말했다.
“그 문제가 축구 협회야?”
정몽현은 강상식과 함께 있던 스포츠 기자, 그리고 시사일간지 기자를 보고 공통점을 찾아냈다.
바로 스포츠와 문제, 그리고 자신이 있으니 축구 협회를 짐작한 것이다.
정몽현의 날카로운 지적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학원 축구요.”
“학원 축구?”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원 축구가 왜?”
“형도 축구 판에 돈 오고 가는 것 아시잖아요.”
그 말에 정몽현은 그저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너도 알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관계가 끼면 돈이 오갈 수밖에 없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정몽현을 보며 강상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잘 알죠.”
강상식도 돈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전에 황민성에게 좋은 말 해 주라고 강진에게 돈을 찔러 줬던 것도 그였으니 말이다.
“그럼 뭐가 문제야?”
“실력 있는 애들이 대회를 못 나가고 경기를 못 뛰는 것이 문제죠. 돈이 없어도 경기는 뛰어야 하지 않겠어요?”
강상식이 정몽현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정몽현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서 레드윙 유스에서 여섯 명이 합격했다고?”
“네.”
“이거 알려지면 그 학교에서 항의할 거야.”
“항의 정도쯤이야…… 신경 안 씁니다. 언론에서 알고 파들어 오면 애들 실력 보여주고 이런 애들이 이때까지 시합 한 번 안 한 것이 말이 되냐고 반대로 역공할 겁니다.”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신입생도 아니고 3학년이 테스트 받았으면 기준치도 높았을 텐데 잘 통과했나 보네?”
“제가 직접 봤는데 잘하더군요.”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그를 보았다.
“네가 직접 가서 테스트 봤어?”
“네.”
“너 때문에 합격 시킨 것 아냐?”
“제가 구단 쪽에 무슨 힘이 있나요?”
“금칠할 힘은 없어도 똥칠할 힘은 있지.”
정몽현의 말에 강상식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뭐가?”
“형이 내일 직접 가서 봐요.”
“누구를? 그 애들을?”
“우리 유스하고 형 입김 닿는 유스 팀 두 개로 시합 붙여 봅시다.”
강상식의 말에 정몽현이 피식 웃었다.
“그게 말이 되냐?”
“왜요?”
“유스 팀 하나 움직여서 시합 붙이는 건 일도 아니기는 한데…… 그 애들 오늘 팀에 합류했다며?”
“그렇죠.”
“손발이 안 맞을 것 아냐.”
손발이라는 말에 강상식이 눈을 찡그렸다. 맞는 말이다. 손발이 맞아야 도둑질이라고 하는데…… 팀 경기에서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손발이 안 맞으면 제 실력을 내는 것은 어렵다.
“아…….”
“동네 축구면 손발 안 맞아도 잘하는 애가 있는 팀이 이기지만, 고등 축구 레벨이면 손발이 안 맞으면 자기 실력 내기 어렵지.”
정몽현이 소주잔을 들어 마시고는 마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뭔데?”
“형이 나서서 백 감독 징계 먹이고 앞으로 축구 판에 발 못 붙이게 하는 거요.”
“협회장이 무슨 깡패냐? 그리고 말이 협회장이지. 밑에 사람들이 일 다 하지, 나는 하는 것 별로 없어. 그냥 돈이나 가져다주고 국대 있을 때나 경기장 가서 얼굴 비추는 것 정도지.”
말을 하며 정몽현이 잔을 들자 강진이 슬쩍 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그래도 돈 주는 사람이 제일 센 사람 아니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정몽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협회장은 본업이 축구 협회장이 아닙니다. 저도 현기건설 대표이사 하면서 겸임을 하는 거라서 대부분 밑에 사람들이 알아서 합니다. 그래서 딱히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회장이 일을 추진하면 밑에 사람들이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시할 수는 없죠. 명색이 회장이고…….”
정몽현이 피식 웃었다.
“돈 주는 사람이 저 아니겠습니까.”
“혹시 명분이 부족해서 그러신 건가요?”
“명분이라…….”
강진의 말에 정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분만 있다면야…….”
말을 하던 정몽현이 문득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홍석을 보았다.
“명분이 있으면 축구 팬들이 저를 지지하겠습니까?”
“부패 개혁만큼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도 없지요.”
홍석의 말에 정몽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강상식을 보았다.
“내일 연습 경기 하자.”
“내일요?”
의아한 듯 보는 강상식을 보며 정몽현이 말했다.
“너희 유스 팀하고…….”
정몽현이 강상식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유스 팀하고 내일 2시에 시합하자.”
“그…… 아직 손발도 안 맞춰서 힘들지 않을까요?”
홍석의 말에 정몽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여섯 명 데려갔다면서.”
“네.”
“최소한 그 여섯끼리는 손발이 잘 맞을 것 아냐?”
“그건 그렇겠죠?”
“그럼 다섯 명만 더 있으면 되는 것 아냐?”
“그 다섯 명하고 손발이 안 맞을 텐데…….”
“그래도 여섯 명 실력 볼 수는 있겠지.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때. 어디까지나 그 여섯 명 실력 확인하려는 거니까.”
“실력 확인요?”
“그 여섯 실력이 얼마나 잘 뛰고 활약하느냐에 따라……”
정몽현이 강진을 보았다.
“이 사장님이 말을 한 명분이라는 것이 나에게 생기겠죠.”
“명분이 생기면 나서 주실 겁니까?”
“2년 있으면 월드컵도 있는데 그 전에 국민들에게 축구 협회가 놀고만 있지 않다는 것 한 번 보여 줄 기회가 되겠죠.”
그리고는 정몽현이 홍석과 이몽운을 보았다.
“오늘 여기서 나눈 이야기는 오프 더 레코드 해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정몽현의 말에 홍석이 웃었다.
“내일 좋은 기삿거리 잘 부탁합니다.”
“명분만 확실하면…… 내일 좋은 기사 드리지요.”
홍석이 웃으며 잔을 들자 홀에 있는 사람들이 술잔을 들었다.
***
오후 2시 20분 무렵, 강진은 푸드 트럭을 타고 수원 레드윙 유스가 사용하는 축구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강진은 서둘러 축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날씨 따뜻해서 공 차기 좋겠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축구장 관람석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구장을 보니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붉은 유니폼을 입은 진영으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어디가 어느 팀인지 모르는 강진이 빠르게 선수들을 보다가 공을 몰고 가는 선수의 앞을 막아서는 붉은 유니폼 장희섭을 발견했다.
‘붉은색이 레드윙 유스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자세를 낮춘 장희섭이 발을 움직여 상대의 공을 빼냈다.
그리고 장희섭은 공을 빼내는 것과 동시에 공을 앞으로 툭 차고는 총알처럼 쏘아져나갔다.
파앗!
장희섭이 공을 잡고 타가는 것과 함께 관람석에 있던 학부모들과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연신 소리를 질렀다.
“와!”
“16번 진짜 빠르다!”
“육상 선수야 뭐야?”
장희섭이 뛰는 것과 함께 상대 진영도 빠르게 내려왔다. 그리고……
장희섭이 그대로 공을 앞으로 크게 찼다.
펑!
대포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공을 향해 보육원에서 봤던 공격수가 그대로 슛을 때렸다.
골키퍼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에 강진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이스.’
미소를 지으며 강진이 힐끗 점수판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