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조금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강진이 요리 연습장을 다시 뒤적일 때, 배용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왜 안 해?”
홀에 앉아 있던 배용수는 강진이 냉장고 문을 열지 않는 것을 보고 들어온 것이다.
“요리 연습장에 고추 된장범벅이 없어.”
“없어?”
“없어.”
없다는 말에 배용수가 연습장을 보고는 말했다.
“하긴, 너무 쉬운 요리라 안 적으셨나 보네. 그리 어려운 음식 아니야. 내가 알려 줄게.”
“할 줄 알아?”
“무슨 그런 말을…….”
그러고는 배용수가 말을 이었다.
“된장에 고추 버무린 간단한 거야.”
“된장에 고추를 버무려? 그럴 거면 찍어 먹으면 되잖아.”
“그것하고는 또 다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 연습장에 있는 요리가 아니면 요리를 못하는 것이 강진의 실력이다.
하지만 된장에 고추를 버무리는 수준이라면 요리라고 할 것도 없지 않은가?
“알았어.”
“일단 청양고추 꺼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에서 청양고추가 담긴 봉지를 꺼냈다.
“통통한 놈으로 열 개 정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봉지 안에서 청양고추를 골라 꺼냈다.
“고추 상태 좋네. 얼음 꺼내서 담가놔.”
배용수의 지시에 따라 얼음을 꺼내 그 안에 청양고추를 담갔다.
“고추 된장범벅은 어렵지 않아. 그리고 여사님 된장이 오죽 맛있냐? 그냥 찍어 먹어도 맛있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된장을 꺼내 덜은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했다.
“이제 고추를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잘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칼을 쥐고는 고추를 잘랐다.
서걱! 서걱!
요리 연습장에 있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고추는 잘 잘렸다. 그리고 재료를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자르는 것은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쉬운 것이고 말이다.
고추를 자르자 배용수가 볼을 가리켰다.
“볼에 넣고 마늘 반 숟가락 정도, 된장은 두 숟가락, 올리고당…….”
볼에 재료들을 넣자 배용수가 말했다.
“버무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추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살살 하면서도 힘 있게 해야지.”
“살살 하면서 어떻게 힘 있게 하냐?”
“전에 가지무침 할 때는 잘하더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버무리던 고추와 된장을 보았다.
‘가지무침…….’
잠시 눈을 감은 강진이 전에 한 가지무침을 떠올렸다.
‘그래 이건 가지무침이다.’
가지무침을 떠올리며 강진이 손을 움직였다.
스스슥! 스슥!
고추 된장범벅이 아닌 가지무침을 한다 생각을 하자, 손이 그대로 움직였다.
강진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본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네.”
“그래?”
“보통 버무리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데…… 이걸 어떻게 버무리느냐에 따라 양념이 고르게 스며들어. 그리고 재료도 손상이 안 가고…… 뭐 이건 고추라서 재료가 뭉개지지는 않겠지만, 식감이 떨어져.”
“손으로 문지른다고 고추 식감이 떨어져?”
“당연하지. 어떤 식재료든 손이 많이 가면 식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거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매운 고추 된장범벅이 완성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 두르고 비벼.”
“얼마나?”
“한 바퀴만 둘러.”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살짝 참기름을 두르고는 손으로 잘 섞었다.
그러고는 매운 고추 된장범벅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얼음에 담갔다가 만들어서 그런지 아삭함이 더 좋았다. 게다가…….
‘맵다. 하지만 맛있네.’
청양고추로 만들어서 매운맛이 있기는 했지만 맛이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매운 고추 된장범벅을 그릇에 담은 반찬을 가지고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임호진이 매운 고추 된장범벅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식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삭아삭한 소리에 강진의 입에도 다시 침이 고였다.
방금 먹은 매운맛이 떠오르자 침이 고이는 것이다.
“입에 맞으세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맛있습니다.”
“처음 만들어 보는 거라 걱정했는데 입에 맞으셔서 다행입니다.”
“아주 맛있습니다.”
“점심에 먹던 바지락 된장국이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임호진이 매운 고추 된장범벅을 다시 집어 입에 넣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임호진이 말했다.
“이강진 씨, 밥 먹었습니까?”
“아직요.”
“그럼 같이 드시죠.”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강진도 밥은 먹어야 하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밥그릇을 들고 강진이 자리에 앉았다.
“다른 분들은 다 퇴근하셨나요?”
“최미나 대리가 일이 남아서 남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퇴근했습니다.”
말을 하는 임호진이 밥에 신경을 쓰는 것 같자, 강진도 더는 말을 하지 않고 같이 밥을 먹었다.
‘확실히 따뜻한 밥에 먹으니 더 맛있네.’
물론 매운 고추 된장범벅이 아니더라도 여기에서는 언제나 밥은 맛있게 먹는 편이었다.
강진이 만든 밑반찬들은 모두 요리 연습장을 보고 만든 맛있는 음식들이니 말이다.
김치에 밥을 싸 먹고, 김무침을 집어 먹고, 멸치볶음은 밥에 비벼 먹었다.
딱히 메인이 되는 음식은 없었지만, 강진과 임호진 둘 다 맛있게 밥을 먹었다.
찬물에 물을 말아 매운 고추 된장범벅을 먹던 임호진이 미소를 지었다.
“아내가 해 주던 것이 생각이 나서 왔는데…… 아내가 해 준 것보다 더 맛이 좋군요.”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사별하신 건가?’
그 시선에 임호진이 웃었다.
“애들하고 중국에 있습니다.”
“아!”
“사별이라도 한 줄 알았습니까?”
웃는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 이야길 하실 때 그리움이 느껴지셔서요.”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립기는 하죠. 애들 생각해서 보내기는 했는데…… 기러기 아빠가 정말 못할 짓입니다.”
“가족은 힘들어도 같이 사는 것이 최고죠.”
“맞습니다.”
웃으며 말을 한 임호진이 문득 강진을 보았다.
“그리움이 느껴진다는 것이, 혹 심리학입니까?”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심리학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눈치입니다.”
“눈치?”
“교수님들이 들으면 화내실 수도 있지만…… 심리학은 사람들이 눈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을 적어 놓은 학문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럼 이강진 씨는 눈치가 참 빠른가 보군요.”
“제가 어려서부터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거든요. 진상 손님부터, 좋은 손님, 착한 손님, 이상한 손님 등등 안 겪어 본 사람들이 없어요. 그렇다 보니 눈치가 좀 좋습니다.”
강진의 답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를 보았다.
“그럼 정직원이 될 생각은 없습니까?”
갑자기 훅 들어오는 묵직한 질문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머리를 긁었다.
“그렇게 보이셨나요?”
“보통 인턴들은 직원들 눈치를 보기 마련이죠. 이강진 씨처럼 눈치 빠르고 심리학도 공부한 사람이 퇴근한다고 할 때 우리 직원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눈치 못 챌 일은 없겠죠. 그런데도 가시더군요.”
“퇴근 일찍 한다고 저를 혼내시러 오신 건가요?”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오늘 온 이유는 이것이 먹고 싶어서고…… 지금 하는 말은 먹다 보니 생각이 나서 한 말입니다. 그리고 확인도 좀 하고요.”
“확인?”
“정직원이 될 인턴에게는 그에 맞는 일, 정직원이 되기 어려운 직원은 그에 맞는 일,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는 직원에게는 또 그에 맞는 일을 시켜야 하니까요.”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말했다.
“차이가 있나요?”
“있죠. 될 만한 사람에게는 실무 쪽 일을 더 시키고, 되기 어려운 직원에게는 다른 회사에 가서 적응을 하기 쉽게 여러 무역 업무를 시킵니다. 뭐라도 배우고 가야 다른 회사 가서 적응을 할 테니까요.”
“그럼 저 같은 경우는요?”
“정직원이 될 생각 없습니까?”
“인턴 기간만 마칠 생각입니다.”
“하긴 이 정도 음식 솜씨면 굳이 정직원을 노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오늘 점심과 저녁 두 번밖에 안 먹었지만, 임호진은 여기처럼 맛있는 밥집을 본 적이 없었다.
왜 손님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장사란 다 똑같다.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장사를 하면 결국은 장사가 잘 될 수밖에 없다.
어떤 기교를 부리든 수완을 부리든, 좋은 물건만큼 최고의 장사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강진의 요리 실력은 최고의 장사 밑천이었다. 게다가 이 근처에는 회사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음식이 맛있는데 손님이 없는 것이 이상할 뿐이지.’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손님이 자신 한 명뿐인 것이 이상할 뿐이었다.
“하지만 인턴 기간 중에는 열심히 일을 할 것입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사무 보조원 수준의 일 정도면 되겠죠. 가르치는 것은 어렵고 귀찮지만, 시키는 것은 쉬우니까요.”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 몇 시까지 하십니까?”
“한 시에 문 닫습니다.”
“새벽까지 영업하고 내일 출근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다가 일에 방해된다 싶으면 해고하면 되겠지.’
일 못하는 인턴 해고하는 것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 강진 같은 경우는 따로 하는 일도 있으니 해고해도 부담도 없고 말이다.
“소주 한 병 주십시오. 찬이 좋으니 소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가져다주고는 자신이 먹은 것을 치웠다.
***
홀에서 소주를 마시는 임호진을 보며 강진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혼자서 몇 시간을 먹는 거야?’
여섯 시 조금 넘어서 온 임호진은 11시가 다 되어 가는 지금도 혼자 소주를 먹고 있었다.
물론 소주를 들이붓는 것은 아니었다. 노트북을 꺼내 놓고 드라마를 보면서 웃으며 가끔씩 한 잔씩 마실 뿐이었다.
보니 술보다는 드라마를 더 즐기는 것 같았다. 술은 거들 뿐이고 말이다.
‘곧 귀신들이 들어올 텐데…….’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배용수가 말했다.
“이만 내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어?”
“그렇겠지.”
“여기 오는 귀신들 중에 나쁜 귀신들은 없지만…… 서로 불편하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에서 나왔다.
“과장님.”
강진의 부름에 임호진이 이어폰을 귀에서 떼어냈다.
“시간이 늦었는데 이만 댁에 들어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노트북 시간을 보고는 웃었다.
“드라마나 한 편 보고 간다는 것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웃으며 임호진이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시고는 안주를 집어 입에 넣었다.
임호진의 탁자에는 어묵국, 닭발볶음, 계란프라이 등이 놓여 있었다.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미안했던지, 아니면 식탐이 있는 건지 임호진은 안주를 여럿 시켜 놓고 있었다.
안주를 한 점 집어 먹고, 계란 프라이를 후루룩 마시듯이 먹은 임호진이 입을 닦았다.
“가게가 참 좋습니다.”
“그런가요?”
“이강진 씨한테는 미안하지만…… 손님이 없으니 전세 낸 것처럼 눈치 볼 것 없이 드라마도 보고 좋군요. 게다가 정해진 메뉴가 없으니 먹고 싶은 것도 골라 시킬 수 있고.”
임호진은 정말 이 가게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드라마를 보면서 혼술하는 것이었다. 원래 혼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아내와 아이 둘이 중국으로 가고 난 후 이런 취미가 생겼다.
하지만 술집이나 밥집에서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며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프로 혼술러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너무 좋았다.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면 나오고, 다른 손님들도 없으니 말이다.
“그럼 내일 봅시다.”
웃으며 가방에 노트북을 챙긴 임호진이 술값을 내다가 문득 몸을 떨었다.
“그런데…… 좀 춥지 않습니까?”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가게를 돌아보았다.
“추우세요?”
“등골이 서늘하군요. 에어컨이 세서 그런가?”
임호진이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 강진이 급히 말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임호진이 웃으며 나가자 강진이 배웅해 주었다. 그러면서 강진은 등골이 서늘하다는 임호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 앞에 귀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다.
‘얘네들 때문에 온도가 떨어졌나 보네.’
그렇지 않아도 서늘한 가게에, 밥을 먹으러 귀신들이 모여 있으니 더 추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