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97
398화
김승희가 무엇을 먹을지 궁금해하던 찰나,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웃으며 말했다.
“저도 초밥 먹을게요.”
그렇게 모든 메뉴를 받은 박문수가 주방으로 가려 할 때, 강진이 말했다.
“메뉴가 많은데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도 너처럼 직원들 있어.”
박문수도 주방에 귀신 직원들을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가 한 수 배우고 싶어서요.”
말을 하며 강진이 김승희 뒤에 있는 귀신을 보았다. 그에 박문수가 귀신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와.”
박문수가 주방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슬쩍 김승태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주방 안에는 아까 본 적이 있는 창복이라는 귀신이 있었다.
“여기는 우리 주방 직원, 창복이. 제주도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요리하다가 지금은 내 밑에 있지.”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창복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강진입니다.”
“예.”
악수를 나눈 강진이 창복을 보았다.
“제 요리사 직원 불러도 될까요. 창복 씨하고 대화하면 좋아할 것 같은데.”
배용수도 그와 같은 요리사 출신 귀신이니 말이다. 게다가 같은 저승식당 주방 일도 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불러. 창복이하고 잘 어울리겠네.”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불렀다.
화아악!
배용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강진이 물었다.
“주방 구경은 잘 했어?”
“확실히 호텔 레스토랑이라서 그런지 좋더라. 시설도 다 신식이고 재료도 좋은 것 쓰고.”
웃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박문수를 가리켰다.
“제주도 저승식당 박문수 사장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박문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배용수입니다.”
“만나서 반가워. 요리사라고?”
“네.”
배용수의 답에 박문수가 창복을 가리켰다.
“이쪽은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창복이. 얘도 요리사야.”
박문수의 말에 배용수가 창복을 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이거 인연이네요. 저도 서울에 있는 저승식당에서 일하는데.”
“그러게요. 그런데 요리사면 어디에서 일을 하셨나요?”
“운암정 숙수 배용수입니다.”
“운암정?”
“역시 아시는군요. 하긴, 한국에서 요리하면서 운암정을 모를 수가 없죠.”
배용수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어려 있었다. 요리사로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자신이 일했던 식당에 대한 자존심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운암정 하면 모두가 알아주는 한국 제일의 한식당이니 말이다.
흐뭇한 얼굴인 배용수를 보던 그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제주도 애성식당 요리사 도창복입니다.”
그의 말에 이번에는 배용수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애성식당? 미슐랭?”
배용수가 묻자 도창복이 미소를 지었다.
“아시는군요.”
“아…… 네.”
눈에 띄게 놀란 모습을 보인 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살짝 눈을 찡그렸다가 애써 미소를 짓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유명한 곳이야?”
“조금…….”
배용수의 말에 도창복이 미소를 지었다.
“미슐랭 별 2개를 받은 곳입니다.”
“미슐랭이면 좋은 거지?”
미슐랭 별 받은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은 없지만, TV에서 미슐랭, 미슐랭 하니 강진도 맛집에 붙는 등급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한우에 1++, 1+ 같은 등급이 붙는 것처럼 말이다.
“미슐랭 별 하나는 그 동네 가면 꼭 먹어 봐야 할 음식이라는 뜻이고, 미슐랭 별 두 개는 거리가 좀 있어도 가서 먹어 볼 만하다는 것이고, 별 셋은 그 음식 먹으러 여행을 가도 될 정도라는 의미야.”
“아…….”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운암정은?”
운암정이면 미슐랭 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었다.
“우리 운암정이 남에게 별을 받아야 인정을 받는 곳은 아니지.”
“그럼요. 운암정 같은 음식점에 무슨 미슐랭 별이 필요하겠습니까? 전통과 역사가 바로 별이고 등급이지요.”
자신의 말을 인정하는 도창복을 배용수가 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도창복이 미소를 지었다.
“저희 가게처럼 전통과 역사가 짧은 식당이나 세계적으로 인정해 주는 미슐랭 별이 필요할 뿐이죠.”
도창복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어쭈! 이 새끼가 까부네?’
배용수에게 두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첫째는 요리사로서의 자부심, 둘째가 운암정에 대한 자존심이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배용수의 눈빛에 도창복이 작게 웃었다.
‘이겼다.’
원래 이런 말싸움에서는 먼저 열이 오르는 쪽이 지는 것이다.
두 귀신 요리사의 자존심이 걸린 대화를 듣던 박문수가 말했다.
“손님들 기다리니 일단 음식부터 하지.”
그러고는 박문수가 메뉴들을 읽었다.
“일단 소고기 미역국은 다들 먹으면 좋을 듯하니 한 솥 하기로 하고, 로제 파스타하고 안심 스테이크.”
“제가 하겠습니다.”
도창복의 말에 배용수가 나섰다.
“제가 또 스테이크는 기가 막히게 합니다.”
배용수의 말에 도창복이 그를 보았다.
“운암정은 한식 전문 아닙니까?”
“한식이 전문이지만, 고기 굽는 것은 한식도 합니다. 스테이크가 별건가요? 그냥 센 불에 요래요래 구우면 되는 거지.”
배용수가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는 것을 보며 박문수가 말했다.
“그럼 둘이 같이 해. 메뉴는 하나지만 다른 손님들도 좀 드시게 4인분 정도 하면 괜찮겠지. 둘이 2인분씩 만들어 봐.”
“알겠습니다.”
“네.”
두 귀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문수가 도창복을 보았다.
“용수는 여기 귀신 아니라서 재료 어디에 있는지 모를 테니까, 창복이가 재료들 꺼내서 세팅해 줘.”
도창복이 냉장고에서 요리에 쓰일 재료들을 꺼내자 박문수가 강진을 보았다.
“초밥은 자네와 내가 같이 만들지.”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초밥용 밥부터 새로 해야겠군.”
그냥 밥에 양념한 걸로 초밥을 만들어도 되지만, 일반 밥과 초밥용 밥은 물 양이 다르다.
그리고 초밥용 밥에는 다시마와 청주를 넣으면 좋다. 어쨌든 박문수가 쌀을 꺼내 주자 강진이 쌀을 씻고는 물 양을 일반 밥보다 적게 맞춘 뒤 밥솥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마와 청주를 조금 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요즘 세상이 참 좋아.”
강진이 자신을 보자, 박문수가 웃으며 말했다.
“옛날에 초밥용 밥할 때는 따로 냄비로 밥을 지었는데, 지금은 밥솥에 초밥용 밥 기능이 있잖아.”
“그러네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박문수가 냉장고에서 미역을 꺼냈다.
“생미역인가요?”
“아침에 낚시하고 오는 길에 해녀 분들이 좀 주시더군.”
그러고는 박문수가 미역을 물에 담가 놓았다.
“미역은 내가 손질해 놨으니까 바로 써도 돼.”
“알겠습니다.”
“그럼 초밥용 회 손질은 내가 하지.”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미역을 보았다.
미역은 질이 좋아 보였다. 냄새가 살짝 나기는 하지만 미역 특유의 냄새일 뿐이었다.
미역 줄기를 만지작거리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역 대는 초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겠다.’
그런 생각이 든 강진이 가위로 미역 줄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역 줄기를 별도 그릇에 나눠 담은 강진이 싱크대를 보았다.
그곳에는 소고기와 냄비들이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 식당에 익숙하지 않은 강진을 위해 박문수가 미리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에 강진이 냄비에 소고기를 넣고는 볶기 시작했다. 얼추 소고기를 다 볶은 뒤 본격적으로 미역국을 끓이던 찰나, 배용수와 도창복이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그쪽 안심이 내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같은 재료 꺼낸 겁니다.”
“아니, 딱 봐도…….”
“딱 봐도 똑같구만. 아니면 손님들이 제 거만 먹을까 봐 걱정이 되세요?”
도창복의 말에 잠시 몸을 부들부들 떨던 배용수가 입을 열었다.
“다음에 저희 가게에 한 번 놀러 오세요.”
“서울 저승식당요?”
“그때는 제가 잘 대접해 드리죠.”
배용수의 말에 도창복이 웃었다.
“저는 서울이나 제주도나 재료를 따지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초대해 주시면 서울에서도 맛있는 음식 해 드리겠습니다.”
도창복의 말에 배용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 집이라고 재료 유세를 하는 것 같아 한 말인데…… 또 말싸움에 밀린 것이다.
그런 배용수를 보며 싱긋 웃은 도창복이 안심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고수다.’
도창복의 칼질을 본 배용수의 눈에 긴장감이 어렸다. 고기 손질하는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이 짐작이 되었다.
‘지방 한 점을 놓치지 않으면서 고기 손실은 최소화한다.’
고기에 붙은 지방을 떼어낼 때는 어쩔 수 없이 고기 손실이 발생한다. 그런데 도창복이 떼어낸 지방에는 붉은 살이 아주 조금만 붙어 있을 뿐이었다.
배용수가 도창복을 볼 때,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게는 직접 발골을 하지요.”
고기를 통째로 가져다가 부위별로 손질해서 떼어내는 작업을 직접 한다는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요즘 발골 직접 안 하는 식당도 있습니까?”
운암정 역시 소나 돼지를 통째로 들여와서 직원들이 직접 발골을 하는 것이다.
배용수가 옆에 있던 뚝배기를 하나 집어서는 밑에 대고 칼을 움직였다.
사사삭! 사삭!
뚝배기 바닥에 칼을 이리저리 문질러 날을 세운 배용수가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사사삭! 사삭!
배용수의 손에 안심에 붙은 지방들이 썰려 나갔다.
그것을 보던 도창복의 눈가에도 긴장감이 어렸다.
‘고수다.’
다듬는 것에 이어 고기에 살짝 칼집을 내는 것까지…….
‘부드러운 안심을 더 부드럽게 하겠다?’
등심이나 좀 질긴 부위는 일부러 칼집을 내서 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안심은 그럴 필요가 없는 부위였다. 그런데도 배용수는 칼집을 섬세하게 내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손질하는 것을 보고는 다른 스타일로 스테이크를 만들려는 모양이었다.
‘재밌겠군.’
도창복이 미소를 지으며 고기 손질에 더욱 공을 들였다. 그런 도창복을 본 배용수의 눈가에 승부욕이 떠올랐다.
운암정에서는 분기마다 숙수들끼리 음식 대결을 했다. 숙수들이 각 계절에 맞는 음식을 하나씩 만들면, 직원들이 먹어 보고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요리가 메뉴판에 올라가는 것이다.
메뉴판에 자신이 만든 요리가 올라간다는 것은 요리사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일이라 숙수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서 음식을 만든다.
이번에는 도창복과 같은 요리를 하기는 하지만 묘하게 승부욕이 생기는 것이었다.
배용수는 스테이크에 양념과 올리브유를 발랐다. 그렇게 고기가 숙성될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로제 파스타를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도창복과 배용수가 음식으로 승부욕을 발휘하고 있을 때, 강진은 김승태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김승희 씨가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까?”
“동생은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아…… 김치를 좋아합니다.”
“김치라…….”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에는?”
“그냥 주면 주는 대로 잘 먹었습니다.”
“밥도 차별을 하셨나요?”
강진의 물음에 김승태가 입맛을 다셨다.
“제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음식에는 좋은 기억이 없을 겁니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가 우울증을 겪으신 것은 알지만…… 너무하셨네요.”
강진의 말에 김승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어머니가…… 승희에게는 너무하셨습니다.”
말을 하던 김승태가 문득 탄성을 내뱉었다.
“아…….”
강진이 보자 김승태가 말했다.
“어릴 적에 제가 해 주는 계란 비빔밥을 좋아했습니다.”
“계란 비빔밥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밤낮없이 일을 다니셔야 했습니다. 낮에는 정수기 관리사로 다니시고 저녁에는 나이트 주방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힘드셨겠네요.”
강진의 말에 김승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들어서…… 더 승희에게 못 하셨을 것도 같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변명을 하는 김승태를 보며 강진이 물었다.
“그래서요?”
“사정이 그러다 보니 저녁에 저희 둘만 집에 있는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승희가 배고프다고 하면 제가 계란 프라이를 해서, 밥에 그거랑 김치 넣고 비빈 걸 같이 먹곤 했습니다.”
“옛날 도시락 같은 느낌이네요?”
강진의 말에 김승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락에 넣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느낌입니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