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26
427화
얇게 썬 오징어를 보던 유인호가 강진을 보았다.
“저기, 앞접시 두 개 주시겠어요?”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앞접시를 가져다주었다.
그에 유인호가 미소를 지으며 앞접시에 오징어를 덜고 초장을 넣은 뒤 비볐다.
그는 마치 비빔면처럼 된 오징어를 이아름에게 내밀었다.
“드셔 보세요.”
“아…… 저 주시는 거예요?”
“이건 이렇게 해 먹어야 맛있거든요.”
그러고는 유인호가 다른 접시에 다시 오징어와 초장을 덜고 비빈 뒤, 두어 가닥 집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으며 음미하던 유인호가 미소를 지었다.
‘맛있다.’
오징어 숙회는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고, 매콤한 초장이 맛있었다.
미소를 짓던 유인호가 오징어를 보다가 머리를 가리켰다.
“이거 제가 먹어도 될까요?”
“그러세요.”
이아름의 말에 유인호가 오징어 머리를 집었다.
“저는 오징어 머리를 이렇게 안 자르고 한 입에 먹는 것이 좋더군요.”
그러고는 초장에 찍어 먹은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먹으면 식감이 더 좋아요.”
“오징어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이아름의 말에 유인호가 오징어를 씹어 삼키고는 말했다.
“요즘은 오징어가 비싸서 한 마리에 삼천 원도 하지만, 저 대학 시절에는 오징어가 한 마리에 천 원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할인할 때는 두 마리에 천오백 원도 했어요.”
밝은 얼굴로 오징어 이야기를 하는 유인호의 모습을 보던 이아름이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 주었다.
“요즘 중국에서 우리나라 물고기들 싹 쓸어 간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서 비싼가?”
이아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영향이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안 잡히면 가격이 비싸지니까요.”
유인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말했다.
“어쨌든 자취할 때, 오징어 할인 행사 하는 날에는 스무 마리 정도를 한 번에 사서 냉동고에 쌓아두고 먹었습니다.”
“스무 마리나요?”
“오징어가 술안주로도 좋고, 반찬으로도 좋으니까요. 귀찮으면 그냥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어도 되고요. 그래서 제 냉장고에는 오징어가 떨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미소를 지은 유인호가 오징어 숙회를 한 번 더 집어 먹고는 웃었다.
“근데 할인 행사 할 때는 오징어를 손질해서 주지를 않아요.”
“그래요?”
“네. 그래서 스무 마리 사다가 손질하면 싱크대가 온통 난리예요.”
“왜요?”
“오징어 내장 터지고 먹물 터지고…… 눈깔 굴러다니고 장난 아니죠.”
“으!”
이아름이 눈을 찡그리자 유인호가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때 제가 먹은 오징어만 해도 몇 백 마리는 족히 넘을 겁니다. 그리고 그 덕에 오징어 손질은 지금도 잘합니다.”
웃으며 유인호가 네모나게 잘린 오징어를 수저로 떠서는 콩나물국에 넣었다.
스윽! 스윽!
그러고 가볍게 저은 유인호가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아…… 맛있네요.”
유인호의 말에 이아름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 음식 맛있어요.”
“갑자기 부탁드린 건데도 이 정도 맛이라…… 맛집이라고 하시더니 정말이네요.”
유인호의 말에 이아름이 미역국을 떠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변함없이 맛있는 것이다. 그녀는 잡채도 크게 한 젓가락을 떠서 먹고는 유인호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강진은 손님들이 가고 난 자리를 정리하고는 이아름과 유인호를 보았다. 두 사람은 대화가 정말 잘 통하는지, 밥을 먹다가 술도 시켜서 같이 먹고 있었다.
“사장님.”
이아름의 부름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이야기하다 알았는데, 유인호 씨도 봉사 활동을 하신대요.”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유인호를 보았다. 그 시선에 유인호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많이 하는 건 아니고 시간이 날 때 하고 있습니다.”
“보육원에서 봉사하세요?”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저었다.
“보육원은 아니고, 병원에서 법률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법률 봉사요?”
“의외로 병원에 법률적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유인호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제가 병원에 좀 오래 있었습니다.”
“어디 아프셨나요?”
“제가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힐끗 임미령을 보았다. 그 시선에 임미령이 쓰게 웃으며 머리에 쓰고 있는 털모자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미령 씨가 병으로 돌아가셨나 보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유인호가 말했다.
“그때 병원에 있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몰라서 보상을 못 받고, 몰라서 피해를 당하고……. 변호사 된 후에도 그때 생각이 나서, 종종 병원에 가서 법적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조언을 해 주고 있습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몰라서 피해를 보면 억울하잖아요.”
그러고는 유인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사정 좋으신 분들은 제가 고객으로 받기도 합니다. 후! 저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웃으며 말을 하던 유인호가 뭔가 생각이 난 듯 급히 일어나서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네요. 변호사 유인호입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법적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명함을 보았다.
“로펌에 다니시네요.”
“거창하게 로펌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했는데, 마음 맞는 친구들하고 모여서 작게 꾸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모여서 하는 것이 추세니까요.”
“작게? 대표세요?”
“대표라고 하기도 뭐 합니다. 말 그대로 마음 맞는 친구들하고 출자해서 같이 만든 거라서요.”
“어쨌든 대단하시네요.”
“정말 아주 작게 하고 있습니다.”
유인호가 민망한 듯 말을 덧붙였다. 그를 보던 강진이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언제든지 맛있는 식사가 하고 싶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렇게 명함을 나눈 유인호가 말했다.
“아름 씨 말대로 같이 한잔하시지요.”
“저는 정리를 좀 해야 해서요.”
강진이 웃으며 거절하자 이문흠이 급히 말했다.
“사장님이 옆에서 좀 거들어 주십시오.”
이문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이러다가는 그냥 밥만 먹고 헤어질 것 같습니다.”
이문흠의 부탁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게 정리 좀 하고 같이 한잔하겠습니다.”
“하하! 그러세요.”
이문흠의 말에 강진이 정리를 마저 하고는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는 한창 여자 귀신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남자 귀신들은 한쪽에 서서 쉬고 있었다. 더 이상 나갈 요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접시에 남은 반찬들을 음식 쓰레기통에 버릴 때, 임미령이 다가왔다.
“저…….”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제 이야기 좀 들어 주시겠어요?”
그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돌연 물었다.
“혹시 과자 좋아하세요?”
“과자요?”
“네.”
그러고는 강진이 싱크대 한쪽에서 과자를 한 봉지 꺼냈다.
이승의 새우 과자와 이름이 비슷한 과자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음식은 아까 드셨으니 과자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강진의 말에 임미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술도 같이 하시죠.”
소주를 본 임미령의 눈이 반짝였다.
“감사합니다.”
“술 좋아하시나 보네요?”
“네.”
환하게 웃는 임미령을 보던 강진이 아쉬운 듯 말했다.
“술은 저승 것이 아니라서 조금 밍밍할 수 있습니다.”
“가끔 인호가 혼술 할 때 제 잔을 준비해 줘서 마신 적이 있어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려다가 고개를 젓고는 글라스에 소주를 따랐다.
작은 잔에 따르면 금방 다시 따라야 하니 말이다.
임미령이 소주가 따라진 글라스를 보고 미소 지을 때, 강진이 말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강진의 말에 임미령이 잠시 글라스를 만지다가 말했다.
“제가 한 실수를 바로잡고 싶어요.”
“실수요?”
“제 실수로 인호는 사랑을 끝내지 못했어요.”
“끝내지 못한 사랑?”
“저와 인호는 사랑을 했어요. 정말 많이 좋아했고 사랑했죠. 하지만…… 많은 연인들이 불처럼 사랑했다가 헤어져요. 제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다른 연인들처럼 헤어졌을 수도 있어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사랑은 불처럼 오지만…… 불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그렇겠죠.”
“그런데 나는…… 인호가 사랑을 끝낼 시간을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 인호는 ing예요.”
“ing? 미령 씨와 아직도 사랑하는 중이라는 건가요?”
“네. 그래서 인호는 아직도 새 사람을 만나지 못해요.”
한숨을 쉰 임미령이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희미한 잔이 크게 기울어지는 것을 보니 단숨에 원 샷을 한 모양이었다.
그에 강진이 새로운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쪼르륵! 쪼르륵!
그러고는 임미령이 손을 댄 글라스를 옆으로 밀자, 배용수가 그것을 집어 들고는 내용물을 냄비에 부었다.
귀신이 먹은 음료와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상한다. 그러니 임미령이 마신 소주가 상하기 전에 뭔가 음식을 할 모양이었다.
어쨌든 한 잔 더 받은 임미령이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이었습니다. 1학년 때 처음 보고 좋아했고 2학년 때 같은 반이 됐습니다. 그리고 3학년 때 인호가 바보처럼 저에게 고백을 했어요.”
“첫사랑인 사람이 고백을 했는데 왜…….”
왜 바보 같으냐는 물음에 임미령이 고개를 저었다.
“수능 봐야 하잖아요. 연애를 해서 어떻게 공부를 해요. 매일 연락하고 보고 싶을 텐데. 저나 인호한테나 수능은 인생이 달렸으니까요.”
‘사랑보다 수능이라…… 이성적이시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임미령이 말했다.
“수능 시험 끝나고 고사장 나오면서 인호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때 고백한 것 유효하면…… 사귀자고요. 좋다고, 정말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능 날이 1일이 됐어요. 그 후 인호도 나도 같은 대학에 진학을 했어요.”
강진은 말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남자는 군대를 가야 하는데 인호는 저와 헤어지기 싫다고 군대를 미뤘어요. 나중에 사법고시 합격해서 장교로 가면 된다고…… 그때 결혼하자고요. 2학년 때 사시 1차에도 합격을 해서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어요.”
말을 하던 임미령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인호하고 저하고 동거를 했어요.”
“동거요?”
“떨어지기 너무 싫었거든요. 그리고 부모님한테 동거한다는 말은 안 했지만, 인호가 사시 1차 합격했다고 하니까 졸업하고 결혼하라고 반쯤 허락도 해 주셨고요. 그런데…….”
말을 이어나가던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저한테 병이 생겼더라고요.”
말을 하며 임미령이 털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반질반질한 머리가 드러났다.
‘암이셨구나.’
강진이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볼 때, 임미령이 쓰게 웃었다.
“결국 말 안 하고 군대에 보냈어요.”
“헤어지려고요?”
“아픈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길어야 1년이라고 들었거든요.”
“흠…….”
강진이 입맛을 다시자 임미령이 그를 보았다.
“제가 잘못한 것 같죠?”
“미령 씨가 아팠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인호 씨가 많이 아팠을 겁니다.”
“맞아요. 숨긴다고 숨겼는데…… 인호가 알고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러고는 임미령이 홀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차라리 제가 그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같이 견뎠으면…… 인호는 저를 더 많이 사랑해주고 아파해 줬을 텐데. 그때 못 한 것 때문에 인호는 아직도 저와 사랑을 하는 중이에요.”
임미령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ing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