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36
437화
바둑판을 내려놓고 변대두는 청년과 막걸리를 마셨다.
“선생은 평소에는 어디에서 지냅니까?”
“홍두동에 기원이 하나 있습니다.”
“홍두동 기원?”
“백제기원이라고 합니다.”
청년이 막걸리를 쭈욱 마시고는 말했다.
“거기 실력자들 많습니다. 한 번 들러 보세요.”
“그래요?”
“거기 다니는 귀신 중에 프로 기사들도 있고, 아마추어 중에도 잘 두시는 분들이 꽤 있으세요.”
“프로 귀신이 있는 곳이면 실력이 정말 괜찮은 곳인가 보군요.”
“재밌는 곳입니다.”
청년의 말에 변대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한 번 가야겠네요.”
“한 번 찾아주세요.”
청년이 웃으며 막걸리를 마실 때, 배용수가 외쳤다.
“자, 드시던 잔들 내려놓으세요! 시간 됐습니다.”
배용수의 외침에 귀신들이 허겁지겁 잔을 비웠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화아악! 화아악!
현신이 끝난 귀신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자 강진이 배용수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나이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한끼식당에 오는 귀신들은 단골들이라 1시가 되기 전에 알아서 일어난다.
하지만 출장 영업에 오는 귀신들은 자제를 하지 못하고 시간이 돼도 계속 식사를 한다.
그래서 현신이 풀려서 들고 있던 음식을 떨어뜨리거나 술잔을 깨 먹기 일쑤였다.
그럼 청소하기가 더 힘들어지니 배용수가 미리 주의를 준 것이다.
귀신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진과 차달자가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정말 잘 먹고 갑니다.”
귀신들이 감사 인사를 하고는 아쉬운 눈으로 푸드 트럭을 보았다.
언제 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에 강진이 다음 주에 가는 동네 이름을 말해주고는 직원들과 함께 푸드 트럭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주말의 점심시간, 한끼식당은 한가했다. 점심시간엔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주말에는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한가하게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과 배용수는 홀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2층에서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강진과 배용수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강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에 액정에 떠 있는 이름을 확인한 강진이 전화를 받았다.
‘도영민 씨네.’
전화한 것은 다름 아닌 도영민이었다.
“여보세요.”
[사장님, 저 도영민입니다.]“잘 지내시죠?”
[선거철이라 바쁩니다.]“정신없으시겠네요.”
[그렇죠. 아, 다른 것이 아니라 일곱 시에 의원님 모시고 식사하러 가는데 예약 좀 하려고요.]“그 시간대는 손님들 많이 없을 때라 예약을 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그게,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요. 도착하면 바로 먹고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미리 준비해 주셨으면 해서요.]“알겠습니다. 그럼 메뉴와 인원은 어떻게 되세요?”
[인원은 세 명이고, 메뉴는 김치찌개로 해 주세요. 아! 그리고 김밥을 좀 주문하려고 합니다.]“김밥요?”
[지역구에 늦게까지 일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야식으로 좀 사려고 합니다. 스무 줄 정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되겠습니까?]“가능합니다. 그럼 포장은 은박지로 해드리면 될까요?”
[의원님이 일회용 사용을 자제하시는 편이라서요. 저희가 통을 챙겨가겠습니다. 거기에 싸 주시면 됩니다.]“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 오자명 의원님 사무실로 옮겼습니다.]“사무실을 옮겨요?”
[의원님께서 저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하시면서 오자명 의원님에게 보내주셨거든요. 그래서 옮기게 되었습니다.“나쁘게 옮기시거나 그런 건 아니시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에게 좋은 기회라서 의원님이 보내 주신 겁니다.]“다행입니다. 그럼 이따가 오시는 건 오자명 의원님?”
[맞습니다.]“알겠습니다.”
그걸로 전화를 끊은 강진이 몸을 일으키며 배용수를 보았다.
“김밥 재료 있어?”
“김밥?”
“스무 줄 주문 들어왔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말했다.
“햄을 좀 사야겠다.”
배용수가 햄을 하나 꺼내드는 것에 강진이 그것을 보다가 문득 말했다.
“분홍 소시지 사다가 몇 줄은 그걸로 만들까?”
“분홍 소시지?”
“옛날에는 다 분홍 소시지였잖아. 스무 줄이니까 다섯 개만 그걸로 해도 좋아할 분은 좋아할 것 같은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던가.”
“오케이! 그럼 가서 사 올게.”
“우엉도 사와라.”
“우엉?”
“우엉 안 넣어도 되는데, 있으면 넣어서 만들어도 좋지.”
그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지갑을 챙겨서는 가게를 나서려 하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잠깐만.”
“왜?”
“이모님 모시고 가라.”
“이모님?”
“이모님이 전에 여기 근처에 식재 파는 곳 어디냐고 물어보시더라고.”
“식재?”
“가끔 만들고 싶은 음식이 있는 모양이더라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 귀신들은 편하게 쉬며 TV를 보고 있었고 차달자는 소파에 기댄 채 쉬고 있었다.
“이모님.”
강진의 부름에 차달자가 그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도와드릴까요?”
“그게 아니라, 마트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마트요?”
“용수가 그러던데?”
“아…… 가끔 만들고 싶은 요리가 있는데 없는 식재가 있어서 용수 씨한테 물어봤어요.”
“저 지금 마트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좋아요.”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진이 변대두를 보았다.
“어르신도 같이 가실래요?”
“나?”
“마트 잡화 코너에 바둑판도 팔 텐데.”
강진의 말에 변대두가 몸을 일으켰다.
“같이 가세.”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웃을 때, 이호남이 슬며시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가지요.”
“뭐 필요한 것 있으세요?”
“중식도를 좀 샀으면 해요.”
“중식도?”
“검수식칼이 잘 들기는 하는데…… 저는 역시 중식도가 편해서요.”
“그럼 같이 가시죠.”
강진의 말에 이호남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자, 차연미도 슬며시 일어났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그러세요.”
차연미까지 나서자 여자 귀신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트에 강진과 귀신들이 우르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끼식당 식구들이 들어가자, 지나가던 귀신들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늘 저승식당 단체로 장 보러 오셨나?”
“네.”
“오늘 저녁에 맛있는 것 해 주려고 장 보는 건가?”
“저희 가게야 늘 맛있는 음식 해 드리죠.”
“하하하! 그건 그렇지.”
귀신끼리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강진이 카트를 하나 꺼내 걸으며 말했다.
“일단 저 햄하고 우엉 좀 살게요.”
“그럼 나는 잡화 코너에서 바둑판 있나 보고 있겠습니다.”
“나는 주방 코너에서 식칼 좀 보고 있을게요.”
귀신들이 각자 관심이 가는 곳으로 향하자 차달자와 강진 옆에는 배용수와 차연미만이 남았다.
“가자.”
강진은 차달자와 함께 식재 코너로 걸음을 옮겼다. 식재 코너에서 햄과 우엉을 고를 때 고경하가 다가왔다.
“오셨어요?”
“요즘 왜 이리 뜸하세요.”
“일도 좀 있고 바빠서요.”
“바쁘셨어요?”
“저희 마트에 납품되는 식재 하나에 문제가 생겨서요. 거기 좀 다녀왔습니다.”
고경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웃었다.
“이제는 좀 쉬셔도 되실 텐데.”
죽어서까지 관리하던 업체들 찾아다닐 이유가 있나 싶은 것이다.
“어떻게 된 건가 걱정돼서 한 번 다녀왔을 뿐입니다.”
웃으며 고경하가 강진이 산 햄과 우엉을 보고는 물었다.
“뭐 사러 오신 건가요?”
“김밥에 쓸 햄과 우엉이 떨어져서요.”
“아…… 그럼 다른 건 안 필요하세요?”
“뭐 좋은 식재 있나요?”
“오늘 언양에서 미나리가 올라왔는데 품질이 참 좋더군요.”
“미나리라…….”
강진이 미나리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할 때, 차달자가 말했다.
“삼겹살에 미나리 같이 싸 먹어도 맛있고, 구워 먹어도 맛있어요. 미나리 무침도 좋고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고경하가 차달자를 보았다.
“그런데 이분은…… 저승식당 분이신가요?”
“아! 충청도에서 저승식당을 하시던 차달자 이모님이세요. 앞으로는 저와 같이 일을 하시게 됐습니다.”
강진이 소개하자 고경하가 차달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트에서 일하는 고경하입니다. 필요하신 물건이나 식재가 있으면 저를 찾아 주세요. 제가 좋은 식재로 골라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자, 강진이 고경하를 보았다.
“그런데 이모님 저승식당 분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사장님하고 비슷한 기운이 느껴져서요.”
“아…… 저승식당 기운 말하는군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고경하가 말했다.
“이쪽으로…….”
고경하가 식품 코너 한쪽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서는 미나리를 가리켰다.
“미나리가 아주 좋습니다.”
고경하의 말에 강진이 미나리의 향을 맡을 때, 차달자가 미나리를 살짝 뜯어 입에 넣었다.
“어…… 그냥 드세요?”
“그럼요.”
웃으며 차달자가 미나리를 다시 조금 뜯어 강진에게 내밀었다. 그에 강진이 미나리를 입에 넣고는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향긋하면서도 속이 촉촉한 것이 괜찮았다.
“무치면 맛있겠네요.”
강진의 말에 고경하가 문득 말했다.
“김밥 하신다고요?”
“네.”
“미나리 김밥 드셔 보셨어요?”
“미나리 김밥? 김밥에 미나리를 넣어 먹나요?”
“언양에 미나리 확인하러 갔을 때 먹어 봤는데 맛이 좋더군요. 아삭아삭하면서 향이 좋아서 시금치와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고경하의 말에 강진이 차달자와 배용수를 보았다. 차달자는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넣는 재료는 아닌데 대전에서 미나리 김밥을 먹어 본 적이 있어.”
“대전에서?”
“미나리 김밥으로 유명한 분식집이었는데 거기서는 미나리 김밥을 초장에 찍어 먹더라.”
“김밥을 초장에?”
강진이 놀란 눈을 하자 배용수가 웃었다.
“전주에서는 상추에 김밥을 싸 먹기도 하는데 초장이라고 안 될 이유가 있나.”
“상추에 김밥을 싸 먹어?”
“상추에 돼지볶음, 김밥 올려서 싸 먹더라. 맛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니…… 맛이 없기 힘든 조합이기는 했다.
‘쌈에 밥 대신 김밥을 넣는 것이니 더 맛있으려나?’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미나리를 보았다.
“김밥에 미나리를 그냥 넣는 거야?”
“생으로도 먹으니까 그냥 넣어도 되고, 살짝 데쳐서 넣어도 되고. 개취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미나리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자.”
그러고는 강진이 미나리 세 개를 집어 카트에 놓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일곱 개 정도 사.”
“그렇게 많이?”
“숨 죽으면 얼마 안 나와. 그리고 저녁에 삼겹살에 같이 싸 먹어도 되고. 삼겹살하고 같이 먹으면 맛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미나리를 보다가 네 개를 더 집었다. 맛있다고 하니 저승식당 시간에 그렇게 내놓으려는 것이다.
식재를 다 고른 강진이 고경하와 인사를 나누고는 귀신들을 찾아 코너를 돌았다.
잡화 코너에서 변대두가 마음에 들어 하는 바둑판과 이호남의 중식칼을 산 강진이 귀신들을 데리고 가게로 돌아왔다.
‘미나리 김밥…… 초장에 찍어 먹는다고?’
생각해 보지 않은 조합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무슨 맛일지 잘 상상이 가진 않았지만…….
예전에 먹었던, 대패삼겹살에 초장 넣고 볶는 것도 꽤 맛이 있었으니 이번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