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61
462화
한강이 보이는 잔디밭에 앉은 강진은 음식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음식이라고 해도 JS 편의점에서 사 온 김밥과 음료수, 그리고 과자 몇 종류가 전부지만 말이다.
“김밥 드실 때 최대한 자세 낮춰서 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위에 사람 가까이 있거나 하면 드시면 안 되고요. 음료수는 빨대 가져왔으니 들어서 드시지 말고 숙여서…….”
말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먹으라고 하니 어쩐지 초라한 것이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이혜미가 웃으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향수 뿌리지 말 것을 그랬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직원들에게 향수만 안 뿌렸더라면 사람들 시선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아쉬운 마음에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귀신 없나?’
그 모습에 이혜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사람 많이 없어서 조심히 먹으면 안 걸릴 것 같아요.”
이혜미도 주위를 한 번 살피고는 고개를 숙여 빨대에 입을 대고 음료수를 마셨다.
“맛있네요.”
그런 이혜미에게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안 불편해요?”
“사람이면 자세 때문에 먹는 것이 불편할 것 같은데…… 귀신이라 그다지 안 불편해요. 아!”
이혜미가 웃으며 말했다.
“공포 영화 보면 귀신들 관절이 막 마음대로 움직이잖아요. 목도 돌아가고.”
“그렇죠.”
“그게 왜 그런 줄 알아요?”
“그거야 공포 영화라 그런 거죠.”
“호오!”
이혜미가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들하고 실제 귀신하고 다르잖아요.”
귀신을 많이 봐 온 강진으로선 현실 속 귀신이 영화 속 귀신보다 덜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속 귀신이 하는 것을 현실 속 귀신은 대부분 못 한다는 것 또한 안다. 벽 타고 뛰거나 천장에 붙어 있는 귀신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그를 보다가 얼굴을 잡고는 스트레칭을 하듯 비틀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강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혜미의 얼굴이 360도 회전을 하는 것이다.
“커억!”
강진이 입을 쩌억 벌린 채 쳐다보자, 이혜미가 웃었다.
“놀랐죠.”
“다시…… 하지 마세요. 무섭네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웃고는 말했다.
“귀신이라 그런지 관절에 대한 개념이 없나 봐요.”
그러고는 이혜미가 몸을 숙여서 다시 음료를 마시고는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자세로 음료를 마셔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편해요.”
“아…… 알겠습니다.”
왜 이런 무서운 것을 보여줬나 했더니…… 자세가 불편해도 음식 먹기 안 불편하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한 모양이었다.
이혜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급히 김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정말 맛있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김밥을 집어 먹고는 한강을 보았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잔디는 푸르고 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은 시원했다.
“멍 때리기 좋은 날이네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김밥을 하나 휙 하고 집어 빠르게 입에 넣고는 말했다.
“귀신도 힐링이 필요한 법이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한강을 보며 말 그대로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멍을 때리던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했다.
“어르신도 와서 김밥 좀 드시라고 해.”
그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변대두가 있는 벤치에는 사람 둘이 마주 본 채 바둑을 두고 있었고, 두 사람이 옆에서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벤치 옆에도 돗자리가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서도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꽤 모이네.’
갑자기 열린 번개 같은 건데도 여섯이나 모인 것이다. 거기에 변대두까지 하면 일곱이고 말이다.
모인 사람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변대두처럼 어르신도 있었고, 중년인에서 고등학생 되어 보이는 애도 있었다.
‘학교 안 갔나? 아니면 동안인가?’
한창 수업 중일 시간인데 학생 같은 애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학생의 옆에는 귀신이 하나 있었다.
‘수호령 같은데…… 학생하고 같이 왔나?’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누구의 수호령인지는 모르겠지만 중년의 귀신 하나가 변대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중년인과 변대두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던 강진이 힐끗 차달자를 보았다.
차달자는 두 귀신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손을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 시선 조심해.”
“에잉! 치사해서 안 먹고 말지!”
배용수가 투덜거리면서도 엎드리듯이 몸을 낮춰서는 김밥을 입에 넣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돗자리를 담아 온 쇼핑백을 음식 옆에 벽처럼 세웠다.
‘텐트를 하나 살까?’
텐트를 치면 귀신들도 사람들 시선 의식하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차달자가 있는 곳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겼다.
“이모님.”
“사장님.”
“좀 쉬세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변대두를 보았다.
차달자의 시선에 변대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 사장, 가서 쉬어요. 나야 여기서 구경하면 되니까.”
변대두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연미와 이호남을 데리고 돗자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것을 볼 때, 변대두가 밑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학생을 가리켰다.
“쟤가 신의국수…… 아니지, 신의국수 선생님이셔. 그리고 이분은 신의국수 선생님의 아버님.”
변대두가 중년 귀신을 가리키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귀신한테 밥 주는 식당 사장님이라고요?”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통화하는 척하며 말했다.
“식당 사장입니다.”
“귀신한테 밥 주는 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는 주변 귀신들에게 들었는데…… 세상에 참 신기한 일이 많습니다. 박서준이 아빠 박만복입니다.”
“이강진입니다.”
인사를 나눈 강진이 힐끗 신의국수 박서준을 보며 말했다.
“어르신 말 듣고 나이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어리네요.”
“나도 놀랐어. 나는 한 서른은 넘을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인터넷 모임을 할 때 아이디가 적힌 명찰을 차기도 하지만, 지금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도 없으니 말이다.
물어본 강진은 문득 박만복을 보았다. 그가 알려줬나 싶어서였다. 그 시선에 변대두가 웃으며 말했다.
“만복 씨가 알려 준 건 아니야.”
“그럼 어떻게?”
“신의국수하고 한두 판 둔 것도 아닌데 그 기풍을 모르겠어? 두는 스타일 보니 딱 신의국수 선생님이더라고.”
“그런데 왜 선생님이라고 하세요?”
강진의 물음에 변대두가 웃었다.
“내 생각대로 정말 프로 기사시더라고. 프로 바둑인이라면 나이가 어리더라도 선생님이지요.”
“프로?”
그러고는 변대두가 박만복을 보았다.
“정말 대단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15살에 프로 합격이라니.”
‘이렇게 어린 학생이 프로?’
강진이 놀란 눈을 할 때, 박만복이 웃으며 말했다.
“15살에 프로가 뭐 대단한가요. 조 국수 선생께서는 9살에 되셨고, 그 제자인 이 선생께서도 11살에 프로가 되셨는데요.”
“그래도 15살이면 대단한 거지요. 어릴 때부터 싹이 달랐습니까?”
변대두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박만복이 미소를 지었다.
“어릴 때 저 두는 것 보고 따라할 때부터 싹은 있었습니다. 금방 저를 따라잡더라고요.”
“만복 씨가 잘 가르쳐서겠지요.”
“하하하! 그런가요?”
박만복의 웃음에 강진이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보다가 변대두에게 작게 말했다.
“15살에 프로요?”
“대단하지요?”
“대단하네요. 그럼 지금은 몇 살이에요?”
“올해 18살이라고 하더군요.”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박서준을 대단하다는 듯 보았다. 바둑에 대해 잘은 몰라도 프로라면 그 종목에서는 일가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어린 나이에 대단한 것이다.
박서준을 보던 강진이 변대두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한 번 두시겠어요?”
“내가 어떻게?”
“어르신 대신 제가 둬 드리면 되죠.”
“음…… 이 사장이 둬도 나라는 걸 알 텐데요.”
“아…… 어르신 바둑 기풍 때문에요?”
“내가 이 친구들 바둑 기풍 알아보는 것처럼, 저 친구들도 내 기풍을 알아볼 겁니다.”
“상관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두시는 건 어르신이고, 어르신이 말하는 것 제가 해 주면 되니까요. 제가 어르신인 척해도 되고요.”
“그건 그런데…… 이 사장 바둑 둬 본 적 없지 않아요?”
“어르신이 두라는 곳에 두면 되지 않나요?”
강진의 말에 변대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바둑판을 가리켰다.
탓! 탓!
그에 사람들이 천천히 바둑을 두는 것을 보던 강진이 변대두를 보았다.
‘뭘 보라는 거죠?’
강진이 눈빛으로 묻자 변대두가 말했다.
“돌을 놓는 것에도 기량이 묻어나는 겁니다.”
“그냥 놓는 것이 아닌가요?”
“후! 때로는 돌 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죠.”
“무슨 그 정도까지…….”
“알지 못하면 모르는 법이지요.”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바둑판을 보다가 작게 말했다.
“그럼 제가 두면 이상하게 생각하겠군요.”
강진의 말에 변대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꼭 두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습니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낯선 얼굴인 강진이 옆에서 구경을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도 누가 바둑을 두고 있으면 옆에 가서 슬며시 구경을 할 것이니 말이다.
“크윽!”
학생과 바둑을 두던 중년 아저씨가 작게 침음을 토했다.
“이거 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아저씨의 중얼거림에 박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중간에 제 대마를 잡으려고 무리를 하셔서 그래요.”
“허점이라 생각을 했는데…… 역시 함정이었군요.”
“허점과 함정을 잘 구별하는 게 참 힘들죠.”
학생의 말에 아저씨가 고개를 숙였다.
“졌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의 있게 인사를 나눈 학생이 옆에 놓인 커피를 마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변어르신 님은 안 오시는 모양입니다.”
중년인의 말에 박서준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게요. 한 번 직접 뒀으면 했는데…….”
“평일 오후에 갑자기 잡은 일정이라 시간 내기 어렵겠죠. 지방에 살 수도 있고…….”
“강남 논현에 사신다고 했는데…….”
“논현이면 바로 옆인데?”
“그러니까요.”
바둑돌을 치우던 중년인이 박서준을 보았다.
“그런데 선생님, 검정고시는 잘 준비하고 계십니까?”
“모의고사로 봤을 때는 무난하게 합격할 것 같습니다.”
“하긴, 선생님 바둑 두시는 지능이면 고등 모의고사 정도야.”
중년인의 말에 박서준이 웃었다.
“바둑 머리하고 공부 머리는 다른가 보더라고요. 기보는 처음부터 끝가지 잘만 이해되고 외워지는데…… 영어 단어는 그렇게 안 외워지네요.”
“제가 나중에 과외라도 해 드릴까요?”
박서준이 보자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바둑은 좀 못 둬도 학교 다닐 때는 등수가 다섯 손가락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아! 모의고사 보기 전날에 제가 족집게 과외 한 번 해 드리겠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박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강진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박서준의 인사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바둑 좋아하세요?”
“잘은 못 두고 조금 볼 줄만 압니다.”
“그럼 한 판 두실래요?”
박서준의 말에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진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정말 못 둡니다.”
강진의 말에 박서준이 더는 권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한 번 쉴게요.”
박서준의 말에 옆에서 구경하던 두 사람이 자리에 앉고는 대국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