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99
500화
-가여운 아이야. 오랑캐와의 싸움도 이겨낸 네가…… 어찌 조선의 관군에게 목숨을 잃더란 말이냐.
아주 옛날, 자신이 죽었을 때 보았던 김소희를 떠올리며 장태풍이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사백 년도 더 지났는데…… 그날의 기억만은 아직도 선명해. 아주 펑펑 우시더라고.”
“펑펑요?”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이야.”
“왜…… 아가씨께서 사과를?”
장태풍을 죽인 것은 조선의 관군인데 말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양반들이 자기 일을 하지 않고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해 백성들을 힘들게 한다고 우셨어. 너무 미안하다고.”
“아…….”
같은 양반으로서 백성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강진이 작게 탄식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께서는 너무 착하시군요.”
강진의 말에 장태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착하시지.”
그러고는 장태풍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나를 살펴 주신 것이 바로 소희 아가씨셨다.”
“총각 귀신들이 아니고요?”
“보통 총각 귀신은 총각 귀신이 살피는데…… 나를 예쁘게 보셨는지 귀신으로서의 생활을 아가씨께서 직접 알려 주셨지. 그렇게 한 이십 년 같이 다니면서 많이 배웠지.”
“아…… 그런데 총각 귀신하고 처녀 귀신은 같이 있으면 불편해하는 것 같던데요?”
강진이 묻자 장태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정도 되면 처녀든 뭐든 같이 있어도 불편한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죽은 지 얼마 안 된 애들은 서로가 극과 극이라 불편하게 느끼기는 하지.”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그때면 소희 아가씨도 돌아가신 지 몇 십 년 안 되셨을 텐데요.”
“이 바닥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많이 알고 있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장태풍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같은 무신이라 그런지 불편하지는 않더라고. 동질감도 있었고.”
“어! 형님도 무신이세요?”
“하하하! 병자호란 때 내 손에 죽은 청나라 놈들이 수백이 넘어.”
장태풍은 활 쏘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멀리 있는 놈은 화살로 머리를 맞춰 버리고, 가까이 있는 놈은 도끼로 대가리! 대가리! 대가리!”
이번엔 도끼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는 장태풍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활도 잘 쏘시고, 도끼도 잘 다루셨나 보네요.”
“사냥도 하고 나무도 했으니까. 싸리골 활잡이 하면 인근 백 리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정말 대단하시네요.”
“정말 대단했지.”
옛 추억을 떠올리는 듯 잠시 허공을 보며 미소 짓던 장태풍이 다시 강진을 보았다.
“병자호란…… 그 지긋지긋한 육십 일 동안의 전쟁에서 내 손에 죽은 청나라 병사가 수백이 넘지.”
“육십 일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럴 거야. 병자호란이 겨울에 시작해서 눈이 녹기 전에 끝났으니까. 그때…… 기간은 짧았는데 더 치열하고 무서웠지.”
쓰게 웃는 장태풍의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많이 죽여서…… 무신이 되신 건가요?”
장태풍은 고개를 저었다.
“많이 죽였다고 무신이 되는 건 아니야. 내가 알기로 무관 중에도 무신이 되지 못하고 평범한 귀신이 된 자들도 많았으니까.”
“그렇군요.”
“그리고 사람을 안 죽여도 무신이 된 자가 있어.”
“누구요?”
“일제 강점기 때 조필수라는 귀신인데, 동네 악질 순사를 아주 개떡으로 두들겨 팼지. 그러고는 피를 질질 흘리는 순사를 끌고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했어.”
“자수요?”
“자기가 도망을 치면 동네 사람들이 피해를 볼 것 같아서 일부러 자수를 한 거지. 아! 그리고 조필수가 경찰서 가서 뭐라고 한 줄 알아?”
“그야 자백을 했겠죠?”
강진의 말에 장태풍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개 값 치르러 왔다!’였어.”
장태풍의 말에 강진이 놀란 듯 그를 보았다.
“순사를 두들겨 패고 그렇게 외쳤다고요?”
“그렇지.”
강진이 대단하다는 듯 그를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그분은 어떻게 되셨어요?”
“어떻게 되기는…….”
장태풍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죽었지.”
그러곤 잠시간 침묵하던 장태풍이 다시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 필수도 무신이 됐더라고.”
“죽인 사람 수와는 관련이 없나 보네요.”
“그런 것 같아.”
“그럼 그 조필수 씨는 승천은 하셨어요?”
“나하고 같이 다니다가 독립을 한 날 승천했어. 죽어서라도 나라의 독립을 봤으니 더는 여한이 없다면서.”
“훌륭하신 분이네요.”
“귀신으로는 막 발 담근 녀석이었지만 존경할 만큼 대단한 마음을 가진 귀신이었지. 아마 무신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그 마음에 달린 것 같아.”
“마음이 강한 사람이 무신이 되는 거군요.”
“그리고 나처럼 멋있어야 하기도 하지.”
싱긋 웃은 장태풍이 소주를 따라 마시고는 말했다.
“어쨌든 아가씨와 이십 년을 같이 했지.”
“어떠셨어요?”
“재밌고 즐거웠어.”
“그랬어요?”
장태풍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에는 아가씨가 무척 어려웠어.”
“처녀 귀신이라서요?”
“아니. 양반이잖아.”
“아!”
“죽어서 신분 따질 것이 뭐가 있나 싶겠지만,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만큼 그런 것을 따지는 귀신들이 많았지. 양반 귀신은 양반 귀신하고 다니고, 평민 귀신은 평민 귀신들하고 다니고…… 노비는 노비들끼리 다니고.”
“죽어서도 신분을 못 넘어서는군요.”
“보통 그렇다는 거지. 양반 귀신 중에 죽은 지 얼마 안 된 놈이 오래된 노비 귀신한테 까불었다가 피떡이 되게 두들겨 맞거나 영혼이 소멸될 뻔한 적도 있어.”
“귀신끼리도 서로 죽일 수가 있는 건가요?”
“있지. 물론 그런 짓을 하면 악령이 되고…… 바로 끌려가서 소멸되지만. 그걸 감수하고라도 죽일 놈이 있으면 죽여 버리는 놈들도 있었어. 특히 살았을 때 원수인 놈이 죽어서 귀신이 돼서 만나면 정말 끔찍하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장태풍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아가씨가 양반이기도 하고, 말투부터 명문가 규수라 처음에는 대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지. 게다가 아가씨는 내 스승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어. 아가씨는 말만 좀 날카롭게 하실 뿐이지, 잔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분이라는 것을 말이야.”
미소를 지은 장태풍이 소주를 마시고는 말했다.
“공녀로 청나라로 끌려가는 백성들을 보면 그렇게 우셨지. 계속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고개를 저은 장태풍이 웃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장난을 치기 시작했지. 내가 장난을 칠 때에는 조금 사람다운 모습을 보이시거든.”
“하긴…… 평소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김소희 성격에 그런 장난을 받았으면 그냥 싸늘하게 노려보는 것으로 끝냈을 것이다.
그 시선 한 번으로도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날카로움과 두려움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김소희는 검까지 소환해서 들었다. 진짜로 베려고 꺼낸 것이 아닌, 조금은 장난기가 섞인 행동이었다.
장태풍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김소희를 위로하고 아껴 주었던 것이다.
“아가씨를 많이 아끼시는군요.”
“수백 년의 세월인데 농 하나 던져 주고 귀찮게 해 줄 이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어?”
장태풍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소희 아가씨에게 누가 농을 던지고 귀찮게 하겠어.’
그 누구도 김소희에게 장난을 치지 않는다. 처녀 귀신 무리의 이인자인 이지선조차도 김소희에게 늘 존대를 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장태풍이 지금도 김소희에게 농을 하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자기가 재밌어 그런 것도 있지만, 김소희가 외롭지 않게 말이다.
“소희 아가씨는 나에게 누이고 스승이기도 하니 아끼지 않을 수가 없지. 그리고…… 사랑스러운 분이시잖아.”
장태풍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어려 보이는 외모라 사랑을 느끼는 것은 범죄인 것 같지만…… 확실히 김소희가 가끔은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어쨌든 소희 아가씨가 무척 대하기 어려운 분이라는 것은 확실하지.”
장태풍이 돌연 씨익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그런 소희 아가씨의 이마를 때렸다고?”
“헉!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아가씨가 이야기를 해 줬으니 아는 거지.”
피식 웃은 장태풍이 강진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쳤다.
“잘했어.”
“네?”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자, 장태풍이 미소를 지었다.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아가씨가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는데…… 웃으시더라고. 후! 내가 장난을 수십 번 쳐야 한 번 볼까 말까한 미소를 그렇게 보다니. 아무튼 잘했어.”
“감사합니다.”
“근데…….”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의 악력이 삽시간에 강해졌다.
우두둑!
“끄으…… 아픕니다.”
고통스러워하는 강진을 장태풍이 굳은 눈으로 보았다.
“대.”
“네?”
“나에게는 누이이자 동생이며, 또한 스승이기도 하신 소희 아가씨의 옥체에 손을 대다니……. 아직 나도 못 때려 본 아가씨의 이마거늘.”
스윽!
장태풍이 중지를 오므리며 엄지로 그것을 눌렀다.
꾸욱!
“대.”
“아니, 그게…….”
“어허! 남자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대야…… 아니, 져야겠지. 그러니 대.”
뭔가 변명을 할 듯 입술을 꿈틀거렸던 강진은 한숨을 내쉬곤 슬며시 앞머리를 위로 올렸다.
그 모습에 장태풍이 굳은 얼굴로 손가락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하아! 하아!”
귀신이라 그런지 살짝 하얀 기운을 머금은 숨결이 손가락에 스며들었다. 비유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닌, 정말로 숨결이 유형화가 되어 손가락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강하게 때리려고 이러는 거야?’
강진이 긴장감과 두려움이 어린 눈으로 장태풍을 볼 때, 그의 손이 서서히 얼굴로 다가왔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강진의 이마를 향해 중지가 빠르게 뻗어졌다.
툭!
“윽! ……응?”
잔뜩 긴장하고 있던 강진은 자신의 이마에 닿는 손길에 신음을 토했다가 의아한 듯 눈을 떴다.
자신의 이마에 닿은 손길이 무척 가벼웠던 것이다. 그저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에 강진이 의아한 듯 장태풍을 볼 때, 그가 웃었다.
“잘했어.”
“놀래라. 장난이 심하시네요.”
이것 역시 장난이었던 것이다.
‘장난을 생활처럼 하시는구나.’
강진이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을 때, 장태풍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아가씨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주기를 바란다.”
‘좋은 기억?’
보통 누군가를 부탁하거나 할 때는 앞으로도 잘 지내고 잘 해 주라는 말을 하는데, 장태풍은 다르게 표현했다. 그 차이에 어리둥절해하던 강진은 곧 그렇게 말한 이유를 깨달았다.
“아…….”
자신에게는 김소희와 함께하는 시간이 현재이자 미래가 될 테지만…… 더 머나먼 미래의 김소희나 장태풍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장태풍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달라 말을 한 것이다.
슬픈 눈빛으로 강진이 바라보자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옛날 왕들은 오래 살려고 별짓을 다 했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지. 좋아하는 사람들은 죽고, 동생 같던 귀신들은 승천하고…….”
장태풍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쯤 되면 인연을 맺는 것이 이제는 무섭기까지 해. 그런데 평생 산다고 생각을 해 보게. 얼마나 끔찍한가?”
장태풍의 말에 강진은 예전 김소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백 년이란 시간…… 인연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고 슬프기도 했네.
‘오래 산다는 건 확실히 힘든 일이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소희 아가씨 재밌게 해 주게. 내 그 대신 산삼 줄 테니까.”
산삼이라는 말에 강진이 웃었다.
“받으러 꼭 가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장태풍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