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13
514화
웃으며 강진을 보던 이진웅이 입을 열었다.
“그럼 강진 씨도 요리하십니까?”
이진웅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말 놓기로 하셨잖아요.”
“하! 말 놓는 게 쉽지는 않네.”
“이따 술 한잔하시면 바로 놓아질 겁니다.”
오필성의 말에 이진웅이 피식 웃었다.
“하긴 술만큼 남자들끼리 빨리 친해지는 것도 없지.”
“그건 그렇죠.”
“그래서, 강진이는 요리 좀 해?”
“이렇게 작은 식당인데 홀과 주방이 나뉘나요. 바쁘면 저도 요리하고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음식은 누구한테 배운 거야?”
“용수한테 많이 배웠어요.”
“용수 이놈, 자기도 배우는 주제에 누굴 가르치고 다녔나 보네.”
피식 웃는 이진웅에게 강진이 물었다.
“자기 말로는 운암정 수석 숙수 바로 밑이라고 하던데요?”
“수석 숙수 바로 밑은…… 나지.”
“아? 그럼 용수는?”
이진웅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용수는 볶음 요리 담당이었지.”
“파트가 여럿으로 나뉘나 보군요.”
“재료 담당, 국 담당, 볶음 담당, 밥 담당. 하나하나 올라가다 보면 담당 숙수가 되고, 담당 숙수들 위가 총괄 숙수. 그리고 그 위가 수석 숙수인 스승님이 있지. 용수는 볶음 담당 숙수였어.”
이진웅은 약과를 보다가 말했다.
“안 죽고 더 있었으면 지금쯤…….”
말을 하다 입을 다문 이진웅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배용수 생각을 하니 속이 쓴 모양이었다.
“강진이도 이건 명심하고 기억해 둬.”
“뭔데요?”
강진이 묻자 이진웅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이 모르는 식재는 입에 넣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할 것.”
“뭔지도 모르고 입에 넣는 바보가 있나요?”
강진의 말에 이진웅이 피식 웃었다.
“요리사 중에는 그런 바보들이 꽤 있어.”
“그래요?”
“가끔 식재 잘못 먹어서 몸에 열꽃 피는 놈들도 많고…….”
이진웅이 오필성의 어깨를 툭 치고는 말했다.
“이 바보 녀석만 해도 자기가 모르는 식재만 보이면 바로 입에 넣는다니까.”
이진웅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에는 우리 가게에서 운영하는 농원에 나물 좀 뜯으러 갔는데, 나물 옆에 있는 잡초를 뜯어서 입에 넣더라고.”
오필성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급히 말했다.
“허브 밭 옆에 있어서 제가 모르는 허브인 줄 알았죠.”
“허브하고 잡초도 구분 못 하면서 요리는 무슨…….”
“그 잡초라서 못 알아보는 거죠. 먹을 거였으면 구분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먹을 거라면 알아보겠지만, 먹지 못하는 것이니 배우지를 않아 모르는 것이다.
“전에 동식이도 내가 먹어 보라고 하니 맛 특이하다고 먹었어요.”
“선배 요리사가 잡초를 허브라고 하고 주는데 그럼 안 먹냐?”
“어…… 그걸 어떻게.”
“동식이가 말하더라. 네가 이상한 것들 막 먹인다고.”
이진웅의 말에 오필성이 입맛을 다셨다.
“그야 다 동생 위해서 제가…….”
“그러지 마. 그러다가 못 먹을 것 잘못 먹으면…….”
말을 하던 이진웅이 한숨을 작게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진웅의 모습에 오필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음식 뭐 잘 해?”
“식사 안 하셨어요?”
저녁 식사를 하기엔 다소 늦은 시간이었다.
“밥 때 맞춰서 밥 먹는 요리사가 어디 있나.”
“하긴 그러네요.”
손님들이 밥 때에 오다 보니, 정작 요리사들은 제시간에 밥을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밥 때보다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 식사를 한다.
강진은 자신 또한 제시간에 밥을 먹는 건 아침밖에 없다는 걸 떠올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뭐로 해 드릴까요?”
“네가 잘하는 걸로 해 줘.”
“그래도 좋아하는 취향이 있으실 텐데?”
강진의 말에 오필성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요리사가 제일 잘하는 음식을 먹어 보는 것이 저희 취향입니다.”
강진이 보자 오필성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남이 제일 잘하는 음식을 먹어 보는 것이 요리사한테는 공부래요.”
“열심히 하시네요.”
“열심히 해야죠. 제 꿈이 멋진 요리사가 되는 겁니다.”
“꿈 멋지네요.”
강진의 말에 이진웅이 웃었다.
“거기까지는 멋진 꿈인데…… 그 뒤가 좀 더 있지.”
“그 뒤?”
“멋진 요리사가 돼서 TV 출연하고…… TV 출연해서 여자 연예인하고 결혼하는 것이 이 녀석 꿈입니다.”
이진웅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오필성을 보았다.
“참 꿈이…… 인간적이네요.”
“하하. 여자 연예인 이야기는 농담 삼아서 한 말이고…… 멋진 요리사는 진짜입니다.”
오필성의 이야길 듣던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이만 음식 준비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는 차달자가 이소연을 보고 웃으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맛있니?”
“네.”
이소연도 환하게 웃으며 차달자를 보았다. 그녀는 김밥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힐끗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라면 면발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공기와 접촉시키고 있었다.
강진은 라면 면발이 좀 퍼진 것을 좋아해서 뚜껑을 덮은 채 끓이지만, 배용수는 면의 탄력을 살리겠다고 저렇게 면을 못살게 구는 것이다.
그런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놈의 자식…… 먹지 말아야 하는 걸 주워 먹은 건가?’
식재를 조심히 먹으라고 말하던 이진웅의 분위기는 분명 심상치 않았다.
또한 배용수도 평소에 ‘요리사라면 웬만한 건 다 먹어 봐야 한다.’고 했었고 말이다.
그것을 조합해 생각해 보면…… 아마도 배용수가 먹지 말아야 할 식재를 먹어서 이렇게 된 모양이었다.
‘하긴, 상태를 봐도 중독이 돼서 죽은 것 같기는 한데…….’
여전히 피를 흘리는 배용수를 보던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배용수가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했었고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생각은 옅어졌다.
어떻게 죽었는지 알든, 알지 못하든…… 배용수가 변하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죽은 건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니 신경이 쓰였다.
‘적당히 주워 먹지.’
강진이 안쓰러운 눈으로 배용수를 볼 때, 그는 면발을 그릇에 담고는 계란 하나를 국물만 남은 곳에 넣었다.
그러고는 국물을 원 모양으로 부드럽게 젓기 시작하자, 계란이 가운데를 기준으로 회전하며 천천히 익어갔다.
이 국물을 젓는 속도와 방향이 기술이었다. 너무 강하게 저으면 풀어져 버리고, 너무 약하게 저으면 그대로 뭉쳐 버리니 말이다.
얼핏 보기에 간단한 것 같지만 나름 정성이 필요한 것이 계란을 익히는 것이었다.
스윽! 스윽!
계란을 다 익힌 배용수가 국물을 면 위에 붓고는 계란을 올렸다.
“소연아, 라면 됐다. 라면 먹자.”
“와! 라면이다!”
환하게 웃는 이소연이 김밥을 먹으며 라면 그릇에 다가왔다. 그런 이소연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용수가 라면을 가리키자, 이소연이 웃으며 라면을 한 젓가락 뜨고는 입에 넣었다.
“후릅! 아! 뜨거.”
이소연이 입에 넣었던 라면을 다시 뱉자 배용수가 냉수를 따라 주고는 말했다.
“뜨거우면 찬물에 씻어 줄까?”
“아니야. 라면은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어.”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후후! 불어 먹는 이소연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얘가 라면 먹을 줄을 아네.”
“요리사 딸인데 당연하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음식 뭐 드시겠대?”
“여기서 가장 잘하는 걸로 달라는데?”
“그럼 뭐 할 거야?”
“네가 해야지.”
이진웅은 배용수의 손님이니, 그가 하는 것이 맞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이번에는 네가 해라.”
“왜?”
“네 음식 솜씨를 알아야 형이 나중에 너 요리도 봐주고 하지.”
배용수가 말하는 걸 듣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그럼 나 안 할래.”
“형 음식 되게 잘해. 나중에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네가 있는데 왜 남한테 요리를 배우냐? 됐어. 네가 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같이 하자.”
배용수는 냉장고에서 돼지고기와 고등어를 꺼냈다.
“뭐하려고?”
“음식 솜씨를 가장 알기 쉬운 건 밥상이지. 점심 메뉴에 인기 좋은 것이 제육볶음하고 고등어구이니 그걸로 한 상 드리자. 그리고…… 미역국 조개 넣고 끓이고.”
“너무 평범한 거 아냐? 소갈비찜이라도 하나 할까?”
강진이 다른 메뉴를 제안하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소갈비찜 우리 한 달에 몇 번이나 팔지?”
“글쎄. 저승식당 영업 때 가끔 팔지 않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갈비찜은 단가를 낮추려고 해도 낮추기가 쉽지 않다. 고기 자체도 비싸고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장인 손님들에게는 내기가 어려웠다. 직장인들은 싸고 맛있게 먹어야 하는데, 소갈비찜은 비싸고 맛있게 먹는 하는 음식이니 말이다.
“가끔 하는 음식을 우리 식당 대표 메뉴라고 밀 수는 없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웃었다.
“이렇게 잘 가르쳐 주면서 왜 남에게 배우라고 하냐.”
그러고는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육, 고등어구이, 조개 미역국이면 정말 맛있는 밥상이겠다.”
메뉴 조율을 끝낸 강진이 앞다리살을 손질하기 시작하자, 배용수는 미역을 꺼내 물에 담그고는 고등어를 굽기 시작했다.
“제육볶음, 고등어구이, 미역국인가 본데요?”
주방에서 나는 냄새에 오필성이 작게 중얼거리자, 이진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용수에게 요리를 배웠다고 하더니 기본을 잘 배운 모양이구나.”
“기본요?”
오필성이 묻자 이진웅이 그를 보았다.
“너는 뭔가 특별한 음식을 내올 것을 기대했나 보지?”
“형이 보통 손님은 아니잖아요.”
“내가?”
“그럼요. 손님이 한국 최고의 숙수 중 한 명인 이상 보통 음식을 낼 수는 없죠.”
이소연이 죽기 전만 해도, 그는 차기 운암정 대표 숙수로 내정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국 요리계에 인맥도 넓고 영향력도 컸다. 그런 이진웅에게 음식을 내는 것이니 강진이 최대한 신경을 쓸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필성의 말에 이진웅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요리 어디에서 배웠지?”
“저야 학교에서 배우고, 학원에서 배우고…… 방학 때는 형이 불러줘서 운암정에서도 배웠죠.”
운암정 숙수가 되려면 김봉남이 내는 시험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 시험에선 실력이 있어도 김봉남의 마음에 안 들면 탈락이고, 음식을 잘하지 못해도 김봉남의 마음에 들면 합격이다.
물론, 한국 최고의 음식점에 도전하는 이들인 만큼 ‘잘하지 못한다.’의 기준은 상당히 높았다.
어쨌든 오필성은 이진웅의 배려로 방학 때마다 운암정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비록 요리는 손도 못 대본 채 재료 손질만 하면서 가끔 음식을 먹어 보는 게 다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운암정 주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고, 음식을 먹어 보는 것만 해도 오필성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숙수님께서 음식의 기본이 뭐라고 했지?”
“그야 장이죠.”
오필성의 답에 이진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육볶음, 미역국에는 여러 양념이 들어가니 그걸 먹어 보면 이 가게에서 사용하는 장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지.”
이진웅은 숨을 길게 들이쉬며 냄새를 맡고는 말했다.
“그러니 그 음식들만 먹어 봐도 이 집 음식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되지.”
주방을 보던 이진웅이 피식 웃었다.
“이놈의 직업병.”
“왜요?”
“친한 동생의 친구네 가게에 왔으면 그냥 맛있게 밥이나 먹으면 되는 건데…… 지금은 음식 맛 평가하러 온 것 같잖냐.”
그러고는 이진웅이 오필성을 보았다.
“맛있게나 먹어라.”
이진웅의 말에 오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 고등어면 좋겠네요. 양념장 발라서 먹으면 맛있는데.”
“그러게 말이…… 어?”
이진웅은 주방에서 들려오는, 작지만 익숙한 음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 음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