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32
533화
“쌈을 드시는데 사람 주먹만 하게 싸서 드시더라고요.”
강진이 웃으며 말을 하고는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틀어주자, 유훈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영상을 보았다. 얼마나 잘 먹나 궁금했던 탓이다.
동영상이 재생되자, 강남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가볍고 좀 헐렁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커다란 쌈을 입에 넣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여자의 얼굴을 본 유훈의 눈가가 붉어졌다.
‘지은아…….’
믿을 수 없지만…… 영상 속 여자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것도 아파하던 모습이 아닌, 생기가 넘치던 그 시절의 임지은이었다.
‘지은아…….’
액정을 보던 유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아아아!]크게 입을 벌려서는 커다란 쌈을 단번에 넣는 임지은의 모습에 유훈이 쓰게 미소 지었다.
임지은은 십수 년 전에 죽었으니 이 여자는 그저 닮은 사람일 것이다.
그녀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음식을 이렇게 크게 먹는 것을 보니…… 유훈은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는 아파서 몇 년 동안 이런 음식을 먹지 못하고 죽었다. 그런데 꼭 닮은 사람이 이렇게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있자니 대리만족이 되었다.
“정말…… 잘 먹는군요.”
유훈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는 눈가를 붉힌 채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편, 옆에서 같이 영상을 보던 원승환도 감탄하며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찍었어요?”
“혼자 보기 아까워서 찍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걸 찍어도 된다고 했어요?”
“괜찮다고 하니 이렇게 대놓고 찍었죠.”
강진이 웃으며 원승환을 보았다. 형 동생 하기로 했지만, 아직은 불편한지 원승환은 말을 높이고 있었다.
‘말이야 시간이 지나면 편하게 하시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다시 유훈을 보았다.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 보던 유훈이 슬쩍 눈가를 손으로 문지르고는 말했다.
“혹시 다른 영상 없습니까?”
“사진 몇 장 더 찍었는데 보여 드릴까요?”
“보고 싶습니다.”
유훈의 말에 강진이 임지은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유훈은 사진을 하나씩 넘겨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가…… 무척 생기 넘치네요.”
“무척 밝으시더군요.”
강진의 말에 유훈이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 사진을 보다가 말했다.
“저…… 이 사진들 가끔 볼 수 있을까요?”
유훈의 말에 원승환이 웃었다.
“형님, 나이 차이가 좀 나시는데요?”
사진 속 임지은은 이십 대 초반의 아가씨였으니 사십 대의 유훈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사랑에 빠질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네.”
유훈의 말에 원승환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장난으로 한 말인데…… 유훈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내가 좀 예쁘기는 하지.”
임지은이 웃으며 말하는 사이 유훈이 웃으며 핸드폰 사진을 보았다.
“하지만 승환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이 사람, 내 여자친구하고 닮았어.”
“여자친구가 있으세요?”
이야기하던 유훈이 슬며시 손을 내밀자, 강진이 핸드폰을 주었다.
핸드폰을 받은 유훈은 사진 속 임지은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 여자친구는…….”
유훈의 입에서 강진이 아는 그와 그녀 사이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유훈의 입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라 임지은이 한 이야기와 조금은 달랐지만, 비슷한 이야기였다.
임지은이 아픈 걸 자신은 모른 채 헤어졌다는 것. 그리고 임지은의 친구에게서 그녀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찾아갔다는 것.
“그녀가 있는 병실로 가면서 통화를 했는데…… 집이라고 하더군요. 하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은 유훈이 말을 이었다.
“통화하면서 걸음을 옮기는데 대리석 벽에 지은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리석 벽에요?”
유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 꺾이는 쪽에 지은이가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대리석 벽에 반사돼 보였어. 조금은 뿌옇게…… 흐릿했지만 바로 알았어. 지은이라는 걸.”
말을 하던 유훈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때 이놈의 병원, 대리석 참 좋은 것 쓰는구나 싶더라.”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작게 웃은 유훈이 말을 이었다.
“대리석에 비친 내 여자를 보고 있는데 그녀가 오지 말래. 몇 걸음만 걸어서 고개를 돌리면 보고 싶었고 그리웠던 그 여자를 마주 보고 안아 줄 수 있었는데…… 난 그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어.”
유훈이 핸드폰에 떠 있는 임지은 사진을 보았다.
“대리석에 비친 그녀가…… 울고 있었거든. 그 모습에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도 집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어.”
잠시 말을 멈춘 유훈이 옆에 놓아둔 지갑에서 사진을 꺼냈다.
잔디밭에 앉아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임지은을 손으로 쓰다듬은 유훈이 말을 이었다.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주먹으로 입을 막았어. 내 울음소리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그런데 그녀가 대리석을 통해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어.”
“아…… 형수님도 대리석 벽으로 형님을 보셨군요.”
원승환의 말에 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병원 대리석을 통해 서로를 보고 있었어.”
“병원 대리석을 통해…….”
원승환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원승환의 말에 유훈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날 이후 그 시간에 그곳에 다시 갔어.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녀도 그 시간, 그 자리에 서 있더라. 그리고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대리석 벽을 보며 통화를 했어.”
유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보 같지? 사랑하는 사람이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데…… 대리석에 비친 뿌연 모습만 보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만큼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원승환의 말에 유훈이 그를 보았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저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요.”
술 마시면서 원승환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기에 유훈도 그의 사연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보는 유훈을 보며 원승환이 말했다.
“형은 형수님이 상처받을까 봐 다가가지 못하신 것 같아요.”
유훈이 보자, 원승환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형수님 역시 형이 상처를 받을까 봐 나서지 못한 것 같아요.”
“맞아. 지은이는…… 내가 자기 때문에 힘들어하고 상처받을까 봐 나를 보지 않으려 했어.”
“두 분 다…… 바보입니다. 상처를 줘도 같이 있으면 낫는 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유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그녀도 바보였지. 그녀가 말을 그나마 할 수 있을 때…… 옆에서 많이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이야기하던 유훈이 눈물을 흘리자 임지은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난 너와 대리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
임지은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을 때, 유훈이 다시 핸드폰 속 임지은을 보았다.
“이 친구, 보면 볼수록 우리 지은이하고 닮았습니다.”
유훈의 말에 원승환이 슬쩍 핸드폰 사진과 지갑에서 나온 사진을 번갈아 보다가 동영상을 틀었다.
[아아아!]입을 크게 벌리고는 커다란 쌈을 단숨에 넣는 것을 보던 유훈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지은이도…… 이렇게 입이 컸는데…….”
그런 유훈을 따스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임지은은 그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사랑해.”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는 둘을 보며 강진은 미소 지었다.
임지은의 사진과 영상을 유훈에게 보여줘서 JS에서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임지은이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임지은을 흐뭇한 눈으로 보던 강진이 문득 황민성을 보았다. 황민성은 이때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뭐 보세요?”
강진이 묻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그를 보았다.
“강상식하고 연락했다고 했지?”
“연락했는데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그래서 문자 남겼는데…….”
강진이 유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말씀하시면 사진이랑 영상 보여 드릴게요. 물론 여자분한테 허락받으면요.”
강진의 말에 유훈이 핸드폰을 보다가 말했다.
“사진은 괜찮고, 동영상만 부탁드립니다.”
임지은이 아닌 것을 알지만, 그녀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음식을 이렇게 먹는 것을 보니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임지은이 생각이 날 때 동영상을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술을 마시던 중, 강진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 아직 안 봤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몸을 일으켰다.
“강진아, 나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하자.”
“네? 네.”
강진이 일어나자, 황민성이 유훈과 원승환을 보았다.
“드시고 계세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1층으로 향하자 강진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강상식 씨한테 무슨 일이 있나?’
1층 계단 앞에 선 황민성이 강진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오성그룹 강 회장님 돌아가신 모양이다.”
“오성그룹 강 회장님이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보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상식한테 엄마 수호령이 붙어 있다고 했지.”
“네.”
“그럼 혹시…… 강상식 아버지가 강 회장님이야?”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한층 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소문이 사실이었네.”
“소문요?”
“쉬쉬한다고 해도 사람 입이라는 것이 어디 쉽게 막아지나. 어쨌든…… 그럼 상식이 아버님 돌아가신 건데…….”
“장례식장은 어디래요?”
“오성병원에서 하겠지. 거기에 입원해 계셨으니.”
“그럼…….”
강진은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가죠.”
몰랐다면 모를까, 알았는데 안 갈 수는 없다. 그리고 강상식에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자신과 황민성뿐이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장례식 아직 안 할 거야.”
“네?”
사람이 죽었는데 왜 안 하나 싶어 되물은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회사 때문에요?”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 회장님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는 순간 오성그룹 주가 바로 출렁인다. 아마 하루 정도 강 회장님 사후 준비를 하고, 빨라야 내일이나 죽은 것 알리고 장례를 시작할 거야.”
“회사 때문에 망자 장례를 미뤄요?”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이쪽 바닥이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죽었는데 장례식을 안 하면…… 그 회장님 귀신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그전에…… 회장님 귀신하고 장은옥 씨하고 만나는 거잖아.’
죽은 날로부터 3일간 귀신 상태로 이승에 머물 것이고, 그럼 강상식에게 붙어 있는 장은옥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귀신이 된 강 회장과 만나면 장은옥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상식 씨 보러 가죠.”
“아직 장례식 안 할 텐데?”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장례식 말고…… 상식 씨 보러 가요.”
황민성이 자신을 보자, 강진이 입을 열었다.
“나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친구잖아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가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