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7
57화
풍물시장에서 풍경을 산 강진은, 가게로 돌아와 문에 그것을 달고 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10시 반쯤 일어나 샤워를 하고는 아래로 내려왔다.
“일어났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피곤하네.”
“몇 시간 안 잤으니까.”
고개를 비튼 강진이 냉장고에서 마늘과 고추를 꺼내 놓았다.
“무슨 음식을 하려고?”
“오늘은 처녀귀신 부를 거니까. 이따 다시 와.”
“처녀귀신? 노리개 주게?”
“응.”
“알았어.”
“그리고 여사님 어떻게 하고 계신지 가게도 한 번 가 봐.”
“알았다.”
“밖에 귀신들 있으면 보내고.”
처녀귀신이 오면 어차피 흩어질 귀신들이지만, 한참 기다리다가 쫓겨나는 것보다는 미리 어디 가 있으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배용수가 문을 통과해 사라지자 강진이 프라이팬에 기름을 올리고는 고추를 넣고는 볶기 시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곧 알싸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고추기름을 한쪽에 덜은 강진이 곧 요리 준비를 시작했다.
‘고추기름 파스타.’
일반적인 파스타는 올리브오일을 사용하지만, 고추기름 파스타는 말 그대로 고추기름으로 만든다.
매운맛이 강하기는 하지만 고추기름으로 만든 것이라 바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맛있는 매콤함뿐일 것이다.
고추와 마늘을 좋아하는 처녀귀신들을 위해 특별히 찾은 레시피였다.
처녀귀신이 좋아할 고추와 마늘 냄새를 피운 강진이 시간을 보았다.
“냄새는 풍겼고…… 차 한 잔 마시고 파스타 삶기 시작하면 딱 되겠네.”
생각과 함께 강진이 냉장고에서 야관문차를 꺼내 따라 마셨다. 그러다가 문득 시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꼭 김소희가 올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김소희 말고 다른 처녀귀신들이 먼저 올 수도 있었다. 그럼 다른 처녀귀신들의 눈을 피해서 김소희에게만 선물을 줘야 하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김소희, 김소희, 김소희.”
처녀귀신 보스 김소희의 이름을 세 번 부른 강진이 주위를 보았다.
“응?”
주위에 김소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배용수는 부르면 바로 왔는데, 김소희는 없었다.
주위를 보던 강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김소희, 김소희, 김소희.”
김소희의 이름을 다시 부른 강진이 다시 주위를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녀귀신한테는 안 먹히는 건가? 아니면 바쁜 건가?”
부른다고 해도 바쁘면 못 올 수도 있다는 귀신들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다시 한 번 김소희를 불렀다.
“김소희, 김소희, 김소희.”
“자네……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것인가?”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강진의 옆에 어느새 온 김소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에 한 번 귀신으로 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다시 보니 또 달랐다.
‘무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박력 죽이네.’
뚝뚝뚝!
게다가 손에 들린 검에서는 피까지 뚝뚝뚝 떨어지니 더…….
“오셨어요?”
“자네가 부르지 않았나.”
슬쩍 눈을 찡그리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음식을 좀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 모셨습니다.”
“내가 먹을 것을 그리 좋아하는 사…… 아니, 귀신으로 보이는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주방을 바라보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싫어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으신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성의가 있으니 맛은 보도록 하지.”
스윽!
그러고는 김소희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것에 강진이 말했다.
“곧 시간 되는데, 그냥 계시죠?”
“손님은 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른 귀신들처럼 현신이 되는 감각을 즐기는 것 같았다.
스르륵!
말과 함께 문을 뚫고 나가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시간을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김소희도 왔으니 이제 슬슬 시작을 하면 되었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이 냄비에 물을 올리고는 한쪽에 있는 봉지에서 노리개가 담긴 한지 케이스를 꺼냈다.
한지 케이스를 홀 테이블에 올린 강진이 소주와 맥주를 꺼내 세팅을 하고는 밑반찬들을 꺼내 놓았다.
그러고는 주방에 들어가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파스타를 만들던 강진의 귀에 풍경 소리가 들렸다.
띠링! 띠링!
맑은 풍경 소리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덜컥 소리보다는 듣기 좋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홀을 보았다. 홀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을 한 김소희가 단아한 모습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확실히 귀신일 때와 현신했을 때는 천지차이다. 단아한 하늘색 한복을 입은 김소희는 아주 귀여운 모습이었다.
지금 이대로 경복궁에 가서 한복 입은 여고생들하고 같이 다녀도 어울릴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온 김소희가 음식이 차려진 탁자에 가서 앉으며 강진을 보았다.
“손이 왔는데, 나오지도 않는 것인가?”
“지금 음식 마무리하는 중이라서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말과 함께 강진이 요리하던 고추기름 파스타를 담아서는 가지고 나왔다.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음식, 고추기름 파스타입니다.”
웃으며 그릇을 김소희의 앞에 놓은 강진이 말했다.
“처녀귀신의 취향에 맞게 고추와 마늘을 아주 듬뿍 넣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파스타를 보다가 소주를 들었다. 음식보다는 술을 먼저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아! 혹시 폭탄주 드셔 보셨나요?”
“폭탄주?”
“모르세요?”
“그…… 사람들이 술을 섞어 먹는 것 말인가?”
먹은 적은 없어도 본 적은 있는 듯한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고는 강진이 컵을 가져다가 앞에 늘어놓고는 맥주와 소주병을 땄다.
맥주를 한 잔 따르고 소주병을 그 위에 꽂은 강진이 웃으며 김소희를 보았다.
“드시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술을 섞다니…… 천박해 보이는군.”
“안 드셔 보셨어요?”
“음식에는 모두 고유의 맛이 있는 법. 그 맛을 섞는 것은…… 아랫것들이나 하는 것일세.”
“드셔 보시면 또 말아 달라고 하실 것입니다.”
웃으며 강진이 소주병을 떼어내고는 거품이 솟구치는 맥주병 입구를 엄지로 막았다.
그 모습에 김소희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을 찡그렸다.
“자네 지금, 술병을 손가락으로 막은 것인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술에 손가락이 들어가서 그러신 것 같은데…… 여기 있는 음식들엔 모두 제 손이 들어갔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음식을 할 때 손이 닿는 것과, 만들어진 음식에 손이 들어가는 것은 다른 것 아닌가?”
“나름 청결해요.”
말과 함께 강진이 일어나서는 맥주병을 손목 스냅으로 한 번 움직였다.
탓!
그러고는 잔에 폭탄주를 따랐다.
촤아악! 촤아악!
거품들이 쏟아지는 것에 김소희가 다시 눈을 찡그렸다.
“기품 없이 천박하군.”
술을 따를 때도 예를 따지는 사대부 가문에서 자란 김소희다 보니, 이렇게 요란하게 따라지는 폭탄주의 모습이 불편한 것이다.
그런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잔을 밀었다.
“일단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잔을 들었다.
“주인의 성의이니 한 번 먹기는 하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로군.”
말과 함께 김소희가 술을 입에 가져다댔다.
꿀꺽!
폭탄주를 한 잔 마신 김소희의 눈이 그대로 커졌다.
‘이건 마치 구름을 마시는 것 같구나. 그리고…… 부드러움 속에서 날카로운 비수가 내 목을 찌르는구나.’
부드러운 거품은 마치 하얀 구름의 맛을 연상시켰고, 그 안에 숨겨진 소주의 맛은 목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맛이…… 마음에 들었다. 사백 년 넘게 귀신으로 존재하면서도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맛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잔을 내려놓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어때요? 좋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헛기침을 했다.
“험! 나쁘지는 않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인정하세요. 최고라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최고는 따로 있네.”
“그래요? 이것보다 더 맛있는 술이라면 저도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자네도 언젠가는 먹을 수 있겠지.”
“어떤 술인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말없이 폭탄주를 한 잔 더 들었다.
“성의를 생각해서 마시는 것일세.”
꿀꺽! 꿀꺽!
폭탄주를 단숨에 원 샷을 한 김소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맛있다.’
살짝 웃은 김소희가 이번에는 파스타를 입에 넣었다.
“입에 맞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좋군. 매우면서도 깔끔한 맛이야.”
“술과 같이 드시면 더 맛이 있을 겁니다. 매운맛을 술이 쓸고 내려갈 테니까요.”
김소희가 폭탄주를 들어 한 잔 더 마시자 강진이 빈 잔에 다시 폭탄주를 따라주었다.
그런 강진을 보며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를 왜 부른 것인가?”
“혹시 바쁘신데 제가 부른 것인가요?”
“그렇네.”
단호한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뭐 하고 계셨는데요?”
“그건…… 자네가 알 것 없네.”
사실 말과는 달리 김소희는 찜질방에 있었다. 찜질방에서 틀어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 강진이 불러서 온 것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나를 부른 것은…… 사백 년 동안 자네가 처음이었네.”
“처음이었어요?”
“음…… 정확히는 귀신이 되고 얼마 동안은 몇 있기는 했지.”
“누가요?”
“무당들이 어떻게 나에 대해 알고, 접신을 하려 시도하더군.”
김소희는 귀신 중 끝발이 가장 높은 처녀귀신이자 무신이었다.
그렇다 보니 무당들이 그녀와 접신을 하려 시도를 했었다.
“그래서 하셨어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라면 해 주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했네. 어쨌든 그때 빼고…… 내 이름을 부른 것은 자네가 처음이야.”
그러고는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그래서 나를 왜 부른 것인가?”
“음…… 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면 화내실 겁니까?”
“자네…….”
눈을 찡그린 채 뭐라 할 말을 찾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속으로 웃었다.
‘귀엽네.’
처녀귀신 보스든,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이든…… 겉으로 보이기에는 중학생 정도의 예쁘장한 여자애였다.
귀여운 여동생이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좀 나지만…… 그래도 귀여운 것은 귀여운 것이었다.
그런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음식들 옆에 놓인 상자를 밀었다.
“오늘 풍경 사러 갔다가 아가씨 생각이 나서 하나 샀습니다. 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이 맞나요?”
“그렇게 부르게.”
말을 하며 김소희가 상자를 유심히 보았다. 이게 뭔가 싶은 것이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상자를 집어 뚜껑을 열었다.
멈칫!
상자를 열자 노리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리개?”
“사극 드라마 보면 양반 여인들이 차고 있던 것이 떠올라서요. 어떻게, 마음에 드십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잠시 노리개를 보다가 그것을 꺼내 보았다.
그리고 잠시 노리개를 보던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가 노리개를 사 주셨던 것이 떠오르는군.”
“좋은 오라버니네요.”
“얼마 안 되는 용채를 모아서 장날에 가서 사 주셨지. 그리 좋은 노리개는 아니었네. 수실도 그저 그랬고 옥도 좋은 것이 아니었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 비싼 것을 파는 곳이 아니라서요.”
싸구려를 사 줬다고 그러나 싶어 강진이 변명을 하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잠시 주방에 들어가 있게. 절대 나오라 하기 전까지는 얼굴을 들이밀면 아니 될 것이네.”
“알겠습니다.”
김소희의 으름장에 강진이 주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김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도 되네.”
김소희의 말에 밖으로 나온 강진은 그녀가 일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김소희의 옷자락 사이로 노리개가 보였다. 노리개를 차려고 들어가라고 한 모양이었다.
“어울리…… 나?”
김소희의 물음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예쁘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러고는 급히 자리에 앉아서는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