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14
615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를 짓던 한선동이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죽어서 태우면 한 줌 가루가 되는 주제에 욕심이 과했지. 내 몸이 얼마나 크다고 이 큰 산을 독차지하려고 했는지…… 잘 팔았어.”
한선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물었다.
“근데 안 팔려고 하신 산을 왜 파신 거예요?”
강진의 물음에 한선동이 웃으며 학교를 돌아보았다.
“부동산에서 팔라고 연락이 왔기에 안 판다고 거절을 했는데…… 황 사장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어. 여기 산이 참 마음에 든다고. 그래서 ‘왜, 여기에다 리조트라도 짓게?’ 했지.”
-왜, 리조트라도 짓게?
-리조트 지으면 파시겠습니까?
-리조트 짓는다고 하면 팔 수도 있지. 산에 그거 들어오면 주변 땅값도 오를 테고…… 그래서 리조트를 짓는다고?
-아닙니다.
-그럼 이 볼 것도 없는 산을 사서 뭐 하려고?
-학교를 지을 겁니다.
-그게 말이 되나? 학교를 지으려면 애들이 있어야 하는데?
-전국에서 모을 겁니다.
“그러면서 불량한 애들 데려다가 기술 가르치고 공부 가르쳐서 사회에서 제대로 월급 받고 살 수 있게 만들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파신 건가요?”
“그 말 들으니…….”
입맛을 다신 한선동이 한숨을 쉬었다.
“죽은 내 손주가 생각이 나더라고.”
“손주요?”
“아들 내외가 일찍 죽었어. 그래서 나와 할망구가 손주를 키웠는데…….”
한선동은 멍하니 있다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애가 일곱 살이 될 때…… 자다가 죽었어.”
“자다가요?”
“아침에 일어나서 애 깨우려고 하는데…… 죽어 있더라고.”
한숨을 크게 토한 한선동이 입맛을 다셨다.
“나 같은 노인네나 데려갈 것이지. 그 어린 것을 데려다가 어디에 쓰겠다고.”
한선동은 하늘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어떻게 됐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후우!”
고개를 떨군 한선동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들 내외 죽고 남은 손주까지 보내니…….”
뒷말을 하지 않아도 강진은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자식과 손주를 먼저 보내는 심정은 몰라도…… 사랑하는 부모님을 먼저 보낸 심정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고개를 저은 한선동이 잠시 삼겹살을 보다가 말했다.
“그러다가 겨울이 됐지. 우리 손주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해서 11월부터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노래 부르면서 그날만 기다리거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죠.”
크리스마스에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그날이 되면 사람들이 모두 흥겨워하고 즐거워하니 말이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도 있고 말이다.
“손주가 없는데 12월이 되니 우리 할망구하고 나하고 참 쓸쓸하더라고. 손주 살아 있으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뭘 사줘야 하나 걱정하면서도 즐거웠을 텐데 말이야.”
재차 입맛을 다신 한선동이 말을 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할망구하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이장이 찾아왔더라고. 그래서 밥 먹었냐고 하니 머뭇거리다가 일단 식사부터 하라고 하더군.”
머뭇거리는 이장을 보며 의아한 한선동이 말했다.
-식사 안 했으면 밥이나 같이 해.
-아닙니다. 일단 식사부터 마저 하세요.
평소 활달한 이장이 조금 목소리가 가라앉은 것 같다 생각을 하며 한선동이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저기 어르신…….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무는 이장을 보며 한선동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사람…… 뭐 돈 필요해?
-돈이라니요. 저 여기 정착할 때 어르신께서 도와주신 것도 아직 다 못 갚았는걸요.
-그런데 왜 그래? 혹시 태동이 녀석이 사고 쳤어?
-아닙니다. 태동이는 요즘 술도 안 마시고 회사 잘 다닙니다.
-그럼 뭔데 그래?
한선동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이장이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
말없이 내민 종이를 받아든 한선동이 그것을 보았다. 작은 글씨라 잘 보이지 않자 이장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뭔데?
-어르신, 안경을 끼시죠.
-이거 참…… 그냥 말을 해 주면 될 것을.
사람 답답하게 한다 생각을 하며 한선동이 안경을 찾아 쓰고는 종이를 보았다.
-취학 통지서?
이게 뭔지 의아해하는 한선동을 보며 이장이 한숨을 쉬었다.
-일선이…… 학교 갈 나이 됐다고 나온 겁니다.
자신의 손자 일선의 이름에 한선동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취학 통지서를 보던 한선동이 내용을 읽었다.
통지서에는 며칠에 예비 소집을 한다는 것과 장소가 적혀 있었다.
멍하니 통지서를 보고 있는 한선동을 보던 이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손에 쥐었다.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119라도 빨리 불러야 하니 말이다.
-이게…… 우리 일선이 학교 나오라는…….
-일선이 살았으면 내년에 학교 갈 나이잖습니까.
취학 통지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선동에게 이장이 슬며시 말을 이었다.
-일선이 사망…….
잠시 말을 멈춘 이장이 한숨을 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망 신고 아직 안 하셔서 나온 것 같습니다.
원래라면 사망하고 한 달 이내에 해야 하는 신고지만 한선동은 아직 안 한 것이다.
“아…… 취학 통지서가 나왔군요.”
강진이 안타까운 듯 보자, 한선동이 한숨을 쉬었다.
“손주 죽고 나도 정신없고, 할망구도 정신없고…… 사망 신고를 할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 보니 그게 나왔더라고.”
잠시 있던 한선동이 말을 이었다.
“취학 통지서 들고 있다가 이장하고 같이 면사무소로 가서 사망신고서 작성하려고 하는데, 글자 하나하나마다 손주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그래서 울고만 있으니 이장이 대신 써서…… 사망 신고를 했지.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손주가 죽은 것도 슬픈데…… 사망 신고를 할 때는 얼마나 슬프셨을까?’
강진이 한숨을 쉬며 한선동을 보았다. 그런 강진의 시선을 받으며 한선동이 말을 했다.
“황 사장 이야기 듣고 있는데 벽에 걸려 있는 일선이 취학 통지서하고 등본이 보이더라고.”
‘일선이? 그럼 학교 이름을 어르신 손주 이름에서 따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등본요?”
강진이 묻자 한선동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면사무소 직원이 사망신고서를 받고는 먼저 등본을 하나 뽑아 드릴까요? 하고 묻더라고. 그래서 그건 뭐 하게? 했더니 직원이 잠시 있다가 울더라고…….”
갑자기 우는 직원의 모습에 이장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면사무소에 있던 직원들도 놀란 눈으로 우는 직원을 보았다.
그 시선에 급히 눈가를 닦은 직원이 잠시 있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얼마 전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한선동이 남 일 같지 않아 애잔한 시선으로 보자 직원이 재차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얼마 전에 등본을 뗄 일이 있어서 보니…… 등본에 어머니 이름이 없더군요.
-아…….
한선동이 탄식을 토하자, 직원이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 이름 들어간 등본이라도 먼저 한 통 떼어 놓을 것을…….
다시 직원이 울기 시작하자, 한선동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등본…… 떼어줘. 아니, 열 장 떼어줘.
한선동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본을 떼어주었다. 그리고 한선동은 자신과 아내 밑에 적힌 손주 이름을 보고…… 또 한참을 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등본엔 더 이상 손주의 이름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직원분이…… 무척 고맙네요.”
강진의 말에 한선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지. 아주 고맙고말고. 그이 아니었으면…… 손주 이름 적힌 등본 못 챙겼을 테니까.”
그 직원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던 한선동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취학 통지서하고 손주 이름 적힌 등본 보니…… 알겠더라고. 우리 손주가 못 간 학교 짓는다는데 내가 못 할 것이 뭐가 있겠나. 그리고 이 한 몸이야 태우면 한 줌 재가 되고 흙으로 돌아갈 텐데 이 커다란 산이 무슨 소용이겠어.”
한선동은 학교를 둘러싼 산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날 이 산을 팔았어. 대신 학교 이름은 우리 손주 이름을 따서 일선 학교로 하게 해 달라고 했지.”
“그렇군요.”
“그리고 산 팔고 받은 돈 학교에 기부했지.”
“학교에요?”
“여기 학교 지은 벽돌 중에 우리 일선이 이름으로 기부된 것들이 반 이상은 될 것이야.”
기분 좋게 웃는 한선동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그럼…… 할머니는?”
강진의 물음에 한선동이 입맛을 다셨다.
“아…….”
그 모습에 강진이 탄식을 토하자, 한선동이 고개를 저었다.
“마을에서 잘 살고 있어.”
“잘 살고 계세요?”
“왜? 잘 못 살기를 바랐던 거야?”
“당연히 그건 아니죠. 다만 방금 어르신 표정이…….”
방금 한선동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나 지을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한선동이 입맛을 다셨다.
“할망구가 먼저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할망구보다 한 일 년 더 살다 죽었어야 했는데.”
“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보자 한선동이 고개를 저었다.
“자식 죽고, 손주 죽고, 이제는 나까지 없으니…… 우리 할망구 얼마나 외롭겠어. 나라도 있었으면 그래도 서로 등이라도 긁어주고 외롭거나 화가 날 때 같이 이야기를 하든 싸우든 할 것인데 말이야.”
“그건…… 그렇겠네요.”
“차라리 할망구가 먼저 죽었으면…… 내가 외롭고 말았을 것 아니겠나.”
잠시 있던 한선동이 입맛을 다셨다.
“나이 먹으면 먼저 죽는 것이 호강이야. 남는 사람은 외롭고 힘들어.”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주소 말씀해 주시면 제가 내려가는 길에 반찬 좀 챙겨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한선동이 반색을 하며 그를 보았다.
“그래 줄 건가?”
“혹시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럼 마당에 있는 잡초 좀 뽑아 주고 전구…… 아, 전구는 얼마 전에 이장이 와서 갈아 줬지. 그럼 뭐가 있나…….”
한선동이 집에 필요한 일들을 생각하며 말을 해 주자 강진이 웃으며 그것을 기억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할 때 어느새 식사를 하고 나온 아이들이 하나둘씩 푸드 트럭으로 다가왔다.
푸드 트럭에서 맛있는 튀김 냄새가 나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뭔가 하고 다가오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가오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핫도그하고 야채 튀김 합니다.”
강진의 말에 덩치가 큰 학생이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무료요?”
학생의 건들거리는 목소리도 강진은 개의치 않고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무료로 드리는 겁니다.”
강진의 말에 학생은 튀겨진 핫도그와 야채 튀김을 보고는 슬며시 물었다.
“핫도그 하나…… 먹어도 됩니까?”
“그럼요.”
여전히 건들거리는 목소리에도 강진은 친절하게 핫도그를 하나 집어 내밀었다.
“앞에 케첩하고 설탕 있으니 취향대로 뿌려 드세요.”
강진의 말에 학생이 핫도그를 받고는 설탕과 케첩을 뿌렸다. 그러고는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학생의 인사에 강진이 살짝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이미 학생은 핫도그를 입에 넣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감사하다고 인사할 줄은 몰랐네.’
건들거리고 아주 못되게 생겨서 그냥 툭 집어갈 줄 알았던 것이다.
그 학생 이후에도, 딱 봐도 불량스러워 보이는 학생들이 음식을 받아 갈 때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가자 강진이 웃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사하는 건 잘 배웠네. 하긴…… 인사만 잘 해도 사회에서 욕은 안 먹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핫도그와 튀김을 더 튀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