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임호진의 눈짓에 이상섭이 입맛을 다셨다.
“본의 아니게 내가 나쁜 역을 맡게 된 것 같네.”
“듣겠습니다.”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최동해 씨는 변명이 많아.”
“네?”
“뭔가 지적을 하면 일단 변명부터 해. 비난을 받으면 그것을 수긍할 줄도 알아야 해. 비난에서부터 물러서지만 말고.”
“알겠습니다.”
“……까지만…… 하자.”
“네?”
의아해하는 최동해를 보며 이상섭이 웃으며 잔에 소주를 따라 주었다.
“여기까지만 고쳐. 더 고치려고 들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 더 빠르겠다.”
“이 정도 했으면 동해 씨도 뭔가 느끼는 것이 있겠지.”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이상섭이 말했다.
“오랜만에 하는 회식인데 너무 동해에게만 화제가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이모! 여기 소주하고 맥주 다섯 병씩 더 가져다주세요.”
이상섭이 술을 더 주문하고는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희 부서 회식은 1차만 합니다. 노래방 회식이나 그런 것도 없으니 좀 빨리 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좀 말아서 먹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술 올라온다 싶으신 분은 잔을 뒤집어 놓으세요. 술을 권하지 않는 문화가 요즘 또 대세니까요.”
웃으며 이상섭이 글라스들을 모아서는 맥주와 소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상섭이 만든 폭탄주로 직원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최동해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취기가 오를수록 최동해만은 오늘 들은 이야기가 계속 떠오를 뿐이었다.
***
회식은 10시에 끝이 났다.
“과장님, 들어가세요.”
“대리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지하철역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배웅한 강진은 옆에 남아 있는 최동해를 보았다.
“동해 씨는 안 가요?”
“저…… 라면 한 그릇 먹고 싶어서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시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회사 근처에서 회식을 했으니 강진의 식당과도 가까웠다. 5분 정도 걸어 한끼식당에 도착한 강진은 바로 라면을 끓였다.
라면 두 개를 라면 하나 분량의 물로 끓여, 짜장 라면 수준으로 국물 없는 라면을 끓여낸 강진이 그릇을 최동해 앞에 놓았다.
“라면 나왔습니다. 공깃밥도 드릴까요?”
강진의 물음에 최동해가 잠시 라면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러고는 최동해가 젓가락을 들고는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회식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 신경 많이 쓰이나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라면을 먹다가 잠시 멈췄다. 하지만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라면을 다 먹은 최동해가 물을 마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이강진 씨…….”
잠시 말을 멈췄던 최동해가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렇게 해.”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겠다는 말에 강진은 두말하지 않고 말을 놓았다.
강진의 허락에 최동해가 입을 열었다.
“사실…… 형도 알다시피 저는 형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알고 있어.”
“자격지심이었어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최동해가 말을 이었다.
“무역학과도 아닌데 무역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왔고, 무역학과를 나온 저보다 팀원들이 더 형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형을 미워…… 했던 것 같습니다.”
“했던 것이면 과거형이네?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지금도…… 솔직히 질투가 나기는 해요. 아직도 팀원들은 저보다 형을 더 좋아하니까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소심하기는…….’
“그래서 앞으로도 나를 미워할 거고?”답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미워하려고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미워하는 대신 친해지려고요.”
뜻밖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오늘 들은 이야기가 충격이 컸나 봐?”
“사실…… 이니까요. 그리고 이때까지는 제가 안 보려고 했던 사실이죠.”
그러고는 최동해가 입을 열었다.
“제가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살 빼.”
“빼야죠.”
“아니…… 꼭 빼.”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최동해를 보던 강진이 입을 열었다.
“너희 집 어때?”
“저희 집요?”
“네가 1년 정도 취업 안 하고 쉬어도 집에 부담이 가지 않나 묻는 거야.”
“나쁘지는 않은데…… 1년을 쉬라고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언제부터 살이 쪘어?”
“중2…… 때부터일 거예요.”
“그럼 11년 정도 뚱뚱했네.”
지금 최동해가 26살이니…… 11년 정도 뚱뚱하게 살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죠.”
“그럼 11년 동안 뚱뚱해서 생겼던 안 좋은 일들…… 앞으로 이십 년, 삼십 년 그리고 그 이후까지 겪을 거야?”
강진의 말에 최동해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니요.”
“너도 분명 다이어트 시도는 몇 번 해 봤을 거야.”
“네.”
“그런데 하다 보면 무슨 일이 생겨서 못하게 됐을 거야. 그렇지?”
“그걸 어떻게?”
“금연이랑 똑같지.”
“형 담배 피우세요?”
“아니, 알고 지내던 아저씨들이 금연한다고 했다가 다시 피우던 것 보면 다들 변명이 있더라고.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네, 술을 마셨네 등등 말이야.”
변명이라는 말에 최동해가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을 해 보니 강진의 말이 맞았다.
다이어트 하다가 명절이 닥쳤고, 명절이니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먹다가 망쳤다.
다이어트 하다가 친구가 입대를 하게 됐고, 몇 없는 친구 중에 한 명이 가는데 오늘은 먹자하고 먹다 망쳤다.
또 다이어트 하다가 현기증이 나서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서 먹기도 했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다 변명이었다.
“저는…… 변명쟁이였네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회사 다니면서 다이어트 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게다가 인턴 기간 끝나면 바로 졸업이고 취업 준비를 해야겠지.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너에게 또 다른 변명거리를 만들게 할 거야.”
“그럼 어떻게 하죠?”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지금 인턴 그만두고 학교 가서 휴학하고 1년 정도 다이어트만 죽어라 하는 것. 두 번째는 인턴은 하면서 다이어트도 조금씩 하다가 인턴 끝나면 1년 정도 다이어트 하는 것.”
“1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다이어트만 하라고요?”
이제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최동해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강진 생각에 최동해는 취업보다 살이 먼저였다. 지금대로라면 일단 사회생활이 문제가 아니라 건강부터가 문제일 테니 말이다.
“내가 다이어트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다이어트도 금연처럼 엄청 힘들 거라 생각해. 내 몸에서 살을 떼어내는 건데 그게 쉬울 수는 없지. 그래서 넌 1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다이어트만 했으면 한다.”
“그게…….”
1년 동안 다이어트만 하라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최동해로서는 말이다.
“동해 너, 키하고 몸무게가 몇이야?”
강진의 물음에 최동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170에…… 128요.”
2킬로그램 정도는 줄였다. 120대와 130대는 느낌이 다르니 말이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최동해의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120이나 130이나 놀라운 수치일 뿐이었다.
“많다는 건 알지?”
“……네.”
“요즘이 100세 시대라고 해도 사실 100세까지는 무리고…… 그래도 80까지는 살잖아.”
“그렇죠.”
“그럼 앞으로 남은 네 인생이 54년 정도 남았다고 할 때, 1년 정도 날린다 생각하고 남은 53년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건강하게 80까지 사는 것과 골골거리며 80까지 사는 건 다른 문제니까.”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인턴은 마쳤으면 좋겠어.”
“바로 다이어트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요?”
“내가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 많은 사람을 만나 봤지만, 여기 팀원들처럼 좋은 분들은 없었어. 아니 태광무역 회사처럼 일하기 좋은 분위기를 가진 회사가 없었어.”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 인턴 기간 동안 네가 배우는 실무 경험과 인간관계는 앞으로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인턴으로 정직원은 되지 못하더라도, 입사 시험 보고 들어올 수도 있잖아.”
“그렇죠.”
“여기 인턴 생활하고 1년…… 다이어트 해. 그리고 정식으로 입사 시험 보고 들어와.”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최동해를 보던 강진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다이어트 하기 좋은 곳 알려 줄게.”
“좋은 곳요?”
“강원도 산에 있는 고시학원인데 군대처럼 정해 놓은 시간에 기상하고 밥 먹고 자는 곳이야. 가까운 마을도 차 타고 10분은 나가야 하는 곳이라 잡생각 하기도 어렵고.”
“그런 곳이 있어요?”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야. 거기서 밥도 주니까, 주는 밥 먹으면서 아침, 점심, 저녁 먹고 마을에 걸어갔다가 걸어와. 그럼 살은 무조건 빠진다.”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인턴 끝나면 꼭 가서 살 빼겠습니다.”
“그럼 이제 가.”
“네?”
“형 장사해야 해. 이제 가.”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 말고…… 너 자신을 도와.”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이 그릇들을 부엌으로 옮기는 것에 최동해가 몸을 일으켰다.
“잘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최동해가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내 카운터에 있는 아크릴 통에 넣고는 가게를 나섰다.
주방에서 그런 최동해의 뒷모습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아.”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설거지를 하고는 곧 올 귀신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강진은 최동해를 보고 있었다.
“왜…… 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파우더 뿌렸어요?”
“냄새 많이 나요?”
“아니,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그리고…… 혹시 저한테 냄새 나기 시작하면 저한테 신호 좀 주시겠어요?”
“알았어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살며시 말했다.
“그리고 말 편하게 하세요. 어제 형 동생 하기로 했잖아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지내고 사적으로 보는 자리에서는 그렇게 해요. 그게 동해 씨한테도 편할 겁니다.”
“알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최동해가 강진에게 말을 했다.
“그리고…… 전에 단톡방 일은 제가 죄송합니다.”
“단톡방?”
“동기들하고 하는 단톡방요.”
“아…… 신경 쓰지 말아요. 딱히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럼 일하죠.”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을 하기 시작하자, 강진 역시 앞에 놓인 서류들을 보았다.
체육 행사가 잡힌 후 일이 가장 많아진 것은 강진이었다.
수출 대행 2팀에서 하는 모든 업무가 지금 강진에게 모였다. 그리고 서류를 보며 팀원들이 준 사업 요약 사항과 맞는지 이중 체크를 해야 했다.
다행이라면…….
“여기 다 봤습니다. 넘겨주세요.”
박충만이 옆에서 강진이 한쪽에 펼쳐 놓은 서류들을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박충만의 말에 강진이 서류를 넘겨주고는 다시 보던 서류를 보았다.
“여기 숫자가 잘못됐네요.”
박충만의 말에 강진이 서류를 보았다. 팀원이 보내 준 요약 자료에, 원래 있던 서류의 수치가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