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737
739화
오택문은 강진을 지그시 보다가 말했다.
“어쨌든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뛰어가니 늦은 저녁에 불이 켜진 식당이 있었다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문이 열리며 한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오게.’라고 했다는군. 그 말에 뭔가 거역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던 할아버지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네.”
오택문은 할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안에 들어간 할아버지는 자기가 곧 잡힐 거라 생각했네. 주위에 불이 켜진 가게는 이곳 하나뿐이니 순사들이 분명 이곳을 뒤질 거라 생각을 하신 게지. 그래서 다시 나가려고 하니…….”
***
“순사들이 이곳에 들어올 일은 없으니 이리 와 앉게.”
한복을 입은 어린 소녀의 말에 오인호가 그녀를 보았다. 이제 열일곱, 많이 잡아야 열여덟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는 의자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뛰쳐나가 다시 도망을 쳐야 할 것 같은데…… 어쩐지 어린 소녀의 말을 거역하기가 어려웠다.
오인호는 결국 소녀의 앞에 앉으며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이상하게도 여자들만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무슨 여자들만? 설마 기생집…… 같은 곳인가?’
밥집이 아니라 여자들이 술을 따라 주는 곳인가 싶어 주위를 볼 때, 어린 소녀가 입을 열었다.
“뛰느라 배가 고플 것이네. 식사라도 하게나.”
“괜찮……습니다.”
‘괜찮네.’라고 하려 했던 오인호는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을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일을 하는데…… 배라도 채워야지.”
“그게 무슨…….”
혹시 자신이 독립운동을 돕는 것을 알아챈 건가 싶어 경계심을 키울 때, 소녀가 가게 안쪽을 보며 말했다.
“국밥 한 그릇 내오게나.”
잠시 후, 우락부락하게 생긴 노인이 국밥을 들고 나타났다.
툭!
성의 없이 국밥과 총각김치를 내려놓는 노인의 모습에 오인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숙였다. 정말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머리가 백발인 노인인데도 몸은 어찌나 건장한지 황소도 한 주먹에 때려잡을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인 오인호를 보고 있던 소녀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손님에게 좀 친절하게 하게나.”
소녀의 말에 노인이 급히 두 손을 모으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산적처럼 생긴 노인이 바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오인호가 놀란 눈으로 소녀를 보았다.
‘아가씨? 어디 지체 있는 집 딸인가? 그런데 왜 이 야심한 시간에…….’
오인호는 소녀의 앞에 있는 사발을 보았다. 사발 안에는 뿌연 액체가 깔려 있었다.
‘막걸리?’
그에 오인호는 의아해졌다. 주인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귀한 집 딸 같은데 이 시간에 막걸리를 마신다니?
오인호가 사발을 볼 때, 소녀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그렇게 불친절하니 사람 손님들이 가게에 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 단골 장사를 해서요.”
노인의 말에 소녀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손님을 예로 대하게나. 그럼 손님들도 많이 올 것이고, 장사도 잘 될 것이네.”
말을 하며 소녀가 앞에 놓인 국밥을 보았다.
“자네 장사가 잘 되어야 우리도 좀 잘 먹을 것이 아닌가.”
“그게…… 요즘 왜놈들이 어찌나 극악스러운지 다들 밖에서 밥을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조금 장사가 잘 되면 재료를 좀 더 준비하겠습니다.”
노인의 말에 작게 고개를 저은 소녀는 한쪽에서 책을 보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복래는 나중에 가게 맡으면 사람 손님도 예의를 갖춰 대해야 한다. 예로 대하면 상대가 알아주는 법이니.”
“네. 아가씨.”
여자아이가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며 오인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 손님? 이게 무슨 말이야. 손님이면 손님이지, 사람 손님이라니?’
오인호가 의아해하는 사이, 소녀가 그를 보며 손을 들었다.
“드시게나. 싸움을 하든, 사업을 하든 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이니.”
“아…… 네.”
소녀의 말에 오인호는 수저를 들어 국밥 그릇을 뒤적였다. 국밥은 된장을 넣고 만든 듯했는데, 안에 들어간 채소들이 푹 삶아져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국이야?’
먹기 불편하게 생긴 모습에 입맛을 다시던 오인호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는 입에 넣었다. 그래도 먹으라고 준 건데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후루룩!
국물과 함께 밥을 입에 넣던 오인호의 눈이 커졌다.
‘맛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이 있었다. 국물은 구수하며 개운했고, 채소는 푹 삶아져서 식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부드럽게 넘어갔다. 함께 입에 넣은 쌀밥 역시 부드러웠고 씹으면 단맛이 돌았다.
‘이게 대체 뭐야? 고기 한 점 없는데 왜 이리 맛있지?’
오인호가 놀란 눈으로 국밥을 볼 때, 책을 보고 있던 여자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맛있죠?”
여자아이의 말에 오인호가 그녀를 보았다. 눈망울이 똘망똘망한 것이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응? 응. 아주 맛있구나.”
“총각김치하고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요.”
여자아이의 말에 오인호가 총각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총각김치를 무는 순간, 오인호는 뭔가 쾌감 같은 것을 느꼈다. 너무나 아삭한 식감과 함께 침이 질질 흐를 것 같은 신맛이 입안에서 터졌다.
거기에 살짝 소금의 짠맛이 느껴졌는데, 그 짠맛마저 달게 느껴질 정도로 맛이 있었다.
아삭! 아삭!
총각김치를 정신없이 씹은 오인호가 국밥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아삭! 아삭!
그렇게 한동안 가게 안에는 국밥과 총각김치를 먹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오인호가 먹는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던 소녀는 주전자를 들어 사발에 따랐다.
쪼르르륵!
주전자에서 따라진 것은 역시나 막걸리였다.
꿀꺽! 꿀꺽!
막걸리를 시원하게 마신 소녀가 앞에 놓인 총각김치를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그때, 앞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소리를 들은 오인호가 그녀를 슬쩍 보았다.
꿀꺽!
밥을 넘기려고 하는 건지, 침을 넘기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인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그것을 본 소녀가 탁자 쪽에 쌓여 있는 사발을 하나 들어 그의 앞에 놓았다.
“적과 싸울 때 이만한 약도 없지.”
쪼르르륵!
소녀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받은 오인호는 그것을 단숨에 마시고는 물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오인호의 말에 소녀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국밥 한 그릇 더 할 텐가?”
소녀의 말에 오인호가 국밥 그릇을 보았다. 그릇은 어느새 깨끗이 비어 있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다 먹어치운 것이다.
고민이 되는 듯 국밥 그릇을 보던 오인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겠습니다.”
“아직 양이 차지 않은 듯한데?”
소녀의 말에 오인호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희 집 가르침에 배를 부르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배부르지 말라?”
“무엇이든 가득하면 좋지 않으니 적당한 선에서 멈추라는 뜻입니다. 밥이 됐든 권력이 됐든 말이죠.”
“중용의 가르침과 비슷하군.”
“중용?”
“유교의 가르침일세. 어디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이지.”
“그렇다면 비슷합니다.”
그러고는 오인호가 슬며시 소녀를 보았다.
“그런데 누구신지요?”
소녀는 오인호의 잔에 막걸리를 따르며 말했다.
“나는 해가 지고 난 후 나라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일세.”
“그럼 혹시 그쪽도…….”
뒷말을 잇지 않고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는 오인호를 보며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 나와 같은 이들이니 말을 가려 할 필요 없네.”
“아! 그럼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혹시 여기가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거점입니까?”
오인호는 가게 안에 있는 여자들을 보았다. 여자들은 연령대가 다양했다. 어린아이도 있었고 이십 대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도 있었다.
다만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여자는 없었다.
‘여자로 이뤄진 비밀 결사라니…….’
오인호가 아는 기생 중에는 왜놈들의 술자리에서 얻은 정보들을 독립투사들에게 전해주는 정보원들도 있었다.
일본 고위급 간부 집에서 가사 일을 하며 정보를 가져오는 여자들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니 여자들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회원들이 모두 여자인 것이 조금 의아할 뿐이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말을 하던 오인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가 동지들의 행동 거점이라면 어서 떠나야겠습니다. 내가 여기 있으면 여러분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소녀가 보자, 오인호가 급히 가게 문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지금 나를 잡겠다고 순사들이 거리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만 이렇게 불을 켜 놓고 있으니 곧 놈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겁니다.”
문 앞에 선 오인호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 같은 분들이 있어, 나 오인호…… 오늘 죽더라도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죽을 수 있을 듯하오.”
죽음을 각오하고 이곳을 빠져나가리라고 생각한 오인호가 가게 문을 열었다.
드르륵!
미닫이문 너머의 풍경을 본 오인호가 급히 문을 닫았다.
드르륵!
그는 입술을 깨물며 작게 말했다.
“이미…… 늦었소.”
가게 앞에 쫙 깔린 순사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오인호는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식탁에 놓으며 말했다.
“여기에 만주군의 독립 자금이 들어 있소. 부디 이것을…….”
말을 하던 오인호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들에게 접선책을 알려주는 것이 최선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망설이던 오인호는 재차 입술을 깨물고는 말했다.
“여러분들이 독립을 위한 자금으로 써 주십시오.”
결의에 찬 오인호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소녀가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걱정하지 말고 이리 와 앉게.”
“아니요. 여기 뒷문은 없소?”
다급한 마음에 말을 놓는 오인호를 보며 소녀가 다시 말했다.
“괜찮으니 여기 앉게나.”
“하지만…….”
오인호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 사이, 소녀는 사발을 하나 집어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가게 문을 열었다.
드르륵!
“지금 문을 열면…… 헉! 지금 뭐하는…….”
오인호가 말릴 틈도 없이, 소녀의 손에 들려 있던 사발이 그대로 휙 날아가더니 주위를 수색하는 순사의 이마에 그대로 꽂혔다.
퍼억!
“크악!”
머리를 잡고 쓰러지는 순사의 모습에 옆에 있던 동료가 급히 총을 꺼내 주위를 겨눴다.
“어떤 놈이냐!”
순사가 주위를 이리저리 보는 것을 보던 오인호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분명 누가 봐도 문이 열려 있고 불이 켜져 있는 이곳에서 사발이 날아갔다.
그런데 순사는 이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다. 그에 오인호가 의아한 눈으로 순사를 볼 때, 소녀가 사발을 하나 더 집어오더니 다시 집어던졌다.
퍼억!
“크악!”
사발을 맞은 순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대로 기절이라도 했는지 그는 움직임이 없었다.
그 모습에 오인호가 놀란 눈으로 소녀를 보았다. 그 시선에 소녀가 사발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내 이름은 김가 소희라 하네.”
“김……소희?”
작게 고개를 끄덕인 소녀는 사발을 살짝 흔들었다.
“자네도 하나 던지겠나?”
“저……요?”
오인호가 쓰러진 순사를 힐끗 볼 때, 소녀가 다시 사발을 흔들었다. 던질 거냐 말 거냐는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