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인턴들은 모두 가게를 나섰다. 승리한 인턴이 한 잔 더 사겠다고 했지만, 패배한 인턴들은 다음에 하자는 말로 자리를 떠났다.
속도 쓰린데 더 쓰리게 술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니, 술은 먹고 싶지만 혼자 먹고 싶을 뿐이었다.
그에 강진이 오철진과 최동해도 보냈다. 곧 귀신들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해야 하니 좀 쉬기도 하고 설거지도 하려고 말이다.
설거지도 마친 강진은 따뜻한 믹스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호연그룹의 셋째 고영우 씨의 음주 운전으로 사망한 대리운전 기사 최성인 씨의 유가족은 심기문 의원과의 면담에서 음주 운전 가중처벌에 관한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심 의원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한편 음주 운전 처벌에 관한 강한 법안을 발의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심기문 의원의 인터뷰 내용 보시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음주에 관해 너무 너그럽습니다. 술 마시고 때리고, 술 마시고 희롱하고. 술 마시고 사고치는 것이 자랑이 아닌데도 술김에 그랬다, 술 마셔서 기억이 안 난다. 술 마셨다고 감형해 달라 하고, 선처해 달라 하고…… 이게 나라입니까!] [술을 마셨다고 감형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셨으니 더 엄하게 판결을 하고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최성인 씨 유가족의 일을 계기로, 음주 운전을 넘어 음주 후 일어나는 폭력, 성범죄에 관해서도 더 엄격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법안을 강구해 반드시 입법 통과가 될 수 있도록 노력…… 아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호연그룹은 피해자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는 한편, 최성인 씨의 이름으로 음주 운전 피해자에 대한 기금을 조성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확한 기금 관련 내용을 발표하지 않은 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현혹시키기 위한 기금이 아닌 음주 운전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이 되기를 바랍니다.]뉴스에서는 전에 귀신으로 온 고영우의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호연그룹은 국내 십대 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십대 안에는 들어갈 정도의 큰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 호연그룹은 위기를 겪고 있었다. 호연그룹 셋째인 고영우가 음주 운전을 해 사망자가 생겼으니 말이다.
거기에 사망한 피해자는 재벌 2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로 보이는 대리운전 기사였다.
고3 아들과 고1 딸을 둔 50대 초반의 가장 말이다.
아침에는 회사를 다니고 저녁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가족을 성실히 보살핀 가장이 죽은 것이다.
재벌 2세의 방탕한 생활에, 한 단란한 가족의 가장이 희생된 것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잠시 뉴스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최성인 씨가 오셨으면 정말 잘 대접해 드렸을 텐데…….”
최성인이 오지 않고 가해자인 고영우가 온 것이다.
“그놈한테는 물도 아까운데…….”
고영우가 마시고 얼굴로 받은 물을 떠올리며 강진이 입맛을 다실 때, 배용수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스윽!
문을 뚫고 들어온 배용수가 심란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숙수님 봤어.”
“숙수님?”
“응.”
“어디서?”
“선지해장국 맛이 좋아졌다는 소문을 들으셨는지 오셨더라고.”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배용수는 숙수에 대해 말을 할 때 늘 자랑스러움과 존경심을 보였다.
즉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그런 사람을 봤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숙수님이 많이 늙으셨더라고.”
“네가 살아 있을 때도 연세는 많지 않으셨어?”
“그랬지. 그래도…… 눈빛은 청년의 것보다 맑고 화끈하셨는데…… 오늘 보니까, 얼굴만큼이나 눈빛도 늙으신 것 같아. 그래서 속이 안 좋네.”
한숨을 쉬며 그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끄응!”
그러다가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네 얼굴은 왜 그래?”
“전에 음주 운전하고 죽은 놈 이야기했었지?”
고영우가 왔을 때는 처녀귀신들이 단체로 와 있던 날이라 배용수도 도망을 치고 가게에 없었다.
“호연그룹 셋째인가 하는 놈?”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때문에 죽은 분이 계신데…… 여기 오셨으면 내가 음식이라도 잘 대접해 드렸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었다.
“귀신이라고 모두 여기 오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 너 혼자 모든 귀신들의 밥을 챙겨 줄 수는 없어. 여기 오든 안 오든 그건 귀신들의 선택일 뿐이야.”
“그래도 아쉬워.”
“그럼 불러.”
“뭐?”
의아해하는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말했다.
“이름 알지?”
“알지.”
워낙 뉴스에 자주 나오는 이름이라 알고 있었다. 음주 운전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최성인법이라고 명명될 것이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얼굴은?”
“뉴스에 나온 가족사진으로 본 적 있어.”
“그럼 불러 봐.”
“너 부르는 것처럼?”
“아직 저승에 가지 않았다면, 네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거야.”
“아무나 이렇게 불러도 오는 거야?”
“네가 아무나는 아니지. 너는 한끼식당 주인이잖아.”
“한끼식당 주인이라…… 한끼식당 주인한테 내가 모르는 뭔가가 많은 모양이네.”
“그냥 귀신들 밥 주는 곳 사장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TV를 보았다. 뉴스는 어느새 다른 화제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입을 열었다.
“최성인, 최성인, 최성인.”
최성인의 이름을 세 번 부른 강진이 주위를 보았다. 하지만 최성인 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안 오는 건가?”
“바쁘거나…… 승천했나 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잠시 있다가 다시 최성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최성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천하셨다 생각해야겠네.”
“그래, 불러서 안 오는 것이 다행이야. 억울하게 죽었는데 귀신까지 됐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냐?”
이야기를 나누던 배용수가 몸을 일으켰다.
“장사 시작하자.”
말과 함께 배용수가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11시가 되자 현신을 한 배용수와 함께 귀신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들 오세요.”
귀신들이 들어오자 강진이 웃으며 오늘 영업을 시작했다.
***
인턴들은 늘 일찍 출근한다. 일찍 출근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보다는 기본적으로 일찍 출근하는 것이다.
선배들의 컴퓨터를 켜 놓은 강진은 커피를 한 잔 타서는 자리에 앉았다.
“요즘 믹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네.”
하지만 믹스 커피를 포기하기는 싫었다. 달달함이 머리를 돌아가게 하고 카페인이 정신을 들게 하는 것이다.
후릅!
한 모금 마실 때 최동해와 이상섭이 같이 들어왔다.
“일찍 왔네.”
“저야 회사 바로 앞이 집이니까요. 그런데 일찍 오셨네요?”
아직 출근 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으니 말이다.
“내일 체육대회에서 전화 안 받으려면 끝낼 일들 끝내야지.”
자리에 앉던 이상섭이 웃으며 말했다.
“인기 인턴 결정 났다면서?”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최동해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결정 났습니다.”
“세상에…… 동전 던지기로 결정을 내 버리다니. 황당하면서도 쿨하네.”
“질질 끌어도 어차피 답이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인턴들이 어떻게, 수긍을 했네?”
이상섭의 물음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인턴 중에 오철진이라고 아세요?”
“일 잘한다고 소문났던데.”
“정직원으로 어느 정도 내정됐다고 하던데요?”
“거기 부장님이 잘 본 모양이야. 정직원 되면 자기 부서로 끌어다 쓴다는 것 같은데? 그런데 오철진은 왜?”
“그 사람이 옆에서 도와줘서 일이 잘 풀렸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어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을 재밌게 듣고 있던 이상섭이 말했다.
“그런데…… 진 인턴들이 쉽게 수긍하겠어?”
“실력으로 정직원이 되기를 바라야죠.”
“그렇게 정직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정직하지 못한 사람도 한둘은 있겠죠. 하지만 저는 어제 승리한 사람이 인기 인턴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좋은 거고…… 자!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해 보자.”
말과 함께 이상섭이 의자를 돌려서는 서류를 펼쳤다.
인기 인턴에 대한 이야기는 그날 회사에 쫘악 퍼졌다. 사람들은 십 년 내 단 한 명 나온 인기 인턴이 체육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뽑혔다는 것에 놀랐고, 인기 인턴이 동전 던지기로 결정이 났다는 것에 또 놀랐다.
그리고 주목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본의 아니게 자리를 주도하게 된 강진이었다.
***
태광무역 대표이사실에서 오십 대 남자가 육십 대 남자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인기 인턴을 뽑았다고 합니다.”
태광무역 대표이사, 오태광이 눈을 찡그렸다.
“동전 던지기라고?”
“인턴들끼리 동전을 던져서 승리한 사람에게 표를 주기로 했습니다.”
비서의 말에 오태광이 입맛을 다셨다.
“재미없게 돼 버렸군.”
“임원분들도 조금 실망한 눈치입니다.”
“그 친구들도 인턴들이 서로 물어뜯는 것 보는 것이 1년 중 가장 재밌는 일일 텐데.”
고개를 저은 오태광이 책상 한쪽에 있는 서류철을 펼쳤다.
서류철 안에는 증명사진들이 있었다. 17장의 증명사진은 바로 태광무역에 들어온 인턴들의 사진이었다.
“나는 오철진인가 하는 녀석이 될 줄 알았는데.”
답을 원하는 말이 아니기에 비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사진들을 보던 오태광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누가 된 거야?”
“국내 지원사업부 문재식 인턴입니다.”
“실력은 어때?”
“현재 인사고과는 79점입니다.”
“무난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문재식 인턴의 사진을 잠시 보던 오태광이 강진의 사진을 가리켰다.
“얘가 주도했다고?”
“네.”
비서의 말에 오태광이 입맛을 다셨다.
“이강진이 내가 원하는 인기 인턴인데…….”
“이강진 씨가 직접 나섰다고 해도 동전 던지기로 했다면 운일 뿐입니다.”
“이강진이는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어. 없으니까 동전 던지기를 택한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방법으로 인기 인턴이 됐을 거야.”
“꼭 될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비서의 물음에 오태광이 강진의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난 알아…… 이 녀석은 나와 같은 육식 동물이야.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 뜯어 먹을 놈이야.”
잠시 사진을 보던 오태광이 입맛을 다셨다.
“이런 놈이 우리 회사 직원이 돼야 하는데 아쉽네.”
“이강진 씨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저희 회사에 입사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전에 보고했고…….”
그러고는 오태광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인턴 경쟁 게임 만드는데 얼마나 머리를 썼는데…… 내년에는 못 써 먹겠지?”
“선례가 있으니 내년 인턴들 역시 동전을 던질 확률이 큽니다.”
비서의 말에 오태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돼.”
인기 인턴은 뛰어난 인재를 뽑기 위해 만든 것이지, 인턴을 구제해 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물론 십 년 동안 한 명밖에 안 나온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한 명이 어중간한 열 명보다 낫다는 것이 오태광의 생각이었다.
“새로운 게임을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임상옥 교수님하고 약속 좀 잡아 봐.”
강진을 추천한 심리학과 교수 임상옥을 말하는 것에 비서가 말했다.
“언제로 잡을까요?”
“혹시 괜찮으면 체육행사에 참석하시라고 해 봐. 연구실 학생들하고 와서 고기도 먹고 체육도 좀 하고, 우승하면 상품도 드리고 할 거라고 잘 말씀드려. 아! 그리고 교수님이 돈 안 생기는 곳에는 발길도 안 하시니…… 학생들한테도 출장비용으로 이십만 원씩 챙겨 드리겠다고 말씀드려.”
“임상옥 교수만 부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심리학과 학생들이 어떤지 보고 싶어서 그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