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02
804화
김소희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강상식이 말했다.
“여자 하나에 남주 둘이라…… 재밌겠네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리고 너도 앞으로 소희 아가씨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예의를 갖추고 해.”
“살아 있는 소희 아가씨요? 아니면 백합 같고, 장미 같고, 들꽃 같은 소희 아가씨요?”
강상식이 웃으며 하는 말에 김소희의 얼굴에 어려 있던 싸늘한 기운이 사라졌다.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 그저 마음에 품고 있으면 될 일을……. 그리고 성렬 오라버니가 본가에 그런 내용을 적어 보냈을 줄은 몰랐군.”
김소희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것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황민성이 말했다.
“두 분 다.”
“둘 다요?”
“한 분은 나하고 강진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고, 한 분은 돌아가셨지만 여자의 몸으로 나라를 위해 싸운 의병이신데 당연히 존경을 담아서 말을 해야지. 함부로 막 부를 거야?”
“그건 그러네요.”
웃으며 답한 강상식이 말을 덧붙였다.
“드라마 잘 됐으면 좋겠네요. 형 사업 때문이 아니더라도 조선 시대 때 여자의 몸으로 의병을 하셨다면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분인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강상식이 좋게 이야기했으니 김소희가 화를 좀 풀겠다 싶어 안도가 되는 황민성이었다.
‘우리 아이들 축복도 해 주셔야 하는데…… 괜히 너 때문에 기분 상하시면 큰일 나지.’
속으로 중얼거린 황민성이 말했다.
“나중에 책으로도 나오니까 책 나오면 한 권 줄게.”
“그럼 저야 좋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강진이 오징어를 가지고 홀로 나왔다.
“오징어 나왔습니다. 오징어 드시면서 맥주 좀 더 하시죠.”
말을 하며 힐끗 김소희를 본 강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풀리셨나 보네.’
김소희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오늘 누구 하나 초상 치르겠구나 싶었다. 귀신이 사람 죽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오늘 그걸 실제로 보겠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오징어 굽는 사이에 황민성이 말을 잘 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징어를 놓던 강진은 문득 김소희를 보았다.
그러고는 슬쩍 한쪽 테이블을 보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오신 김에 한잔하시지 않겠냐는 눈빛을 용케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소주를 가져다 그 자리에 놓고는 주방에 들어가 오징어를 구워서는 가지고 나왔다.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강진이 오징어를 내려놓으며 작게 속삭이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가볍게 마시도록 하지.”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이거면 되었네. 아! 황민성에게 내 소설 진행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와서는 앉았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강상식이 의아한 듯 물었다.
“누구 오기로 했어?”
“아닙니다.”
“그럼 저 음식은 뭐야?”
“조선 시대 의병으로 활약하신 꽃 같은 분을 위해 한상 차렸어요.”
“하! 죽은 사람 먹으라고 차려 놓은 거야?”
“그런 의미도 있고…… 존경스러운 분을 위한 마음의 표현이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그를 보다가 빈 탁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 엄마…… 밥은 잘 먹고 다니나 모르겠네.”
죽은 사람 먹으라고 술상을 차린 것을 보니 장은옥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잠시 빈 테이블을 보던 강상식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용수 씨! 저 전에 먹던 육개장 국수 좀 부탁해도 될까요?”
강상식의 외침에 주방에서 배용수가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배용수의 외침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알았다네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어깨를 으쓱였다.
“목소리도 되게 작으신 모양이네.”
“좀 조용한 편이죠.”
그때, 둘이 대화하는 걸 지켜보던 황민성이 물었다.
“육개장 국수?”
“제 친엄마가 저 어릴 때 라면 먹지 말라고 해 주던 국수예요.”
“그래? 맛있겠다.”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만들어 먹고, 편하게 먹는 음식이죠. 그리고 우리 엄마가 건강 생각하라고 해 주던 음식이고.”
미소를 지으며 빈 테이블을 보던 강상식은 자신의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소희가 앉아 있는 맞은편에 자신의 잔을 놓은 그는 그 옆에 젓가락과 수저를 놓았다.
그러고는 김소희가 앉아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려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말도 없이 합석을 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도 좋은 분이시니 괜찮으시면 같이 한 잔 나눠 드시면서 말벗이라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치며 몸을 일으킨 강상식은 잠시 어머니가 앉을 자리를 보다가 의자를 빼 놓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 모습에 강진이 빈 잔을 하나 가져다가 강상식 앞에 놓았다.
“귀신 안 믿는 것 아니었어요?”
“안 믿지.”
“근데 왜?”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믿는다고 생각을 해야 우리 엄마가 와서 음식을 먹을 것 아니겠어? 그리고 믿을 거면 소희 아가씨라는 분도 있다고 생각해야지. 그래서 인사드린 거야.”
강상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김소희 쪽을 보았다. 그녀는 말없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주병을 들어서는 장은옥의 잔에 따라주었다.
“좋은 아들을 두었네.”
물론 장은옥은 승천을 해서 지금 이 자리에 없지만 말이다.
김소희가 잔에 소주를 따르는 것을 보던 강진의 귀에 강상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드라마 주인공은 정했어요? 톱스타 쓰려면 미리 섭외 준비를 해야 할 텐데?”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배우는 박신예 생각하고 있어.”
“박신예라…… 좋은 배우죠.”
“알아?”
“드라마 몇 편 봤어요. 그럼 남배우는요?”
“남배우는…… 아직인데…….”
황민성이 힐끗 김소희가 있는 탁자를 보았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강진이 음식을 세팅해 놨으니 그곳에 김소희가 있을 것이었다.
‘남자 배우도 아가씨 결재를 받아야겠지.’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김소희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배우를 고르면 그 후환이 무서우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 곧 있으면 태어날 아이들에게 무신의 축복을 내려 달라고 하려면 최대한 김소희의 심기를 맞춰야 했다.
김소희가 있는 식탁을 보는 황민성에게 강상식이 물었다.
“아직 배우 생각 안 했어요?”
“생각해 놓은 배우 있는데 천천히 결정해야지.”
“누군데요?”
“일단 종사관은 이종식 생각해.”
“이종식?”
“이종식이 살짝 가벼우면서도 뭔가 집중할 때는 진중한 느낌이 있잖아. 종사관 캐릭터가 그런 편이거든. 이를테면 아가씨가 힘들 때 가볍게 기대고 웃을 수 있는 캐릭터. 하지만 힘이 들 때 힘이 되어 주는 그런 스타일이지.”
“그럼 임성렬은요?”
“임성렬은 좀 진중하면서 묵직한 배우 생각 중이야. 옆에서 나무처럼 말없이 서서 비바람을 막아주는 그런 스타일 말이야.”
“그런 배우는 좀 나이가 있을 텐데.”
“그래서 좀 걱정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안 나는 연기파 배우를 찾아야 할 텐데.”
“그러게요.”
말을 하던 강상식이 한숨을 쉬었다.
“아쉽다.”
“응? 뭐가?”
“지혁 씨요. 형이 드라마 만들면 주연은 아니더라도 좋은 배역 하나 맡을 수 있었을 텐데.”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지혁 씨 연기 좋으니 사극 배역도 잘 해 냈을 텐데.”
“아쉽네요.”
강상식이 입맛을 다시며 하는 말에 황민성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주역은 아니더라도 비중 있는 조역은 할 수 있었을 텐데.”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를 보았다.
“저…… 저…….”
뭔가 말을 할 듯하다가 마는 강상식의 모습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뭔데. 말을 해.”
“음…… 혹시 무리되지 않는다면 지혁 씨 배역 하나 주시면 안 돼요?”
“무슨 소리야?”
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배역을 주냐는 듯 묻는 황민성을 보며 강상식이 말했다.
“그 L전자 VR 기술이 꽤 좋더라고요. 저도 해 봤는데 실제하고 많이 비슷하게 잘 구현되고, 목소리는 진짜 같더라고요.”
강상식이 하고 싶은 말을 알아챈 황민성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VR로 지혁 씨 연기를 하게 하자?”
“그 특수 효과 비용은 제가 투자할게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내는 것이 아니라 투자?”
“지혁 씨 VR 기술로 연기하는 거니 화제성이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상대 배우가 연기하기 쉽지 않을 텐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면서 대사를 쳐야 하고 시선 연기도 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거야 연기력으로 커버들 해야죠. 그 외국 히어로 영화 중에 강철 남자 찍는 거 보면 녹색 옷 입은 배우하고도 연기 잘만 하던데.”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지혁 씨 연기하려면 그 아빠한테 초상권 허락받아야 하지 않아?”
“그건 이미 지나 씨가 받았어요.”
“그래?”
“그 사람한테 지혁 씨 초상권이나 저작권이 있는 것 볼 수 있나요. 일억 준다고 하니 좋다고 도장 찍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그건 지나 씨한테 있어요.”
“일억이나 줬어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말하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그 양반 처지면 오천 불러도 줬을 거야. 사실 지혁 씨를 우리가 띄워서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조연 배우일 뿐이니 초상권이나 저작권료는 있으나 마나니까.”
“그래요?”
“초상권은 누가 써야 돈이 나오는 건데…… 조연 배우 초상권 어디 쓰는 곳이 있나. 게다가 재방 출연료라고 해도 그거 얼마 안 되고.”
“그런데 왜 일억이나 줬어요?”
“지나 씨 오라버니 유품인데 싸게 가져오고 싶지 않았어.”
말을 하던 강상식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연 끊을 사람이라고 해도 거지로 만들기는 그렇더라고요. 밉고 다시 안 보겠다 해도 아버지가 거지꼴로 살면 보기 안 좋을 테니까.”
그러고는 강상식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여기까지는 지나 씨 생각해서 한 거고, 살기 힘들어지면 지나 씨 찾아올까 봐 돈 준 거예요.”
“찾아올까 봐?”
“그 양반 얼굴 보니 돈 떨어지면 딸이라고 찾아올 것 같더라고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면 그러겠어요?”
“돈에 눈이 돌아가면 하면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이 사람이다.”
말을 한 강상식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 인간…… 지나 씨 나하고 결혼했다는 이야기 들으면 명절마다 연락하고 찾아올 거다.”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는 듯 고개를 젓는 강상식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그 인간 찾아올 때마다 지나 씨 스트레스 받을 거 생각하면…….”
강상식이 고개를 젓는 것에 황민성이 말했다.
“찾아오면 그때 잘 끊어야 해. 다시는 못 찾아오게.”
“그래야 하는데…… 제 마음 같아서야 단칼에 스윽! 해 버리고 싶지만, 지나 씨 마음을 생각해야죠.”
복잡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강상식을 볼 때, 김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장.”
강진이 그녀를 보자, 김소희가 황민성을 보았다.
“내 소설 진행 물어보게.”
“아!”
김소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형, 그러고 보니 소설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글이 어디 후딱 나오나. 지금은 캐릭터들 잡고 있고…… 조만간 분량 나올 거야. 그거 나오면 보여 줄게.”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과 함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중간중간 내가 보겠다고 했는데 가져오지를 않는군.”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가 있는 곳을 보았다. 지금 그녀가 한 말은 황민성의 귀에도 들린 것이다. 그에 황민성이 강상식을 한 번 보고는 말을 했다.
“아직은 정리 단계라서…… 흠!”
존대를 해야 하지만 강상식이 듣고 있어 말을 중간에서 자른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아! 제목은 나왔는데.”
“제목이 나왔어요?”
“아직 가제이기는 한데…… 느낌이 좋아서 그걸로 할 생각이야.”
“제목이 뭔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도 황민성을 보았다. 그녀도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꽃…… 피어나다.”
“꽃 피어나다.”
“느낌 좋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몇 번 제목을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 좋네요.”
꽃 피어나다. 느낌이 좋았다. 꽃이 피어난다는 게 아름다워진다는 것 말고도 재능과 인생이 피어난다는 의미도 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