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83
884화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를 보았다.
“처음 보는 총각이네. 이사 왔어요?”
할머니의 말에 최광현이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저기 태양 빌라로 이사 왔습니다.”
“아! 그 경찰하고 일한다는 총각?”
“저를 아세요?”
“복덕방 사람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경찰은 아닌데 경찰하고 일한다고요?”
“네.”
“그…….”
잠시 망설이던 할머니가 슬며시 물었다.
“지내기는 괜찮아요?”
할머니의 말에 최광현이 쓰게 웃었다.
‘동네 분들은 다 아는 모양이네.’
말하는 뉘앙스를 보니 자신이 사는 집 소문을 아는 모양이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사람들과 달리, 한 동네에 오래 산 어르신들은 다들 친분이 있으니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최광현이 쓰게 웃는 것에 할머니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물건 골라요. 아! 빵은 유통기한 지난 것도 있으니 그거 보면 욕하지 말고 그냥 가져다줘요. 유통기한 지난 거 치워야 하는데 눈이 잘 안 보여서 말이지.”
“이해합니다.”
마트에서야 유통기한 지난 물건을 바로바로 치우지만 이런 동네 슈퍼, 그것도 어르신들이 하는 가게에서는 그런 물건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때문인지 빵들이 놓여 있는 진열대에 붙어있는 종이에도 이러한 글이 쓰여 있었다.
그 글을 본 강진이 작게 웃었다. 어릴 때 가곤 했던 작은 슈퍼에서 잘 팔리지 않는 빵 같은 게 유통기한이 넘어서도 매대에 있던 게 기억난 것이다.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던 강진은 햄과 참치, 그리고 소포장된 고추를 집었다. 거기에 매운 라면도 세 개 정도 집은 강진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한테 말을 하면 앞에서 라면 끓여 먹게 해 준다고 하던데요.”
“라면 먹게요?”
“네.”
“그럼 내가 끓여 줘도 되는데.”
“직접 이것저것 넣어서 끓여 먹고 싶어서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었다.
“그럼 그렇게 해요. 잠시만요.”
할머니는 카운터라고 해야 할 작은 곳 옆에 있는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거기서 버너와 냄비, 그리고 종이컵과 나무젓가락을 꺼내 오더니 그것들을 내밀었다.
“이거 대여비는 얼마를 드려야 할지.”
“됐어요. 그냥 써요. 물은 평상 옆에 수도 있어요.”
“감사합니다.”
강진이 도구들을 건네받는 사이 최광현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자주 올게요.”
“그렇게 해요. 근데 우리 가게는 열 시면 문 닫으니까 너무 늦게는 오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최광현은 계산을 하고는 강진과 함께 가게 밖으로 나왔다.
“잘 챙겨 주지?”
“대여비도 안 받으시네요.”
“동네 장사 하면서 그런 건 넘어가야지. 그리고 우리 물건 사다가 끓이는데.”
할아버지가 웃으며 수도를 가리켰다.
“저기서 물 받으면 돼.”
그에 강진은 가게 앞에 있는 수도에서 물을 받고는 냄비를 버너 위에 올린 뒤 불을 켰다.
달칵!
“흠, 맛있겠다.”
할아버지가 아직 끓고 있지도 않은 냄비를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소주도 한 병 드릴까요?”
“사 줄 거면 막걸리로 사 줘.”
“알겠습니다.”
강진이 가게로 들어가려 하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냉장고에 있는 거 말고 바닥에 있는 거 있어. 그걸로 가져다줘. 그게 맛있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게 안을 보다가 냉장고 앞에 놓여 있는 막걸리 박스를 보았다.
‘밤 막걸리네.’
밤 막걸리를 두 병 챙겨서는 할머니에게 가져갔다.
“막걸리도 살게요.”
“시원한 거 있는데.”
“막걸리는 시원한 것보다 상온에 있는 것이 맛있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총각이 먹을 줄을 아네.”
그러고는 아까 열고 닫았던 문을 다시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양은 주전자와 양은그릇을 들고 나왔다.
“여기서 먹을 거면 여기다 먹어요.”
“감사합니다.”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양은 주전자와 양은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 우리 할망구가 손님 대할 줄을 알아.”
웃으며 할아버지가 어서 술을 내려놓으라는 듯 평상을 두들겼다. 그에 강진이 막걸리 뚜껑을 따고 내용물을 주전자에 따르며 말했다.
“막걸리는 광현 형이 좀 마셔야겠네요.”
“너는?”
“저야 차도 가지고 왔고…… 대방 씨 집에도 들러야 하니 술을 먹기는 그렇죠.”
“그럼 내가 막걸리를 먹어야겠네.”
귀신이 마신다고 막걸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 누군가는 마셔야 했다. 아니면 버려야 하니 말이다.
“막걸리 먹을 줄 아나?”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주종을 가리면 대학생이 아니죠.”
“대학생이야?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할아버지가 최광현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학교 다닐 나이가 넘기는 했지만…… 아직은 학교에 있으니 대학생이죠.”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그를 보았다.
“내 이야기 하는 거야?”
“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광현은 잔 하나를 할아버지 앞쪽에 놓으며 말했다.
“여기쯤 놓으면 되지?”
자신이 할아버지를 보던 시선을 보고 어림짐작해서 잔을 놓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진의 답에 최광현이 주전자를 살짝 흔들어 막걸리를 섞고는 잔에 따랐다.
“이렇게 뵙게 된 것도 인연인 것 같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광현입니다.”
“귀신하고 무슨 통성명까지…… 귀신하고 친하게 지내서 좋을 것 없어.”
할아버지 귀신은 잔에 따라지는 막걸리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 앉아 있으면 친구 놈들부터 후배들까지 여기서 막걸리를 먹는데…… 싸가지 없이 이 형님한테 한 잔 먹으라는 소리를 안 해.”
“그래요?”
“작년까지만 해도 나 마시라고 한 잔씩 따라 놓기도 하더니만…… 올해는 그러지도 않아.”
할아버지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놈들도 곧 갈 나이 됐으니 죽은 나 생각하면 겁이 나겠지. 그래도 한 잔 따라 놓으면 얼마나 좋아.”
투덜거리던 할아버지는 막걸리가 가득 따라지자 잔을 집어서는 그대로 입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단숨에 들이켜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크윽! 좋다.”
감탄을 내뱉은 할아버지가 가게를 보았다.
“이놈의 할망구, 막걸리를 팔면 김치도 좀 내와야지. 총각들이라고…… 오!”
할아버지가 투덜거릴 때, 가게 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김치가 담긴 접시를 들고 나왔다.
“라면 먹을 때 같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걸요.”
“그럼 맛있게 먹어요.”
할머니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가 웃으며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었다.
화아악!
불투명한 김치를 집어 든 할아버지가 강진을 보았다.
“우리 마누라가 정이 많아.”
“그러게요. 이렇게 정으로 김치도 주시고요.”
“맞아. 어디 가게 주인이 막걸리 먹는다고 김치를 가져다줘? 우리 마누라나 되니까 이렇게 김치도 주고 하는 거지.”
할아버지가 김치를 먹는 것을 보던 강진은 최광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에 최광현이 할아버지 앞에 놓인 잔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오고 새 잔에 다시 막걸리를 따라 그의 앞에 놓았다.
그것을 보던 강진은 끓어오르는 물에 라면과 스프를 넣고는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그러다 문득 강진은 막걸리를 보았다.
‘막걸리에 내 손 담갔다가 주면 맛있어지는 거 아니야?’
귀신에겐 자신의 손맛이 최고니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든 강진이 할아버지를 보았다.
“막걸리 맛 어떠세요?”
“막걸리야 막걸리지.”
“생전에 드셨던 것하고 비교하면요?”
“그야 좀 심심하지. 귀신 혓바닥이 사람 혓바닥하고 같나.”
말을 하던 할아버지는 강진이 끓이는 라면을 보았다.
“그래서 기대가 돼. 귀신한테 더 맛있게 만들어 준다는 자네 라면이 말이야.”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잔을 보다가 최광현을 보았다.
“형, 그거 드시고 새로 한 잔 따라 주세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숨을 고르고는 막걸리를 주욱 들이켜더니 새로 따라 할아버지 앞에 놓았다.
그에 막걸리 잔을 다시 잡으려는 할아버지에게 강진이 말했다.
“저기 잠시만요.”
“왜?”
“저 죄송한데…… 막걸리에 제 손 좀 담가도 될까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귀신들한테는 제 손이 MSG이거든요. 그래서 혹시 제 손 담갔다 빼면 맛이 더 좋아질까 싶어서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웃었다.
“그게 말이 되나?”
“혹시 모르니까.”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번 해 봐.”
“괜찮으시겠어요? 손 담갔다가 빼는 건데.”
“원래 막걸리 먹을 때는 손가락으로 휘젓고 먹는 건데 무슨 상관이야.”
웃으며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나도 살아 있었으면 손으로 휘젓고 먹었을 거니 괜찮아.”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걸리 그릇에 손가락을 넣고 휘저었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듯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원을 그린 강진이 손을 떼고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잔을 들어서는 막걸리를 마셨다.
꿀꺽! 꿀꺽!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잔을 내려놓았다.
“어떠세요?”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그의 손을 보고는 주전자를 가리켰다.
“이왕이면 주전자에 담갔다가 빼.”
“맛이 좋아졌어요?
“아주 기가 막혀. 방금 전까지는 밤 맛이 안 났는데 지금은 밤의 고소한 맛이 입에 착착 감겨 버리네.”
웃으며 할아버지가 어서 담그라는 듯 주전자를 재차 가리키자, 강진이 웃으며 주전자를 잡고는 최광현을 보았다.
“저 손 씻었어요.”
“나도 상관없어.”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주전자 뚜껑을 열었다가 입맛을 다셨다.
‘용수 안 데리고 오기를 잘 했네.’
음식 맛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손을 담갔다가 빼는 건 위생적으로 안 좋으니 배용수가 불편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주전자에 손가락을 넣어 살짝 휘젓고는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그래. 고마워.”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작게 웃어 주고는 라면에 햄과 참치들을 넣었다. 그렇게 라면을 끓이고 있던 강진은 놀람에 찬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빠……?”
장대방은 골목을 보고 있었다. 골목에서는 운동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버지세요?”
“네.”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아저씨를 보다가 할아버지를 보았다.
“합석 좀 하겠습니다.”
“합석?”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게 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장대방을 보았다.
“가요.”
“네?”
“아버님에게 말을 걸 거예요. 그러니 옆에서 정보들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강진은 서둘러 아저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인사를 하는 것에 아저씨가 그를 한 번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냥 동네 사람들끼리 인사를 한다 생각을 한 것이다. 인사를 하자마자 다시 걸음을 옮기는 아저씨를 향해 강진이 말했다.
“저…… 기억 못 하세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누구신지?”
“저 대방이하고 친하게 지내던 이강진입니다. 전에 인사 한 번 드렸었는데…….”
‘죄송합니다. 이게 다 대방이를 위해서이니 용서해 주세요.’
강진이 속으로 사과를 할 때, 아저씨가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대방이 친구구나.”
친구는 아니지만 강진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네, 아버님.”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야?”
아저씨의 말에 강진은 장대방 빌라가 있는 곳을 보며 말했다.
“대방이가 생각이 나서…… 한 번 와 봤습니다.”
강진의 말에 아저씨가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대방이 기억이 해 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저한테 좋은 동생인 걸요.”
그러고는 강진이 평상을 가리켰다.
“대방이 생각나서 막걸리 마시고 있었는데 어떻게, 같이 한잔하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는 평상이 있는 곳을 보았다. 그리고 평상에 앉아 있는 최광현과 라면…… 그리고 막걸리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자고.”
아들 친구가 죽은 아들이 생각이 나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는데…… 아버지로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