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2
92화
단숨에 소주를 원 샷 한 강진이 왕강신이 한 것처럼 잔을 슬쩍 기울여 안이 비웠음을 보여주었다.
그에 왕강신이 웃으며 다시 따라 주려 하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마시면 접대가 아니라 주정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 우리 중국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지만 주사를 부리는 사람은 싫어하지. 술이란 자기 주량에 맞게 적당히 마시는 것이 가장 좋지.”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 사람이 소주를 한가득 따라주나?’
강진은 몰랐지만, 중국의 술 문화가 원래 그랬다. 술을 넘치도록 따라주는 것이 정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왕강신이 말했다.
“중국어를 더듬거리기는 해도 곧잘 하고 알아듣는 것 같은데 공부를 좀 더 해 보지 그러나?”
강진의 중국어는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하기는 해도 대화가 편하지는 않았다.
“공부요?”
“아까 자네가 말을 한 것처럼 중국인들은 접대 받는 것을 좋아하네. 외국에 갔을 때 식당 주인이 중국어를 할 줄 알면 손님들이 더 오지 않겠나? 그리고 내 아는 사람들이 한국에 간다고 하면 여기 와서 밥 먹어 보라고 소개를 해 줄 수도 있고 말이네.”
“그것도 그렇네요.”
“그리고 외국어를 하나 할 줄 알면 기회의 폭이 더 늘어나는 법이지.”
왕강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문득 그를 보았다.
‘설마…… 한국어를 할 줄 아시나?’
외국어를 할 줄 알면 기회의 폭이 늘어난다는 조언을 해 준 사람이 외국어를 하나 못 한다?
못 할 수도 있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다가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외국어라고 해서 다 한국어일 수는 없지. 영어를 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외국어라면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이익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문이 열리며 윤수홍이 들어왔다.
“이 사장, 소주잔 좀 주세요.”
윤수홍이 사온 술병을 식탁에 내려놓는 것을 보며 강진이 주방에서 소주잔을 가지고 나왔다.
소주잔이 놓이자 왕강신이 술병을 들었다. 소주보다 작은 술병…… 흔히 한국에서 고량주라 부르는 이과두주였다.
‘점심부터 저걸 먹어?’
이과두주는 엄청 독한 술로 도수가 56이다. 소주가 보통 17도인 것을 생각하면 세 배는 더 독한 술이었다.
소주잔에 찰랑거리게 따른 이과두주를 따른 왕강신이 중년인과 여자에게도 따라주었다.
그리고 강진에게도 술을 들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한 잔만 마시겠습니다.”
“편한 대로.”
웃으며 따라주는 술을 받은 강진이 잔을 들자 왕강신이 말했다.
“일단 나와 우리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고 한국 관광을 시켜 준 윤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왕강신의 말에 윤수홍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왕 노야께서 한국에 오셔서 저에게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면 제가 서운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연락을 주시고 부탁을 해 주셔서 제가 더 기쁩니다.”
윤수홍의 말에 왕강신이 그를 향해 술잔을 들고는 단숨에 마셨다.
그에 사람들도 따라 술을 마셨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도 입맛을 다시고는 고량주를 마셨다.
꿀꺽!
마시는 순간 목구멍을 타고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고량주의 느낌이 확실히 느껴졌다.
‘워! 쎄다.’
고량주의 독기에 강진이 서둘러 갈비찜을 한입 먹었다. 그것으로 술맛을 중화시킨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마시면 주사를 부릴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만 드시게. 대신…….”
자리에서 일어난 왕강신이 사람들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는 잔을 들었다.
“오늘 맛있는 음식과 함께 고향 생각을 나게 해 준 이 형제에게 감사하네.”
그러고는 왕강신이 술을 마시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 술을 마셨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왕강신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오만 원짜리를 네 장 꺼내 내밀었다.
“받게.”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돈을 감사히 받았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강진이 넙죽 돈을 받자 기분 좋게 웃는 왕강신에게 고개를 숙인 강진이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갔다.
‘손이 크기는 하시네.’
팁을 이십만 원이나 주니 말이다. 그에 웃으며 강진이 음식을 더 준비하기 시작했다. 팁도 받았겠다, 성의를 더 보일 생각이었다.
점심 자리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두 시가 넘어가는데도 아직도 왕강신의 가족들은 술과 음식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오래 먹네.’
생각과 함께 강진이 식탁을 보았다. 식탁에는 아직도 여러 음식들이 남아 있었지만, 한 번 갈아 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돼지고기를 꺼내서는 볶기 시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돼지고기를 볶으며 강진은 고추와 고추기름을 첨가했다. 그리고 양념을 더 넣을 때 배용수가 말했다.
“양념 조금 강하게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힐끗 그를 보았다.
“지금도 양념 강한 것 같은데?”
“술 먹으면 미각이 둔해져. 그리고 중국인들은 우리보다 더 양념 강하게 먹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양념을 조금씩 더 넣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배용수의 지시에 따라 강진이 빠르게 음식을 볶았다. 요리 레시피에 있는 음식은 맛이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과 귀신들을 위한 레시피라 한국인들의 입에 맞는 양념이고 맛이었다.
그래서 배용수의 지도가 무척 필요했다. 중국인들의 입맛에 따라 양념의 양을 가감해야 하니 말이다.
어쨌든 배용수의 지도로 음식을 만든 강진이 식탁으로 가져왔다.
“고추 돼지고기볶음입니다.”
“음! 맛있겠군.”
미소를 지으며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크게 집어 입에 넣은 왕강신이 탁자를 쳤다.
“하오!”
좋다고 외치는 왕강신의 모습에 다른 가족들도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먹었다.
‘엄청 맵더만.’
자신이 만들기는 했어도 강진의 입맛에는 무척 매웠다. 그런데도 중국 가족은 맛있게 잘 먹었다.
그에 강진이 몸을 돌리다가 힐끗 중국 귀신을 보았다. 왕씨 가족들이 맛있게 밥을 먹는 동안 계속 뒤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남이 먹는 걸 보기만 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것이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에 강진이 중국 귀신에게 작게 눈짓을 주고는 주방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중국 귀신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뒤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왔다.
중국 귀신이 들어오자 강진이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그릇에 담아 젓가락과 함께 주방 테이블에 올렸다.
“드세요.”
강진의 말에 중국 귀신이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보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전에 영수 일행이 먹었던 것처럼 불투명한 모습으로 귀신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술도 한잔하실래요?”
강진의 말에 귀신이 입맛을 다시며 홀 쪽을 보았다. 그것으로 답을 들은 강진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음식을 만들 때 쓰기 위해 주방에도 소주가 몇 병 있었다.
소주를 꺼낸 강진이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서는 그 앞에 놓았다.
그에 귀신이 소주를 들고는 마셨다.
“한국 소주를 차 같다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군요.”
중국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작게 말했다.
“중국 술이 너무 독한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말을 하며 중국 귀신이 홀을 보았다. 홀에서 왕씨 가족들이 고량주를 마시고 있는데, 소주보다는 그것이 먹고 싶은 것이다.
그에 강진이 말했다.
“저기 있는 술은 제가 건들 수가 없네요.”
중국 귀신이 입맛을 다시며 홀을 보다가 강진에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왕강준입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포권에 강진이 슬며시 따라 포권을 했다.
“이강진입니다. 그런데 왕 노사 형제분이십니까?”
강진의 물음에 왕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동생입니다.”
“수호령이세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수호령이든 뭐든 그냥 귀신이죠.”
웃으며 말하는 왕강준의 모습에 강진은 조금 씁쓸함을 느꼈다.
‘왕강신의 형이면…… 대체 얼마나 귀신으로 있었던 거야?’
왕강신은 딱 봐도 칠십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런데 그 형이라는 왕강준은 이십 대 정도로 보이니 아마도 귀신으로 산 지가 오십 년은 넘을 것이다.
‘귀신 생활 오래도 하셨네.’
왕강준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고 대화하기도 힘든 이 외롭고 쓸쓸한 생활을 오십 년 동안 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수호령이라 왕강신의 옆에 늘 있어야 한다. 그럼 다른 귀신들하고도 대화를 할 자리를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왕강준을 보았다.
“중국에도 저승식당이 있죠?”
“있습니다.”
“그럼 거기 가 보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왕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가진 건물 중 하나에 저승식당이 들어와 있습니다.”
왕강준의 말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그럼 거기 저승식당은 임대예요?”
“임대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승식당도 임대가 있구나. 난 운이 좋은 건가?’
중국 저승식당은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임대인데, 자신의 식당은 자가이니 말이다.
“그럼…… 거기서 밥은 못 드셨겠네요.”
“저녁에 와서 밥 먹고 가라고 주인이 말을 하기는 했는데…… 제가 갈 시간이 안 되더군요.”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저승식당에 가 본 적은 있지만, 왕강준은 그곳에서 제대로 된 밥을 먹어 본 적은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왕강준은 왕강신의 수호령이라 멀리 갈 수가 없다.
그럼 저녁 11시에 왕강신이 저승식당에 가야 하는데…… 귀신들이 바글거리는 곳에 왕강신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저승식당이 귀신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11시부터는 어떠한 사람도 식당을 보지 못한다.
의식적으로 회피하니 말이다.
그러니 사람인 왕강신은 저승식당에 11시 이후에는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왕강준도 저승식당에서 밥을 못 먹는 것이고 말이다.
왕강준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제대로 된 밥 먹고 싶지는 않으세요?”
“이것도 맛있습니다.”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이걸로도 맛있다 생각을 하는구나. 어쩌면 이게 행복한 것일 수도 있겠네.’
고기 맛을 모르는 사람은 고기가 맛있다는 것을 모르니 먹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더 올려놓았다.
“많이 드세요.”
“고맙습니다.”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슬쩍 홀 쪽을 보았다. 왕씨 가족들은 여전히 부어라 마셔라 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강진이 왕강준에게 말했다.
“수호령이면 동생분이 걱정이 되셔서 못 올라가시는 건가요?”
강진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왕강준이 음식을 먹다가 멈췄다.
그리고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부모님은 전쟁으로 돌아가시고 제가 동생을 키웠습니다.”
“고생하셨네요.”
“고생은 했지만 동생이 있으니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동생을 집에 두고 일을 나갔는데…… 죽었습니다.”
“죽어요?”
“일 끝나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어지럽더군요. 그래서 잠시 앉았다 가야지 하고 앉았는데…… 그대로 죽은 것 같습니다.”
‘급사라…… 나이도 젊었던 것 같은데.’
왕강준은 이십 대 초반? 아니면 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급사라니…….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왕강준이 말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안 후 걱정이 되는 것은, 내가 죽어 혼자 남을 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으셨군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흑백무상께서는 제가 미련이 너무 무거워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흑백무상?”
“중국의 저승사자입니다.”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홀을 힐끗 보았다.
“동생분이 걱정이 돼서 남았다면…… 이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자식도 있고 손녀도 있다. 게다가 외국에 여행을 나오고 윤수홍이 저렇게 관광까지 시켜 줄 정도라면 기반도 잘 다졌을 것이다.
강진의 말에 왕강준이 미소를 지었다.
“잘 커서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가세요. 너무 오래 계셨습니다.”
대충 계산해도 오십 년을 귀신 생활을 했다면 오래 했다.
“가기는 해야 하는데…… 사실 이제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강준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잔을 들어 소주를 마시려다가 말했다.
“한 잔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잔을 보았다. 잔에는 소주가 가득 차 있었다.
‘아! 귀신이지.’
귀신이 먹는 것은 음식의 혼 같은 거다. 그러니 잔에 술이 차 있다고 해도 그건 혼이 빠진 소주일 뿐이다.
즉 왕강준이 먹을 수 있는 소주가 아니었다.
그에 강진이 소주잔을 옆으로 치우고는 새로운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그러고는 강진이 왕강준을 보았다.
“드시고 싶은 것 있습니까?”
“이것도 충분합니다.”
“이것 말고 드시고 싶은 거요.”
강진의 말에 왕강준이 그를 보다가 힐끗 홀을 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있던 왕강준이 입을 열었다.
“계란면.”
“계란면?”
“그게 먹고 싶습니다.”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요리 연습장을 보았다.
‘계란면이라는 레시피는 본 적이 없는데?’
“저희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음식입니다. 요리 방법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강진의 말에 왕강준이 재료들을 말해 주었다.
“계란 세 개. 국수,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