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왕강준이 말해주는 재료들은 간단했다.
계란 세 개에 국수, 그리고 파와 마늘이 전부였다.
“국수를 삶으세요.”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국수를 꺼내 물에 넣고는 삶았다.
“국수를 더 넣어 주세요.”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국수를 더 넣었다.
“더요.”
더 넣으라는 말에 강진이 왕강준을 보았다.
“저기 재료에 비해 국수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계란을 더 꺼낼까요?”
“아닙니다.”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국수를 더 집어넣었다.
‘이 정도면 5인분은 될 것 같은데…….’
삶아지는 국수를 보는 강진에게 왕강준이 말했다.
“계란을 잘 풀어 주세요. 그리고 파와 마늘도 잘게 썰어 주세요. 아! 마늘은 너무 자잘하지 않게 편처럼 썰어주세요.”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면이 삶아질 때까지 재료를 준비했다. 재료 준비가 되자 왕강준이 말했다.
“마늘과 파를 기름에 볶아 주세요.”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프라이팬을 꺼냈다.
“그것보다 커야 합니다. 저걸로 하세요.”
왕강준이 한쪽에 있는 웍을 가리키자 강진이 그것을 집었다. 일반 프라이팬보다 크고 속이 깊은, 중국 식당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웍이었다.
기름을 두른 강진이 마늘과 파를 볶았다.
마늘과 파 향이 고소하게 맡아지자 강진이 왕강준을 보았다.
“더?”
“아닙니다. 이제 면을 덜어서 물기를 짜고 웍에 넣으세요.”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그대로 따라했다. 국수를 덜어서 물기를 짜고는 웍에 넣었다.
촤아악! 촤아악!
짰다고는 해도 물기를 머금은 국수가 웍에 들어가자 물 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촤아악! 촤아악!
그렇게 국수에 파 향과 마늘 향이 베인 기름이 머금게 할 때, 왕강신이 불쑥 머리를 주방으로 들이밀었다.
“맛있는 향이 나는군.”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왕강준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중국분들이 면을 좋아한다고 해서 간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우리 중국 사람들은 면을 좋아하지.”
웃으며 파 향을 맡는 왕강신을 보며 강진이 국수를 볼 때, 왕강준이 말했다.
“불을 끄고 큰 그릇에 더세요.”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큰 그릇에 면을 덜었다.
‘그런데 계란은 왜 안 쓰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왕강준이 말했다.
“이제 계란 풀어 놓은 것을 면에 넣고 비비세요.”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계란 풀어 놓은 것을 면 위로 쏟고는 비볐다.
뜨거운 면 위에 올라간 계란이 진득진득하게 변했다. 익은 것도 안 익은 것도 아닌 그런 상태였다.
‘까르보나라 파스타 만드는 것하고 비슷하네.’
재료도 다르고, 이건 오직 계란만 쓰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까르보나라 파스타도 이런 식으로 소스를 만든다.
소스가 익지 않고 수프처럼 면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면을 주욱 들어 올렸다.
스르륵!
면발에 코팅이 된 것처럼 흐르는 계란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까르보나라를 예로 들기는 했지만…… 사실 강진의 생각에는 너무 느끼하거나 비릴 것 같았다.
계란이 잘 비벼지도록 면을 들어 보던 그의 눈에 왕강신이 보였다.
왕강신은 뚫어질 것 같은 눈으로 계란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진을 보고는 말을 했다.
그런데 어렵기는 해도 들을 만하던 방금 전과는 달리 강하고 빠른 어조라, 강진으로서는 알아듣기가 좀 힘들었다.
다만…….
‘어디서, 배웠냐?’
두 단어 정도는 알아들은 강진이 말했다.
“아르바이트할 때 알던 중국분한테 배웠습니다.”
그러자 왕강신이 또 무어라 말을 했는데, 이번엔 강진은 말을 알아듣기보다는 행동으로 뜻을 알아차렸다.
자꾸 손을 내미는 것을 보니 달라는 의미였다.
그에 강진이 그릇에 국수를 덜어서는 내밀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러는 사이 윤수홍이 다가왔다.
“모르겠네요.”
말은 그렇지만 강진은 왕강신이 저러는 이유를 짐작했다. 왕강준의 어머니가 해 주던 음식이라면, 왕강신에게도 어머니의 음식이다.
즉 추억의 음식인 것이다.
왕강신이 국수를 멍하니 보다가 젓가락을 들어 크게 한입 물고는 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왕강신의 맞은편에 한 그릇을 더 떠서 놓고는 젓가락을 옆에 놓았다.
그 모습에 왕강준이 강진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왕강준이 젓가락을 집어 계란면을 먹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음식의 혼을 먹는 행위였다.
홀과 주방을 연결하는 공간을 통해 귀신과 사람, 형과 동생이 마주 보며 계란면을 먹고 있었다.
계란면을 한 젓가락 크게 먹은 왕강준이 왕강신을 보았다. 왕강신은 천천히 맛을 음미하듯이 계란면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왕강준이 말했다.
“그때는 계란이 무척 귀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돈을 좀 많이 번 날에만 계란을 두 알 정도 사서 이렇게 해 줬는데…… 제 동생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왕강준이 미소를 지었다.
“늘 맨 국수만 먹다가 이렇게라도 계란 맛을 보게 되니 마치 황제가 된 것 같다고 했었죠.”
왕강준의 말에 강진은 답을 하지 않았다. 앞에 왕강신이 있는데 답을 하기에는 혼잣말처럼 들릴 테니 말이다.
다만 왕강신을 보았다. 왕강신은 계란면을 먹다가 젓가락을 놓고 있었다.
그러고는 먹던 그릇을 보다가 말했다.
“어릴 때…… 형이 돈을 많이 번 날에는 계란을 사다가 해 준 황제면과 맛이 비슷하군.”
“황제면?”
“그냥 우리가 늘 해 먹던 국수에 계란만 들어간 것이기는 하지만…… 이걸 먹을 때는 황제 부럽지 않다고 생각을 해서 내가 붙인 이름이었지.”
“그렇군요.”
“그때는 이게 너무 맛있었어.”
“지금은요?”
강진의 물음에 왕강신이 피식 웃었다.
“그때는 맛있었는데…….”
왕강신의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파와 마늘을 볶은 기름에 국수를 살짝 볶고, 거기에 계란을 풀어 넣은 것 정도밖에는 안 되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양념도 안 되어 있는 음식이 무슨 맛이 있겠는가.
“더 맛있게 해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니네. 그래도…….”
잠시 말을 멈춘 왕강신이 미소를 지었다.
“이 맛을 한국에서 보게 될 줄이야.”
웃으며 왕강신이 국수가 담긴 그릇을 보았다.
“더 먹어도 되나?”
“물론이죠.”
강진이 왕강신의 그릇에 국수를 더 덜어주자 그가 한 젓가락 크게 집어먹었다.
하지만 곧 눈을 찡그렸다. 사실 맛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생마늘 좀 주겠나.”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생마늘을 꺼내 칼을 들었다. 그에 왕강신이 손을 저었다.
“그냥 주게.”
왕강신이 마늘을 집어서는 으적으적 씹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먹어야 제대로지.”
웃으며 그가 다시 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먹고는 마늘을 씹었다.
“나름 성공하고 난 후에 이게 먹고 싶더란 말이지.”
“그리 어렵지 않은데?”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이런 맛이 아니었어. 내가 만들면 계란이 익어서 계란 볶음면이 되는 거야. 그런데 이제 보니 프라이팬에 계란을 넣는 것이 아니라 국수를 따로 빼서 넣는 것이군.”
“국수의 잔열로 익히는 겁니다. 너무 뜨거울 때 넣으면 말씀하신 것처럼 계란이 너무 많이 익거든요.”
“그래…… 그래서 안 되던 거였어.”
기분 좋은 얼굴로 국수를 보던 왕강신이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형이 키워서 부모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아. 나한테는 형이 아빠였고 엄마였지.”
말을 하는 왕강신의 앞에 잔이 놓였다. 회상 신이라고나 할까.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옆에 있던 윤수홍이 눈치 빠르게 술과 잔을 가져온 것이다.
“고맙군.”
고량주가 담긴 잔을 받아 든 왕강신이 한잔 마시는 것을 본 강진이 잔을 내밀었다.
“저도 한 잔…….”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그에게도 한잔 따라주었다. 그에 강진이 그것을 받아 슬며시 왕강준의 앞에 놓았다.
그러자 왕강준이 강진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왕강준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왕강신을 보았다.
“안 마시나?”
“혹시 바로 안 마시면 무례한 건가요?”
“아니네.”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국수를 그릇에 담아 윤수홍에게 내밀었다.
“죄송한데…….”
“그렇게 해요.”
윤수홍이 그릇들을 들고 식탁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며 왕강신이 술을 한잔 따르고는 말했다.
“형이 나를 키웠지. 그러다가 내가 8살인가 되었을 때인가…… 갑자기 형이 사라졌다네.”
“사라져요?”
강진은 짐짓 놀란 것처럼 말했다. 왕강준이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것을 알지만 말을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런 강진을 보며 왕강신이 입을 열었다.
“일을 하다가 하루 정도 안 들어오는 날은 있었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안 오는 거야.”
“그렇군요.”
“처음에는 걱정을 하다가 일주일이 넘으니 화가 나더군. 왜인지 아나?”
강진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에 왕강신이 국수를 보았다.
“배가 고팠거든.”
말을 하던 왕강신이 피식 웃었다.
“집에 안 들어오는 형이 걱정되기보다, 내가 배고픈 것이 더 고통스럽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
입맛을 다시는 왕강신을 보며 강진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에 술을 마신 왕강신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서 집을 나왔지. 그러고는 무작정 형이 일을 했던 공사판으로 갔는데…… 거기서도 형 소식을 모르는 거야. 다행히 거기 있던 아저씨 한 명이 내 이야기를 듣고는 근처 술집에 보내줬지.”
“술집요? 어린애를 왜 술집에?”
강진이 의아한 듯 묻자 왕강신이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판 것 같아.”
“팔아요?”
놀라 보는 강진을 보며 왕강신이 말했다.
“그때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술 한 잔, 밥 한 끼에 파는 일도 많았어. 워낙에 고아들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왜 그게 다행입니까?”
“최소한 굶지는 않으니까.”
웃으며 말을 한 왕강신이 슬쩍 옆을 보았다. 어느새 그 옆에는 아들이 서 있었다.
옆에 있는 아들의 손을 잡은 왕강신이 말했다.
“내가 늘 말했던 황제면이다.”
왕강신이 국수를 가리키자,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보고 아버님이 늘 말하던 그 맛인 걸 알았습니다.”
아들의 말에 왕강신이 그릇을 내밀었다. 그에 아들이 국수를 받아 한 입 먹고는 내려놓았다.
“맛이 없지?”
“맛있습니다.”
아들의 말에 왕강신이 웃었다.
“그럴 리가 있나. 내 입에도 그리 맛이 없는데…….”
그러고는 왕강신이 강진을 보았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굶지는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아…….”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왕강신이 말을 했다.
“술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호객 행위도 하면서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 혹시 형이 나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말이야.”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놀라 급히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강진이 너무 놀라 하는 말에 왕강신이 그를 보았다.
“그걸 자네가 어찌 아나?”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슬쩍 왕강준을 보고는 말했다.
“동생을 위해 황제면을 만들어 주는 분이 동생을 버리고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왕강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형이 도망을 갔을 거라 생각을 하네.”
“네?”
의아한 듯 보는 강진을 보며 왕강신이 입을 열었다.
“형이 나를 버리고 가지 않았다면…… 형은 왜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그건…….”
강진이 말을 하지 못하자 왕강신이 웃으며 말했다.
“형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형은 죽은 거겠지. 집에 돌아오지 않아 내가 형을 욕하던 그때 말이야.”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슬쩍 왕강준을 보았다.
왕강준은 안쓰럽다는 눈으로 동생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