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34
935화
심리학과 앞에는 원형의 잔디밭이 작게 있었고 그 주위로 그늘을 피할 정자와 의자들이 몇 개 있었다.
정자로 가서 앉으며 최광현이 말했다.
“그 아이한테도 귀신이 있는 거지?”
“어머니 귀신요.”
“그렇구먼.”
최광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너는 참 고생이 많아.”
“고생은요. 그냥 보이니 안쓰럽고, 안쓰러우니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니…… 오지랖만 느는 거죠.”
“그런 오지랖만 많다면야 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아지겠냐. 그냥 남의 일이라면 입만 나불대는 오지랖만 많아지니 문제지.”
최광현은 강진의 어깨를 툭 쳤다.
“남을 돕는 오지랖이 많으면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좋아지겠지.”
고개를 저은 최광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웃었다.
“이 커피도 이제 자주 못 먹겠네.”
“집이 가까워도…… 자주는 못 마시겠죠.”
집이 학교와 가까우니 이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와서 마시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학교 조교를 하며 마시는 것과 외부인이 되어서 마시는 커피는 다를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강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하셨어요?]“응. 공부 잘 배우고 있었어?”
[운 좋게 커플이 있더라고요. 거기 붙어서 문제 하나 클리어했어요.]기분 좋은 듯한 박혜원의 목소리에 강진이 웃었다. 박혜원이 굳이 커플이나, 여자들과 같이 다니는 남자를 타깃으로 하는 건 거절을 많이 당했기 때문일 터였다.
물론 타깃을 정해서 다가간다고 해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데 성공하자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럼 더 물어보지? 커플이면 인상 좋게 보이려고 더 알려 주려고 했을 것 같은데?”
[저도 상도라는 것이 있어요. 한 번에 하나만 문제 풀어달라고 해요. 그분들도 어딘가를 가던 길이고 시간이 귀한데 제가 오래 뺏을 수는 없잖아요.]“좋은 상도네.”
[그럼요. 저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사람이랍니다.]박혜원이 웃는 것에 강진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학생회관 앞에 학교 지도 있는데 본 적 있어?”
[있어요.]“그럼 그거 보고 심리학과 건물 찾아올 수 있겠어?”
[심리학과 건물요? 거기는 왜요?]“오면 내가 좋은 오빠들 소개해 줄게. 앞으로 학교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이 오빠들한테 말해. 도와줄 거야.”
[에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심리학과 건물요?]“혼자 올 수 있겠어?”
[물론이죠.]확신에 찬 대답을 끝으로 박혜원이 전화를 끊자 최광현이 웃었다.
“애 성격 좋네.”
스피커 모드로 통화 내용을 같이 듣고 있던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이 아주 좋죠. 그리고 싹싹해요.”
“목소리만 들어도 그런 것 같네.”
최광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문득 그를 보았다.
“아, 채송화 씨 남자친구 이야기 제가 했나요?”
“아니. 못 들었는데?”
“오태산이라고…….”
강진이 채송화 남자친구 이야기를 해 주자, 최광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남자친구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봤다가 동네에서 보면 집에 한 번 모셔야겠네.”
“그러면 좋겠네요. 혹시라도 남자친구 못 보고 떠난 것이 한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그렇게 승천할 수도 있는 건가?”
“그건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거죠. 참, 집에 데리고 들어올 때 채송화 씨가 귀신이라는 이야기는 하면 안 돼요.”
“그걸 내가 모를까.”
“그런데 어떻게 데리고 들어가려고요?”
“스토리야 생각을 해야겠지만 그게 뭐 어렵겠어. 집에 이사 왔는데 우연히 전 주인이 놓고 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그쪽을 본 것 같다고 이야기 시작하면 그쪽이 반응을 할 테고 그 반응에 따라 끌고 가면 되지 않겠어?”
“물론 끌고 가는 건 이야기겠죠?”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최광현도 웃었다.
“그럼 그 사람 목을 잡고 끌고 가리? 후! 그리고 그렇게 끌고 가면 송화 씨가 나 잘 때 TV 소리 엄청 크게 틀어버릴걸.”
웃으며 최광현이 손을 젓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길 한쪽에서 박혜원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 애예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박혜원이 있는 곳을 보았다.
“애가 사 학년이라고 안 했어?”
“네.”
“요즘 애라 크기는 하네.”
4학년이라고 해서 작은 아이를 생각했는데, 키가 생각보다 크니 놀란 것이다.
“성장기에는 아침이 중요한 법이죠.”
“그게 무슨 말이야?”
“아침을 잘 챙겨 먹으면 키가 큰다는 말이에요.”
강진은 박혜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혜원아.”
강진의 부름에 박혜원이 이쪽을 보고는 급히 뛰어왔다.
“걸어와. 걸어와.”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바로 천천히 걸었다. 그 모습에 웃던 강진은 최광현과 함께 그녀에게 다가갔다.
박혜원의 옆에는 김소희와 아주머니 귀신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머니 귀신은 김소희의 정체를 아는지 조심히 고개를 숙인 채 따라오고 있었다.
‘지금 기운을 죽이고 계신 건가? 아니면 향수를 뿌리셨나?’
전에 김소희 불편하지 말라고 향수를 황민성에게 주었었다. 집에 두면 김소희가 알아서 뿌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왔을 때 향수를 뿌려 달라고 한 것을 보면 잘 뿌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잊어먹고 안 뿌리는 건지, 그냥 기운을 죽이고 있는 것이 편한 건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박혜원에게 다가간 강진이 최광현을 가리켰다.
“이쪽은 나하고 친한 최광현 형.”
“안녕하세요. 박혜원입니다.”
정말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박혜원을 보고 최광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나서 반가워.”
“그리고 소개해 준다는 오빠들은 위에 있어.”
“이 오빠가 아니고요?”
“이 오빠도 알아두면 좋지. 이 오빠 경찰에 몸담고 있거든.”
“경찰요?”
박혜원이 보자, 최광현이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언제든 나쁜 놈들 보면 전화해. 오빠가 잡아 줄게.”
“고맙습니다.”
명함을 받아 보는 박혜원에게 강진이 말했다.
“올라가자.”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그녀를 데리고 심리학과 연구실로 걸어갔다.
“여기 찾기 어려웠어?”
“어렵기는요. 지도에 다 그려져 있는데.”
“그래도 초행인데도 잘 찾아왔네.”
최광현의 말에 박혜원이 공손히 말했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너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 놨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도 알려 줄 사람이 없어서 인천에서 오는 아이라고. 그래서 애들도 공부 알려주고 싶대.”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걷다가 문득 그를 보았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는 나 말고 너 가르쳐 주는 오빠들한테 해야지.”
“그 오빠들도 고맙지만, 오빠가 저 생각해서 일부러 학교 후배들한테 부탁하신 거잖아요. 그리고 후배들한테 부탁하려고 일부러 학교에 와 주신 거죠?”
“혜원이 이야기도 하고 후배들도 보고…… 겸사겸사지.”
“고맙습니다.”
강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올라가면 아마 오빠들이 너 공부하는 시간에 대해서 말을 할 거야. 상대가 불편할까 봐 미안해하지 말고 네가 가장 편한 시간대로 말을 해.”
“그래도 돼요?”
“너 편한 시간이 오빠들한테도 가장 편한 시간대야. 그리고 여기 연구실은 24시간 내내 사람이 있으니까 정말로 아무 때나 괜찮아.”
“24시간? 학교에 왜 그렇게 있어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연구실로 가다가 문득 그녀를 보았다.
“그 아침에 좀 일찍 가면 실험실에서 냄새도 나고 할 거야. 그럴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해.”
“냄새요?”
“집에 가기 귀찮은 애들은 실험실에서 먹고 자고 하거든.”
“학교에서 잠을 자요?”
박혜원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이 웃었다.
“벽 있고 지붕 있고 이불 있으면 잠을 못 잘 이유도 없잖아. 그리고 나도 자주 잤어. 창문 열어 놓으면 냄새는 금방 빠지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괜찮아요. 저 냄새 같은 거 신경 안 써요.”
“그래?”
“그럼요. 공부 배우러 인천에서 서신대까지 오는데, 고작 냄새에 힘들어하겠어요?”
웃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손까지 흔드는 박혜원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긴 강진은 연구실 앞에 서서는 말했다.
“여기야.”
강진은 박혜원을 데리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다가 피식 웃었다.
연구실 안에서 방향제 향이 났던 것이다. 연구실에서 단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그런 향이었다. 아마도 애들이 박혜원 생각해서 방향제를 뿌린 모양이었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임경호가 웃으며 다가왔다.
“안녕? 나는 임경호라고 해.”
“박혜원입니다.”
“형한테 이야기 들었어. 앞으로는 학교에 공부하러 올 거면 바로 이쪽으로 오면 돼.”
“감사합니다.”
“그리고…….”
임경호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내 메일하고 핸드폰 번호거든? 혹시 정말 급하게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거나 물어봐야 할 것이 있는데 오지 못할 때는 메일로 문제를 보내.”
“메일로요?”
“네가 오는 게 절대 귀찮거나 해서 메일 주는 건 아니야. 인천에서 여기까지 공부하러 오기 힘들 때 메일을 보내라는 거야. 그리고 올 때 미리 전화를 하고 올 필요 없어.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건데 올 때마다 전화하면 그것도 귀찮으니까.”
임경호의 말에 후배 중 한 명이 말했다.
“경호 형이 메일로 잘 설명해서 보내 주겠지만, 그렇게 잘 설명된 참고서는 많아. 그러니 바쁘지 않고 올 만하면 여기로 와서 직접 물어보고 확인해. 그게 좋아.”
“감사합니다.”
박혜원이 인사를 하자 임경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연구실은 최대한 편하고 편하게를 모토로 하거든. 그러니 너도 최대한 편하게 와서 편하게 물어보고 편하게 있다가 가.”
“정말 편하게 있어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네가 손님처럼 있으면 우리도 손님처럼 너를 대해야 하는데 그럼 우리도 불편하잖아. 최대한 편하게 있어. 공부하다가 피곤하면…….”
임경호가 한쪽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저기서 한숨 자도 돼.”
박혜원이 소파를 보자, 아까 말을 한 후배가 물었다.
“공부는 무슨 책으로 해?”
박혜원은 가방에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꺼냈다. 후배가 책을 받아 슥 훑어보고는 말했다.
“이거 몇 년 된 거네?”
“교회 오빠들한테 받은 거라서요.”
“이거보다는…….”
후배는 참고서에 대해 말을 하려다가 박혜원을 보았다. 참고서를 새로 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대충 상황 보니 그럴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에 책을 한 번 더 훑어본 후배가 말했다.
“오늘 몇 시에 갈 거야?”
“세 시에 가려고요.”
“세 시라…….”
박혜원의 말에 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있어. 내가 참고서 좀 가져다줄게. 그게 내용 정리가 쉽고 잘 되어 있어.”
“어, 아니에요. 저는 이걸로도…….”
“괜찮아. 내가 과외를 해서 자취방에 중고등학교 참고서하고 책들 좀 있어. 그리고 내가 따로 만든 자료들도 있으니 그거 가져다줄게.”
그러고는 후배가 일어났다.
“저 집에 가서 참고서 좀 가져올게요.”
“그래. 잘 가져와라.”
최광현의 말에 박혜원이 그를 보았다.
“다음에 제가 받으러 와도 되는데요.”
“괜찮아. 우리 집 가까워.”
후배가 연구실을 나서자, 박혜원이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 모습에 임경호가 다른 후배 한 명을 보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네가 가르쳐.”
임경호의 말에 후배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한쪽에 있는 탁자로 박혜원을 데리고 갔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
후배의 말에 박혜원이 환하게 웃으며 책을 탁자에 놓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 귀신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혜원이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 귀신의 목소리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그녀를 보았다.
‘어머니는 죽어서도 자식을 위해 고개를 숙이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