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68
969화
축축한 옷을 입고 연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박혜원이 한숨을 쉬는 사이, 강진은 고개를 돌렸다.
촬영장 한가운데에 있는 박신예는 잠시 촬영을 멈춘 채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오늘 촬영은 언제 끝나는 거야?”
“촬영은 저녁까지 한대요.”
“너도?”
“저도죠. 드라마 초반이라 제가 신예 언니보다 더 비중이 많잖아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촬영장을 볼 때, 황민성이 다가왔다.
“왔어?”
“형도 오셨어요?”
“첫 촬영인데 당연히 와야지.”
그러고는 황민성이 웃으며 푸드 트럭을 보았다.
“음식은 부족하지 않게 가져왔지?”
“물론이죠. 그런데 점심만 준비하라고 해서 한 끼 분량만 챙겨 왔는데, 저녁까지 촬영을 해요?”
“저녁에는 다른 밥차 올 거야.”
“제가 해도 되는데…….”
“네가 매일 올 수 없잖아.”
“그건 그렇죠.”
일요일이니 왔지, 평일에는 강진도 장사를 해야 하니 말이다.
“저녁에 오는 밥차가 앞으로도 계속 밥을 해 주러 촬영장에 올 거야.”
말을 하던 황민성이 박혜원을 보았다.
“오빠 강진이하고 이야기 좀 할 거 있으니까, 감독님 옆에 가 있을래?”
“네.”
박혜원이 눈치 있게 자리를 비우자, 황민성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아가씨 신나셨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박신예가 액션을 취하던 곳에 김소희가 있었다.
김소희는 뽑아 든 검을 허공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저 소희 아가씨가 검 휘두르는 건 처음 보네요.”
가끔 검을 뽑아서 위협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검을 본격적으로 휘두르는 것은 강진도 본 적이 없었다.
강진이 김소희를 볼 때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 시대에 검을 휘두르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잖아.”
“그렇죠.”
“촬영이기는 하지만 직접 검을 휘두르는 배우들 모습 보니 흥이 돋으셨나 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박신예가 원래 있던 곳으로 가서는 검을 휘두르며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런 박신예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소희가 그게 아니라는 듯 옆에서 검을 움직였다.
박신예의 움직임을 따라서 하는 듯 했지만, 김소희의 움직임이 뭔가 더 박진감이 있고 가벼웠다.
그리고…… 김소희가 같이 검을 휘두르자 신기하게도 박신예의 검 휘두르는 동작이 더 멋져 보였다.
“내 눈이 이상한가? 아가씨가 검을 휘두르니 신예 씨 동작이 더 힘이 있어 보이네요.”
“너도 느꼈구나.”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소희 아가씨가 신예 씨 옆에서 같이 검을 휘두르면 뭔가 더 힘 있고 날카롭게 느껴지더라고.”
“평소에는 힘 안 쓰시는데 자기 드라마라고 힘을 쓰시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기분 좋은 얼굴로 김소희를 보았다.
“아무래도 우리 드라마 대박이 날 것 같아.”
“대박요?”
“노래나 드라마에서 귀신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대박이 난다고 하잖아. 그런데 우리 드라마는 자그마치 조선 제일의 귀신이자 무신인 소희 아가씨께서 계시니…… 후! 대박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럼 음식 부탁해.”
“걱정하지 마세요.”
황민성이 웃으며 감독이 있는 곳으로 가자, 강진은 촬영장을 보다가 직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들도 드라마 촬영장 오는 거 처음일 테니 구경들 하세요. 저는 음식 준비 시작해야겠네요.”
“왜? 시간 좀 있는데 구경하다가 하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용수 네가 음식을 못 할 것 같아.”
“그건…… 그러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배용수가 음식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구경하고 있어.”
“혼자 할 수 있겠어?”
“늘 네가 옆에 있다가 혼자 하려니 좀 빡셀 것 같기는 하지만…… 가게에서 준비는 다 해 왔으니 할 만할 거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에서 1차로 재료 준비를 다 했고, 고기도 양념에 버무려 왔기에 시간이 걸리는 건 밥과 국 정도였다.
다른 거야 그냥 볶고 내기만 하면 되고 말이다.
“필요하면 불러. 나는 경치 구경이나 해야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천막이 쳐져 있는 곳으로 차를 몰자, 배용수가 여자 귀신들과 함께 강가로 걸음을 옮겼다.
배용수는 드라마 촬영을 구경하기보다는 이 경치 좋은 곳에서 힐링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촤아악! 촤아악!
제육볶음이 맛있게 볶아지고, 시원한 콩나물국이 팔팔 끓어오르고 있었다. 거기에 한쪽 찜통에서는 순대가 윤기를 흘리며 쪄지고 있었다.
탓! 탓! 탓!
선반 위에 반찬이 담긴 통들을 꺼내 놓은 강진이 가져온 음식들을 살폈다.
오늘 준비한 음식은 제육볶음, 순대, 분홍 소시지와 얼큰한 콩나물국, 그리고 밑반찬들이었다.
거기에 제육볶음을 싸 먹을 수 있는 상추도 있었다.
‘이 정도면 욕은 안 먹겠지.’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 음식들로만 구성을 해 와서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강진은 젓갈 통을 하나 꺼내 선반 끝에 놓고는 그 위에 숟가락을 놓았다. 그러고는 그 앞에 메모를 붙여 두었다.
강진이 오늘 선택한 무기는 갈치속젓이었다.
사실 갈치속젓은 강진에게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 갈치속젓에 고기를 싸 먹었던 것 외에는 먹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귀신 손님이 갈치속젓에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준비를 했는데, 생각보다 이런저런 음식에 어울려서 그때부터 종종 하게 된 음식이었다.
적갈색인 데다가 뭔지 모를 진득한 액체처럼 보여서 보기 좀 그렇긴 하지만…… 먹어 보면 생각이 바뀌게 된다.
취향에 따라 보글보글 끓여서 먹어도 되고, 그냥 생으로 먹어도 맛있는 젓갈이었다. 특히 쌈을 싸 먹을 때 넣어서 먹으면…….
상추에 싸서 먹는 갈치속젓 맛을 떠올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아주 맛있지.”
강진은 웃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좀 일찍 끝났나?”
늦는 것보다 일찍 끝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서둘렀는데, 12시까지 약 20분이 남아 있었다.
잠시 쉴 겸 푸드 트럭에서 내려오던 때에, 김인아가 다가왔다.
“오셨어요?”
김인아의 인사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 보이시던데 지금 오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김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현장에 붙어 있을 수 있나요. 현장에서 일이 잘 돌아가게 여기저기 돌아다녀야죠. 현장이 잘 돌아가려면 저희 같은 사람들이 발품을 잘 팔아야 하는 거예요.”
“아! 여기 정말 좋더라고요. 이런 곳은 어떻게 찾으시는 거예요?”
강진의 말에 김인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정말 좋죠?”
“네.”
“저희 같이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한테는 비장의 장소가 하나씩은 있어요. 여기도 제가 킵해 놓은 장소인데…… 이번에 이렇게 쓰게 되네요.”
“아, 그럼 여기는 아직 드라마나 영화에 안 나온 곳이에요?”
“여기 차 타고 오기 힘드셨죠?”
“네.”
“그래서 아직 발견이 안 된 곳이에요. 이제는 오픈이 됐지만요.”
아쉽다는 듯 주위를 보던 김인아가 음식들을 보았다.
“음! 맛있겠다.”
“식사 먼저 하시겠어요?”
“이따가 감독님 식사할 때 같이 해야죠. 식사하면서 할 이야기도 있고.”
김인아가 음식을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저 그 친구하고 살림 합쳤어요.”
“정우성 씨요?”
“바로 알아들으시네요?”
“사장님이 저한테 그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정우성 씨뿐이잖아요.”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음료 좀 드릴까요?”
“그럼 좋죠.”
김인아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그 밑에 보시면 아이스박스에 생수 있거든요. 그거 하나 주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밑을 보았다. 푸드 트럭 끝에는 아이스박스가 있었다.
그것을 열어 보니 얼음과 함께 생수가 들어 있었다. 그에 김인아가 생수를 하나 꺼내 내밀자, 강진이 받아서는 물을 조금 따랐다.
그러고는 생수 통 안에 붉은색 액체를 담았다.
“오미자예요. 더울 때 마시면 힘도 나고 좋죠.”
잘 섞이도록 생수통을 흔든 강진이 내밀었다.
“고마워요.”
붉게 변한 물을 한 모금 마시는 김인아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럼 신혼 생활은 즐거우세요?”
“신혼이라…… 사실 우리 둘이 결혼했다가 이혼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신혼이라고 할 건 없어요.”
“그래도 그때 손잡고 나가시는 거 보니 우성 씨는 정말 행복해 보이던데요.”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미소를 지었다.
“신혼이 아니라고 했지, 행복하지 않다고 한 건 아니에요. 저나 우성이 요즘 정말 행복해요.”
“정말 잘 되셨어요.”
“이게 다 강진 씨 덕인 것 같아요.”
“저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김인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날 우성이가 강진 씨가 만든 음식 먹고 펑펑 울었거든요. 우리 엄마 보고 싶다고. 그거 보고 제가 마음이 많이 아프고, 우성이가 안쓰럽다고 느꼈나 봐요.”
웃으며 말을 하던 김인아가 문득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강진 씨 집은 살림이 좀 있어요?”
“살림요?”
“보니 일 층은 식당이고 이 층은 가정집인 것 같던데.”
“아…… 있을 건 있죠. 냉장고도 있고, 소파도 있고, TV도 있고. 좀 오래되기는 했지만 있을 건 다 있어요.”
“그렇죠?”
“왜요?”
“우성이가 집을 사 놨다고 해서 가 보니 집에 냉장고 하나에 이불 몇 개 빼고는 없더라고요.”
김인아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할머니 귀신이 승천하면서 보낸 쪽지에 적힌 내용이었다.
‘그래서 가구점부터 가셨다고 했었지.’
웃음기를 빠르게 지운 강진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그래요?”
“자기 말로는 집에서 잠만 자고 가서 그렇다고 하는데, 어떻게 방송국 PD라는 사람이 TV도 없을 수가 있어요?”
김인아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고를 분이 있어서 안 사신 것 같은데요?”
“네?”
“우성 씨가 사장님하고 함께 하고 싶어서 가구를 안 들여놓으신 것 같아요. 냉장고야 음식물 보관해야 하고 이불은 잠은 자야 하니 준비를 했지만…… 다른 가구들은 그래도 여자가 고르는 것이 좋잖아요.”
김인아가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집에서 잠만 잔다고 해도 불편하면 사게 되는데 그런 것 하나 안 사신 것을 보면 사장님하고 함께 할 때, 사장님이 고르게 해 주고 싶으셨나 봐요.”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피식 웃었다.
“그 말이 맞는 거 같네요.”
“그렇죠?”
“명색이 방송국 피디라는 사람이 집에 TV도 없어서 제가 구박을 했거든요.”
김인아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하고 같이 살면 제 취향에 맞는 걸로 사려고 TV도 안 샀나 보네요.”
김인아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었다. 자신과 같이 살려고 가구를 안 사 놨다는 것을 말이다.
그냥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강진의 말을 듣고서야 왜 아무것도 안 샀는지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취향에 안 맞으면 버리고 다시 사야 하니 말이다.
‘당신은 늘 그렇게 배려를 해 줬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구박을 했네.’
피디가 TV도 없냐고 구박을 했을 때, 정우성은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핸드폰으로도 많이 보니까.
며칠 전 일을 떠올리던 김인아가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정말 남자는 잘 골랐구나 싶어서 말이다.
‘나도 우성이한테 정말 좋은 여자가 되어 주고 싶다.’
서로에게 서로가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이 결혼일 테니 말이다.
아니면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가는 것이 결혼일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