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84
985화
차돌박이 된장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정숙이 집에 자주 내려왔다고 하던데 왜 택배로 보내셨어요? 들고 올라가면 될 텐데.”
“그 어린 애가 음식을 들고 서울까지 어떻게 가. 그래서 택배로 보내는 거지. 서울까지 낑낑대며 들고 갈 바에야 몇 천 원 내고 택배로 보내는 것이 좋지.”
임형근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돈 벌어서 뭐 하겠어. 우리 딸 고생시키는 것보다야 돈 쓰는 것이 낫지.”
“하긴 그렇네요.”
반찬들이 가득 담긴 가방을 서울까지 들고 가는 것도 확실히 일은 일일 것이다. 무겁기도 하고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자취방으로 택배를 보낸 것이다. 힘들게 들고 가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차돌박이 된장국은 타지에서 굶지 말고 편하고 맛있게 먹으라는 어머니의 세심함이 담긴 것이었다.
재료들을 이것저것 보낸다 해도 막상 먹으려면 요리를 해야 하지만, 이건 그냥 물에 넣고 끓이면 바로 집에서 먹는 차돌박이 된장국이 되니 말이다.
봉투를 보던 임형근이 웃으며 말해다.
“오늘 점심에 반주하기 딱 좋겠네.”
“술 드시게요?”
강진의 물음에 임형근이 그를 보았다.
“전에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자네에게 술 한 잔 못 권했는데 오늘은 한잔해야지.”
임형근은 봉투를 들고 싱크대로 가서는 냄비에 그것을 담고 물을 부었다. 그러고는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는 임형근을 보고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한 거라 집에서 드시던 맛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맛있을 거야.”
임형근이 수저로 된장을 물에 풀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우리 정숙이하고 먹던 음식이니까.’
그 모습을 보던 진세영이 강진을 보았다.
“이건 내가 정리할 테니 좀 앉아요.”
“아닙니다. 같이 하시죠.”
“아니에요. 앉아 있어요. 냉커피 한 잔 줄까요? 더운 여름에는 그게 또 괜찮은데. 아니면 주스도 있어요.”
“냉커피 주세요. 저 그거 좋아합니다.”
진세영이 가서 앉아 있으라는 듯 거실을 가리키자, 강진이 주방에서 나왔다. 도와드리고 싶지만, 자기가 있는 것보다 그녀 혼자 하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거실로 간 강진은 창문 앞에 놓인 화분들을 보았다.
“화분이 참 많네.”
강진이 작게 중얼거리자, 임정숙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 취미가 낚시하고 이런 식물 키우는 거예요. 사람은 도시에 살아도 이런 나무들을 가까이해야 몸에 좋다고 하셨거든요.”
“하긴, 도시에서는 이런 녹색 식물을 보기 쉽지 않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던 임정숙이 고개를 돌려 책꽂이를 보았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만화책을 보던 임정숙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은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아세요?”
“네?”
강진이 의아한 듯 보았다. 그걸 왜 모를까?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는 사람이 바로 자신인데 말이다.
강진의 시선을 받으며 임정숙이 만화책을 가리켰다.
“저기 래핑 안 뜯긴 만화책 한 번 꺼내 보세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주방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여기 만화책 좀 봐도 될까요?”
“그럼요. 편하게 보세요.”
진세영의 말에 강진은 다른 만화책과 달리 비닐 래핑이 없는 만화책을 꺼내 보았다.
내용물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불량 아닌가?”
책이 물을 먹었다가 마른 것처럼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불량이 아니라 파손이 된 거예요.”
“파손요?”
강진이 작은 목소리로 묻자, 임정숙이 웃으며 책을 가리켰다.
“펼쳐 보세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책장을 넘겼다.
“더요. 더…….”
강진은 임정숙이 시키는 대로 책장을 하나씩 넘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정숙이 손을 내밀었다.
“여기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펼쳐져 있는 페이지를 보았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웃으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을 때는 기억에서 잊힐 때라고…….
만화책을 보지 않아서 이게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남자의 말에 한 소년이 우는 것을 보니 대충 내용이 짐작되었다.
그리고 책이 왜 이렇게 파손이 되어 있는지도 말이다.
만화 속에서 울고 있는 소년처럼, 이 책을 보는 사람도 울었을 것이다.
‘사람이 죽는 건 기억에서 잊히는 순간…… 그럼 기억에서 잊히지 않으면…… 죽는 것이 아니다.’
강진은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들은 죽은 사람들이었지만 강진에게는 죽은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그들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저 보지 못할 뿐이었다.
대사를 속으로 되새길 때, 진세영이 얼음을 넣은 냉커피를 들고 왔다.
“이것 좀 먹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서 있지 말고 앉아 있어요.”
강진이 웃으며 바닥에 앉으려 하자, 진세영이 그를 잡고는 소파로 가서는 앉혔다.
그러던 진세영은 강진이 들고 있는 만화책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진세영의 시선에 강진이 만화책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재밌네요.”
“그래요? 예전에 보던 책이에요?”
“그건 아닌데 그림이 재밌네요.”
“이거 나름 인기 있다고 하던데 만화책 안 좋아해요?”
“예전에는 좋아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만화책을 볼 시간이 없네요.”
“많이 바쁜가 보네요.”
“혼자 장사하다 보니 좀 그렇습니다.”
웃으며 강진이 만화책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다른 건 비닐이 안 뜯겨 있는데 이 권만 뜯겨 있네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만화책을 보다가 말했다.
“남편이 사 왔는데…… 그것만 봐요.”
“이 권만요?”
“네.”
“그럼 이것만 사시지, 왜 다른 시리즈까지 다 사신 거예요?”
한 권만 본다면 굳이 세트로 다 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강진의 물음에 진세영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거 물어봤는데…… 이 책이 고맙고, 이 책 쓴 작가도 고맙대요. 그래서 다 샀다고 하더라고요.”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으며 말했다.
“장사는 요즘도 잘 돼요?”
“네. 장사는 잘 되고 있습니다.”
“요즘 불경기라 자영업자들 힘들다고 하던데 다행이네요.”
“직장인들 상대로 하는 곳이라 경기 흐름을 잘 안 타요.”
“다행이에요. 젊을 때는 바쁜 것이 좋죠.”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혹시 서울 한 번 놀러 오지 않으시겠어요?”
“서울요?”
“저희 가게에서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요.”
“강진 씨 가게라면 서울 강남에 있다는?”
“강남이라고 해도 작게 백반집 하는 거라서 그렇게 강남 같지는 않아요. 분위기로 따지면 골목 한쪽에 있는 백반집하고 비슷한 분위기예요.”
“말은 고마운데…….”
“정숙이가 저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네?”
의아한 듯 보는 진세영을 보고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르바이트 자리 찾는다고 해서 제가 가게 소개해 줬거든요.”
말을 하는 강진의 머릿속에는 광활한 논에 금색 벼가 익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정숙 씨가 언젠가 부모님 모시고 가게에서 식사 대접하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정숙이가 그랬어요?”
진세영의 말에 임정숙이 웃으며 말했다.
“나 살아 있을 때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엄마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어. 나…….”
잠시 말을 멈춘 임정숙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죽었지만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고, 정말 좋은 분들하고 같이 있다고.”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잠시 보다가 진세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부모님이 자기 서울에 보내 놓고 걱정을 많이 한다면서 잘 지내는 모습, 그리고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모습 보여주고 싶다고 그랬습니다.”
강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진세영이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정숙이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있었군요. 이렇게 잊지 않고 부산까지 찾아와 주는 강진 씨도 있고…….”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정숙 씨 자주 말을 하세요.”
“그래요? 누군데요?”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혜미 씨라고 있는데 그분도 정숙 씨를 친동생처럼 여겼어요. 그리고 선영 씨도 있는데 선영 씨는 정숙 씨한테 여러 가지 많이 알려 주셨고, 정숙 씨가 많이 의지했어요. 마치 큰언니처럼요. 그리고 용수라고 저하고 친한 주방 친구가 있는데 그 녀석도 정숙이한테 참 잘 했어요. 그리고 손님 중에 상식 형, 민성 형도 참 정숙 씨 예뻐하고 귀여워하셨어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그분들이…… 아직 정숙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나요?”
“그 사람들도 다 정숙 씨 아직도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만화책을 보고는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다들…… 널 기억하는구나.”
미소를 지으며 만화책을 쓰다듬던 진세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 호칭이 좀 어색한 것 같아요.”
“네?”
“강진 씨가 우리 정숙이 부를 때 가끔 정숙이, 정숙 씨 이렇게 부르잖아요.”
“아, 제가 그랬나요?”
“아마 저희 앞이라 예의 지키려고 정숙 씨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아…….”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사실 그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강진은 평소에 정숙 씨라고 불렀고, 진세영 앞에서는 그냥 편하게 정숙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임정숙과 편하고 친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말이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호칭이 조금씩 꼬이는 것이다.
“그냥 편하게 정숙이라고 불러요.”
“그럼…… 그렇게 할까요?”
“그래요.”
“그럼 어머니도 저 편하게 불러 주세요.”
“저요?”
“어머니도 저한테 말씀하실 때 말을 편하게 하다가 존대를 하다가 하시잖아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웃었다.
“그럼 우리 말 편하게 할까?”
“친한 친구의 부모님은 저에게도 부모님이죠. 편하게 하세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강진이 식당 가는 건 애 아빠하고 이야기해 봐야겠어.”
“부산에서 서울 놀러 오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시죠. 상의해 보세요.”
“우리 애 아빠도 분명…….”
“가야지.”
말을 하던 진세영이 고개를 돌렸다. 주방에 있는 임형근이 싱크대에 기댄 채 등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딸이 일하던 곳이라는데 가야지. 그리고 정숙이가 보여주고 싶었다잖아. 자기 일하는 곳…….”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임형근은 다 들은 모양이었다.
“들었어?”
진세영의 물음에 임형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작게 떨고 있었다.
“아빠…… 울어?”
임정숙은 임형근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에게 걸어갔다.
“아빠…….”
임형근의 옆에 다가간 임정숙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아빠 울지 마.”
그러고는 가볍게 임형근의 등을 쓰다듬는 임정숙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힘내요.’
임형근도 힘들겠지만, 임정숙도 힘들 것이다. 사랑하는 아빠, 엄마가 자신 때문에 슬퍼하니 말이다.
때로는 내가 아프고 괴로운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람이 힘들고 아픈 것을 보는 것이 더 괴롭고 힘든 법이었다.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임정숙은 아팠다. 부모님이 슬퍼해서…… 그리고 아빠와 엄마도 아팠다. 사랑하는 딸이…… 아프게 상처 입고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