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90
991화
오지 않는 자신을 기다렸을 아내이자 여자인 그녀를 떠올리자 가슴이 너무 아픈 소윤이 한숨을 쉬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아들은 안 왔던가요?”
“처음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 녀석은 자기 엄마를…….”
엄마를 혼자 보낸 것에 화가 났던 소윤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아들에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독립운동을 한다고 집을 떠나 아내를 힘들게 하고 그녀를 기다리게 한 것은 자신이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미웠을 테지.’
아들인 대현은 조국의 독립보다 아빠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리고 원망을 했을 것이다. 어릴 때 옆에 있어 주지도 않았던 아빠 때문에 고향과 친구들을 떠나야 했으니 말이다.
자신을 자책하는 소윤을 보며 윤복환이 입을 열었다.
“은자 여사께서 나이를 먹고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자, 아드님이 같이 오셨습니다.”
“그랬습니까?”
“어머니 혼자 다니게 할 수가 없었던 듯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아들이 엄마를 챙겼군요.”
자신이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아들이 그나마 지켰다는 것에 안도를 하던 소윤이 물었다.
“대현이…… 제 아들은 잘 컸던가요?”
“번듯하게 잘 컸습니다. 대전에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다 하더군요.”
“대전. 대전이군요.”
소윤이 한숨을 쉬며 작게 중얼거릴 때, 윤복환이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십 몇 년 전 어느 날, 은자 여사께서…… 저승식당 손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저승식당 손님? 아!”
저승식당 손님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안 소윤이 작게 탄식을 토했다. 사실 이미 짐작을 한 일이었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한 몇 년 안 오셔서 이상하다 생각을 했는데, 아프셨다더군요. 그동안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요.”
“자기 몸이 아픈데 죄송하기는…….”
“아프시고 그러시니 고향 생각이 많이 나셨나 봅니다. 그래서 다니는 병원을 대전이 아닌 부산으로 옮기시고…… 아들하고 자주 당산나무를 찾으셨답니다.”
“당산나무요?”
“마을을 떠나고 오랜 기간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몰래 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에 당산나무만 보고 도망치듯이 떠났는데…… 세상이 변해서 월북한 남편이 있다고 해서 손가락질 받는 시대도 아니고,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잊었을 거라 생각하셔서 자주 찾아가 보고 마을을 둘러봤다 하셨습니다.”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자식의 미래를 망칠까 싶어 떠났던 마을이었다. 그래서 밝은 시간대에는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신을 기억할 사람이 없으니 시간 상관 없이 마음 편하게 고향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고 즐겁다 하셨습니다.”
“행복해요?”
“마을에는 남편과의 기억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기억 속 장소들을 둘러보는 것이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고향에서 눈을 감고도 싶었다. 그래서…….
“장례식 중에 저승식당 손님으로 저희 가게를 찾아오셨습니다.”
“아…….”
소윤이 작게 탄성을 토하자, 윤복환이 말했다.
“JS 직원과 함께 왔더군요.”
윤복환의 말에 주방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오던 강진이 물었다.
“JS 직원과 함께 왔다니, VIP이셨어요?”
“맞아.”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과 소주병을 자리에 놓았다.
전에 강진의 식당에도 강두치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고인을 데리고 왔었다.
보통 죽은 사람은 장례식장에서 저승 업무를 처리하고 귀신이 될 자가 아니면 바로 JS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VIP였다. VIP는 JS 직원이 근처에 있는 저승식당에 모시고 가서 식사를 대접하며 저승에 관한 것을 설명해 준다.
강진도 강두치가 데리고 오는 VIP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정은자 역시 그런 VIP인 모양이었다.
VIP라는 말에 소윤이 미소를 지었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집에 있는 음식을 아끼지 않고 나눠 주던 사람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아내가 VIP라는 것에 미소를 짓는 소윤을 보던 강진이 윤복환을 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식사하시고 이야기 나누시다가 직원하고 가셨네.”
“승천……하신 거겠죠?”
“그 직원에게 나중에 물으니 잘 가셨다고 하더군.”
아내가 귀신으로 남지 않고 승천을 했다는 것에 소윤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소윤이 미소를 짓는 것을 보던 강진이 음식을 가리켰다. 당근과 오이, 그리고 간단한 몇 가지 안주들이었다.
“저승식당 시간에 제대로 드시고, 이건 간단하게 드세요.”
말을 하며 강진이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음료나 물을 준비할까 했지만…… 지금은 소주가 좋을 테니 말이다.
화아악!
불투명한 소주잔을 든 소윤이 단숨에 잔을 비우고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술이 참 달아요. 아주 달아요.”
“술이 단 날은 참 위험한데…… 뭐 드신다고 사고를 치실 것도 아니니 많이 드세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소윤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잔에 남은 소주를 따로 가져온 그릇에 붓고는 새로 잔을 채워 주었다.
그런 강진에게 윤복환이 말했다.
“장갑도 가져오게나.”
“이미 챙겨 왔습니다.”
강진이 주머니에서 비닐장갑을 꺼내 내밀었다. 그에 소윤이 의아한 듯 자신을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께서 소윤 씨에게 남긴 이야기 보셔야죠. 아니면 제가 읽어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봐야죠.”
소윤은 재빨리 비닐장갑을 받았다. 한끼식당 식구들이 비닐장갑을 끼고 물건을 만지는 것을 보았기에 이것으로 뭘 해야 하는지 그도 알고 있었다.
비닐장갑을 손에 낀 소윤이 잠시 지퍼백을 보다가 그것을 열었다.
스으윽!
그는 지퍼백 안에 있는 편지들을 조심스레 꺼냈다. 두툼한 편지 다발을 꺼낸 소윤이 다른 지퍼백에 있는 편지들도 꺼냈다.
그렇게 많은 편지들을 탁자에 꺼내 놓은 소윤이 그것들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아주 오래된 편지인 듯 색이 많이 바래고 곰팡이가 낀 것부터 그나마 깨끗한 편지 봉투까지 다양했다.
소윤과 아내에게도 세월이 흐른 것처럼 이 편지들도 세월의 풍파를 맞은 것이다.
편지들을 손에 쥔 채 잠시 말없이 그것을 보던 소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진 씨는…… 혹시 편지를 써 보신 적 있으십니까?”
“편지요?”
소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편지는 써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시대에 편지를 쓰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연인들끼리 이벤트로 서로 손 편지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문자를 보내거나 좀 길게 써야 할 때는 메일을 보내니 말이다.
그런 강진을 보며 소윤이 미소를 짓더니 조금 낡은 봉투를 하나 집어 들었다.
“참 두툼합니다.”
소윤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보았다.
“종이 한 장에 글을 모두 채우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겠죠.”
편지란 건 상대를 생각하며 써야 하는 것이니 쉽지 않았다.
강진은 소윤이 왜 이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편지 봉투는 무척 두툼했던 것이다.
편지 봉투를 쓰다듬으며 소윤이 말했다.
“종이 한 장을 다 채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우리 아내는 이렇게 두툼하게 편지를 써서 보냈네요. 제 아내가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정말 많았던 모양입니다.”
종이봉투가 찢어지지 않게끔 조심스레 뜯은 소윤이 안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냈다.
편지는 생각대로 두툼했다. 마치 무슨 서류를 접어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에 미소를 지으며 소윤이 편지를 펼쳤다.
툭!
그 순간, 편지지 사이에서 증명사진 두 장이 떨어져 나왔다.
“하아아!”
작지만 긴 한숨을 토한 소윤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첫 증명사진에는 곱게 머리를 빗어 넘긴 아주머니가 있었다.
“여보…… 이렇게 늙어 갔나 보오.”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은 소윤이 다른 한 장의 증명사진을 보았다. 그곳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있었다.
“너도…… 참 많이 컸구나. 아빠가…… 너한테 참 미안하구나. 네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지를 못했어.”
남자로서 남자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 그리고 사춘기 고민이 많았을 남자에게 어른 남자가 해 줄 이야기, 그리고 어른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었을 순간…….
이를테면 친구하고 싸우고 집에 왔을 때, 혼내기보다는 이겼는지 졌는지를 물어보고 아들의 편에 서 줄…… 그런 아빠가 되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소윤은 사진을 한참 쓰다듬다가 편지를 보았다.
편지에는 그녀가 일 년 동안 지내며 있었던 일들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남편에게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큰일도 있고, 작은 일도 있고…… 아들과 그녀에게 있었던 일들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아마 소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붙이지 못하는 편지, 받지 못하는 편지라도 써서 자신의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애써 누르기 위해…….
‘마음으로 보내는 편지였구나.’
마치 기도처럼, 남편에게 마음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서 넣어 둔 것이다.
소윤의 옆에서 사모님이 쓴 편지를 읽던 강진이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 살짝 보기는 했지만, 이건 사모님이 소윤에게 남긴 소중한 편지였다. 그리고 지금, 소윤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을 안 윤복환도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슬쩍 정은자의 증명사진을 보았다.
자신이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정은자 얼굴을 가만히 보던 윤복환이 미소를 지었다.
‘여사님…… 마음이 전해져서 다행입니다.’
사진을 보며 가만히 웃은 윤복환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슬슬 저승식당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자신을 따라 주방에 들어오는 강진을 보며 윤복환이 말했다.
“오늘 음식은 자네와 내가 몇 가지씩 하는 걸로 하지.”
“제가 다 할 테니 좀 쉬시죠.”
“젊은 자네에게 다 맡기고 좀 쉬고 싶지만…….”
윤복환이 웃으며 배용수와 한끼식당 식구들을 보았다.
“여기 이 친구들도 현신해서 내 음식 좀 먹어 봐야 하지 않겠나?”
“먹어 보고 싶어요.”
이혜미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하자, 윤복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명색이 횟집이니 회하고 매운탕은 먹어 봐야겠지.”
윤복환이 냉장고에서 횟감들을 꺼내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저는…….”
말을 하며 강진이 냉장고를 보았다. 메뉴를 정하기 전에 일단 재료가 뭐가 있는지부터 봐야 하니 말이다.
강진과 윤복환이 음식을 할 준비를 하는 동안, 소윤은 봉투를 하나씩 뜯어 안에 담긴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내가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수십 년 동안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