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213
212화
현재 강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깨진 모습의 존재가 수상하지만,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입구를 열 수 있게 해주는 거울 조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네가 거울 미로를 탐색하는 동안 그곳을 경계하는 우리 동족들을 모두 이곳으로 철수시킬 거야.”
괜히 강신 곁에 다른 비추는 상이 머물면, 배신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좋은 선택이네요.”
혼자 넓은 미로를 헤매야겠지만, 강신은 깨진 모습의 존재의 결정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배신자를 찾아 거울 조각을 얻고, 이걸 근처 거울에 뿌리면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깨진 모습의 존재는 강신에게 고운 가루를 한 움큼 쥐여주었다.
가루는 빛에 반사되어 무지개빛으로 반짝였다.
강신은 그대로 들고 다니기는 힘들다고 판단하고, 트래킹 배낭 속에 있는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가루를 넣었다.
그리고 배낭에서 비상식량 네 개를 꺼내 잠들어 있는 소년 옆에 두었다.
“배신자를 찾는 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으니, 이 아이를 위한 식량을 두고 가겠습니다. 아까 보신 것처럼 물을 붓기만 하면 되니, 이 아이가 일어나면 꼭 챙겨 주십시오.”
강신의 부탁에 깨진 모습의 존재가 고개를 까닥였다.
“이 인간은 내가 책임지고 잘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마.”
강신은 깨진 모습의 존재에게 확답을 듣고도 조금 불안했는지, 처음 뜯었던 비상식량의 일부를 소년의 손과 품속에 몰래 숨겨두었다.
다행히 깨진 모습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강신은 무거운 트래킹 배낭을 다시 등에 메고, 깨진 모습의 존재와 함께 자신이 마을에 처음 도착했던 개울가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강신이 왔다는 소문이 돌았던 건지, 강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비추는 상들이 몰려와 있었다.
하지만 강신의 뒤를 따라오는 깨진 모습의 존재를 보고, 강신에게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개울가 앞에서 선 깨진 모습의 존재가 구경 중인 비추는 상 하나에게 다가오라며 손으로 까닥거렸다.
비추는 상이 쭈뼛쭈뼛 자신 없게 다가오자, 깨진 모습의 존재가 말했다.
“이 아이가 너를 거울 미로까지 안내할 거야.”
깨진 모습의 존재가 그렇게 말하자, 혼날까 걱정했던 비추는 상이 눈을 빛내며 강신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혹시 배신자가 이상한 말로 너를 유혹하더라도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해.”
“유혹에는 내성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럼, 아까 그 아이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신은 다시금 소년을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만능렌즈의 차광기능을 켰다.
자신의 손을 잡고 앞장선, 길잡이가 되어줄 비추는 상을 따라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차가운 기운이 강신의 몸을 휘감았다.
아까는 너무 밝아 눈을 뜨지 못했던 공간에서 강신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를 둘러보았다.
만능렌즈의 차광기능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전과는 달리 구역의 경계를 두 눈에 담을 수가 있었다.
강신은 이곳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차광 되는 정도를 조절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강한 빛을 내고 있는 게 무엇인지 확인은 가능했다.
‘저거…. 아까 받은 것과 비슷해 보이는데.’
강신은 깨진 모습의 존재에게서 받았던 고운 가루를 떠올렸다.
고운 모래들이 마치 물속을 돌아다니는 물고기 집단처럼 부드럽게 이 공간을 유영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안내역을 맡은 비추는 상에게 이끌려 가면서도 강신은 정신없이 이 아름다운 공간을 구경했다.
그리고 이내, 이 공간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신비한 공간 끝에 있는 작은 틀을 넘자, 강신이 처음 도착했던 거울 미로가 나타났다.
* * *
“임무 완수! 아쉽지만 나는 다시 돌아갈게~”
강신을 거울 미로로 안내한 비추는 상이 강신에게 힘껏 손을 흔들고는 다시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비추는 상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미로에 혼자 남겨진 강신은 턱을 쓸며 고민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잠시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이곳으로 왔으니, 아직 제대로 된 계획이 있을 리 없었다.
당장 소년의 안전은 확인해서 크게 급하진 않았지만, 식량의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적어도 10일 이내에는 그 배신자를 찾아야 하는데.’
자신이야 적게 먹어도 된다고 하지만, 소년은 몸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음…. 소란을 피워볼까.”
강신은 자신의 품속에서 전용 보호 장치에 들어가 있는 설야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주변을 관찰하며 수상한 게 보이면 바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설야는 그동안 좁은 공간이 답답했는지, 불만스럽게 더듬이로 강신의 머리를 탁탁 치고는 강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하늘로 날아갔다.
설야가 멀어지자, 강신은 배낭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자신의 무구인 건틀릿을 꺼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웨어러블 장치를 빼서 언제라도 조작할 수 있게 배낭 어깨끈에 결합했다.
그리고 건틀릿에 자신의 손을 집어넣었다.
척, 철컥.
조임쇠를 이용해 건틀릿과 손이 이격되지 않게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강신이 한 일은 건틀릿으로 눈앞에 있는 거울을 때리는 일이었다.
척준신이 이전에 알려주었던 발경을 연습하는 느낌으로 양발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그리고 최대한 거울과 가까이 붙은 후, 호흡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스읍……. 하!”
짧은 기합과 함께 강신의 오른쪽 주먹이 거울을 향해 번개같이 내질러졌다.
퍼억!
출렁~
“어…?”
발경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강력한 일격이었는데 거울은 깨지지 않았다.
아니, 계속 주먹으로 내려친다고 해도 깰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강신의 주먹이 닿은 거울은 마치 수면 위를 때려 물결이 일어나는 것처럼 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단단한 거울을 때린 게 아니라 물을 가득 담아둔 가죽을 타격한 듯한 불쾌함이 주먹을 타고 올라왔다.
“이건 안 되겠는데.”
거울을 깨면서 소란을 피워, 자신의 위치를 알리려고 했던 강신의 계획이 처음부터 꼬여버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둘러본 설야가 다시 강신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설야도 주변에서 수상한 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냥 조금 걸어 볼까.”
강신은 더 좋은 계획이 떠오를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배낭을 메고 목적 없이 거울 미로를 걷기 시작했다.
거울 미로는 출구가 없었기에 강신은 같은 곳을 계속 돌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좀처럼 배신자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신은 조금씩 정신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
거울만 가득한 이곳은 사방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이 장소를 몇 시간이나 걷고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머리 위에 앉아 졸고 있는 설야와 그림자 속에서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초코 덕분에 강신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이렇게 돌아다녔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잠깐 쉴까….”
강신은 잠시 쉬는 동안 허기를 달래기 위해 비상식량을 뜯었다.
그리고 소년에게 주었던 것처럼 소형 수분 징집기를 이용해 비상식량을 죽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비상식량의 맛을 본 강신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우욱…. 이거 뭐야.”
마치 해변에서 바닷물에 절여진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맛은 짜면서도 살짝 단 데, 알싸한 맛까지 입속을 맴돌았다.
김대리가 어째서 비상식량을 챙겨주며 미안해했는지, 맛을 보고 나서 단번에 이해했다.
또한, 소년이 강신이 준 비상식량을 허겁지겁 먹었던 건 맛을 떠나 순전히 살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비상식량을 버릴 수는 없었다.
강신은 억지로 음식을 삼키며 인상을 구겼다.
“진짜 정신 나갈 맛이네….”
덕분에 천천히 배신자를 찾겠다는 게으른 마음이 바뀌었다.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장소에서 최악의 맛을 가진 음식이라니….
오죽했으면 강신은 비상식량을 버리고 권영식이 챙겨준 산소 발생 장치 속에 들어있는 스피루리나를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니 새로운 계획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계획 없이 배신자를 찾다가는 저 빌어먹을 정도로 맛없는 식량을 얼마나 더 먹어야 할지…….”
최악의 맛을 자랑하는 비상식량은 비추는 상이 있는 구역으로 들어온 이래, 가장 강신을 동요하게 했다.
강신은 트래킹 배낭을 열어 물건들을 하나씩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트래킹 배낭과 일체형인 산소 발생 장치를 제외한 모든 장비를 꺼내자, 강신의 주변은 어느새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 상황에서 쓸 만한 걸 찾아야 하는데…. 이거랑 이거, 이거까지인가…. 아니야. 이건 지금 사용하기 조금 그렇지.”
강신은 조명탄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이곳에서 일이 끝나고 구역 밖으로 나갔을 때도 대비를 해야 했다.
외딴곳에 떨어질 수도 있는데, 조난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조명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이것들만 사용하는 걸로…….”
결국 수많은 물건 중 강신이 챙긴 물건은 랜턴과 헥사곤 바인더였다.
강신은 우선 웨어러블 장치를 조작해 만능렌즈의 차광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시야가 제한될 정도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다시 밝아질 테니까.’
강신은 랜턴을 켜서 거울에 비추었다.
어둠을 대낮처럼 밝게 만들어준 랜턴의 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거울 미로 전체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신은 헥사곤 바인더를 들어 근처 거울에 집어 던졌다.
쨍강! 쩌적….
헥사곤 바인더가 거울에 부딪혀 깨지면서 안에 들어있던 투명한 액체가 거울 전체를 덮었다.
그리고 액체는 순식간에 고체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본 강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 어깨를 돌리며 헥사곤 바인더를 던진 거울 앞에 섰다.
다시 한번 자세를 잡고는 주먹으로 냅다 거울을 후려쳤다.
쾅! 쾅! 쾅!!
강신의 주먹질에도 고체가 되어버린 액체는 깨지지 않았다.
건틀릿에 장착된 내부 충격기를 작동시키면 부수는 건 문제도 아니겠지만, 강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요란한 소리가 나는 거로 충분했다.
거울 미로 전체를 비추는 빛과 멀리서도 들릴 커다란 소리가 합쳐지니, 결국 참지 못한 배신자,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드디어 나타난 돌연변이는 강신에게 극도의 적의를 보였다.
“이 씨…. 야! 너 진짜 뭐 하는 놈인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