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235
234화
“케헥…. 켁….”
멱살이 잡혀 있는 백색 정장의 사내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평소 강신이라면 이쯤에서 바닥에 던져 가볍게 위협하고, 심문을 이어갔겠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참상을 떠올리니, 이상하게도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다.
“케, 헥…….”
사내가 숨이 넘어가려고 하자, 누군가 강신의 팔을 잡아 강제로 손을 풀게 만들었다.
“쿨럭! 쿨럭!”
바닥에 쓰러진 사내가 겨우 숨통이 트였는지, 괴로운 듯이 기침을 해댔다.
“왜 말리시는 겁니까?”
강신은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말린 사람을 바라봤다.
“그렇게 쉽게 보내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런 놈을 죽여서 자네가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으니까.”
강신을 방해한 건 척준신이었다.
이 상황에서 멀쩡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척준신도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몸의 상처는 둘째 치더라도 그가 목숨처럼 아끼던 번개를 두를 수 있는 검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요도의 날이 엉망이었다.
베는 것보다 몽둥이로 사용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이런 일은 우리에게 맡기게.”
척준신이 눈물을 글썽이며 기침하고 있는 사내의 배를 발로 차버렸다.
퍽!
“꾸엑!”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뱉으며 헛구역질하는 사내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추한 모습을 보였다.
척준신은 그대로 사내의 목덜미를 잡아끌며, 차분하게 증오가 담긴 말을 내뱉었다.
“편히 죽을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너 때문에 친구들을 잃은 이들이 널 반겨줄 생각이거든.”
살벌한 표정으로 척준신이 백색 정장의 사내를 끌고 가자, 강신은 참담한 마음으로 10층을 살폈다.
정말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피에 젖은 바닥과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보자, 그간 참아왔던 울분이 터졌다.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차디찬 바닥에 몸을 맡긴 요원들은 억울함에 눈도 감지 못했다.
강신의 마음은 꺾일 것처럼 흔들렸다.
“……릴리스.”
-왜~
강신의 부름에 릴리스가 약 올리듯이 대답했지만, 강신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고 해도…. 내가 고통받는 모습은 충분히 구경했잖아.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정신적으로 약해진 강신의 입에서 부탁과도 같은 애원이 흘러나왔다.
비록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하루를 계속 되돌리면서 자신이 지금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했다.
하지만 릴리스는 그런 강신의 바램을 비웃듯이 말했다.
-너의 이런 부탁을 내가 몇 번이나 받아봤을 것 같아? 나는 그때마다 항상 똑같이 대답해줬어. 싫다고 말이야.
릴리스의 거절에 강신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심적으로 몰려있던 것일까, 강신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 죽은 요원들은 정말로 많았다.
그래도 자신과 친분이 깊은 이들은 죽지 않았으니, 이쯤에서 멈춰도 되지 않을까하고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점점 좋지 않은 생각이 스멀스멀 강신을 좀먹었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복잡한 감정이 계속 강신을 힘들게 했다.
화가 나다가도 슬펐으며, 힘들면서 우울했다.
강신의 머릿속은 이내, 먹구름이 낀 것처럼 복잡해졌다.
‘그냥 다 포기할까.’
그때, 강신의 품속에 있던 작은 십자가가 은은하게 떨려왔다.
그러자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찼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졌다.
그리고 어째서 그런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혔던 건지, 알 수 있었다.
원인은 단 하나였다.
“정신 오염?”
악마에게 도움을 받는 건 원래 그런 것이다.
악마와 접촉하거나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흐응…. 아쉽네. 거의 다 끝난 것 같았는데…. 왜 갑자기 멀쩡해졌는지 모르겠지만, 뭐 그건 됐어. 어차피 넌 같은 선택을 하게 될 테니까.
정신이 맑아진 강신은 릴리스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래, 그러겠지….”
릴리스가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다면 이런 순간이 계속 반복될 게 분명했다.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내려면 회귀를 멈추면 되겠지만, 강신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강신은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그 안에 있는 볼트를 강하게 쥐었다.
강신은 보지 못했지만, 그 순간 품속에 있던 상아색 십자가가 성스러운 빛을 내뿜다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 * *
띠띠띠띠띠-
“네시스! ……어?”
요란하게 잠을 깨운 프로네시스에게 고함을 치려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에 강신은 순간 멍해졌다.
그 기억은 분명 오늘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자신이 잊어야 할 기억들을 가졌는지, 강신은 이해하지 못했다.
-후후…. 그 모습을 보니까, 드디어 기억을 유지했구나!
릴리스는 저번 회차와 다른 강신의 모습을 보고, 단번에 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는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그런 릴리스의 태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좋아하는 거지?’
릴리스가 한 행동들을 떠올리면 강신이 기억을 못하는 게 그녀에게는 더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 강신의 의문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드디어! 계약의 반전이 이루어졌구나!
릴리스가 그간 강신을 괴롭히면서 노렸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악마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지상으로 나오는데, 드물게 인간과 정식으로 계약을 이행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계약은 대부분 인간이 계약의 주체였다.
악마는 인간이 원하는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계약자와 이어지는 검은 선을 만든다.
그렇게 되면 들쑥날쑥한 악마의 시간은 계약이 완전히 이행되기 전까지 인간에게 맞춰졌다.
악마는 그렇게 자신이 준 힘으로 계약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구경하며 즐기다 끝내, 대가를 가져갔다.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인간의 말로가 항상 비참하게 끝나는 것, 또한 악마의 유흥거리였다.
하지만 릴리스가 강신과 맺은 계약은 달랐다.
원하는 것을 주고 끝내, 영혼이라는 대가를 챙겨가던 다른 계약들과 달리 릴리스는 강신이 시간을 돌릴 때마다, 일어났던 일들을 알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받는 것도 강신의 영혼이 아닌 순수하게 자신이 지상으로 잠깐 나올 수 있는 권리였다.
물론 강신에게 쥐어터진 끔찍한 고통이 뼛속에 남아 릴리스는 감사하다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다른 악마의 입장에서는 정말 터무니없는 불공정 계약이었다.
그 사실을 릴리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뼛속까지 새겨진 그 날의 고통을 잊지 못해 참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고통도 시간이 지나자 점차 옅어졌다.
그날 겪었던 굴욕은 뼛속까지 남아 있었지만, 강신의 시간에 종속된 게 억울해졌다.
그래서 릴리스가 노린 게 계약의 반전이었다.
계약의 반전.
이는 인간의 부탁을 들어주고 대가를 받지 않았을 때, 이루어지는 현상이었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 계약의 주체가 인간에게서 악마에게로 옮겨졌다.
계약의 반전 현상은 계약에서 오고 가는 게 클수록 쉽게 이루어졌고, 보통 인간의 영혼이 걸린 계약이라면 한 번에 계약의 반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둘이 맺은 계약에서 오가는 건 고작 말 몇 마디를 전하는 것이었고, 강신이 계속 하루를 돌려 릴리스에게 정보를 요구하도록 만들었다.
릴리스는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었던 강신이 고통 받는 모습을 구경하며 정신오염까지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고 쌓여, 드디어 계약의 반전이 일어났다.
계약의 주체가 릴리스가 됨으로서 강신의 시간 일부가 릴리스에게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강신은 하루를 돌렸을 때 더는 기억을 잃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강신의 시간에 묶여있던 릴리스는 자유롭게 되었다.
-정신 오염만 제대로 됐으면 더 좋았겠지만, 뭐 이 정도로 참아야지. 나는 이제 자유야!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워서 몸이 떨렸는데,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그 말을 끝으로 릴리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꺄아아악!!!!
그러나 릴리스의 바램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멀어지던 릴리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다시 귀 옆에서 들려왔다.
-어, 어째서? 계약의 반전은 분명 일어났을 텐데?
원래라면 계약의 반전으로 인해, 강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녀는 김만복이 강신에게 건네준 십자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김만복이 가볍게 건네준 상앗빛 십자가는 성인의 유골로 만들어진 십자가로 악에 대한 공격을 막아주는 물건으로 유명했다.
강신의 정신 오염을 막은 것도 이 십자가의 효능이었다.
그리고 하루를 돌릴 때, 강신과 릴리스가 맺은 계약에 간섭하게 되어 계약을 꼬아버린 것이었다.
-이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릴리스가 오히려 강신의 허락이 없으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릴리스를 보며 강신은 허탈한 목소리를 냈다.
“허…….”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겨우 666일을 채워서 반전을 이뤄냈는데!! 제발, 이제 날 풀어줘!
악마의 애원을 들은 강신의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고는 하나, 강신의 정신이 오염될 걸 알면서도 그 계획을 실행했다는 게 괘씸했다.
“닥쳐. 네가 지금까지 한 일을 생각하면 난 아직도 화가 나. 그러니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고려해보지.”
강신이 싸늘하게 말하자, 릴리스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꺼워진 계약의 선 덕분에 릴리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강신은 알지 못했지만, 릴리스는 자존심 때문에 애써 자신을 보며 떨리는 몸을 참아온 것이라는 걸 이번에서 알게 되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이제 기억을 가지고 하루를 돌아갈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강신의 상황에서는 더는 시간을 돌리기가 어려워졌다.
자력으로 움직이는 톱니바퀴가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정신 오염이었다.
현재 하루를 돌리고도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 릴리스와의 계약 덕분이었다.
즉, 기억을 가진 채로 다시 하루를 돌리다보면 정신 오염이 언제든 강신을 덮칠 수 있었다.
‘이미 한번 당해서 금방 오염될 수도 있어.’
김만복이 준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정신 오염으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생각이 강신을 삼켰을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 정도로 정신오염은 심각한 위험이었다.
‘만복이에게 다시 십자가를 달라고 해볼까.’
십자가가 있으면 시간을 돌려도 정신오염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강신은 바로 김만복에게 연락했지만, 그런 형편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쉽네…. 십자가가 가루가 되어버렸다니.’
모처럼 만든 보험을 더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을 무사히 끝낼 정보는 충분히 확보했고, 계획도 세워두었으니까.
강신은 간단히 채비를 갖추고 큐브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이제는 정말로 끝낼 시간이야.”
강신의 눈은 어느 날보다도 또렷했으며, 큐브를 나서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기만 했다.
오늘은 666일과 다른 하루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