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397
396화
바닥을 몇 번이나 굴렀을까,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강신의 깨끗했던 보호 장비는 어느샌가 흙과 먼지로 지저분해졌다.
그와 반대로 던져지는 것에 익숙해졌는지, 강신은 낙법으로 바닥을 굴러 주변에 있는 묘지 비석을 발로 차 튕기듯이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헉…. 헉….”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거친 호흡을 내뱉는 건 바닥을 구른 강신이 아니라 계속 강신을 던졌던 여성이었다.
거친 움직임 없이 그대로 던져지기만 하는 강신보다, 작은 체구로 힘의 흐름을 읽고 사람을 던지는 여성이 먼저 지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쯤에서 그만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강신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여성에게 말했다.
아쉽게도 지금으로서는 강신도, 여성도 서로를 제압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여성은 강신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강신은 그녀가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브 몬스터의 신도들은 자신이 섬기는 U.M.A에게 엄청나게 집착했으니, 아울맨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면 여성은 절대 혼자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도 굳이 말을 꺼낸 것은 여성이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튼튼한 사람이군요….”
그녀는 처음에 고풍스러웠던 말투를 썼던 것도 잊은 건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강신에게 말했다.
그동안 그녀는 강신을 던지기만 한 게 아니었다.
여전히 멀쩡한 강신을 확인한 그녀는 강신을 제압하기 위해 입고 있는 보호 장비를 벗기려고 했다.
하지만 강신이 입고 있는 보호 장비는 원피스형으로 제작되어있어 쉽게 벗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 대치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답답한 것은 강신과 여성뿐만이 아니었다.
-강책임, 언제까지 대기해야 하죠?
계속되는 지루한 대치 상황에 이순자가 강신을 재촉하자, 강신은 작은 목소리로 이순자에게 부탁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조금 더 지켜보면 광신도가 사용하는 재능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답답하겠지만 가장 답답한 건 강신이었다.
뭔가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다.
‘뭐였지.’
어째서 강신은 여성에게 단 한 번도 대응하지 못했을까, 여성의 유술이 뛰어나서?
‘뛰어나긴 하지만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뭔가 달랐다.
왜라고 묻는다면 강신도 모른다.
‘대응할 마음이 사라지는 듯한…….’
그리고 순간 강신의 뇌리에는 자신이 쓴 소설의 등장인물이 사용했던 어떤 재능이 떠올랐다.
“사상 변화.”
강신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여성이 몸을 움찔 떨며 크게 동요했다.
“……당신 도대체 누구죠?”
그녀의 반응을 보고 강신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쯧, 하필이면…….”
강신이 드물게 인상을 찌푸렸다.
사상 변화, 그 말대로 사람이 가진 사상을 변화시키는 재능이었다.
이는 오로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재능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모든 사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겠지.’
그게 가능했다면 강신은 이 현장에서 고민 없이 요원들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것이다.
모든 사상 변화가 가능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강신과 씨름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이곳에 있는 U.M.A가 안전하다고 사상을 변화시키면 그만이었으니까.
사상 변화의 재능을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매우 많았다.
그런 이들이 유명해지지 않은 이유는 단지 각자 다루는 사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었다.
사상 변화는 크게 신앙의 대상이나 정치의 성향을 바꾸는 것부터 작게는 선호하는 음식을 바꾸는 정도였다.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따라가는 것부터 새로운 체재를 만드는 혁명가들이 이에 속하지….’
이렇게 사상 변화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들을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사상이 재능으로 인해 변한 건지, 그냥 감화되어 변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사상 변화는 자신의 사상이 누군가의 개입으로 변했다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변화시켰다.
그래서 한 번으로는 그 사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지속해서 계속 능력을 사용해 주어야 했다.
원래라면 이곳에서 강신도 사상이 변화했다는 걸 알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광신도는 사상 변화의 재능을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극단적인 변화.
그래서 강신은 눈앞에 있는 광신도가 사상 변화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사상을 변화시키는 거지? 방어를 하지 못하도록?’
그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지금 강신이 여성의 공격을 대비하겠다는 마음 자체를 갖지 못했을 테니까.
‘사상 변화는 다루기 까다로운 힘이야.’
누군가의 사상 변화하는 힘은 특정 인물의 생각을 고치고, 지울 수 있는 그런 간편한 힘이 아니었다.
우선 사상 변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그 사상을 정말로 강하게 믿고 있어야 가능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해결할 방법이 존재했다.
‘거짓말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훈련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지.’
그리고 아무리 훈련해도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인물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
사상 변화는 어떤 한 사람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었다.
만약 재능을 사용했다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사상이 변하는 개념이었다.
물론 그 범위 내에 있는 자신 또한 그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첫 번째 조건과 두 번째 사족이 비슷해 보일 수는 있지만, 엄연히 달라.’
자신의 사상을 믿고 발동하는 것과 재능을 사용하면 사상이 변화하는 것.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 부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강신은 작은 목소리로 이순자에게 어떤 것을 부탁했다.
-정말 그러기만 하면 되나요?
“네.”
강신이 이순자와 대화하는 사이, 여성이 강신에게 이를 갈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그걸 안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을 거예요.”
그러면서 여성이 다시 한번 강신에게 접근했다.
산책을 가는 것처럼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강신은 대비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대비한 것과 다르게 허무할 정도로 던져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가 되자, 강신의 지시대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현장을 확인하고 있던 이순자가 통신을 보내왔다.
-강책임,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그녀는 강신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큭…. 뭐가 이상한가요?”
-아니, 뭐가 이상하냐니……. 왜 당하기만 하고 제대로 공격을 하지 않는 건데요?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요? 공격을 왜 해야 하죠?”
강신은 이순자가 한 말에 의문이 들었다.
이미 사상이 변화된 강신에게 그녀의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자신의 말에 의문을 품는 강신을 확인한 이순자는 그제야 강신이 내린 지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이래서 저보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관찰하라고 했군요.
“지금 중요한 것은 변화한 사상이 아니에요. 분명 저와 같은 조건인 저 여성이 어떻게 저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어떻게든 알아내 볼게요.
“그럼, 믿겠습니다.”
이미 사상이 변했으니, 아무리 자신에게 말해봐야 자신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강신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변한 사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어떻게 저 여성은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도대체 혼자서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강신이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여성은 그에게 쏘아붙이며 다시 달려와 강신을 집어 던졌다.
강신은 이순자가 편하게 관찰하도록 눈앞에 있는 광신도가 자신을 더 쉽게 던질 수 있게 일부러 몸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다시 똑같은 시간이 반복되고 나서야 이순자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냈어요. 알아냈다고요! 저 여성이 어째서 강책임과 다르게 공격을 할 수 있는지!
“공격?”
강신은 다시 한번 이순자가 말한 공격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표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저 여성, 자신이 공격하려는 그 찰나의 순간에 사상 변화를 바꾸는 것 같아요!
이순자가 어떻게 저렇게 확답을 할 수 있을까.
그건 여성의 움직임보다 강신의 움직임이 힌트가 되었다.
그녀가 강신을 던지기 위해 잡는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강신이 반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공격이라는 단어까지 잊을 정도로 급격하게 사상 변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공격의 연장선인 반격을 시도했다.
그렇다면 그 순간 강신도 공격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제가 던져지는 찰나라는 거죠?”
-네. 그런데, 정말 순식간이라….
분명 보긴 했지만, 이순자는 강신을 걱정했다.
자신이 말한 그 장면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자신도 집중하지 않았다면 놓쳤을지도 모를 움직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 다르게 강신은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전까지 당하고만 있던 강신의 눈빛이 변했다.
“설야야.”
강신이 자신에게만 보이는 겨울 나비를 불렀다.
그리고….
“스으읍….”
겨울 나비가 뿌려주는 날개 가루를 흡입했다.
그리고 호기롭게 말했던 것과 반대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성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으응? 이게 무슨….”
이제까지 당하고만 있던 강신이 갑자기 도망치자, 베일을 쓴 여성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강신을 뒤쫓았지만, 현장 요원 중에서도 체력으로 강신을 따라갈 사람이 많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녀가 강신을 잡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그렇게 묘지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지만, 그것도 길지는 않았다.
“헉…. 헉….”
이미 체력적으로 지쳐있던 여성이 더는 강신을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헉….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가요!”
베일을 쓴 여성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꽁무니 빠지게 도망다니는 강신을 좋게 볼 리 없었다.
“싸울 마음이 없으면 항복하세요!”
그녀가 화를 내자 강신이 도망치는 걸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화를 내서가 아니라 시간이 됐기에 멈춘 것이었다.
멈춰 선 강신의 입에서 하얀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스으…….”
강신이 몸을 돌려 여성의 유술에 대비했다.
화를 내던 여성은 강신이 멈춰서자,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와 강신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강신은 위기 순간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 현상을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스으으으….”
길게 심호흡하자, 순간 주변이 느려진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뭘 해야하지?’
느려진 세상 속으로 들어온 건 좋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강신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막아야 하나? 뭘?’
하지만 그 망설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여성이 강신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안개에 가려졌던 생각이 번뜩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흐읍!”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다.
여성은 몇 번이고 강신을 던져봤으니, 쉽게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강신이 손을 건틀릿으로 쳐내고 오른발로 그대로 그녀의 종아리를 차서 균형을 무너트렸다.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장례식 정복의 옷깃을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다 꽂아버렸다.
파바바박!
쾅!
“꺄악!”
너무나 빠른 속도였기에 여성은 미처 강신에게 대응하지 못했다.
바닥에 처박힌 여성이 무방비한 상태였지만, 강신은 추가 공격을 이어가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여성이 바닥에 꽂히면서 사상 변화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씨익.
강신은 방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디어 잡았다.”
어두운 밤, 붉은 피부를 가지고 하얀 수증기를 내뱉으며 길게 호선을 그리는 강신의 미소.
“히익…….”
여성에게 공포를 심어주기에는 충분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