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434
433화
그간 고생했다.
격려를 위해 쓸 수 있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그 한마디로 이채연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단번에 깨달았다.
방금까지 뜨겁게 타올랐던 거대한 분노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다 못해 얼어버려 제대로 입을 열 수도 없었다.
“어, 어….”
이곳으로 불려왔을 때, 기껏 해봐야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보직 해임이라니, 도저히 자신 앞에 닥친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알고 나가보게.”
항명은 듣지 않겠다는 경찰청장의 단호한 말에 이채연이 뒤늦게 정신 차리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자, 잠시만요. 청장님. 그럼 저는 어디로….”
“쯧, 본청 말고 지방 쪽으로 발령지를 알아보고 있으니까, 그전까지는 잠시 집에서 자숙하는 기간을 가지도록 하게.”
그 순간 그녀는 경찰청장의 말대로 이곳에서 나가면 더는 이 사태를 뒤집을 방법이 없다는 걸 직감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해결해야 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청장님,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간절하게 바라는 그녀의 모습에 경찰청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이채연이라는 패를 이렇게 쉽게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를 따로 아낀다거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재능 범죄를 수사하는 수사관은 그 수가 적으며, 무엇보다 제대로 된 수사관 하나를 키우기까지가 오랜 시간과 노하우, 그리고 자원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경찰청장은 어지간해서는 저런 인재를 보직 해임까지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후, 이채연 경감, 도대체 누굴 건드렸기에 국정원에서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게 만드는 건가.”
“네? 국정원이요? 거기가 왜….”
이제까지 기업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던 이채연은 뜬금없이 국정원이 튀어나오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쪽에서 자네를 딱 집어서 기업과 정부를 이간질해서 둘의 관계를 무너트리려는 해외 공작원이 아니냐고 이야기하더군.”
당연히 경찰청장은 그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국정원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지금 대기업이 우리와 협약을 끊는 줄 알았네…. 그런데 말일세. 성신과 HG 그룹이 분야를 막론하고 진행하고 있는 모든 정부의 국책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고 하더군.”
“……네?”
해봐야 경찰 협업만 끊어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태는 그 이상으로 커지고 있었으며 공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번 사태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나도 자네가 공작원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청장님…. 전 공작원이 아닙니다.”
“알고 있네, 알고 있으니까, 자네를 공작원이라고 체포하지 않고 보직 해임으로 끝낸 거야. 이틀 뒤에 국정원에서 직접 나와서 확인한다고 하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게.”
이채연은 억울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범죄자를 잡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범죄자의 칼에 찔려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지금 나올 것만 같았다.
살짝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경찰청장이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채연 경감, 방금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말했지?”
이채연은 입을 열면 울음이 터질까 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세, 국정원에서 너에게 혐의를 씌운 것은 기업들이 관계를 끊으며 자네의 이름을 들먹이고 있는 것 때문이니까. 그 관계를 회복할 수만 있다면 지금 사태는 면책 처리가 되겠지.”
현재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제, 제가 성신에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서라도 사죄하고 관계를 이전으로 돌리겠습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능하겠나?”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좋아, 알겠네. 미리 말하지만, 기간은 국정원이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일세.”
“네….”
안돼도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나도 그러면 자네의 보직 해임 건은 하루 정도 미루어 놓도록 하겠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이채연은 경찰청장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청장실을 나와 수원에 있는 성신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한울과 다시 만나기 위해 문자를 남겼다.
허나 이한울은 강신의 지시로 그녀의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문자를 읽었다는 표시가 뜨는데도 이한울이 답장하지 않자, 그녀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문자를 보내며 중간중간 전화 통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동안 동기나, 선배들에게 현재 사태에 대해 추궁하는 연락이 끊어지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정신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고 문자 내용도 이상해졌다.
그리고 후에 자신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는 아차 싶었는지, 늦은 새벽에 부드러운 문자를 남겼다.
-자니?
그 문자는 후에 그녀의 흑역사가 될 문자였다.
성신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그녀는 오전 10시 무렵, 이한울의 답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시간 뒤에 영통 구청에 있는 XX 카페로 나오세요.
시간과 장소만 적혀 있었지만, 이채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어찌 됐든 그녀를 만나주겠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찰싹 소리 나게 때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 이채연, 정신 차려. 미래가 걸린 일이야.”
사죄하기로 했으니, 성신의 직원보다 늦을 수는 없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일렀지만, 그녀는 단단히 각오하고 미리 약속했던 장소로 향했다.
* * *
각오를 다진 건 이채연뿐만이 아니었다.
이채연이 보낸 심상치 않은 문자를 보고 만나기로 한 강신은 이한울과 백소은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 역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강신과 일행들이 약속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카페 안에 있었다.
창가에 앉아있는 그녀를 먼저 발견한 강신이 중얼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시달렸나 보네.”
강신이 본 그녀의 몰골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어떤 사명감으로 가득해 보였다.
뒤늦게 강신 일행을 발견하고, 놀란 듯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신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백소은의 팔을 잡아끌어 자신의 뒤쪽으로 이동시켰다.
“혹시 모르니까, 아저씨 뒤에서 있어.”
“네!”
백소은이 활기차게 대답하자, 강신은 앞장서서 카페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서일까, 카페 내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행히도 가장 안쪽에 있는 외부와 격리된 공간은 자리가 비어있었다.
강신이 음료 세 잔을 주문하고 그쪽으로 이동하자, 창가에 앉아있던 이채연이 일어나 강신을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외부와 격리된 방에서 강신 일행과 이채연은 다시 마주하게 됐다.
먼저 강신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희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고요?”
“네…….”
당당했던 저번과 다르게 그녀는 상당히 기가 죽어있었다.
“그럼 무슨 말인지, 한번 들어나 보죠.”
“저번 자리에서는 제가 크게 실례를 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진심으로 사죄드리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현재 상황이 창피한 것일까, 고개를 숙인 이채연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었다.
강신은 슬그머니, 이한울을 바라봤다.
그는 자존심 쎈 그녀가 이렇게 정중하게 사과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 같았다.
“한울 씨.”
강신이 이한울을 부르자, 그가 화들짝 놀랐다.
“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은 강신이었지만, 그녀에게 직접 피해를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이한울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옳았다.
이한울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음…. 이번 일은 그냥 여기까지 하고 덮으면 안 될까요?”
“당사자가 그러고 싶다면야, 이채연 경감님의 사죄는 받도록 하죠.”
강신은 이한울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채연이 고개를 들었다.
붉어졌던 얼굴이 원래 색으로 돌아오는 건 물론이고, 잔뜩 긴장한 표정이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그럼, 협업은 어떻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사죄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기업과 정부의 관계를 이전으로 돌리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했다.
강신과 일행들이 사죄를 받았으니, 그녀는 다시 이전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신의 대답은 그녀의 마음을 철렁이게 했다.
“사죄와 협업은 별개입니다.”
그녀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저희는 이제 당신을 믿지 못하는데요.”
“아….”
그녀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울상을 지었다.
“어떻게 안 될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스로가 뻔뻔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더는 물러설 곳은 없었다.
강신이 이채연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이쯤 하면…. 괜찮으려나.’
강신은 이번 사태에 자신이 평소답지 않게 손을 썼다는 걸 인정했다.
고작 같은 회사 직원이 욕먹고 무시한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니까.
사실 강신이 이렇게까지 한 건, 이한울이 안쓰러웠던 것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수사의 주도권 때문이었다.
경찰과 협업은 어디에서나 국가 봉사에 대한 개념으로 지원해 주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협업을 진행하는 기업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수사에 참여시켜주지 않는 일도 다반사였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강신도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채연은 수사에 참여시켜주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성신에서 나온 사람에게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확인한 강신은 지금까지의 협업 관계를 무너트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신뢰가 없는데, 어떻게 서로 믿고 공조해서 수사를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쪽이 우리 의견을 전적으로 수렴해 준다면 또 모르지만….”
강신은 그녀를 궁지에 몰면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숨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도 강신이 돌려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강신이 제시한 숨구멍뿐이었다.
“하, 할게요!, 그쪽이 원하는 모든 내용을 수렴할게요!”
그녀가 다급하게 말하자, 그때야 강신은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이제 이번 수사의 주도권은 완벽하게 성신이 가지게 됐으니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협업은 계속하는 거로 이야기해 보죠.”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전에, 그동안 저희에게 누락하고 넘겨주지 않았던 정보를 받아보고 싶습니다만.”
방금까지 사태를 해결했다는 안도감을 표하던 이채연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자신이 그간 정보를 빠트렸다는 걸 알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자신이 해왔던 일들이 지금 와서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공에 눈이 멀어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았던 걸 떠올렸다.
이전에 함께 했던 것들을 협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선배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협업이라 해놓고 제대로 협업하지 않은 건 나도 똑같았구나.’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욕했다.
남들이 봤을 때는 내로남불의 끝을 달리고 있었을 테니, 자신을 욕한 게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선배도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제멋대로인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돌아가면 사과해야겠다.’
그녀의 내면은 조금이지만 성숙해졌다.
그녀가 잠시 말없이 고민에 빠지자, 강신이 다시 한번 이채연을 불렀다.
“이채연 경감님?”
“아, 죄송합니다. 네, 바로 보내드릴게요.”
꽤 온화한 모습으로 대답하는 이채연을 보며 강신은 그녀의 분위기가 살짝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보내주신 자료를 보고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 * *
이채연과 갈등으로 인해 시간이 조금 지체됐지만, 수사의 주도권과 바라던 정보를 받을 수 있었으니 큰 손해는 아니었다.
강신은 개인 큐브로 돌아와 이채연이 누락했던 정보를 확인했다.
빠졌던 정보를 확인한 강신은 컴퓨터 앞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러니, 아직 못 잡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