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480
479화
종말을 부르는 새는 강신이 사용하는 프로네시스를 정지시킬 방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혹시 많은 피해자가 나올까 봐, 신도들에게 보호 장비는 제공했으나 위험이 될만한 무기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신도와 사제 대부분을 전방으로 배치하고 홀로 이곳에 남아 강신을 기다렸다.
“쿨럭, 쿨럭, 내가 죽으면 예정되었던 종말도 사라질 테고, 쿨럭. 종말론자들도 자연히 와해될 겁니다. 그리고 저 기계 장치도 처분할 수 있을 테니, 쿨럭, 일거양득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당장 닥친 종말을 막고 이후 찾아올 종말을 미연에 방지하기에는 지금이 딱 적기였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요.”
“쿨럭, 지금 상황에서 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강책임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살해당해봐야 본 모습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본 모습에서는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고, 고통만 느껴질 뿐이었다.
따라서 확실히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힘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창조자인 초월체의 의지로 스스로 자해할 수 없는 몸이니,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누군가를 구해야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종말을 부르는 새는 한국에 막 도착했을 무렵 자신의 목숨을 끊어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직접 만들기로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고아였던 소년을 거두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유술을 알려주며 급하지 않게 하나씩 계단을 밟아가며 성장시켰다.
그렇다고 무작정 살인 기계로 키운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풍족하게 음식을 준비해 주었으며, 휴식이 필요할 때는 종종 손을 잡고 유원지도 갔다 왔다.
그렇게 고아였던 소년은 성장했고, 그의 유술은 종말을 부르는 새가 원하는 수준에 올라왔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종말을 부르는 새는 자신이 직접 길렀던 소년이었던 고아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
‘워낙 정이 많은 아이였으니까.’
그렇다고 그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죽일 수 없다면 더는 함께할 이유는 없었다.
종말을 부르는 새는 그와 함께 살았던 터전에서 조용히 떠났다.
종말을 떠나는 새가 떠나고 혼자남은 그는 자신을 길러준 존재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손으로 부모와 같은 이를 죽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종말을 부르는 새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줄 제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비밀 종교에 입신했다.
처음에는 종말을 부르는 새의 유지가 깃든 종말론자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의 목적은 종말을 부르는 새를 죽이는 것이었기에 뜻이 맞지 않았다.
그나마 교세가 크고 많은 제자를 들일 수 있는 교단인 크툴루를 믿는 이들에게 합류해 제자를 길러갔다.
그리고 그렇게 제자를 기른 그가 바로 강신이 만났던 최태원이었다.
최태원은 비밀 종교로부터 쓸 만한 무골을 가진 이들을 받아 제자로 키웠지만, 현재까지 종말을 부르는 새를 죽일 수 있는 제자는 키울 수가 없었다.
반면, 최태원을 떠났던 종말을 부르는 새는 그대로 성신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척가에서 척준신을 발견했다.
그의 재능은 진짜였다.
그라면 언젠가 자신을 죽여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척준신이 성신으로 들어올 수 있게 손을 썼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강신이 성신에 들어왔다.
척준신이 자신을 죽여줄 무기로써 완성되어간다는 기대하던 그때, 강신이 최태원과 마주쳤다.
강신은 최태원과 마주친 것만으로 유술의 기본을 습득해 왔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놀랐다.
만약 척준신이 실패한다면 강신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지니즈 랜드에서 척준신이 사라졌다.
척준신이 사라졌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자신을 죽일 무기가 사라져서 느낀 슬픔이 아니었다.
그간 자신도 모르게 정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래라면 척준신에게 맡길 역할을 강신에게 맡겨야 했다.
이번에도 실패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독하게 강신이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제했다.
“쿨럭, 아…. 죄책감은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원하는 거였으니까요. 쿨럭, 자, 어깨를 펴십시오. 당신은 인류의 종말을 막아낸 영웅입니다. 쿨럭.”
그의 또렷했던 눈빛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현기가 넘쳐났던 그의 말투는 어느새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두서가 없어졌다.
“당신이 쓴 글은 재밌었습니다.”
뜬금없이 강신이 쓴 소설을 칭찬하기도 했고,
“강책임이 첫 현장에서 포획한 겨울 나비 말입니다만, 사실 제가 몇 마리 빼돌려서 몰래 풀어줬습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와서는 별것도 아닌 일을 사과하기도 했으며,
“그리고 사실 강책임이 데리고 다니는 설야도 보입니다.”
강신이 예상하고 있던 일을 고백하기도 했다.
강신은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묵묵하게 눈물을 훔치며 임상무의 옆에서 조용히 그가 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계속 들어주었다.
“그리고…. 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너무 졸리군요….”
어느 순간부터 기침도 하지 않고 점점 목소리도 작아졌다.
그리고 이내,
“아아…. 피테아스. 저를 마중 나온 겁니까? 제가 당신들이 염원했던 종말을 막아냈습니다…. 칭찬해 주세요….”
종말을 부르는 새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났던 인간인 탐험가의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모든 것을 이룬 이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임상무님….”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든 듯이 눈을 감은 그.
강신이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끝내 대꾸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내리던 붉은 우박과 불꽃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리고 마치 강신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차가운 가을비가 그 일대에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끄윽…. 끄읍…. 흐윽.”
강신이 소리 죽여 우는 소리는 그 빗소리에 씻겨내려 다른 이들은 들을 수 없었다.
비를 맞으며 숨죽여 울던 강신은 육체적 부상과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기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점차 의식이 가라앉는다는 것을 느끼는 찰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급하게 달려오는 신하린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보다 엉망이 몰골의 그녀는 당황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신은 오른손으로 아직 처리하지 못한 기계 장치를 가리키며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그날, 비밀 연구소에서 다른 이들을 알뜰살뜰 챙기며 연구소를 관리했던 임상무는 자신이 좋아했던 인간을 위해 종말을 막았다.
자신이 초월체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숭고한 희생을 한 것이다.
* * *
정신을 잃은 강신이 깨어난 것은 그날로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어느 오후였다.
“으…. 여기는….?”
눈을 뜬 강신에게 보인 것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천장이었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성신 병원의 VIP 병실이었다.
그런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어…. 어…. 신아! 억지로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누워있으렴! 당신! 빨리 너스콜 눌러요!”
“아…. 알았어!”
걱정이 가득 담긴 익숙한 목소리, 바로 강신의 부모님이었다.
강신은 임상무를 잃은 슬픔을 곱씹을 시간도 없이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두 분이 왜 여기 계시는 거지?’
강신이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너스콜을 받은 간호사가 의사를 데리고 병실에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의사는 곧장 강신의 상태를 살폈다.
“환자분, 혹시 자신의 이름 기억납니까?”
“강신이요.”
“여기는 어디인지 아시겠습니까?”
“네, 병원인 것 같네요.”
“맞습니다. 그럼 이게 몇 개로 보이십니까?”
“두 개요.”
의사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마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력, 청력, 인지 능력은 괜찮아 보이는군요. 혹시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부분은 없으십니까?”
그 말을 들은 강신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봤다.
정신을 잃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곳이 없어 후에 닥칠 고통이 걱정됐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그저 조금 뻐근해서 불편하기만 할 뿐 어디가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강신은 그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신단수의 열매 효과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부상이 낫지 않아 고통스러운 것보다 고통이 없는 게 훨씬 나았다.
“조금 힘이 덜 들어가는 것 빼고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강신이 대답하자, 의사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신의 부모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아직 회복이 덜 되셨을 수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보다 환자분 혹시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기억은 하십니까?”
의사의 말을 들은 강신은 곰곰이 생각했다.
차마 이곳에서 옛 동료와 혈투를 벌였다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강신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의 부모님이 걱정스레 강신을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큰 사고 이후 사고 당시 기억을 잃는 단기 기억 상실은 꽤 흔한 일입니다.”
의사는 강신과 보호자를 진정시키려는 듯이 말하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환자분은 강원도에서 진행하는 학술회에 참가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빗길에 버스가 미끄러져 사고가 났습니다.”
회사와 의사는 이미 말을 맞추어 놨던 것인지 있지도 않은 사고를 꺼내 들었다.
“교통사고라고요?”
강신이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리자, 마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억지로 기억해낼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지금은 안정을 취하시는 게 좋겠군요.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하는 것으로 하죠.”
의사는 강신에게 절대 안정을 강조하고는 간호사와 함께 병실을 떠났다.
“신아! 정말 괜찮니?”
“아니, 당신 방금 의사가 안정할 수 있게 하랬잖아.”
“하지만 아들이 아픈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크흠, 그러지 말고 우리도 내일 옵시다. 신아, 오늘은 푹 쉬어라.”
“네.”
그렇게 강신의 아버지가 강신의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집으로 데려갔다.
강신은 부모님이 떠나기 전 그대로 누워서 잠에 빠진척하다가 그들이 떠나고 난 이후에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홀로 남은 병실에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린아, 혹시 여기 있니?”
확실하지 않았지만, 강신은 왠지 이곳에 신하린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네, 있어요.”
다행히 신하린은 강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늘진 구석에서 불쑥 솟아난 신하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어?”
“일주일이요.”
일주일이나 지났다는 말에 강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침을 삼키고는 듣기 싫지만, 꼭 들어야 할 이야기를 물었다.
“종말을 부르는 새는….”
“임상무님이라면 돌아가셨어요.”
일주일 동안 성신에서도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성신은 강신이 죽인 U.M.A가 임상무라는 것을 알아낸 것 같았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어봤지만, 그 희망은 덧없었다.
“그래…. 그렇구나….”
따로 말하진 않았지만, 다행히도 프로네시스 덕분에 강신의 바디캠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회사는 강신과 임상무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강신은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왼손으로 눈가와 이마를 가렸다.
신하린은 그런 그가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강신은 그렇게 홀로 병실에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