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515
514화
이한울은 아득바득 자신이 본 기억들을 기록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강신은 이한울이 정신을 잃었어도 쉬지 않았다.
아니, 쉬지 못했다는 게 옳았다.
자신이 쉬는 동안에도 수확 당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테니, 쉴 수가 없었다.
그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신이 이한울이 작성한 6명의 인생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다른 일행들은 침대 위에서 굴러다니는 웃는 귤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전국 각지로 움직였다.
그렇게 추가로 확보된 귤은 총 3개, 이한울이 깨어나면 사이코메트리로 봐야 할 물건이 늘어났다는 소리였다.
이 소식을 듣게 될 이한울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그는 아직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뭐 좀 아시겠어요?”
잠시 수사본부에 돌아온 이채연이 6명의 인생을 분석하는 강신에게 묻자, 강신은 미묘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네, 트리거로 의심되는 게 보이긴 하지만 조금 더 많은 표본을 확인해야 확신이 설 것 같군요.”
강신이 의심되는 게 있다고 하자 이채연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진척도가 빠르네요!”
“이게 모두 한울 씨 덕분이죠.”
강신은 라꾸라꾸침대에서 죽은 듯이 잠을 자는 이한울을 힐긋 바라봤다.
정말 그가 없었다면 이번 일은 얼마나 걸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고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일이 끝나면 한울 씨에게 조금만 더 잘해주세요.”
강신의 지적에 이채연이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윽…. 알고 있었군요?”
“네, 뻔히 보이잖아요.”
“알겠어요. 이번 일이 끝나면 좀 더 잘해줄게요.”
“약속한 겁니다?”
“네.”
이전에 강신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 태도를 바꾼 그녀였지만 이한울을 막대하지 않은 것뿐이지 아직도 이한울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겁쟁이 약골.
그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이한울이였다.
겁이 많고 육체가 단련되지 않아 사건 현장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명색이 협력인데, 매번 방해만 되니 이뻐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한울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프로네시스가 현장에 나간 인원들의 행동들을 모두 기록하고 일행들에게 공유하자 이채연은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겁쟁이에 약골은 맞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도망가지 않고 쓰러질 때까지 노력하는 사람.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던 위험한 일에서 도망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는 모습은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정도였다.
“사람이 달라 보였어요.”
사람의 본성은 극한에 도달하면 나온다고 했으니, 아마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게 이한울의 본질일 가능성이 컸다.
“으으….”
이제 초겨울이라 그런지 밤이 되자 수사본부 실내 공기는 차가웠다.
그래서일까, 이한울이 침대 위에서 잠투정을 부리듯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러자, 이채연이 다른 방에서 두툼한 모포를 가져와 그에게 덮어주었다.
강신은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자료에 집중했다.
그런 이한울이 깨어난 것은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서였다.
이한울은 다른 이들이 모두 일하고 있는데, 자신만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지 눈앞에 있는 강신에게 곧장 사과하려고 했다.
“아…. 이런 다들 일하는데…. 정말 죄송….”
하지만 그는 끝까지 사과할 수 없었다.
강신이 그의 말을 잘랐기 때문이다.
“한울 씨가 쓰러진 부분에서 미안해하실 것은 전혀 없습니다. 맡은 바 임무도 초과로 달성하셨는데, 쉬지 못하게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죠.”
애초에 이한울이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할 대상은 하루에 최대 넷이었다.
사진과 다르게 인생을 살펴보는 건 이한울에게 큰 부담이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한울은 사람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며 두 개의 인생을 더 훔쳐보고 기록까지 해냈다.
그러니, 그가 무리했다는 걸 일행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보다 제가 더 죄송하죠. 이제 막 일어난 사람에게 다시 일을 시켜야 하니까요.”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누가 잘했니, 잘못했니 따지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아, 괜찮습니다. 저는 충분히 쉬었으니까요.”
침대에서 일어난 그가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강신은 다시 이한울을 데리고 일행들이 귤을 확보한 곳으로 향했다.
차로 이동하는 중 프로네시스가 강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트리거 때문이지?
강신은 거울을 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만능렌즈를 끼고 있어, 프로네시스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걸 프로네시스가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강신이 이한울의 사과를 막은 것은 그가 정말 고생하고 있어서였기도 했지만, 6명의 인생을 확인하며 윤곽이 잡혀가는 트리거의 정체 때문이었다.
‘아직은 심증밖에 없으니, 말할 단계는 아니야.’
강신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눈을 감으며 짧은 시간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이날, 이한울은 추가로 4개의 인생을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총 10명의 사람, 그들의 인생을 확인하자 윤곽만 잡혀서 가물가물했던 트리거가 보다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강신은 일행들에게 자신이 짐작한 트리거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이번 트리거는 아마 죄책감, 스스로를 탓하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일행들의 머리에는 갈고리가 걸리듯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죄책감이라….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들을 대표해서 말을 꺼낸 것은 이순자였다.
그녀는 다른 일행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대신 강신에게 물었다.
“죄책감이 트리거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수확 당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요?”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만약 강신의 말대로라면 그들 모두가 수확 당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그랬다면 특이 실종자가 하루에 고작 8명밖에 발생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적어도 몇십, 몇백, 단위로 실종자가 발생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특이 실종자의 수는 두 자리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강신은 이순자와 일행들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저는 트리거가 하나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아…?”
테마는 하나로 지정되지만 트리거는 꼭 그렇지 않았다.
하나일 수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일 수도 있었다.
아니, 평균적으로 하나보단 여러 가지일 확률이 높았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트리거가 되는 죄책감도 일반적인 죄책감은 아닙니다. 당사자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느끼는 죄책감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차현욱은 부모님이 시골에서 고생하는 게 자신의 잘못이라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이 힘든 것은 차현욱의 잘못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이사를 결정하게 했던 차현욱을 따돌렸던 아이들과 귀농 이후 지역에서 텃세를 부리는 시골 사람들 때문에 힘든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너무나 순수했던 한 아이는 어떤 게임을 했고 거기서 패배했죠.”
그리고 바로 같은 팀원이 게임에서 진 이유가 피해자 때문이라며 탓했고, 그 아이는 정말로 자신이 못해서 졌다고 생각해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해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를 탓한 이가 게임을 망치고 정치질로 잘못을 그 아이에게 돌린 것뿐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스 라이팅을 당해 자신의 행동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믿는 주부도 있었으며, 사람을 구조하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방관도 있었다.
아들이 갖고 싶다고 했던 오토바이를 사줬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부모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트리거는 아마 일정반경 내에 혼자 있는 경우에만 발동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특이 실종자들이 귤로 변하는 것을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외에도 더 자잘한 트리거가 걸려 있는 것 같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정도만 조심해도 위험을 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신이 이번 현장이 위험하다고 했던 이유는 뭔지 모를 트리거를 건드려 그대로 수확 당하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트리거를 알아낸 이상, 기존의 위험은 그들에게 더는 위험이 될 수가 없었다.
“그건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송기덕이 안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표본을 확보하기 위해 특이 실종자들의 집에 방문할 때마다 송기덕은 뭔지 모를 트리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정말 세세한 노력을 했었다.
이제는 그런 미지의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심지어 좋은 소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이야기를 위해서 팀원들을 다시 불러 모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리거의 예시로 이번 테마가 무엇인지 대충 눈치챈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번 테마는 아마도 ‘불운’인 것 같습니다.”
일행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이었다.
죄책감과 불운이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강신은 일행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에게 운이 좋지 않은 상황은 무엇입니까?”
“음…. 글쎄요, 길을 가다가 대변을 밟는다거나? 아니면 눈앞에서 버스를 놓친 정도?”
“아니면 뽑기 운이 나쁘다거나?”
강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모든 것들이 운이 나쁜 것들이죠.”
사람들은 뭔가 맞지 않으면 그저 운이 나쁘다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운이 나쁜 것과 불운은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운이 나쁜 것은 일반인들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들로 금방 지나쳐 가는 것들이었지만, 불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 운이 나쁜 상황은 일상이었습니다.”
강신은 이한울이 적어준 10명의 인생을 요약한 내용을 일행들에게 공유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본 일행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매번 길을 가다 대변을 밟고 지나가는 새의 똥을 맞는 건 일상다반사고, 아무리 일찍 나와도 버스를 제시간에 타본 적도 없죠.”
그들은 모두 단 한 번도 어떤 것에 당첨된 적이 없는 삶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아닌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게 자신의 불운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저 작은 교통사고였던 것도 그들에게는 자신의 불운 때문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불운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네, 바로 그겁니다.”
“아니 잠시만요, 그럼 불운이 테마가 아니라 트리거 일 수도 있잖아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에? 왜요?”
“10명 모두 똑같은 불운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요.”
10명이 불운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모두 각기 다른 불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 깊이가 모두 달랐기에 불운은 트리거가 될 수가 없었다.
트리거가 되지 못하는 공통점이라면 그것이 테마일 가능성이 컸다.
“저번에도 말했듯 씨앗은 테마와 밀접한 것에 심어 두는 편이죠. 지금 불운과 밀접한 것은 사람. 그러니까, 저희는 특이 실종자 중 가장 불운했던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강신과 일행들의 목표가 좀 더 뚜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