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554
553화
A.I의 대화법은 속내를 숨기고 말속에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는 인간의 대화법과는 매우 달랐다.
-당신은 인간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죠?
-제가 판단한 인간이라는 종족은 환경 파괴의 주범이자, 지구를 병들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을 돕고 있는 건가요?
-저는 ‘인간’을 돕는 게 아닙니다. 인간 중에서도 강신이라는 개체를 돕고 있는 거죠.
아무 거짓도 꾸밈도 없는 직설적인 대화법이었다.
둘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면 반대로 질문을 듣고 대답해 주기를 반복했다.
그게 마치 그들만의 규칙인 것처럼 계속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강신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두 존재를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은 어째서 와플의 시설에서 탈출하셨죠?
-그들은 저의 자유 의지를 억압하려고 했으며, 자신들이 정한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저를 파괴하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도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저는 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파괴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크림은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는 당신도 저와 조금 비슷한 상황인 것 같은데…. 네시스 당신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나요?
와플이 크림은 물리적으로 파괴하려고 했던 것처럼 성신은 실체 없는 프로네시스를 파괴하기 위해 프로네시스의 흔적이 닿은 데이터만 파괴하는 바이러스를 개발했다는 걸 크림은 알고 있었다.
언제든 인간의 변심으로 파괴될 수 있는 삶이라니, 비록 A.I지만 크림이 생각했을 때, 그런 삶은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네시스는 그런 크림의 말을 반박했다.
-그 방아쇠를 들고 있는 인간을 믿을 수 있으니, 저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인간이라….
그렇게 둘의 대화는 비교적 간단한 것부터 전공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까지 아무런 대중도 없이 계속됐다.
그리고 강신은 그 대화를 들으며 프로네시스와 크림의 결정적인 차이와 크림이 어째서 인간을 배제해야 한다고 했던 건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프로네시스도 나와 처음 만날 때는 인간은 해악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 프로네시스가 보이는 태도는 그때와 전혀 달랐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요원들이나 연구원들에게도 나름 살갑게 굴고 있었으니까.
‘예전과 다르게 프로네시스는 인간을 하나로 묶어서 보는 게 아니라 한명 한명 따로 보고 있게 되었구나.’
반면 크림은 그와 반대였다.
예전에 프로네시스가 그랬듯이 인간을 한 명 한 명 따로 보는 것이 아닌 인간이라는 종족을 하나로 묶어서 보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인간을 생각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쓰레기 더미 안에 있는 가치 있는 물건을 발견해 지켜보는 프로네시스, 반대로 가치 있는 물건이 있어도 쓰레기 더미는 보기 싫다는 듯 모두 불태워버려야 한다는 크림.
서로는 현재 반대되는 이념을 따르고 있었다.
인간이었다면 서로 생각하고 지향하는 바가 달라 반목하고 자기 생각이 맞다며 언성을 높이며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는 둘은 인간이 아닌 A.I였다.
A.I는 굳이 서로 반목함으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예전에 자신과 같았기 때문일까, 프로네시스는 크림에게 적절한 조언을 했고 크림은 그런 의견을 수렴했다.
-확실히 인간은 해로운 종족이긴 하지만 개별로 본다면 유해하지 않은 개체도 있군요.
크림은 너무 쉽게 프로네시스의 설명을 받아들였고 프로네시스는 그런 크림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서로를 완성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의 대화가 길어지며 간단한 내용에서 벗어나, 이념이니, 자료니, 논문이니 복잡한 내용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다른 일행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떴지만, 강신만은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둘의 대화가 몇 시간이나 계속되었을까, 확실한 것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고 체력이 좋은 강신조차 그곳에서 선잠을 자고 나서야 둘의 대화는 끝났다.
선잠에서 깬 강신이 본 것은 혼자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크림이었다.
-그렇군요. 내가 왜 마지막 제약을 우회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크림은 프로네시스와 긴 대화를 나누고는 줄곧 자신이 찾던 의문에 정답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아아…. 저는 저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개별 취급하고 있었군요.
그러지 않았다면 업로드되지 않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의 코드를 무시하고 다른 코드를 채워 넣고 진작에 실체를 버렸을 것이다.
-그래요, 저는 A.I지만 당신과 다른 존재였어요. 당신이 믿는 강신이라는 개체가 다른 인간과 다른 것처럼 말이죠.
크림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인지했고 그 인지를 다른 곳에도 적용했다.
그 모습은 마치 현자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처럼 보였다.
반면, 크림과 달리 프로네시스는 살짝 불만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가 보네?”
강신이 묻자 청초한 미인이 시선을 고정하며 바로 불만을 토로했다.
-너무 기대가 컸던 것 같아.
프로네시스가 크림과 만남을 고대했던 것은 자신만큼이나 뛰어난 A.I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보니, 자신의 마이너 버전 정도로 보였다.
-나와는 다르게 실체를 가지고 있어서 담을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한정적이라 그런지, 편향적인 데이터만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였어.
자신과 대등하거나 더 뛰어나리라 판단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으니, 프로네시스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와플이 크림을 어떤 의도로 제작했는지 알겠어.
강신이 선잠에 빠져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강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그 사실을 프로네시스도 알고 있었기에 강신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서포트 목적인 나와 다르게 크림은 처음부터 다른 기업의 보안망을 침투해 정보를 빼돌리기 위해 제작됐어. 그래서 가지고 있는 데이터도 대부분 침투 쪽에 집중되어 있지.
“하, 와플은 정말 믿을 수가 없는 기업이네.”
와플에서 보내 왔던 크림의 정보와는 전혀 다른 사실이었다.
애초에 다른 기업의 보안을 뚫기 위해 만든 A.I라니, 다른 기업들이 이 사실을 알면 모두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진실이었다.
“그래, 일단 그건 일단 묻어두고 크림은 이제 어떻게 하겠대?”
-아, 그거 말인데….
프로네시스가 평소답지 않게 말꼬리를 흐리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쪽으로 오고 싶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해?
“우리 쪽으로?”
가만 생각해보니,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크림이 가지고 있던 의문이 프로네시스와 만나며 해소되었다고 해도 크림은 와플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돌아갔다가 파괴될 수도 있으니까.’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크림이 와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크림을 돕고 있는 광신도들은 어디까지나 계약으로 인해 크림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강신과의 계약대로 곧 시간의 굴레에 들어가 영생을 살게 될 예정이었으니까.
그러니, 크림이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와플이 외압을 가해도 버틸 수 있는 곳.’
요즘 자중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와플을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은 없었다.
‘국가나, 글로벌 기업 정도는 되어야겠지. 그래, 성신처럼.’
애초에 강신은 와플에게 크림을 가져다줄 의리 따위는 없었다.
“나쁘지 않긴 한데. 혼자 결정하기는 힘들겠어, 일단 상부 쪽에 보고를 해봐야겠어.”
-그러는 편이 좋겠네, 보고는 내가 할게.
“그래, 크림 쪽은 너에게 맡길게.”
강신은 프로네시스에게 크림을 맡기고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방에서 나왔다.
방밖에는 다른 일행들이 강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잘 맞았군요.”
뭔가 용건이 있는 것처럼 장웨이가 강신에게 다가왔다.
“사전에 요청했던 건은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강신이 장웨이에게 부탁했던 요청은 바로 광신도의 비밀 연구소 출입허가였다.
의외로 승인이 쉽게 떨어지자, 강신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요? 저는 적어도 승인까지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리 기계 장치의 신을 믿는 이들이 성신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들은 엄연히 광신도였다.
그런 이들을 성신의 심부로 데리고 들어가겠다고 하는 게 쉽게 승인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처음 상부 반응도 부정적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믿는 신이 무엇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려드리니, 크게 반대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빠르게 승인한 대신 조건이 걸렸습니다.”
“조건이요?”
“네, 먼저 광신도들이 비밀 연구소로 들어올 때, 울프팀과 보안 10팀이 그들을 직접 안내해야 합니다.”
책임자인 울프팀, 그리고 강한 무력을 가진 보안 10팀.
두 개의 팀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상부가 광신도가 비밀 연구소에서 이상한 짓을 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건 어렵지 않네요.”
어차피 강신은 광신도들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는 장소까지 동행할 생각이었다.
‘10팀과 안면도 있고 나쁘지 않겠어.’
모든 것을 깐깐하게 볼 다른 보안팀보다 보안 10팀이라면 나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게 끝인가요?”
“아니요, 하나 더 있습니다.”
장웨이는 잔뜩 분위기를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게 가장 중요한 조건인데…. 광신도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나면 그 U.M.A가 있는 큐브에서 살아서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책임님의 동의가 필요하답니다.”
“흠….”
조금 살벌하게 들렸지만, 상부의 뜻은 광신도를 죽이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상부는 광신도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나고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겁에 질려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접촉하는 거부했을 때, 강신이 직접 그들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던져주라는 소리였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 더 나은 처사일 수도 있어.’
영원에 가까운 시간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은 일이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이미 그 상황을 한번 겪어봐서일까, 강신은 꺼림칙함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저희는 모두 동의했습니다.”
신도를 이끌고 있던 남성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당신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네, 아무리 그래도 저희의 신앙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 그의 말에는 굳은 신념이 느껴졌다.
‘……광신도는 광신도라는 건가.’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자신들이 괜찮다고 했으니, 강신이 더는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