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560
559화
다른 이들은 들을 수 없는 고혹적인 목소리가 강신의 귓가에 맴돌았다.
-자기만 필요할 때만 찾다니…. 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설렜을지 모르지만, 강신은 그렇지 않았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거나 번역해줘.”
계약의 끈이 굵어지면서 반전을 겪어봤기에, 강신은 릴리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흐응…. 내가 왜? 이런 부분은 우리 계약에 전혀 없던 내용인데?
강신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그녀의 태도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래,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그야 계….
“미리 말하지만, 계약을 무르고 싶다거나, 그 외 무리한 요구를 할 거라면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럴 바에 번역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알아볼 테니까.”
릴리스는 이때다 싶어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전에 강신이 딱 잘라 못을 박았다.
그러자, 릴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 알았어. 잠깐 고민해볼게.
릴리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간질간질했던 말투가 사라졌다.
하지만 강신은 그녀에게 고민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주면 또 이상한 것을 요구하겠지.’
그래서 그녀를 재촉했다.
“빨리 말해,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
그렇다고 시간이 없다는 것이 거짓은 아니었다.
악마 숭배자들의 초대장은 다음날에 있을 종교의식에 초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저 암호문이 저녁까지 해석되지 않는다면 번역할 가치가 없다는 소리였다.
-좋아, 결정했어.
“뭔데.”
-너희가 만날 악마 숭배자들을 나에게 줘.
릴리스의 요구에 강신이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바로 달라는 건 아니야. 네가 필요한 정보를 얻고 일이 끝나면 그 이후에 달라는 거야.
“어떤 의미로 갖겠다는 거야?”
이미 인신 공양을 할 정도로 악독한 악마 숭배자가 어떻게 될지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그 말을 한 게 릴리스라면 조금 생각해봐야 했다.
“그들을 제물로 다시 현세로 얼굴을 들이밀려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와의 계약으로 인해 다시 현세로 올라가지도 못하는데.
그런 그녀를 지옥에 처박고 계약으로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게 한 것이 바로 강신이었다.
사실 계약이 아니라도 그녀는 지상으로 올라올 마음은 없었다.
예전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인간 세계로 나오곤 했지만, 강신이 주었던 그 끔찍한 고통은 아직 그녀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켜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고 말이지.
교황청 소속의 꼬맹이가 계약자의 사무실로 놀러와 노는 척하며 계약자와 자신의 계약 상태를 보고 가기는 했지만, 딱히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기에 상관없었다.
그런 사소한 것보다 계약자가 엮이는 일들을 지켜보는 게 훨씬 더 흥미로웠다.
현재 릴리스의 상태를 인간으로 치자면 게임을 포기하고 TV프로를 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직접 조종할 수는 없지만, 흥미로움을 자아내는 끝내주는 TV프로를 보내고 있는 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아주 가끔 지금처럼 자신이 개입할 수 있는 것만으로 릴리스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제물로 무엇을 하려고?”
-누구한테 당해서인지, 요즘 들어 피부가 살짝 처지는 기분이 들어서 관리해줄 시종이 필요하단 말이지~
강신은 릴리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악마가 피부가 처진다는 것은 거짓이겠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강신이 믿지 않는 것은 확실하게 제물을 시종으로 사용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제물로 이쪽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고 ‘계약’한다면 들어주지 못할 건 없지.”
-정말!?
릴리스는 그냥 던진 말에 강신이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깜짝 놀랐다.
지금 그녀가 하는 제안은 그간 지켜봤던 강신이라면 절대 수락하지 않을 제안이었다.
그래서 그냥 던지듯 쉽게 말하고 거절한다면 다른 것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강신이 허락하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첫 번째는 내가 직접 그들을 제물로 주지는 않을 거야.”
정확히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게 맞았다.
강신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릴리스와 맺은 계약의 끈이 다시 굵어져 계약의 반전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그래, 그 정도야 뭐, 그들이 정말로 악마 숭배자라면 제물로 걷어가는 건 일도 아니니까.
제물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그 정도 번거로움은 일도 아니었다.
-첫 번째라고 한 것 보니까, 두 번째도 있어?
“두 번째는 이것처럼 번역이 필요한 일을 알려 줄 때는 오역 없이 적혀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알려줄 것.”
강신은 특히 오역이라는 말에 강조했다.
인간의 언어를 살펴봐도 똑같은 말이 여러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그리모어에 적힌 악마의 언어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릴리스는 강신과 계약을 맺고 있지만, 엄연히 악마였다.
그런 그녀가 곧이곧대로 강신을 도와줄 리가 없었다.
-흐응…. 철저하네. 뭐 좋아, 그럼 계약해볼까?
강신은 확실한 단어를 사용하고 그녀와 추가 계약을 이어갔다.
‘계약의 끈이 굵어지겠지만…. 아직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물건이나 큰 능력을 주고받는 계약이 아닌 그저 몇 마디 주고받는 것이 전부인 계약이었다.
그러니 계약의 끈에는 큰 영향이 없을 거라는 것이 강신의 판단이었다.
-자, 그럼 바로 읽어줄게?
릴리스는 오랜만에 흡족한 계약을 체결해서인지, 기분 좋은 목소리로 곧장 십자가에 적힌 악마의 언어를 번역해 주었다.
악마 숭배자들이 남긴 역십자가에는 그들이 있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외딴 장소와 더불어 시간이 적혀 있었다.
위치를 듣자 평소 십자가를 붙이기 위해 돌아다니던 맥스가 어디인지 떠올리고는 말했다.
“이 위치는 폐가가 있던 곳입니다. 사람의 통행이 아예 없던 장소이기도 하고요.”
사람의 통행이 아예 없어서 굳이 십자가를 붙이지 않았던 구역이었다.
맥스가 위치를 특정하자 이순자는 적혀 있는 시간을 보고 비꼬듯 말했다.
“오늘 저녁에 보자니, 뭐가 그리 급한지.”
“아무래도 같은 악마를 믿고 있다고 해도 자신들 구역에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니까,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거겠죠.”
그들은 그렇게 이방인을 보고 같이 의식을 진행해도 될 이들인지, 아니면 배척해야 할 이들인지 판단할 것이다.
그러니, 첫 만남이 가장 중요했다.
“처음부터 이 인원이 모두 가면 괜한 경계를 살 수도 있으니, 저와 송대리님만 가는 것으로 하죠.”
“세 명이라….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이순자가 숫자를 세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강신과 송기덕 사이에는 당연히 신하린이 포함될 것을 알기에 세 명이라 칭한 것이었다.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니까, 세 명이면 충분할 겁니다.”
상황이 틀어질 수도 있었지만, 강신은 악마 숭배자들이 자신에게 호의를 갖게 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생각이니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저녁 시간이 되었다.
강신과 송기덕은 후드티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입을 가려 모습을 최대한 감춘 상태로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강신이 도착한 장소는 맥스가 알려주었던 것처럼 다섯 개의 폐가가 있었다.
해가 진 시간이라 시야는 어두웠지만, 강신은 조명에 의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길 잠시 한 남성이 그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스킨헤드에 눈가 아래와 목 부분에 자잘한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딱 봐도 불량해 보이는 남성은 강신과 송기덕을 탐색하듯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쪽이 이번에 우리 마을로 흘러들어온 외부인인가 보군?”
호의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은 그의 태도에 강신이 덤덤하게 말을 던졌다.
“뭐, 그렇지…. 그보다 우리도 상당히 놀랐다고? 설마 이곳에 우리와 비슷한 이들이 있다니….”
“흥, 우리야말로, 일단 초대했으니, 손님 대접은 해주지, 따라와라.”
비슷하다는 말에 콧방귀를 끼긴 했지만, 상황 자체는 썩 나쁘지 않았다.
‘손님 대접을 해준다니까. 일단 합격인가.’
이전에 말했듯이 악마 숭배자들은 부류가 나뉘어있고, 컬트 집단이 가장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러니, 갑자기 공격을 당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공격은커녕 짧게 탐색하고 손님 대접을 해준다고 하니, 이 정도면 정말 양호한 편이었다.
강신과 송기덕은 말없이 앞장서고 있는 남성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이동하며 뭔가 질문이나 말을 걸 법도 했지만, 남성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면 가장 외곽에 있는 폐가로 강신과 송기덕을 안내했다.
유리창조차 없어 스산한 바람이 부는 장소였다.
의식 준비조차 되지 않은 비어있는 건물에 송기덕이 함정으로 판단하고, 바로 경계 태세로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스킨헤드의 남성을 덮칠 준비한 상태였다.
하지만 강신이 손을 들어 고개를 젓는 것만으로 그를 말렸다.
“흐, 일행은 조금 성질이 급하네. 아니지, 이런 상황을 많이 당해봤을 테니, 저게 보통인가?”
앞장서던 남성은 그런 송기덕의 행동을 보고는 피식 웃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쪽에 소속된 이들은 손님이라 칭한 이들을 함정에 빠트리지는 않는다고?”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을 발로 내려쳤다.
쿵. 쿵.
소리가 울려 퍼지자, 숨겨져 있던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열렸다.
드르륵.
“따라와라.”
스킨헤드가 지하로 내려가자, 강신과 송기덕도 다시금 그를 뒤따랐다.
외부와 다르게 지하실 내부로 향하는 길은 은은한 불빛이 존재했기에 넘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생각보다 깊은 지하실의 존재에 흥미가 돌 때쯤, 사람 둘이 들어갈 크기의 철문이 나타났다.
남성은 바로 철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나왔어.”
하지만 문은 바로 열리지 않았고 문에 달린 작은 틈이 열리며 어떤 사람의 눈동자가 탐색하듯 강신 일행을 바라봤다.
“암호는?”
“뭔 암호야, 일스. 그냥 열어.”
벤이라 불리는 스킨헤드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귀찮다는 듯이 말하자 철문 내부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벤 너는 정말 규정을 지키지 않는구나.”
“이런 쓸데없는 규정은 뭐하러 정해서는…. 애초에 그리모어 암호를 풀고 온 이들이야, 이 정도로 전문지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적어도 막 나가는 이들은 아니야.”
강신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벤을 바라봤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의 언행을 봐서는 그는 생각이 깊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의외로 머리를 굴릴 줄 아는 것처럼 보였다.
벤은 일스라고 불린 남성이 암호를 말할 때까지 문을 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강신과 송기덕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리자, 그때야 일스가 철문을 열어주었다.
끼익…….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송기덕은 살짝 놀라운 눈으로 강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야 지하실 내부에는 강신이 꾸며 놓았던 가짜 의식 장소와 흡사한 장소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비릿한 피 냄새와 그려진 오망성, 그리고 짧게 녹아내린 촛불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앙에 제물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그 주변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하얀 천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 이들 중 베일을 쓰고 있는 한 명이 강신과 송기덕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그들을 반겨주는 목소리에 강신은 움찔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 목소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와 매우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