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708
707화
초월체의 심기는 불편해졌고 그 기분을 강신과 척준신에게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격 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을 기었다.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였지만, 이상하게도 둘은 죽지 않았다.
아니, 죽을 수가 없었다.
이 공간이 둘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는 것인지, 초월체가 손을 휘젓자 다른 장소에 있던 이순자와 신하린, 베가가 그들이 있는 공간으로 떨어졌다.
균열 속으로 들어온 여섯의 특공 인원이 모두 모였지만,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초월체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내 말을 들었다면, 신하로 삼아주려 했건만!
적들과 싸우다 갑자기 이곳으로 끌려와 손발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공격받고 있었지만, 이순자와 신하린, 베가는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프흐흐.”
“킥킥.”
그걸 본 초월체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웃어? 지금, 이 상황에서 웃는다고?
끔찍한 고통이 그들을 덮쳤지만, 그래도 변하는 건 없었다.
상황은 급작스러웠지만, 그들은 초월체가 어째서 화를 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크흣, 흐흐. 작전은 성공했나 보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초월체가 저렇게까지 화낼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런 이순자의 태도는 초월체를 더 화나게 할 뿐이었다.
-무지몽매한 것들아, 지금 세상을 보아라, 정당한 왕좌에 왕이 없으니 서로 싸우기를 반복하며 망해가는 세상을 말이다!
그러면서 초월체는 열변을 토했다.
-나는 인간을 멸망시킬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인간의 부흥을 위해 움직였겠지! 하지만 너희들이 그 모든 것을 망쳤다!
초월체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일행들을 손짓만으로 한곳으로 모으고는 말을 이어갔다.
-너희는 멸망을 막는다고 했지만 정작, 너희 때문에 인간은 멸망할 것이다.
그건 선언과도 같았다.
‘절대적인 지배자….’
강신은 온몸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서도 생각했다.
위에서 오롯이 군림하는 자가 있다면 정말 인간은 서로 싸우지 않을까?
‘글쎄.’
정해진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모니카조차도 자신이 본 미래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으니까.
그러니, 저 초월체가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었다.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믿고 싶던가.’
그건 아마 만들어진 왕이 가진 아집과 같을 것이다.
비록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강신은 저 강대한 초월체가 자기합리화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미 강신과 일행들로 화를 풀었기 때문일까, 초월체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가?
“쿨럭, 쿨럭. 아니, 그럴 수도 있겠지.”
강신은 피가 섞인 기침을 하면서도 자기가 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멸망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야.”
그래, 지금은 비록 위태할지 몰랐으나, 인간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인간들은 굳이 당신이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낼 수 있는 존재지.”
만약 스스로 자멸한다면 그건 그냥 인간이 그런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막겠다는 목표로 저 초월체가 인간 위에 군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걸 알고 있는 것일까, 초월체는 강신의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뭐가 되었든 너희는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초월체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다시 흘렀다.
강신과 일행들은 먹거나 자지 않아도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찢어진 보호 장비까지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빠르게 다친 몸이 회복되었다.
그래서일까, 상황을 지켜보던 강신과 다르게 베가는 몸이 회복되자 초월체에게 덤벼들었고, 당연히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처참한 몰골이 된 것은 물론이고 그가 가진 재능마저 빼앗겨버렸다.
“젠장, 젠장….”
재능을 잃은 베가가 구석에서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초월체는 강신과 일행들이 몸이 회복될 때마다 주기적으로 상처를 만들었다.
강신과 일행들은 주기적으로 작전을 짜서 이곳에서 벗어날 방법과 초월체와 싸울 계획을 만들었지만 모두 불발로 돌아갔다.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이 끔찍한 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무기력하게 초월체에게 당한 것이 숫자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되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꿈틀.
만들어진 왕의 옥좌 아래, 죽었다고 판단했던 이고르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구우웅….
쾅!
하늘에서 작은 균열이 생기더니, 이순자와 신하린, 베가가 있던 곳에 있었던 모노리스가 갑자기 튀어나와 지면에 내려꽂힌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에 초월체가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귀찮은 물건이야, 그냥 파괴하는 편이 좋겠군.
유일하게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물질.
그랬기에 이고르가 저 물건과 함께하지 못하게 떨어트려 놓았다.
모노리스가 갑자기 나타난 충격 때문일까, 초월체는 이고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모노리스를 뱉어낸 그 구멍에서 강신은 아주 예전에 만났던 용의 모습을 아주 잠깐 볼 수 있었다.
그것과 별개로 죽은 줄 알았던 이고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자신의 피를 초월체 앞에 있는 모노리스에 뿌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초월체가 당황했다.
-아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초월체가 확인했을 때, 분명 이고르의 숨은 끊어져 있었다.
자신이 직접 목숨을 끊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죽었던 것으로 생각했던 이고르가 일어나 모노리스에 피를 뿌렸고, 검은색 기둥에 불과했던 모노리스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웅…. 우웅….
작게 울던 모노리스가 갑자기 팽창하듯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초월체를 향해 온갖 검은 무기를 쏟아냈다.
촤라라락!
하지만 초월체는 그 무기들이 별로 위협이 되지 않는 것처럼 손짓 하나로 그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모노리스는 계속해서 무기들을 뱉어냈다.
그 사이 이고르가 모노리스에 접근해 투명한 수정을 꺼내며 말했다.
“탈출할 테니, 나에게 모여라!”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끔찍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고르의 말에 모든 인원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이고르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감히! 내 일을 망쳐놓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만들어진 왕이 화를 내며 이고르를 방해하려고 했지만, 모노리스는 마치 자아가 있는 것처럼 초월체를 향해서 위협적인 무기를 계속해서 날려댔다.
이고르는 어느 정도 인원이 모이자, 들고 있던 투명색 수정을 손으로 으깼다.
그러자, 어두운 우주 공간에 한 줌의 빛이 들어오며 이고르 주변을 감쌌다.
척준신과 이순자, 신하린은 아무 문제 없이 그 빛이 닿는 곳까지 도착했지만, 재능을 잃었던 베가는 그 충격 때문에 행동이 늦어졌다.
원래라면 강신도 이미 그 빛이 닿는 곳에 들어갔어야 정상이었지만, 강신은 자신을 위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이곳까지 와준 베가를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빛 주변에 있는 이들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강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안돼!”
“그냥 이리 와요!”
하지만 강신의 마음은 이미 굳혀진 상태였다.
“베가, 저를 위해서 여기까지 같이 와준 것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초코야!”
강신이 초코를 부르자, 이제까지 얌전했던 초코가 베가를 빛이 닿는 곳까지 날려 보냈다.
강신도 함께 가면 좋았겠으나, 둘을 날려 보내려다 둘 다 못 들어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기에 강신은 베가 만이라도 확실하게 보낸 것이다.
초코와 설야도 베가에게 딸려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베가가 날아가며 빛이 있는 곳에 닿자, 마치 불을 끄는 것처럼 빛이 사라지며 거기에 닿았던 모든 이들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이 우주 공간에는 모노리스에서 나오는 무기를 막는 만들어진 왕과 베가를 내보낸 강신만이 남아 있었다.
일행들이 탈출하자,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초월체가 모노리스를 파괴하고 남아 있는 강신에게 화풀이를 이어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고통이 강신을 덮쳤지만, 강신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야 자신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무사히 밖으로 나갈 수 있었으니까.
‘도움을 구하기는 어렵겠지.’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만들어진 왕이 이고르를 상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종족이 모두 모여서 이곳으로 온다 해도 저 존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만들어진 왕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자연재해와 가까웠다.
막을 수 없는 고통이 이어졌고 강신은 그 고통을 감내했다.
* * *
시간은 지났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강신도 잘 몰랐지만 확실한 건,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초월체가 모든 계획을 망친 강신을 방치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더는 강신에게 상처를 내는 것이 질린 것인지, 초월체가 강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이들은 이곳에서 빠져나갔는데, 후회하지 않나?
강신은 고개를 저었다.
“다 죽으리라 생각했는데, 일행들만이라도 이곳에서 나갈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다.”
초월체가 아무리 끝없는 고통을 주어도 강신의 의지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자기희생(Sacrifice)인가?
“그런 고상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날 믿고 따라준 이에게 보답한 것일 뿐.”
-그런가.
외로웠던 것일까? 초월체와 강신의 대화는 의외로 계속 이어졌다.
사소한 잡담부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까지.
그리고 알게 된 초월체의 성격은 지독한 권위주의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강신은 계속 초월체에게 말을 걸고 답하고 물었다.
얼마나 더 시간을 흘렀는지 몰랐다.
만들어진 왕은 이제 강신에게 더는 상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강신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래, 나의 분신체를 보내서 나를 경배하는 교단을 만들었지.
만들어진 왕은 크툴루를 믿는 이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신나서 떠들어댔다.
강신은 그런 그의 의견을 간간이 동의하며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그렇게 더 시간이 지났다.
서로에게 더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무렵, 초월체가 강신에게 한가지 제의를 했다.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일까.
누구라도 이 끔찍한 공간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할 것이 분명했다.
“…….”
강신이 아무 말도 못 하자, 초월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여기서 나가고 싶은가 보군. 나도 그랬다.
계속 인간의 멸망을 막기 위하고 인간들을 통제하기 위함이라 떠들어댔지만, 초월체는 처음으로 속에 있는 마음을 내뱉었다.
-나도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지구를 버리고 신앙을 받아 초월체가 되자, 그의 육체는 이 공간에 묶였다.
어떤 노력을 해봐도 그는 이곳에서 묶여있었기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작은 분신 정도는 지구로 보낼 수가 있었다.
그 분신으로 교단을 만들고 자신을 내보낼 수 있는 균열을 만들었지만 모든 것이 수포가 되어버렸다.
-그래, 나는 그저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했지만, 군림과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면 초월체는 아마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 늦었어.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다면 모를까, 교단 자체가 인간에게 엄청난 위협이었으니, 네가 만든 교단은 인간과 공존하기는 힘들었을 테지.”
-알고 있다. 그래서 너는 어떻지?
아무것도 없는 이런 곳에서 영생을 산다고 해도 그게 과연 영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니, 강신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도 이곳에서 나가고는 싶지.”
-크흐, 나는 널 이곳에서 내보낼 생각이 없다.
초월체가 비웃듯 강신에게 말하자, 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어.”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혼자서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더 시간이 흘렀다.
시간에 대한 감각은 무뎌졌고 둘의 대화는 점점 짧아졌다.
그렇게 몇 년이나 지났을까.
몇십 년? 몇백 년?
시간을 세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그래서일까, 강신은 만들어진 왕이 어째서 이 공간에서 나가고 싶어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곳은 그에게 감옥이었겠구나.’
인간으로서 반신의 위치에 올랐지만, 주변에는 그를 숭배하고 경외했던 추종자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끔찍한 고독함을 지우기 위해 촉수 생물을 만들어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했지만, 그것마저도 그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촉수 생물은 그저 흉내만 낼뿐, 진짜 인간이 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내가 만든 분신체에게 내린 명령은 내가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교단을 만들고 균열을 연 것은 어디까지나 분신체의 독단이었어.
그저 분신체가 본체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인간을 좋아하는 편이야. 내가 인간이었으니까. 그래서 너희들을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고 고통만 준 것이지.
“요즘 인간들은 그런 걸 세탁기를 돌린다고 하지. 그렇게 인제 와서 나는 나쁜 짓은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해도 말이지.”
세부 원인은 그가 아닐지라도 그가 한 하나의 행동으로 교단이 탄생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피해를 봤다.
또한, 이미 자신과 일행들을 공격했으니, 강신은 만들어진 왕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푸념이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보다 더 한 일들도 할 것이다.
“뭐, 그래.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야. 만약 이런 공간에 나 홀로 몇천 년, 몇만 년 갇혀있었다면 미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그가 한 행동은 정당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동정할 수는 있었다.
그 이후에도 둘은 이따금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강신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만들어진 왕이 만든 이 공간에서 그는 전능한 힘을 가졌지만, 대신 다른 초월체와 다르게 유희를 즐길 수가 없었다.
내부를 다지는 능력만 있었기에 외부에 간섭하거나 볼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초월체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빌어먹을 지렁이가 너희를 돕지만 않았다면 나는 진작에 여기서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척준신이 주체를 파괴할 수 있었던 이유.
그에게 빛으로 길을 알려주고 그 공간을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었으며 무엇보다 주체를 파괴하기 전까지 그 존재감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 만났던 중국의 용이 몰래 그들을 도운 덕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행들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 모노리스를 보내준 것도 그녀였다.
-빌어먹을 년…. 나중에 꼭 복수해주마.
어째서 용이 자신들을 도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강신은 속으로 그녀에게 감사함을 건네야 했다.
어떤 목적이었든 만들어진 왕을 막을 수 있었고, 일행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더, 더 시간이 흘렀다.
이제 지구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판단되었다.
그동안 강신은 만들어진 왕과 대화를 나누거나 잠을 잤다.
피로가 없는 이곳에서 잠은 무의미한 행동이었지만, 강신에게는 아니었다.
‘이번 U.M.A도 재밌네.’
강신이 가진 재능은 꿈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강신은 꿈을 꾸고 그 내용을 굳이 글로 옮겨 적었고, 만들어진 왕은 종종 그런 강신이 쓴 글을 읽기도 했다.
처음에는 흥미로 시작했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거래를 하자.
“갑자기?”
그만큼 만들어진 왕의 제의는 정말이지 뜬금없었다.
-너는 이 내용을 꿈에서 보는 것이지?
만들어진 왕이 강신이 쓴 소설을 흔들어 보였고 강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꼭 꿈이 아니더라도 영감은 찾아와. 꿈 쪽이 가장 확실하니까 그런 거지.”
-뭐가 되었던 꿈속에서는 글이 아닌 이 생물을 직접 본다는 거지?
강신은 간단히 수긍했다.
“뭐, 그렇지.”
-그 재능을 나에게 팔아.
재능을 팔라는 말에 강신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뺏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뺏을 수 있잖아?”
베가의 탄성을 빼앗듯이 말이다.
하지만 만들어진 왕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빼앗고 싶지는 않으니까.
처음이라면 모를까, 같은 공간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덕분일까, 만들어진 왕은 강신의 재능을 강탈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대등하게 거래를 하고 싶을 뿐….
“그래, 뭐 재능을 넘겨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
밖에서라면 모를까, 지금 이곳에서 자신의 재능은 그저 무료함을 달래주는 영상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너는 뭘 줄 수 있는데?”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지.
“뭐?”
애초에 이곳에서 나가기를 포기하고 있었던 강신은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힘의 소모는 극심하긴 하겠지만, 분신체를 빼냈던 방법으로 너를 내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어때, 흥미가 있나?
비록 강신은 이곳에서 나가겠지만 강신이 가진 재능으로 무료함을 날릴 수만 있다면 그는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신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글쎄…. 굳이 여기서 나갈 이유가 있나.”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이 아닐 것이다.
많은 것이 변화했을 것이고 자신은 아마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까.
“그런 곳에 떨어져 혼자서 고독하게 사는 것보다, 여기서 편하게 고독하게 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쩌면 강신의 선택이 옳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이곳과 외부의 시간은 같게 흐르지 않는다.
만들어진 왕은 시간이 흐르면 인간이 멸망한다고 믿으며 자기합리화해왔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멸망을 늦추기 위해서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의 시간을 최대한 길게 늘려놓았다.
그 덕분에 정말 오랜 세월을 이곳에 있었지만, 실제로 외부 시간은 그리 오래 지난 것은 아니었다.
-한 달 정도 흘렀겠지.
“……한 달?”
강신의 두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음에도 외부는 고작 한 달이 흘렀다는 것을 보니, 아직 자신에게 기회가 남아 있음을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거래하겠나?
만들어진 왕의 목소리가 이곳으로 넘어오며 끊어진 악마의 유혹처럼 들려왔다.
“……괜찮겠어?”
자신이 이곳에서 나가면 그는 다시 혼자서 이곳에 있어야 했다.
강신은 그간 만들어진 왕과 대화를 나누며 그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했던가, 괜히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흥, 날 걱정하기에는 백만 년은 이르다. 아, 거래하기 전에 한가지 알려줘야겠군. 네가 만약 거래에 수긍하면 너의 삶은 이전과 다를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다들 이미 작성해둔 내용이 잔뜩이니까.”
재능을 잃어버린다고 해서 자신이 작성한 소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만들어진 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말한 게 아니다. 자신의 몸에 재능을 품은 이와 달리 너의 재능은 꽤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 그러니, 재능으로 이득을 봤던 이들은 너에 대해 잊을 가능성도 있다.
그의 말인즉슨, 강신과 다른 일행들의 관계가 성신에 입사하기 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기록 말소는 당연하고 네가 나를 막았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너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만들어진 왕이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겁을 주었지만, 강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됐어, 애초에 누군가 알아주기를 원했던 것도 아니야. 그러니, 뜸 들일 필요는 없겠지. 그래, 거래하자.”
-그래, 다음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만들어진 왕이 강신을 향해 살포시 주먹을 쥐자, 영혼이 뜯겨 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으아악!”
-좋아, 그럼 이만 가봐라. 너랑 지내는 날들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만들어진 왕은 강신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아무 미련 없이 강신을 밀어냈고 강신은 그대로 어딘가로 추락했다.
그리고 이내,
쿵!
질척한 지면에 몸이 처박혔다.
지면에 떨어진 강신은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지만, 재능을 빼앗긴 충격이 워낙 컸던 터라,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 여기 사람이 떨어졌다!”
“빨리 911 불러!”
강신은 그렇게 듣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도한 나머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강신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얇은 블라인드와 환자용 침상, 딱 봐도 응급실 같았다.
강신은 근육통이 온 것처럼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개인실이 아니네.’
만들어진 왕의 말대로 성신 사람들이 자신을 잊은 것 같았다.
만약 성신 요원들이 강신이 복귀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런 응급실보다는 개인실로 보냈을 테니까.
그 이후로 강신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성신 지부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근처 한국 대사관에 들려야 했고 그곳에서 강도를 만나 보든 짐을 빼앗겼다고 변명을 해야 했다.
기억나는 전화번호가 가족뿐이 없었으니, 형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강신의 형은 동생이 외국에서 고립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강신은 형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강신은 이것을 원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쪽으로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은 그렇게 대인배가 아니었나보다.
그래도 이미 모든 것은 끝난 상태였다.
방 안에서 구르고 있던 강신은 생각했다.
‘지금 살아서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건 욕심일 것이다.
지금 강신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잊혀 있는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가족들은 내가 회사에 입사한 것을 알고 있었어.’
부모님과 형은 강신이 회사에 입사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신에서 발급받았던 월급 통장도 살아 있었다.
실제로 돈을 뽑아 보기도 했으니까.
‘입사한 기록은 남아 있는 건가?’
지하에 있는 비밀 연구소로 들어가 볼까 생각했지만, 강신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입사한 기록이 남아 있고 통장이 살아 있어도 비밀 연구소에 있는 이들이 자신을 잊어버렸다면 그들은 자신을 침입자라고 생각하며 공격해올지도 몰랐다.
‘그냥 마음 편히 놀면서 살까.’
이미 월급 통장에는 강신이 평생 놀며 써도 될 만큼 돈이 쌓여있었다.
돈 많은 백수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자신과 생사를 함께했던 일행들이 조금 보고 싶을 뿐이었다.
‘일단 당분간은 쉴까.’
만들어진 왕이 있는 공간에서 충분히 쉬긴 했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서 편히 쉬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강신은 자신의 침대에 몸을 맡겼고 어느새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와 형은 출근했고 어머니 또한 이유가 있어 집을 비운 오후 시간, 누군가가 집으로 찾아왔다.
띵동~! 쿵쿵쿵!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강신은 쉬다가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고 문밖에 있는 이들을 보고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돌아오셨어….”
“거봐요, 난 믿고 있었다니까!”
“크흠, 돌아왔으면 회사로 출근해야지 무단결근이 무슨 말입니까?”
“그 끔찍한 곳에서 어떻게 돌아온 겁니까?”
신하린, 이순자, 송기덕 그리고 척준신까지, 그리고 그들 뒤쪽으로는 장웨이와 지원 요원들도 보였다.
자신의 동료였던, 아니 동료인 그들이 강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만들어진 왕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그 공간에서 나올 때 느껴졌던 그 끔찍한 고통은 자신의 재능을 앗아가는 것이었으니까.
또한, 그 이후로 샘솟던 영감도 사라졌으니, 분명 거래는 정상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일행들이 자신을 반겨주자 강신은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강한 척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정말 많이 아쉬워하고 있었으니까.
“고생했네.”
뒤쪽에서 퀭한 눈으로 권영식이 나타났다.
“팰로우님도 이제는 쉴 수 있으시겠네요.”
송기덕이 중얼거리자, 강신은 그가 척준신과 다른 요원들을 구하겠다며 무리했던 것처럼 권영식이 이번에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돌아왔으니, 송기덕의 말대로 권영식은 이제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베가에게 딸려 보냈던 초코와 설야가 강신에게 빠르게 다가와 이전처럼 투정을 부려왔다.
“하하….”
강신의 입에서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왔고 이내, 두 팔을 벌려 자신과 수많은 현장을 나갔던 이들을 양팔 가득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들도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 어색하지 않게 강신을 안아주었다.
강신은 그렇게 다시 울프팀의 팀장으로 미확인 생물체가 있는 현장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이전에 있던 재능은 잃어버렸지만, 이제는 크게 상관없었다.
재능이 없어도 U.M.A를 상대하는 데에 큰 불편함은 없었으며 그런 강신의 곁에는 든든한 일행들이 언제나 함께할 테니까.
* * *
성신 병원 1인 VIP룸.
그 병실에는 강신, 척준신과 함께 현장을 돌아다녔던 이로 본명은 따로 있었지만, 일행들에게는 김대리로 불렸던 남자가 병실에 누워있었다.
몸 상태는 이상이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깨어나지 못했던 그 남자의 몸에 이변이 생겼다.
꿈틀,
아주 조금이지만 손가락이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와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가 그것을 발견했다.
“선생님!! 움직였어요! 움직였다고요!”
그 여성은 다급하게 의사를 찾았고 그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김대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 * *
만들어진 왕과 다른 초월체가 기거하는 곳.
우주 공간을 가진 만들어진 왕과 다르게 그 초월체의 공간은 푸르른 바다가 끝없이 이어진 장소였다.
그곳에서 한 소녀의 모습을 한 ‘용’은 물에 비치는 강신의 모습을 보고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후…. 이렇게 끝이 날 거라는 건 짐작은 했는데.”
그녀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해피엔딩이긴 한데….”
남동생이 도움을 받았기에 그 은혜를 갚으려 강신과 일행들을 도왔지만, 만들어진 왕보다 약한 그런 그녀에게도 한계는 있었기에 대놓고 도울 수는 없었다.
몰래 뒤에서 강신과 일행들을 도왔지만, 마지막 비극은 그녀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바다 수면에는 강신이 웃으며 일행들을 껴안는 모습이 보였다.
강신과 저 사람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건,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저들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절대 저렇게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단순히 재능을 잃은 게 아니야.”
그녀는 강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을 떠올렸다.
그녀의 기억에도 얼굴에 검은 칠이 되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초월체인 그녀조차 그런데, 평범한 인간에게는 아예 지워진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다른 이들에게 혼선을 주기 위해 정보꾼이라 불리지만, 강신의 재능은 정보꾼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신이 가진 재능은 ‘작가’였다.
영감을 받고 글을 세상에 존재하는 내용을 글로 적어내는 재능.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엄청난 능력을 자랑하는 그의 재능은 혼자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작가에게는 독자라는 존재가 필요한 법이니까.”
둘은 떼어놓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작가의 완성은 독자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니까.
그녀는 수면에 비치는 강신에게서 눈을 뗐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올려 화면 너머에 있는 당신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미확인 생물 전담 포획팀 end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처음으로 쓴 글이 끝이 났네요!
이 작품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처음 작품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봐도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기에 과연 독자님들을 만족하게 할 수 있을까 언제나 걱정되었습니다.
그래도 댓글로 용기를 주시는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여기까지 함께해준 독자분들께 정말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지금 이 작가의 말을 끝까지 보고 계신다면 아마 이 글을 애정을 담고 봐주셨다는 것이겠죠.
그러니, 말할게.
잊어서, 찾는 게 많이 늦어져서 미안해.
나와 우리의 팀이었던 이들은 이제야 너를 잊었던 것을 알게 되었어.
많이 늦었지만, 이제 너를 찾으러 갈게.
-부제: 나는 그때 그곳에 있었다.